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22화 (222/400)

Round 222. Young Gun

준영의 선제골을 잘 지킨 맨유는 1 대 0의 리드를 유지한 상태로 전반전을 끝냈다.

라커룸으로 돌아온 선수들에게 머피 코치가 후반전의 작전을 지시했다.

“전반보다 양쪽 측면을 더 많이 활용하면서 공격을 진행하도록. 그리고 바비는 중원에서 상대 패스를 끊는 걸 거들도록 해.”

펠레를 비롯한 리버풀 공격수들에게 자꾸 패스가 전달되어 좋을 게 없다.

이에 머피 코치는 사전에 상대의 패스 줄기를 잠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퍼기랑 작은 데니스, 너희도 상대 수비수들이 공을 잡으면 좀 더 강하게 견제해. 조금이라도 성가시게 만들어야 우리 편이 수비하기 편하단 말이야.”

“주장이 말하는 식으로 압박의 강도를 높이라는 겁니까?”

“그래, 팔팔한 너희를 출전시킨 이유가 뭐일 것 같냐? 많이 뛰면서 상대를 꾹꾹 눌러 주라고.”

골을 노리기 전에 팀에 이로운 플레이를 먼저 해라.

일전에 준영이 가르쳐 준 말을 떠올린 알렉스와 데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던, 브라질 꼬마를 봐주지 마. 위험 지역에 얼씬하지 못하게 차징으로 날려 버리라고.”

“봐준 거 아닙니다. 쉽게 날려 버릴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요.”

원래 체격이 좋은 데다, 부지런히 웨이트 트레이닝에 힘쓴 던컨은 리그에서 내로라하는 파이터가 되어 있었다.

어깨싸움에서 그를 이겨 낼 수 있는 선수는 리그를 통틀어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아직 몸이 덜 자란 펠레는 몸싸움에서 던컨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축구 황제는 뛰어난 밸런스와 발재간으로 이런 약점을 보완해 나갔다.

“한 번 저지해도 다음번엔 그보다 더 향상된 느낌이더라고요. 아주 재밌어요. 존이랑 일대일을 할 때하곤 또 다른 맛이라고 할까.”

“재밌으면 확실히 막아. 놓쳤다간 순식간에 재미없어질 테니까.”

머피 코치의 경고에 던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경기에서 이겨야 재밌는 법이다. 특히 FA컵 같은 토너먼트에서는 더더욱.

“좋아, 그럼 남은 45분도 잘하고 와!”

“Yes, Sir!”

하프타임이 끝나고 선수들이 다시 필드로 나갔다.

리버풀 쪽도 빌 섕클리가 뭔가 지시를 내렸는지, 포지션에 다소 변화가 있었다.

‘응? 펠레와 로저 헌트가 위치를 바꿨나?’

섕클리는 던컨이 상대라면 펠레가 공격 포인트를 만들기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변화를 주었다.

이에 대해서 펠레는 약간 불만을 느꼈다.

던컨을 당해 내지 못하고 물러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불만이 있더라도 섕클리의 지시를 어길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동점을 만들어야 해.’

그래야 역전을 하든, 무승부로 끝내고 다음번에 재경기를 하든 할 터.

삐익-!

날카롭게 휘슬이 울리며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공격 쪽의 숫자를 늘린 리버풀은 대대적인 공세를 시도했다.

그 공세의 포문을 연 것은 펠레.

왼쪽으로 위치를 이동한 그는 자신에게 마크를 붙은 레이 윌슨을 따돌리고 측면 깊숙이 치고 들어갔다.

‘크로스?’

코너 플래그 부근까지 들어갔으니 분명 크로스를 올려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서 펠레가 선택한 것은 크로스가 아닌 돌파.

그는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따라 공을 치고 들어왔다.

“저 자식……!”

“섣불리 달려들지 마! 어차피 저 위치에선 슈팅을 못해!”

펠레가 슈팅을 하기엔 각이 너무 없었다.

그러니 중앙으로 쇄도해 오는 리버풀 공격수들에게 컷백을 보낼 터.

이런 해리 그렉 골키퍼의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펠레는 그대로 슈팅을 시도했다.

공 밑동을 가볍게 툭 올려 차니, 로빙슛처럼 둥실 떠올랐다.

그러곤 껑충 뛰어오른 해리의 손을 스치며 파 포스트 상단을 향해 궤적이 휘어졌다.

‘이런, 스핀이 걸렸구나!’

준영이 달려가 봤지만, 공은 이미 골대 안으로 떨어진 뒤였다.

「골! 골인! 브라질의 신동이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동점 골을 터트립니다!」

중계 캐스터보다 더 흥분한 콥스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수만 명의 리버풀 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에 안필드는 요동쳤고, 맨유 선수들의 마음까지 불안하게 흔들어 댔다.

“빌어먹을, 뭐 저런 게 있담?”

“아니, 저기서 슈팅을 해?”

서로 아웅다웅 싸우던 알렉스와 데니스도 이 상황에서는 사이좋게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정작 골을 넣은 펠레는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다.

겨우 동점 골일 뿐이고, 자신이 노리던 적수들과 맞서서 얻은 골이 아니었으니까.

“거참, 시작부터 찬물을 확 끼얹어 버리는데.”

“이러면 어떡하지? 레이와 던컨의 위치도 바꿔야 하나?”

준영과 맨유 선수들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버스비 감독과 머피 코치가 부랴부랴 사인을 보냈다.

이에 미드필드 지역에 있던 바비 찰튼이 펠레를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바비가 맡은 패스 차단 임무는 프레디 굿윈이 넘겨받았다.

“던컨의 말이 맞는군요. 뛰면 뛸수록 점점 실력이 향상되는 녀석이에요.”

머피 코치의 말에 버스비 감독이 동의했다.

“잠재력이 굉장한 선수야. 2~3년 안에 진짜 무서운 선수가 될 것 같군.”

이미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

레알 마드리드의 디 스테파노가 갖고 있는 ‘최강’의 타이틀을 저 소년이 차지하게 될지 모른다.

‘리버풀은 정말 큰 보석을 손에 넣었군.’

하지만 이쪽에서 쥐고 있는 보석도 평범하진 않다.

부디 후반전에 맨유의 젊은 공격수들이 진가를 발휘해 주기를.

버스비는 그런 기대를 품고서 경기를 계속 지켜보았다.

***

동점 골에 성공한 리버풀은 이후에도 거센 맹공을 퍼부었다.

연달아 맨유 골문을 위협하는 슈팅들이 날아들면서 준영은 쉴 새 없이 지시를 내리고 상대 공격수들을 마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거 위험해 보이는데…….”

“빨리 다시 한 골을 넣어 달라고!”

맨유 팬들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안달했지만, 준영은 침착하게 팀을 지휘해 나갔다.

리버풀의 공격이나 볼 점유율이 늘어난 건 맞지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었으니까.

‘동점 골 이후로 유효 슈팅은 없고, 펠레는 바비와 레이가 협력해서 잘 막고 있어. 던컨 쪽도 문제가 없고.’

동점 골을 먹고 수비에 더 집중하기 때문일까.

리버풀은 쉽사리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패스와 돌파를 시도하지 못했다.

좌우 측면의 플레이가 둔해지니 중앙에서 돌파와 중거리 슛만 시도하는데, 효과는 미미했다.

‘하지만 이대로 리버풀의 흐름이 계속되어도 곤란해. 우리도 제대로 공격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맨유도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리버풀과 마찬가지로 소득은 없었다.

패스를 찔러 주고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 줘야 할 바비 찰튼이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

그렇다고 그를 섣불리 전진시킬 수도 없었다.

펠레를 그대로 놔줬다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군.’

맨유의 천재 플레이어 던컨 에드워즈.

그는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발이 빠르고 몸싸움에 능한 로저 헌트는 꽤 위협적이긴 했지만, 테크닉이 뛰어난 펠레에 비하면 변수가 적은 플레이어였으므로.

거기다 던컨의 스피드와 피지컬은 영국, 아니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일단 수비 안정에 힘을 쏟고 있지만, 발동이 걸리면 언제든 최전방으로 뛰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안 그래도 머피 코치도 사인을 보내시는군.’

때맞춰 레이 윌슨이 바비 찰튼의 마크를 당하던 펠레에게서 잽싸게 공을 빼냈다.

그와 동시에 던컨이 전진해 나갔고, 그에게로 길게 패스를 보냈다.

「필드를 길게 가로지르는 패스가 던컨에게 전달, 약간 높게 왔지만 던컨이 이를 살려 냅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돌파해 나가는데요…….」

저건 그냥 두면 안 된다.

황급히 달려온 리버풀 선수들이 마크에 나섰지만, 던컨은 공을 툭툭 치며 그들의 차징과 태클을 스피드로 따돌려 버렸다.

“우와, 역시 던컨 선배는 달라!”

“멍하니 있지 말고 올라가!”

던컨의 오버래핑에 맞춰 맨유 공격수들이 전진하며 리버풀 수비진을 교란했다.

그사이 또 한 명 제친 던컨이 쇄도하는 아군 공격수들에 맞춰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흥, 헤딩하게 둘 것 같냐!”

공이 데니스 바이올렛의 머리에 닿기 직전, 리버풀의 골키퍼 토미 영거가 주먹으로 공을 쳐 냈다.

그 리바운드 볼은 로니 모란이 잡아챘다.

역습 찬스!

하지만 패스를 보내려던 그 순간, 슬며시 달려든 레논이 태클로 공을 빼냈다.

“이 자식, 2군 주제에……!”

“여기선 선발이거든요.”

레논이 태클로 빼낸 공은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데니스 로가 잡아 냈다.

‘여기서 슛을……!’

하지만 작은 데니스는 리버풀 수비들이 둘러싸자 발바닥으로 공을 굴리며 수비망에서 벗어났다.

‘큭, 뚫고 들어갈 길목이 없나?’

상대 수비가 사납게 달려드는 상황에서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띈 선수는 알렉스.

저 건방진 녀석에게는 절대 패스해 주기 싫다.

하지만 이런 감정과 달리, 그의 발은 알렉스 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엥?”

갑자기 들어오는 패스에 알렉스는 화들짝 놀랐다.

질겅질겅 씹던 껌을 저도 모르게 삼킬 뻔했을 정도.

‘슛? 아니야. 패스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상대 골키퍼와 수비수들의 모습에 알렉스는 자신에게 들어온 패스를 살짝 방향을 돌려 띄워 보냈다.

그 로빙 패스는 알렉스에게 패스를 주고 박스 안으로 뛰어들었던 데니스 로의 앞으로 전달되었다.

한 차례 바운드되었던 공은 데니스가 쭉 뻗은 다리에 맞고 골대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골인!”

“크하하! 기다리고 있었다고!”

초조하게 지켜보던 맨유 서포터들은 일제히 깃발과 머플러를 휘둘러 댔다.

다시 앞서가는 골.

이를 만들어 낸 맨유의 영건(Young Gun)들은 시원하게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쓸 만한데, 2부 리거.”

“무명 선수치곤 좋은 센스였어.”

“뭐, 인마? 내 어시스트 아니었으면 넌 골 못 넣었어.”

“헹, 그것도 어시스트라고 줬냐? 나 아니면 발에 맞히지도 못했어.”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선배 공격수 데니스 바이올렛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들, 좋은 콤비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요. 하지만 아직은 멀었어요.”

덜 여문 콤비를 바라보던 던컨은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후반 23분.

경기 종료까지 20분 넘게 시간이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대비를 철저히 해야 마땅했다.

***

“큭! 하필 거기서 실점이라니!”

센터 서클 안에서 킥오프를 준비하던 펠레는 분통을 터트렸다.

맨유가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긴 했어도 계속 두들기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카운터펀치를 맞을 줄이야!

펠레는 그 카운터펀치의 시발점인 선수를 바라보았다.

“저 선수, 왜 월드컵에 안 나왔지?”

“던컨 에드워즈? 비행기 사고를 당했었거든. 양다리 골절이라 다들 은퇴하는 줄 알았는데…….”

로저 헌트의 말에 펠레는 던컨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잉글랜드 대표로 지난 월드컵에 뛰었다면 브라질은 더 어려운 경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그의 수비나 공격 전개 능력은 대단했다.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지.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안 돼.’

쥘리메컵을 앗아 간 원수들에게 또다시 질 수 없다!

이를 악문 펠레는 휘슬이 울리기 무섭게 맨유 진영으로 달려 들어갔다.

동료에게 패스를 받아 치고 들어가는 도중, 바비 찰튼이 앞을 막아섰다.

‘절대 지지 않아!’

현란한 드리블로 원수 바비 찰튼을 벗겨 낸 펠레.

그는 맨유 수비진 사이를 파고드는 로저 헌트를 보았다.

‘찬스!’

곧바로 찔러 준 펠레의 패스를 받은 로저 헌트.

그가 찬 슈팅이 해리 그렉의 손끝을 스치며 골 그물을 흔들었다.

***

데니스 로가 1962년 맨유에 입단할 당시 찍힌 사진입니다.

당시 이적료는 11만 5천 파운드로 영국 리그 이적료 신기록이었죠.

허더스필드 타운에서부터 데니스 로를 지도했던 빌 섕클리는 리버풀 감독으로 계약할 때 이 애제자를 데려가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종종 올드 트래퍼드에 찾아왔던 섕클리는 데니스 로에게 ‘넌 내 팀으로 왔어야 했다.’라며 아쉬움 섞인 농담을 건넸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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