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29화 (229/400)

Round 229. 넘어서는 안 될 선

“이런 쓰레기 새끼가……!”

분기탱천한 준영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살인 태클을 날린 당사자, 시무스라는 수비수는 그 주먹을 맞지 않았다.

총알같이 달려온 던컨이 준영을 잡아채며 만류했기 때문.

“야 인마! 너 지금 필드에 있는 걸 운 좋은 줄 알아!”

“쳇, 피했으면 됐지, 계집애같이 호들갑을 떨긴.”

“이 개새끼가 뭐라고 짖고 자빠졌어? 주둥이를 확 갈아서 창자에 쑤셔 줄까, 앙?”

상황이 험악해지자 양 팀 선수들, 심지어 골키퍼들까지 달려왔다.

“얼른 사과하라고 해!”

“뭐래. 경기 중에 태클도 못하냐?”

“그딴 걸 태클이라고 하고 자빠졌어? 그러니 만년 중위권이지.”

양 팀 선수들의 말다툼과 드잡이가 심해졌다.

이제는 출전하지 않고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선수들까지 필드로 난입해 가세하기 시작했다.

“뭐야, 싸움인가?”

“싸워서 실격패 가즈아~!”

관중들의 엉큼한 바람과 달리, 양 팀 모두 난투극까지 가지는 않았다.

심판이 휘슬을 불며 최후의 선을 넘지 않게 중재한 데다, 경기장 경비 용역들까지 나와 양 팀 선수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경기 중에 이 무슨 추태인가. 당장 화해하도록!”

심판의 엄한 호통에도 준영과 시무스는 서로 째려보기만 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심판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둘 다 퇴장당하고 싶나?”

‘쳇, 내가 피해자인데…….’

일단은 팀을 위해 참자.

그리 결심한 준영은 태어나서 가장 어색한 악수를 나누었다.

“에이, 재미없잖아.”

“우우! 화해하지 말고 그냥 싸워라! 싸우다 죽어!”

관중들의 실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는 재개되었다.

그런데 한바탕 난장판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루턴 타운의 거친 플레이는 계속되었다.

그들은 교묘하게도 심판에게 주의만 받고 퇴장당하지 않는 선에서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슬쩍 걷어차거나 넘어트렸다.

물론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이런 광경을 보며 맷 버스비는 혀를 찼다.

“저거 완전 의도적이구만.”

“흥분을 유도해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겠다는 수작이지요.”

머피 코치도 혀를 찼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선수들에게 ‘참아라.’, ‘침착하게 해라.’라는 두 가지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가 어느덧 후반전도 40분대에 이르렀다.

‘결국 재경기로 갈 각인가?’

후반 45분에 던컨이 날린 중거리 슛도 골키퍼가 크로스바 위로 쳐 내 버렸다.

결국 정규 시간은 모두 끝났고, 스코어는 여전히 0 대 0.

다만 심판은 아직 휘슬을 불지 않았다. 경기 중에 소란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추가 시간을 줄 모양이었다.

‘이 코너킥이 마지막 찬스다!’

맨유에겐 마지막 찬스, 루턴 측에게는 최후의 위기.

긴장된 상황에서 코너킥이 올라왔다.

살짝 페널티 박스 외곽에 대기하고 있던 준영과 숀이 동시에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공에 먼저 터치한 건 루턴의 골키퍼.

두 장신 선수와 경합하면서 그의 펀칭은 부정확했고, 공은 그리 멀리 날아가지 못한 채, 박스 안에 있던 존 레논의 앞에 떨어졌다.

“때려 넣어!”

눈이 휘둥그레진 레논은 곧장 골문을 향해 공을 찼다.

하지만 그 슛은 다급하게 몸을 날린 루턴 선수의 발에 맞고 살짝 굴절되었다.

그 바람에 골키퍼 대신 골문을 지키던 수비수가 엉겁결에 손을 뻗어 공을 쳐 냈다.

“반칙이다!”

핸들링 파울! 페널티킥!

문전에 있던 대다수 맨유 선수들이 휘슬을 입에 문 심판에게 어필을 할 때, 박스 바깥쪽에 있던 레이 윌슨이 흘러나온 공을 그대로 후려 찼다.

그가 결사의 의지로 날린 슈팅은 니어 포스트 하단을 맞히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골인!”

“드디어 터졌다아-!”

조마조마하게 시합을 보던 맨유 원정 팬들은 필드에 있던 선수들처럼 펄쩍펄쩍 뛰며 서로 얼싸안았다.

정말이지 가슴을 꽉 막고 있던 체증이 순식간에 싹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방금 그 골은 무효예요!”

“맞아. 우리가 핸들링 파울을 한 거니까 쟤들이 페널티킥을 차는 게 맞아요!”

실점을 한 루턴 타운 선수들은 심판에게 항의했다.

페널티킥은 골키퍼가 선방해 낼 가능성이 있다.

그런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이의 있소!’를 외쳤지만, 심판은 이 얼간이들을 무시해 버렸다.

분명 핸들링은 맞다. 하지만 휘슬을 불기도 전에 맨유가 결승 골을 박아 넣었는데 뭘 또 페널티킥을 주고 말고 한단 말인가.

“수고했어, 레이.”

“덕분에 살았다고!”

천신만고 끝에 레이 윌슨의 버저비터 골로 웸블리행을 결정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들은 트레블의 첫 번째 우승컵을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

FA컵 결승 진출의 기쁨을 제대로 만끽할 틈도 없이, 맨유는 다시 리그 경기에 돌입했다.

36라운드 상대는 이번 시즌 꼴찌인 포츠머스.

전반 7분에 워렌 브래들리의 골로 기선을 제압한 맨유는 21분 바비 찰튼의 골을 추가했다.

전반이 끝날 무렵에는 존 레논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걷어 내려던 포츠머스 수비수 바질 헤이워드가 자신들의 골대에 공을 집어넣기도 했다.

‘끝났군. 후반전엔 체력 안배를 하며 경기해도 되겠어.’

다음 날 바로 번리 원정이기 때문에 체력에는 신경을 써야 했다.

이에 준영은 후반전에 팀의 페이스를 낮추었지만, 그럼에도 골은 연이어 계속 나왔다.

바비 찰튼이 페널티킥을 얻어 내 또 한 골을 추가한 이후, 포츠머스에서도 마침내 추격 골이 나왔다.

로날드 뉴먼이라는 공격수가 페이스가 떨어진 맨유 수비진의 빈틈을 파고들어 점수를 낸 것.

하지만 그 추격 골은 포츠머스에게 반전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데니스 로에게 잇달아 연속 골을 내주며 최종 스코어 6 대 1로 크게 패배했다.

“진짜 심하군. 지난 시즌에는 그나마 버틸 만한 여력은 보여 줬는데…….”

“그때도 아슬아슬하게 강등을 피했는데, 올 시즌은 힘들 것 같아.”

준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필드를 퇴장하는 포츠머스 선수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라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번리가 코앞 동네이긴 하지만, 바로 내일 경기가 있으니까 한잔하러 가지 말고 물을 마시고 충분히 쉬어. 물이 싫으면 초코 우유라도 먹거나.”

“예, 캡틴. 명심하겠습니다!”

준영은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하는 녀석들을 째려보았다.

아무래도 중간에 새서 클럽에서 한잔할 각.

‘아무래도 그냥 둬선 안 되겠군.’

일정도 빡빡한데 자칫 페이스가 흐트러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일단 잔소리라도 더 하려는 그때, 누군가의 라커에서 떨어진 물건이 준영의 발치로 굴러왔다.

‘약병?’

뭔가 싶어서 주웠던 준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건……!”

“주장, 왜 그래요?”

정색을 하다 못해 안색이 붉어진 준영을 보고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곧 라커룸에 벼락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누구 거야, 이거!”

“…….”

“누가 이딴 걸 복용하고 있었냐고!”

다들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골키퍼 해리 그렉이 준영의 앞으로 나왔다.

“그건 내 거야.”

“해리, 그게 어떤 약인지 알기나 해요?”

“각성제잖아. 피로를 줄여 주고 몸놀림을 빠르게 해 준다고.”

태연하게 대꾸하는 그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던 준영이 다시 언성을 높였다.

“이건 암페타민이잖아! 위험한 환각제라고요!”

“나도 알아! 하지만 의사에게 처방받아 쓰고 있는 거라고!”

의사가 선수에게 이딴 약물을 처방해 줬다고?

어이없어하는 준영에게 해리는 그동안 밝히지 않았던 고충을 늘어놓았다.

“나도 쓰고 싶어 쓰는 게 아니야. 하지만 계속 불안감이 들고, 몸이 무겁고, 집중력은 자꾸 떨어지는데 어떡하라고!”

분통이 치밀어 올랐던 해리는 주먹으로 양철로 된 라커를 후려쳤다.

다들 말없이 눈치만 보는 가운데, 준영이 다시 해리에게 말을 건넸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지난 시즌… 그 빌어먹을 비행기 사고가 있었던 다음부터였어.”

그 참혹한 사고에서 해리 그렉은 누구보다 앞서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하지만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해도 그 역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바비도 그랬지. 녀석이 축구를 관둔다고 했을 때 화를 냈었지만… 실은 나도 도망치고 싶었어.”

과연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을까.

완전히 파탄이 난 팀이 제대로 수비나 가능할까.

본의 아니게 맨유 사상 최악의 골키퍼가 되는 건 아닐까.

해리는 이런 의문과 두려움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경기에 뛰어야 했다.

“다행히 존이 주장이 되어 잘 수습한 덕분에 우리 팀이 나락으로 내려앉는 일은 없었지. 하지만 괴물 같은 상대들을 만나면서 부담감은 더 커졌어.”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유러피언 컵에서 만난 유럽 본토의 패왕들.

그들을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었다. 북아일랜드 대표로 선발되어 월드컵에도 출전, 대회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다들 날 최고의 골키퍼라고,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 그때마다 부담은 더 커졌어. 더 잘해야 할 텐데, 다음에 못하면 어떻게 하나 등등…….”

사람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골키퍼가 항상 불안과 부담에 떨며 살았다는 것을.

마음이 피폐해지니 몸도 무거워졌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결국 병원을 찾아가서 처방받은 것이 암페타민이었다.

“존, 너는 그렇지 않았어? 부담감 같은 걸 느낀 적이 없냐고.”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해리의 물음에 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갑작스럽게 70여 년 전의 과거로 떨어졌다.

신부님께 이야기로만 듣던 낯선 시대에서 시대의 편견과 미래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 속을 헤쳐 나와야 했다.

확실히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곁에는 그것을 지지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다 항상 염려하고 응원해 주는 소중한 연인까지.

‘모두가 없었다면 나도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을 거야.’

어쩌면 암페타민, 아니 그보다 더한 것에 손을 댔을지 모른다.

“혹시 중독된 건 아니죠?”

“의사가 절대 과다 복용은 하지 말랬어. 그래서 증상이 나타날 때만 먹었지.”

“잘했어요.”

암페타민은 신경을 자극하는 흥분제이다 보니, 다량 복용하면 환각 증세가 나타나곤 했다.

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곤 했는데,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계속되는 자극에 중추 신경이 망가지면서 오감을 잃고, 심하면 조현병이나 파킨슨병에 걸릴 수 있었다.

“감독님께 얘기를 할 테니까 다음 경기는 쉬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아직 승점은 여유롭잖아요. 믿고 맡기면 마음도 훨씬 편해질 거예요.”

그렇게 해리를 다독인 준영은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안쓰럽게 바라보는 이들 가운데 쭈뼛거리는 녀석들이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준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또 암페타민 복용하는 사람?”

“…….”

“나중에 말썽이 되느니 지금 해리처럼 털어놓는 게 후련할 거야.”

준영의 권고에 아까 쭈뼛거렸던 녀석들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주전급 공격수인 알버트 스캔론, 그리고 존 레논이었다.

“후, C8, 진짜…….”

분통을 터트리던 준영은 곧장 라커룸을 나갔다.

당장 버스비 감독이나 머피 코치를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할 생각이었다.

***

해리 그렉과 알버트 스캔론의 암페타민 복용은 본인들이 2004년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실토했습니다.

암페타민은 소위 히로뽕으로 알려진 메스암페타민과는 다른 각성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금지되어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180여 개 국가에서 현재도 의료적인 목적으로 사용이 승인되고 있죠.

하지만 이게 안 좋다는 건 현재는 물론이고 1950년대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사이클계에서는 선수들이 전혀 뜻밖의 사고로 죽는 일이 빈번했는데, 다 암페타민 때문이었다지요.

1952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한 스위스의 월터 디겔만도 암페타민을 사용했다고 시인한 적이 있는데, 그와 경주한 다른 선수들도 이를 다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암페타민은 일단 의약품이기도 한 데다, 2차 대전 때 참전자들에게 뿌려 댔기 때문에 전후에도 풀린 물량이 많았습니다. 영국군에서만 무려 7,200만 개를 뿌렸다고 하니까요……;;;

아무튼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66년 FIFA와 국제 사이클 연맹에서는 도핑을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1967년에는 IOC에서도 도핑 관리 대책 기구를 설립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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