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24. 나라를 바꾼 레전드
‘김재익이 누구였더라? 혹시 대국적으로 정치하라면서 방아쇠 당긴… 아냐. 그건 김재규잖아.’
준영이 잠시 머릿속의 지식을 뒤지고 있는 사이, 김용우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장학 자금 말인데,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는 거 맞나?”
“네, 그 점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종잣돈은 미래에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이들이 보내온 자금으로 구성되었다.
곽영주나 임화수 모두 기업가나 지인들에게서 장학 재단 설립을 핑계로 돈을 모아 영국으로 보냈다.
그렇다 보니 그들도 미래 재단의 창설에 한몫을 한 셈이 되었다.
‘그 바보들은 미래 재단이 유전 개발 투자 자금을 세탁하는 용도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물론 그런 일은 없고, 철저히 장학 지원으로만 사용될 계획이었다.
‘어쩌면 나중에 그 두 악당이 나름 좋은 일을 한 걸로 알려질지 모르겠군. 몰래 유전 개발에 투자하려고 한 게 들통이 나지 않는다면 말이야.’
아무튼 곽영주나 임화수가 큰 뜻(?)으로 전달한 자금뿐만 아니라, 유명하신 분들이 전달한 기부금도 있었다.
축구협회장인 글로스터 공작과 윈스턴 처칠이 좋은 데 쓰라고 거금을 쾌척했다.
심지어 번즈 요원에게 보고를 듣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상당한 금액을 찬조해 주었다.
‘그대의 나라는 미래에 눈부시게 발전한다지? 그렇다면 그대 나라 인재들에게 투자해 보고 싶군.’
미래 재단의 장학금에 영국 여왕의 기부금이 있다!
그렇게 알려지면 장학생들도 여왕이나 자신이 공부하게 된 영국이란 국가에 호의를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하다.
즉, 자연스럽게 친영파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치나 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뭐, 제국주의도 끝났는데 영국에 나라 팔아먹자는 골 빈 놈들은 나오지 않겠지.’
사상이나 문화적으로 ‘영국빠’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영국에 오는 유학생들은 한영 재단에서 한차례 걸러져서 올 것이기 때문.
“허허, 여왕이 많은 기부금을 냈다니……. 확실히 월드컵 챔피언은 수완이 있구만.”
“네, 그러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장학 지원에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알았어. 근데 특정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지원할 건가? 아니면 골고루 할 건가?”
“골고루 하는 게 좋겠지만, 일단은 경제나 산업 쪽 인재가 급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하긴, 우리나라는 재건이 시급하니 말이야.”
혁명 이후 한국은 본격적인 근대화, 산업화가 시작된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그에 맞춰 인재들을 양성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기초 과학 쪽 인재 육성도 필요하겠네요. 그런 과학 인재들이 제조업에서 중요한 소재 개발과 연구를 이끌어 가니까요.”
“하긴, 이승만 대통령이 인하대학교를 세운 것도 과학 인재 육성 때문이었지. 나도 이공계 출신이라 아는데, 우리나라는 지금 그쪽 인재가 너무 없어.”
그렇다 보니 일본에서 재일교포 출신 학자들도 데려왔지만, 충분하진 않은 상황이라고.
그리하여 21세기에 가서도 한국은 기초 과학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항상 받곤 했다.
“아무튼 차근차근 해 보자고. 그런데 준영이, 자넨 축구인이라면서 운동선수를 키울 생각은 없나?”
“선수 육성이요? 글쎄요, 지금 무작정 영국에 던져 놓아서 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21세기에도 그랬지만, 해외 무대에 노크한 선수들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실패하는 사례가 더 많지. 나 같은 경우는 드물고 말이야.’
이는 언어 소통이나 현지 적응, 자기 관리 등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
현재 올덤 애슬레틱 AFC에 자리 잡은 조윤옥도 준영의 도움이 없었다면, 에딘버러에 있는 차태성보다 못한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국내에 있더라도 좋은 지도를 받고 많은 경기를 뛰면 얼마든지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어요. 그 점에서 지도자 연수를 지원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하긴 좋은 선생 밑에서 뛰어난 제자가 나오는 법이니까.”
이미 김용식 선생이 맨유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중이다.
준영은 이후에 홍덕영이나 다른 지도자들에게도 연수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뭐, 축구계 인사인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게 맞는 거겠지. 아무튼 기왕 시작하게 된 거 잘되었으면 좋겠군.”
“틀림없이 잘될 겁니다.”
레전드의 명예가 걸린 일이다.
그렇기에 준영은 반드시 잘되도록 만들리라 다짐했다.
***
오랜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손웅민.
수원 블루윙스의 플레잉 코치로 계약했던 그는 하반기 서울과의 슈퍼 매치에 선발 출전했다.
“쳇, 역시 취업 사기 당했어.”
풀타임으로 시합을 끝낸 웅민이 투덜대자, 후배 공격수 김건의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자존심이 걸린 슈퍼 매치인데.”
1960년에 창단한 실업팀 제1모직 축구단에서 시작한 수원 블루윙스는 서울과 오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두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재계에서 경쟁 관계인 데다, 실업팀 시절부터 서로 주전 선수들을 빼 가며 원한을 쌓아 왔기 때문.
그렇다 보니 두 팀이 맞붙으면 굉장히 화끈한 경기가 벌어지곤 했다.
오늘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원정전도 만원 관중들 앞에서 2 대 2로 팽팽히 이어 나갔다.
그러다 후반전 막판에 손웅민의 헤딩골로 수원이 승리를 거두었다.
“아무튼 오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선배님.”
“그래, 너희도 수고했다.”
샤워와 환복을 마친 수원 선수들은 구단 버스에 올랐다.
수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손웅민은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강 너머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강남의 풍경.
그런데 그 풍경이 어딘가 좀 낯설어 보였다.
“뭔가 많이 변한 느낌인걸?”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잖아요. 외국에 오래 계셨으니 그런 느낌이 드는 거겠죠.”
“그런가……?”
강남은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
몇몇 공장과 농가들이 들어서 있던 이 지역은 70년대 강북 지역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새로운 도시 개발 지역으로 각광을 받았다.
상품과 식료품을 서울로 판매하느라 도로 사정도 좋다 보니 그만큼 개발 여건이 좋았기 때문.
곳곳에 아파트와 국내외 기업들의 사옥이 들어서고,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엄청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저기가 원래 빈민들이 모여서 땅 파먹고 살던 데였대.”
“청담동이 독립운동가 유족들이 모여 살던 동네라며? 이활이라는 독지가가 전국에서 유족들을 모아 와서 돌봐 줬다고 하던데 말이야.”
“그 이활이란 사람 뒤에 있던 물주가 갓준영 할배일걸.”
젊은 선수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손웅민의 귀에도 들려왔다.
관심이 생겼던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관련된 이야기들을 검색해 보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서울 교외의 황무지를 축구왕 이준영이 동업자 이활을 통해 매입했군.’
그때 강남 지역에 정착한 독립 유공자 후손들은 미스터리 푸드의 농장에서 일하거나, 회사 법인 토지에 소작을 지으며 살았다.
1970년대 들어 자수성가해서 집과 땅을 소유한 이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당시 신도시 개발 사업으로 초대박이 터졌다.
덕분에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은 외제차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플렉스를 만끽할 수 있었다.
Topower:우리 증조 할배도 쪽바리한테 폭탄이나 던지지.
↳이슬비:독립운동을 개나 소나 다 할 줄 아는 줄 아누. ㅋㅋ
天魔:저렇게 떵떵거리며 살면서 유공자라고 연금에 등록금 면제까지 받는 건 절라 치사하지 않나?
↳캡틴J:네, 다음 친일파 후손.
↳서산갱스터:다 사람과 기회를 잘 만나서 그런 거. 우리 증조 할배도 광복군 출신인데, 그냥 고향에서 살 거라며 남았지. 그 바람에 나는 경운기나 몬다. ㅜㅜ
↳뚜까:님 불쌍. ㅜㅠ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온 일화들 밑에는 부러움과 시샘 어린 리플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손웅민은 그런 반응이 이상할 정도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강남 개발로 제일 득을 본 사람은 가장 토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이준영이로군.’
그렇다 보니 당시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국토부에 로비를 했다는 둥, 오일 쇼크 때문에 정부가 이준영의 눈치를 보고 개발을 결정한 것이라는 둥.
하지만 그런 말도 이내 사그라들었다.
이준영이 토지 관련으로 번 돈을 장학금 지원에 썼으니까.
그 장학금을 받은 인재들은 정계와 재계, 법조계, 이공계 등등 여러 방면에 진출해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인맥은 이준영이 세운 ML그룹의 든든한 받침목이 되었다.
‘미스터리 푸드나 나2키, 북해 정유, 넥스트 등도 모두 ML의 계열사로군.’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이준영의 미래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유력한 차기 총리도 미래 재단 장학생 출신일 정도.
이렇다 보니 괜히 이준영을 갓준영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축구 외적으로도 한국과 영국 두 나라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거물이니까.
‘정말이지, 알면 알수록 엄청난 인물이로군.’
하지만 그에 대해 호평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시아의 축구인들은 이준영이 아시아의 대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축구 발전에 공헌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준영은 현역 시절 영국에 있는 아시아 선수들과 친분을 쌓지 않았죠. 그들에 대해 정말 놀랄 만큼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시아 선수들, 심지어 조국인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에도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죠.’
실제 이준영은 유럽 축구계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에서 아시아 배정 티켓을 늘리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말년에는 ‘중국인들에게 축구 유전자가 없다.’라는 인종 차별적인 폭언을 내뱉기도 했다.
‘이렇게 비난하는 건 주로 일본과 중국 측인가.’
영국 내에서도 비판이 있었다.
레이시스트들의 말 같지 않은 개소리와는 별개로, 그가 전통적인 영국 음식 문화를 파괴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존 Y. 리 이전에 우리 영국 요리는 검소하고,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프랑스나 이탈리아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심하죠. 우린 마늘과 칠리를 향신료가 아닌 채소로 쓰고 있으니까.’
‘옛날엔 피시 앤 칩스에 소금과 식초를 곁들이는 정도로 끝냈죠. 근데 지금은? 케첩과 마요네즈 범벅이죠. 거기다 양파나 마늘 초절임을 한 움큼씩 줍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혓바닥은 너무 자극적으로 길들여져 버렸습니다. 이젠 돌이킬 수도 없을 지경이에요. 이렇게 만든 원흉은 미스터리 푸드 컴퍼니죠.’
‘이게 뭐가 문제냐고요? 식탐은 말입니다.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들어요.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들은 위장에 해롭고…….’
물론 이러한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디 감자와 오트밀만 처묵해 보라는 둥, 음식에 마늘 없으면 무슨 맛으로 먹냐는 둥, 너네가 더 공격적으로 보인다는 둥 등등.
영국에 있으면서 영국 전통 음식을 먹은 적이 있었던 손웅민은 반박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공감했다.
소스를 발라 구워 먹으면 맛있는 장어를 왜 고아서 젤리로 만든단 말인가.
‘아무튼 나라를, 그리고 세계를 바꾼 레전드 플레이어인 건 분명하군.’
파고들수록 관심이 생겼던 웅민은 이준영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
우리나라의 해외파 선수들뿐만 아니라, 한국에 오는 용병 선수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위의 사진의 주인공인 포항의 전설 라데처럼 붙임성이 좋고 성격이 적극적인 선수들은 말을 빨리 배우고 낯선 문화에 잘 적응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죠.
그렇다 보니 이동국같이 외국에선 망했는데 한국에 와서는 잘하거나, 그라피테같이 한국에선 쫄딱 망한 용병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선 펄펄 날아다니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심리적인 부분이 플레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려 주는 경우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