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20화 (220/400)

Round 220. 노스웨스트 더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훈련을 마친 존 레논은 서둘러 밴드 연습실로 향했다.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다른 멤버들은 다 연습을 시작한 뒤였다.

“늦었잖아, 존!”

“내가 늦은 게 아니라 너희가 빨리 온 거야!”

동료들의 타박을 받아친 레논은 서둘러 기타를 조율한 후 연습에 합류했다.

이내 연습실 안은 흥겨운 노래와 악기 소리로 가득 찼다.

“In spite of all the danger~ In spite of all that…….”

쿼리멘 멤버들은 기존의 노래를 그대로 부르거나, 화음이나 템포를 조정한 편곡으로 불러 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리고 이후에 새로운 신곡들을 불러 보면서 조금씩 수정해 나갔다.

“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연습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늦은 밤이 되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젊은 뮤지션들이 쏟아 낸 열기 때문인지 연습실 안은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존, 오늘 점심때 음반사 쪽 사람이 찾아왔었어.”

“그래? 뭐라고 그래? 혹시 또 축구 관두고 밴드나 열심히 하래?”

1년 전만 해도 진짜 밴드만 하라는 잔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들었다.

2군에 있으면서 경기에는 거의 나가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요새는 그런 잔소리가 줄어든 편이었다.

맨유로 와서 곧잘 출전을 하면서 선수로서 인지도도 높아져 가고 있었기 때문.

올 시즌에는 리그나 FA컵 경기뿐만 아니라, 유러피언 컵 베식타슈 JK 원정 경기에도 뛰었다.

덕분에 이스탄불 구경을 한 것은 덤.

“업계 관계자에게 말해 줘.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은 축구 관둘 생각 없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신곡 말인데, 리듬이 너무 파격적인 느낌이 든대. 좀 더 대중에게 익숙한 느낌으로 다듬어 주면 안 되냐고 하던데?”

“쳇, 뭘 다듬으라는 거야? 듣다 보면 익숙해질 텐데.”

“그건 너무 네 기준에서 생각하는 거잖아. 우리가 엘비스나 시나트라만큼 거물은 아니잖아. 강요만 해선 팬이 늘지 않는다고.”

“쩝, 알았어.”

레논은 축구 실력만 오른 게 아니라 과거에 비해 음악적인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저 기존의 가수들을 흉내 내거나 흔한 장르의 노래를 연주하는 다른 아마추어 밴드와 달리, 현재 쿼리멘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느낌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그리고 밴드에서 그런 혁신을 선도해 가는 건 존 레논.

물론 그 배후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존, 요즘도 그 주장이란 사람에게 노래를 배워?”

조지 해리슨의 물음에 레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장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축구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재능도 놀라울 정도라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 기존의 로큰롤이나 스윙 같은 건 케케묵은 고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아주 작정하고 가수로 활동하면 꽤 유명해지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아냐. 힘들 거야. 백인이 아니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얼마 전까지 축구계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가.

실제 주장도 ‘빌 섕클리나 맷 버스비 같은 분들을 만났기에 축구 선수로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가요계에 그 두 감독처럼 비백인에게 기회를 제공할 인물이 있을까?

레논은 절대 아니라고 보았다.

흑인 노래는 좋아도, 흑인 가수는 별로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으니까.

“존은 정말 캡틴 리를 존경하는구나.”

“당연하지. 진짜 형님 같은 사람이니까.”

작년 10월 생일 때는 기타를 선물로 사 줬다.

거기다 어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좋은 병원을 알아봐 주기도 했다.

축구와 음악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자신이 뭔가 잘못 알고 있거나 올바르지 못한 언행을 할 때는 따끔하게 꾸짖기도 했다.

“그 사람을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고 듣긴 했지. 존도 혹시 그런 거야?”

폴 매카트니의 물음에 레논은 웃음을 지었다.

“나도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적이 있긴 한데… 폴 너는 진짜 주장에게 형님이라 불러야 하지 않냐?”

“응? 내가 왜?”

“발뺌해도 소용없어. 너 요즘 남작가 아가씨랑 만나고 있잖아. 주장 애인의 동생 말이야.”

“그, 그건…….”

비밀이 들통난 폴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다른 멤버들이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쏟아 냈다.

“폴이 누구랑 사귄다고?”

“남작가 아가씨면 작년에 스탠리 파크 가든에서 공연했을 때 사인을 받아 갔던 여자애?”

“확실히 예쁘긴 예뻤지. 대체 언제부터 사귄 거야? 진도는 얼마나 나갔고?”

“와, Uptown Girl을 실행하는 놈이 있었네.”

밴드 멤버들은 아예 대놓고 ‘Uptown Girl’을 부르며 폴을 놀려 댔다.

‘Uptown Girl’은 흥겨운 데다 서민층의 로망을 자극하는 내용의 노래라 많은 이들이 즐겨 부르고 있었다.

레논은 이 노래를 주장이 처음 불렀다는 이야기를 숀 코너리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래서 주장이 작곡한 노래인 줄 알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여행 중에 들은 노래’라며 손을 내저었다.

다시 말해 작자 미상이라는 것.

‘혹시 본인이 작곡, 작사하고 쑥스러워서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리즈 씨와 사귀게 된 과정만 봐도…….’

레논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폴을 실컷 놀렸던 멤버들이 다시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근데 너 언제까지 맨체스터에 있을 거야? 축구는 리버풀에 와서 해도 되지 않아?”

“리버풀 복귀?”

“안필드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고 했잖아.”

“그랬긴 한데…….”

노래든 축구든 아직 주장에게 배울 것이 많다.

그래서 레논은 한동안은 계속 맨유에 있고 싶었다.

“와, 이놈 봐라? 맨체스터에서 출세했다고 고향 팀을 배신하려고 드네.”

“배신이라니! 난 리버풀을 사랑해. 언젠간 안필드에서도 뛸 거라고.”

그저 때가 아닐 뿐.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아까 레논의 폭로로 곤경(?)을 겪었던 폴이 곤란한 질문을 해 왔다.

“그럼 리버풀과 유나이티드가 시합하면 어느 쪽을 응원할 거야?”

“그거야…….”

“혹시 리버풀을 상대로 시합에 출전하면 골을 넣을 거야?”

안 그래도 리버풀과 맨유가 FA컵 8강에서 맞붙는다.

레논은 자신이 그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리버풀을 상대로 골을 넣을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넣을 거야. 난 프로니까, 프로답게 플레이해야지.”

“오오, 프로답게…….”

감탄하는 표정을 짓던 멤버들은 이내 돌변하며 삿대질을 해 댔다.

“배신자다! 배신자!”

“붉은 악마의 앞잡이 녀석!”

장난 섞인 그들의 비난에 레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희는 에버튼이 좋다며!”

“우우! 배신자는 참회하라!”

축구와 관련한 논쟁 때문에 밴드 연습실은 이후에도 한참 동안 떠들썩했다.

다른 건 몰라도, 떠들고 노는 것에 있어서는 쿼리멘 멤버들 모두 프로답지는 않았다.

***

1959년 2월 28일.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이며 부는 가운데, 안필드에 수많은 관중들이 들어찼다.

곧 있을 FA컵 8강전,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합을 보기 위함이다.

“드디어! 왔다! 오래 기다렸다!”

선수 대기실에 도열한 양 팀 선수들 중, 붉은 저지를 입은 흑인 소년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는 바로 펠레.

리버풀의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어린 축구 황제는 아직 서툰 영어로 준영과 바비 찰튼에게 엄포를 놓았다.

“나 복수한다! 너희는 오늘 탈락! 우리 팀 3 대 0 승리!”

말과 달리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준영은 펠레가 얼마나 이 시합을 벼르고 별렀는지 알 수 있었지만…….

‘이 녀석, 또 제 무덤을 파는구만.’

흑마법사가 셀프 저주를 걸었다.

물론 그것만 믿고 안이하게 경기를 할 순 없었다.

전력 분석팀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리버풀은 단지 펠레가 혼자 멱살 잡고 온 팀은 아니었다.

빌 섕클리 감독이 부임하고 팀이 재편되며 선수들의 플레이도 완전히 달라졌다.

‘거기다 붉은 제국의 간판 스트라이커도 모습을 내미셨군.’

로저 헌트.

리버풀에서 492경기를 뛰며 286골을 넣은 레전드 플레이어.

작년에 리버풀에 입단한 헌트는 지난 1월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펠레의 어시스트를 받아 데뷔 골까지 넣었다지?’

정확한 시점은 모르지만, 원래 역사보다 이르게 데뷔전을 치른 것 같았다.

아무튼 실제 역사에서도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 준 선수가 펠레와 콤비로 나온다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의아한 점도 하나 있었다.

“이봐, 너희 팀 주장 어디 갔냐?”

준영의 물음에 알란 아코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리들 주장 말이야? 무릎 부상 때문에 빠졌어.”

“그래?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군.”

“주장도 몹시 아쉬워했어. 네 녀석 콧대를 납작하게 해 줄 거라고 벼르고 있었는데 말이야.”

허더스필드 시절에 준영이 맞붙었던 리버풀의 노장 공격수 빌리 리들.

당시 이 시대에 처음 왔던 준영은 잘 몰랐지만, 그는 리버풀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였다.

리버풀을 ‘리들풀’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위상이 대단했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진 못했다.

“주장이 없다고 안도하진 말라고. 우리 팀에는 축구 천재가 있으니까.”

“펠레 말이야? 하긴 그 돌머리 아저씨보단 훨씬 위협적이긴 하지.”

준영은 다시 펠레 쪽을 바라보았다.

스웨덴 월드컵 이후로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

기량은 접어 두더라도 그때보다 체격이 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몸싸움이 거친 영국 선수들과 경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육이 발달한 모양.

‘복수를 고대하고 있었겠지만, 오늘 네 상대는 따로 있어. 너처럼 천재 소리를 듣는 녀석이지.’

안 그래도 그 천재, 던컨 에드워즈가 펠레를 노려보고 있었다.

펠레가 준영과 바비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았던 것.

“자, 선수 여러분, 입장하십시오.”

시간이 되자 대기실에 있던 선수들은 필드로 나갔다.

빽빽하게 관중석을 메운 관중들은 자신들 팀에게는 환호를, 상대 팀에게는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 꺼져라, 중국인!”

“부두에 가서 짐이나 날라!”

야유를 퍼붓는 리버풀의 극성팬, 콥스를 본 맨유의 서포터 12번째 전사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허, 저 자식들도 우리처럼 단체로 유니폼을 맞춰 입었네.”

“따라 하는 꼬락서니하곤…….”

“저 흉내쟁이들에게 진짜 응원이 어떤 건지 보여 주자!”

앞쪽에 있는 서포터들이 장대에 건 깃발을 휘두르자, 나머지는 일제히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며 응원 구호를 외쳤다.

“Manchester is Wonderful!”

“Walk on, walk on! You’ll never walk alone!”

맨유 측의 응원에 맞대응하기라도 하듯, 콥스도 일제히 구호를 외쳤다.

응원이 상당히 조직적이었는데,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듯했다.

이렇게 장외 응원이 후끈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심판의 휘슬이 울리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킥오프와 동시에 맨유 진영으로 뛰어 들어간 펠레는 로저 헌트에게서 패스를 넘겨받았다.

그러곤 맨유 페널티 박스로, 그곳을 지키는 이준영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기다려라, 존 Y. 리! 널 제치고 골을 박아 줄 테니!’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던 펠레.

그런 그의 돌진을 던컨 에드워즈가 막아 세웠다.

***

1. 실제로 비틀즈 멤버들은 서로 축구 얘기는 거의 안 했고, 소속사에서도 이를 금지했다고 합니다. 서로 싸우거나, 팬들끼리 다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2. 로저 헌트는 1959-60시즌 9월 9일에 첫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당시 후반 19분에 득점을 하면서 리버풀에 승리를 안겨 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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