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21. 보석들의 맞대결
“Hey, Boy. Let’s hang out with me.”
명랑한 말투와 달리 던컨의 눈빛에선 투지가 넘쳐흘렀다.
살짝 낯을 찌푸렸던 펠레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당신한텐 볼일 없어.”
“그래? 근데 어쩌나? 난 너한테 볼일이 있는데.”
끈적하게 마크에 나선 던컨은 쉽사리 펠레를 보내 주지 않았다.
페인트를 걸며 제쳐 보라던 펠레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쳇, 생각보다 꽤 하는군. 던컨 에드워즈.’
유나이티드에 존 Y. 리와 바비 찰튼 말고도 또 한 명의 굉장한 실력자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잉글랜드의 천재 축구 선수 던컨 에드워즈.
쉽게 볼 상대는 아니라고 전해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성가실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 작자를 제치지 않으면 존 Y. 리에게 갈 수 없어!’
어떻게 하든 던컨의 마크를 뿌리치고 간다!
그리 다짐한 펠레는 자신의 뒤쪽에 접근해 온 지미 멜리아 쪽으로 백 패스를 보냈다.
그러고는 던컨을 제치고 문전으로 달려 들어갔다.
‘리턴 패스!’
펠레의 의도를 파악한 지미 멜리아는 가볍게 공을 띄워 펠레 쪽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 패스는 다소 길게 전달되었고, 펠레가 잡기 전에 준영이 먼저 걷어 내 버렸다.
“제길!”
펠레가 분통을 터트리는 사이, 리버풀 선수들은 빠르게 수비로 전환했다.
준영이 걷어 낸 패스가 바비 찰튼을 거쳐 우측면으로 달려가는 윙어에게 전달되었기 때문.
공을 건네받은 맨유의 윙어는 바로 존 레논이었다.
‘안필드에서 뛰는 게 꿈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이야.’
운명의 장난에 기가 막혔지만, 레논은 프로답게 플레이했다.
상대의 마크를 따돌리고 측면 깊숙하게 돌파, 라인을 넘기 직전에 리버풀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그 크로스를 향해 알렉스 퍼거슨이 힘차게 뛰어올랐다.
하지만 헤딩슛은 수비수 로니 모란의 마크에 막혀 실패.
흘러나온 리바운드 볼을 향해 또 다른 소년 공격수가 달려들었다.
“내가 넣는다!”
2월의 이적생 데니스 로가 공을 힘차게 걷어찼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간 슈팅은 골대 위로 뜨고 말았다.
“쯧쯧, 이래서 2부 리그 공격수는 안 된다니까.”
알렉스의 빈정거림에 데니스는 코웃음을 쳤다.
“너도 못 넣었잖아.”
“못 넣은 게 아니라 안 넣은 거야. 사람이 기껏 기회를 만들어 줬는데 날려 먹고 말이야…….”
“뭐라는 거야. 수비수한테 발려 놓곤.”
“발리긴 누가 발려!”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벼락같은 호통이 날아들었다.
“이 자식들, 경기에 집중 안 하냐? 여기가 시장통인 줄 알아?”
호통을 날린 사람은 데니스 바이올렛.
최근에 ‘큰 데니스’라는 별명을 얻은 그의 일갈에 알렉스와 ‘작은 데니스’는 찔끔하며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리버풀의 감독 빌 섕클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버스비 감독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예전부터 탐내던 보석을 손에 넣은 기분이 어떤가?”
“어떤 자리에 박아 넣어야 잘 빛날 수 있는지 살펴보는 중이지.”
2월에 맨유는 허더스필드 타운에서 데니스 로와 레이 윌슨을 영입해 왔다.
효과는 확실했다.
아직 제대로 손발을 맞추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레이 윌슨은 왕성한 활동과 뛰어난 수비력으로 왼쪽 측면을 안정시켰다.
데니스 로 역시 맨유에서 데뷔 첫 경기에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재능을 한껏 뽐냈다.
“중앙이든 측면이든 데니는 어디에서든 빛나는 활약을 해 줄 보석이지. 하지만 오늘 빛나는 건 우리 흑진주가 될 거야.”
“글쎄, 그건 두고 봐야 하지 않겠나? 작은 데니스도 오늘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다르거든.”
허더스필드 타운에 있을 때 펠레에게 당했던 데니스 로는 앙갚음을 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맨유로 이적하며 그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FA컵에서 기회를 잡았다.
“데니가 나에게 애원하더군. 오늘 경기는 반드시 출전시켜 달라고 말이야.”
“훗, 그 녀석 어리광을 너무 받아 줘도 좋지 않은데…….”
맞대결을 펼치는 적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훈훈하게 대화를 나눈 두 감독.
그들의 시선은 다시 필드의 선수들에게 향했다.
***
“쳇, 이번에는 제쳐 주겠어!”
미드필더에게서 패스를 받은 펠레는 다시 맨유 진영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번에도 던컨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몇 차례 페인트를 시도했지만, 던컨은 속아 넘어가지 않고 침착하게 펠레를 측면 구석으로 몰아냈다.
‘으윽,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군!’
펠레는 어느새 준영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눈앞에 있는 던컨 에드워즈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정말 쉽지 않은 상대.
수비력에 있어서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니우통 산투스나 자우마 산투스 같은 풀백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 나을지도?
‘할 수 없군. 존 Y. 리를 상대할 때 쓰려고 아껴 놓은 기술이지만, 지금 쓸 수밖에!’
잽싸게 양발 사이에서 공을 놀리던 펠레는 순간적으로 양발을 이용해 등 뒤에서 공을 띄워 올렸다.
‘이, 이 녀석, 레인보우 플릭을 쓰다니!’
‘제쳤다!’
펠레의 기지에 던컨은 그대로 당하고 말았지만, 이내 자신을 제치고 나간 펠레를 쫓아가 거친 차징으로 밀쳐 내고 공을 되찾았다.
그러나…….
삐익-!
심판의 휘슬에 던컨은 물론 맨유 선수들 모두가 움찔했다.
방금 파울이 일어난 지역이 페널티 박스 바로 앞이었기 때문.
“혹시 페널티킥인가?”
“아냐. 프리킥인가 봐.”
“큭! 조금만 더 파고들어갔으면 좋았을걸!”
콥스가 몹시 아쉬워하는 가운데, 리버풀에서 프리킥을 찰 준비를 했다.
양 팀 선수들이 맨유의 페널티 박스 안팎으로 모여 부산하게 움직였다.
“각자 마크맨을 확실히 잡아!”
“던, 절대 펠레에게서 눈 떼지 마!”
“어이, 퍼기! 박스로 와서 수비를 거들어!”
준영은 연방 고함을 치며 동료 선수들을 다그쳤다.
지금 프리킥은 코너킥보다 훨씬 가깝고 그만큼 위험했다.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하면 박스 안에서 공이 나돌다 엉뚱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삑-!
심판의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리버풀의 프리킥이 날아들었다.
낮고 날카롭게 날아드는 공을 향해 달려든 펠레는 발끝으로 슬쩍 방향을 돌려놓았다.
그렇게 굴절된 공은 로저 헌트 쪽으로 향했다.
“슛- 아아아…….”
기대감에 주먹을 불끈 쥐었던 콥스는 탄식을 내뱉었다.
로저 헌트가 헤딩슛을 하기 직전, 맨유의 풀백 레이 윌슨이 먼저 머리로 밀어내 버렸기 때문.
외곽에서 대기하던 레논은 그 공을 잡아 빠르게 달려 나오는 바비 찰튼 쪽으로 밀어 주었다.
하지만 리버풀의 미드필더 지미 멜리아가 공을 가로채 바로 중거리 슛!
그러나 너무 급하게 찬 슈팅은 골대 왼쪽으로 멀리 지나쳐 갔다.
아까운 골 찬스가 무산되자 콥스는 아쉬운 한숨을 토했다가 이내 다시 응원의 구호를 외쳐 댔다.
“We love you Liverpool we do~ Oh, Liverpool we love you~”
“We hate Man United∼ But Liverpool we love you~”
이에 질세라 맨유 쪽에서도 함성을 높였다.
이렇게 필드 밖에서 응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필드에서도 양 팀 선수들이 공을 두고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였다.
가장 많이 부딪치는 건 양쪽 측면에 배치된 선수들.
오른쪽에서는 던컨과 펠레가, 그리고 왼쪽에서는 레이 윌슨과 로저 헌트가 다툼을 벌였다.
「레이 윌슨, 쉽사리 돌파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헌트가 한 번 더 치고 들어가다 크로스! 엘런 아넬이 달려듭니다! 하지만 존 Y. 리를 당해 내지 못하는군요.」
다소 리버풀 편향적인 라디오 중계 캐스터는 또다시 무위로 끝난 공격에 낮게 아쉬움을 토했다.
그러다 이내 다급하게 말문을 이어 나갔다.
「존 Y. 리가 밀어낸 볼, 프레디 굿윈이 잡아 재빨리 전방으로… 알렉스 퍼거슨이 가슴으로 받아 후방에서 뛰어오는 바비 찰튼 쪽으로 밀어 줍니다! 위험합니다!」
공격 지원을 위해 다소 전진해 있던 리버풀 수비진은 간격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바비 찰튼은 그 틈으로 잽싸게 치고 들어갔다.
황급히 뒤쫓아 가던 리비풀의 수비수 딕 화이트가 다급하게 바비의 유니폼을 잡아채 쓰러트렸다.
“파울이다! 파울!”
“에잇, 좋은 기회였는데!”
맨유 쪽에서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이는 서둘러 공격 지원에 나섰던 준영도 마찬가지였다.
‘21세기면 저거 다이렉트로 퇴장인데.’
방금 전 바비 찰튼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까지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뒤에서 잡아채 파울을 저지른 딕 화이트는 심판에게 구두로 주의를 들었을 뿐.
‘이 시대의 규정이 이러니 따를 수밖에 없지만… 못마땅한 건 어쩔 수 없군.’
그런 마음은 맨유의 12번째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연방 야유를 쏟아 냈다.
「유나이티드가 리버풀 페널티 아크 우측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습니다. 공 앞으로 존 Y. 리와 던컨 에드워즈가 서는데, 누가 처리할지 궁금하군요.」
둘 다 킥력이 좋은 선수들.
그러나 최종적으로 준영이 차기로 했는지, 던컨은 슬쩍 물러났다.
하지만 리버풀 선수들은 던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준영이 자신들을 속이고 던컨 쪽으로 공을 밀어 줄 수도 있었으니까.
“우우-! 우-!”
리버풀 선수들이 던컨이라는 변수를 계산하던 사이, 콥스는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은 채 골대를 응시하던 준영은 한순간 공을 향해 달려가 슛을 날렸다.
뻐엉-!
무회전으로 시원하게 뻗어 나간 슈팅은 리버풀 골대 그물을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스위치를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경기장에서 야유 소리가 싹 가라앉았다.
“이런 젠장…….”
“왜 또 저 녀석에게 골을 먹은 거야?”
“차기는 더럽게 잘 찼네.”
콥스가 분통을 터트리는 가운데, 준영이나 맨유 선수들은 별다른 골 셀레브레이션을 펼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끼리 적당히 하이파이브만 하고 돌아갈 뿐.
“왜 선제골을 넣고 별로 안 기뻐하는 걸까요?”
“리버풀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건가?”
취재하는 기자들이 의아해하는 사이, 시합은 재개되었다.
“쳇, 이대로 질 수 없어!”
선제골을 빼앗긴 게 분했던 펠레는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현란한 움직임으로 맨유 진영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이크, 이거 독이 바싹 올랐는걸.’
마크를 하는 던컨조차도 펠레의 기세에 움찔할 정도.
그런 던컨을 제치고 그대로 돌파해 들어간 펠레는 강하게 중거리 슛을 날렸다.
퍼엉-!
지면을 낮게 깔고 날아간 슈팅.
맨유 골키퍼 해리 그렉이 황급히 몸을 날려 손으로 슈팅을 쳐 냈다.
그 리바운드 볼을 박스 중앙으로 침투하던 알란 아코트가 발을 대어 골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쓰러진 골키퍼가 손쓸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준영이 몸을 날려 가까스로 걷어 냈다.
또 한 번 무산된 아까운 찬스에 펠레는 크게 발을 구르며 분통을 터트렸다.
“존, 저 꼬마 진짜 무서운데? 진짜 장난이 아니야.”
혀를 내두르는 던컨의 말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더 무서워질 거야.”
지금까지 보인 활약이 펠레의 전부는 아닐 터.
바싹 긴장의 끈을 조인 준영은 수비 전열을 조율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
You’ll never walk alone은 194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회전목마’에 나온 곡입니다.
2막에서 주인공의 사촌이 주인공을 격려할 때 부른 곡이죠.
이후에 인기를 얻어 꽤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는데, 프랭크 시나트라나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르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1963년에 제리와 페이스메이커라는 리버풀의 밴드가 불렀는데, 이때 크게 인기를 얻으며 리버풀의 응원가가 되었습니다.
리버풀뿐만 아니라 셀틱이나 FSV 마인츠, 1860 뮌헨, FC 도쿄 등 여러 팀들이 응원가로 쓰고 있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