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36화 (236/400)

Round 236. 끈질긴 추격

던컨이 추격 골을 터트리면서 필드의 분위기는 바뀌었다.

할 수 있다는 마음에 사기가 솟구친 맨유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것.

최전방의 공격수들부터 레알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달려들어 차징을 걸거나 태클을 시도했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 아니 전투적이었던 선수는 알렉스 퍼거슨이었다.

“캬캬, 죽어!”

“아아악!”

안토니오 루이즈가 공을 잡고 있을 때, 알렉스가 거친 차징으로 그를 쓰러트렸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지만, 알렉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후에도 상대의 다리를 걸거나 유니폼을 잡아채며 성가시게 만들었다.

당연히 파울을 받았지만, 그 바람에 레알의 공격 흐름은 뚝뚝 끊기곤 했다.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자식이……!”

“저거 확 죽여 버릴까?”

레알 선수들이 으르렁대는 사이, 주심이 알렉스에게 구두로 경고를 해 주고 갔다.

적당히 하지 않으면 퇴장시키겠다면서.

“쳇, 페널티킥도 못 알아본 주제에…….”

“그래도 적당히 해라. 퇴장당하면 진짜 큰일이라고.”

숀 코너리와 데니스 바이올렛은 후배들을 다독여 가며 기회를 만들려고 애썼다.

특히 숀은 본인이 슈팅을 시도하기보다 공을 오래 소유할 수 있도록 빈 공간에 있는 동료들에게 패스를 밀어 주거나 적당히 지연을 시키며 시간을 벌었다.

그에 맞춰 바비 찰튼은 부지런히 공수를 오가며 공을 연결했고, 던컨은 상대 패스 루트를 예상해서 패스를 끊어 냈다.

여기에 준영도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공을 확보하려 애썼다.

“진짜 고래 심줄처럼 질긴 놈들이구만!”

“여긴 우리 안방이라고!”

맨유의 분전에 주춤하던 레알 선수들도 전의를 끌어 올렸다.

오늘 경기는 정말 질 수 없다.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이 달린 데다, 프랑코 총통과 12만여 명의 홈 관중들이 관전하고 있었으니까.

공을 잡고 있던 후안 산티스테반이 맨유처럼 측면을 활용하여 공격진으로 패스를 보냈다.

그 공을 잡은 건 레몽 코파.

‘작은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이 프랑스의 레전드 플레이어는 맨유 페널티 박스 오른쪽으로 달려 들어가는 푸스카스의 앞쪽으로 낮고 빠른 크로스를 보냈다.

푸스카스는 날아온 크로스를 왼발로 방향만 살짝 돌려놓았다.

니어 포스트를 노린 그 기습적인 슈팅에 해리 그렉은 손쓸 틈도 없이 당했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우레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잘했다, 헝가리의 마법사!”

귀빈석에서는 프랑코 총통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정말이지 멋진 크로스에 기막힌 슛!

다들 환호했지만, 맨유 선수들이나 영국에서 온 취재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방금 그거 오프사이드 아냐?”

“수비수들보다 앞서 있었던 것 같았는데…….”

무비 카메라로 찍긴 했지만, 당장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프사이드를 의심하는 건 맨유 수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레몽 코파가 푸스카스 쪽에게 크로스를 날리기 직전에 3명 모두 전진하며 함정을 팠다.

하지만 부심은 깃발을 들지 않았다.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우리 대응이 늦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심판들이 일부러…….”

“잊어버려. 아직 우리가 불리한 건 아니야.”

아직 시간은 있다.

앞서 추격 골을 얻어 낸 것처럼, 다시 한 골 따라붙으면 된다.

그리고 최전방의 동료들에게 그만한 저력은 충분히 있었다.

“분하긴 하지만, 당황하거나 흥분해서는 안 돼.”

“그렇죠. 주장도 그랬잖아요. 후방이 흔들리면 동료들도 앞으로 가지 못한다고.”

이미 터진 실점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더 이상의 골은 내주지 말자.

그런 결의를 굳힌 레이 윌슨과 빌 포크스, 로니 코프는 침착하게 수비를 해 나갔다.

***

또다시 내준 실점.

하지만 맨유 선수들은 당황하지 않고 공격을 전개해 나갔다.

‘상대는 무적이 아니다.’

‘진짜 저승사자도 아니고, 외계인도 아니지.’

이미 홈에서도 이겨 봤고, 작년 결승전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더구나 후반전 초반에도 득점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할 수 있어. 추격 골을 만들 시간은 충분해.’

‘침착하게 하나만…….’

맨유 공격수들은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충분히 주변을 살피며, 상대의 마크나 동료들의 위치를 살피며 공을 몰고 나갔다.

물론 그들의 공격을 레알 선수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또다시 추격 골을 내줄 순 없지.’

미드필드 지역으로 내려온 디 스테파노는 수비에 힘을 실었다.

그러고는 공격할 때는 자신을 따라붙었던 바비 찰튼을 바싹 마크했다.

‘이놈은 그 동양인만큼 일을 저지르는 놈이니까.’

지금도 작년에 녀석이 넣은 결승 골이 잊히지 않았다.

오늘 경기에 승리하고, 놈의 공격 포인트를 봉쇄해야 지난 대회의 수치가 지워질 것 같았다.

“나한테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거 아닌가?”

“Qué?”

바비 찰튼이 슬쩍 백 패스를 시도하자, 디 스테파노는 화들짝 놀랐다.

백 패스를 받은 건 이준영.

요주의 대상이지만, 푸스카스의 저주(?)를 받고 버벅이고 있던 녀석이 슈팅을 날렸다.

하지만 준영의 슈팅은 과감하게 몸을 던진 수비수 라파엘 레스메스의 등에 맞고 굴절이 되었다.

“잘했… 어어!”

반색을 하던 도밍게스 골키퍼가 황급히 오른쪽 구석으로 몸을 날렸다.

수비수의 등에 맞은 슈팅이 솟구쳤다가 골대로 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

다행스럽게도 슈팅은 그냥 크로스바를 넘어갔다.

“와, 큰일 날 뻔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레알 골키퍼와 수비수들은 이내 말다툼을 벌였다.

“왜 저 동양인을 마크하지 않은 거야! 저놈이 어떤 놈인지 잘 알면서!”

“그야 정상이 아닌 것 같으니까…….”

“방심은 금물이란 거 몰라? 그냥 내버려 두지 마!”

잠시 후, 맨유의 코너킥으로 경기가 재개되었다.

레알은 공격수들까지 수비에 가담했다. 또다시 추격 골을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양인은… 살짝 뒤쪽에 처졌나?’

‘공이 오면 쇄도할 모양이군.’

‘저 숀이라는 놈도 놓쳐서는 안 되지.’

준영과 숀 외에도 맨유는 알렉스나 던컨, 로니 코프 등 공중 경합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 모두 박스 안이나 근처에 배치되었다.

“야, 밀지 마!”

“Entonces?”

양 팀 선수들이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다툼을 벌였다.

그때 데니스 바이올렛이 찬 코너킥이 페널티 박스로 날아왔다.

거의 슈팅급으로 빠르고 날카롭게 날아드는 공을 잡기 위해 다들 우르르 낙하지점으로 몰려들었다.

“동양인을 놓치지 마!”

“아예 뛰지 못하게 해!”

준영에게 서너 명이 둘러싸서 점프를 방해했다.

그때 숀이 호세 산타마리아의 마크를 뿌리치고 공에 머리를 댔다.

하지만 골대와는 상관없는 방향.

수비수 가르시아가 헤딩으로 걷어 내려고 대기하고 있을 때, 금발의 소년이 달려와 먼저 공을 잘라 냈다.

쇄도하던 데니스 로의 머리에 맞은 공은 그대로 골대 안쪽으로 떨어졌다.

“Nice Goal!”

“그렇지! 이래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지!”

쾌재를 부른 영국인 취재원들은 방금 골을 넣은 데니스 로를 향해 연방 셔터를 눌러 댔다.

방금 골은 정말 귀신같은 쇄도에 예리하기 짝이 없는 커팅 슛이었다.

2월에 유나이티드에 영입된 이 스코틀랜드 유망주는 바비 찰튼에 이어 새로운 스타플레이어가 될 자질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잘했어, 데니! 덕분에 다시 숨통이 트였다.”

“네가 우리 팀을 다시 살렸어!”

원래 이번 세트 피스에서는 데니스 로의 공격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박스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흘러나오는 리바운드 볼을 잡거나, 상대 역습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던 것.

하지만 상대 선수들이 준영과 숀 등에게 몰리면서 빈틈이 생겼다.

이에 떨어지는 공을 노리고 쇄도했더니, 준영이 곧잘 말하는 대로 ‘대박’이 터졌다.

하지만 레알 입장에선 그야말로 ‘쪽박’이었다.

“제기랄, 또 덜미가 잡히다니!”

“진짜 지긋지긋한 놈들이야.”

분통을 터트리는 레알 선수들을 주장인 디 스테파노가 다독이고 나섰다.

“괜찮아. 다시 한 골 넣으면 돼. 나랑 푸스카스를 믿어 보라고.”

“부탁해요, 알프레도. 또다시 놈들에게 질 순 없어요!”

후배들의 요청에 디 스테파노는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

후반전도 30분대에 접어들었다.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양 팀을 보며 관중들은 조마조마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 제발… 한 골만 넣으면 결승행이라고.”

“디 스테파노를 믿어! 그가 알아서 다 해 줄 거야.”

관중들의 바람과 기대와 달리, 디 스테파노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스테파노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스테파노 쪽으로 패스가 잘 오지 않았기 때문.

수비 시에 바비 찰튼이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던컨이 중원에서 활발히 움직이며 상대 패스를 차단했다.

여기에 준영도 푸스카스의 저주로부터 깨어났다.

‘좋아, 늦었지만 이제 좀 살 것 같군.’

술에 취한 듯한 어지러움도 많이 가라앉고, 메스꺼운 느낌이나 피로감도 줄면서 경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뇌진탕 자체가 가벼워서인지, 아니면 동료들의 분전에 심리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상태가 나아지자 준영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던컨과 함께 미드필드 지역을 장악해 나갔다.

측면 공격수인 알렉스와 데니스 로도 많이 내려와서 수비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렇다 보니 레알의 공격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영국 놈들.”

답답한 상황에 디 스테파노는 저도 모르게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산티스테반이 찔러 준 패스를 잡고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바비 찰튼은 그의 페인트에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디 스테파노는 산티스테반 쪽으로 백 패스, 이것은 반대편에 있던 푸스카스 쪽으로 전달되었다.

“푸스카스가 쏜다!”

“막아! 막아!”

로니 코프와 빌 포크스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하지만 푸스카스의 슛 동작은 페인트.

그는 측면으로 들어가는 레몽 코파에게로 패스를 밀어 주었다.

“저, 저거!”

“위, 위험해!”

황급히 각을 좁히며 나온 해리 그렉 골키퍼.

달려들던 레몽 코파는 공을 잡아챈 해리 그렉과 충돌해서 나동그라졌다.

삐익-!

“페널티킥이다!”

열광하는 레알 진영과 다르게, 맨유 선수들은 열불이 나서 펄펄 뛰었다.

“이게 말이 돼? 우리 골키퍼가 먼저 공을 잡았다고! 눈알을 박아 두고 어디다 쓰는 거야!”

평소 판정에 승복하는 편인 준영이 삿대질까지 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 바람에 평소에 심판에게 곧잘 따지던 알렉스가 그를 잡고 만류하느라 진땀을 뺐다.

“젠장, 레알 마드리드를 결승전에 올리려고 아주 작정했군.”

“홈 어드밴티지도 정도가 있지…….”

맨유 선수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가운데, 디 스테파노가 페널티킥을 차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디 스테파노는 공을 향해 달려들다 슬쩍 페인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해리 그렉은 그의 페인트에 속지 않고 슬쩍 전진하며 각을 좁혔다.

‘쳇,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는 다르다 이건가.’

디 스테파노는 하단 구석을 노리며 공을 찼다.

하지만 해리 그렉을 너무 신경 썼던 걸까. 지나치게 꺾어 버렸던 슈팅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실축! 실축이다!”

“디 스테파노가 놓쳤어!”

준영은 황급히 달려가 리바운드 볼을 잡았다.

레몽 코파가 태클을 날리며 빼앗으려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뛰어넘어 공을 지켜 냈다.

“다들 올라가! 역습이다!”

위기 후에 찾아온 기회.

준영은 총알같이 튀어 나가는 공격수들을 향해 길게 패스를 올려 보냈다.

***

3 대 2 상황이면 맨유가 원정 다득점으로 결승행이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원정 다득점 규정은 UEFA가 1965년부터 시행했기 때문에 현재 소설 시점에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수비에 치중하느라 경기가 재미없어지는 문제가 지적되어, 2021년 6월부터 다시 폐지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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