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17화 (217/400)

Round 217. 시궁창의 보석

“무슨 문제가 있긴요. 감독부터가 문제아잖아요.”

버스비의 혼잣말을 들은 머피 코치는 뉴캐슬 감독 찰스 미튼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미튼은 퉁명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탈주범 따위가 감독이니 팀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그만, 다 지난 일 아닌가.”

버스비와 머피는 미튼과 구면.

그들이 처음 맨유를 맡을 무렵, 미튼은 굉장한 실력을 가진 인기 스타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미튼은 자신의 실력과 인기에 비해 주급이 형편없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에 그는 1950년 아메리카 투어 경기를 갔을 때 팀에서 탈주, 콜롬비아 리그의 인디펜디엔테 산타페에서 뛰었다.

당시 콜롬비아는 FIFA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급료를 지급했기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비롯해 당대에 날고 기는 선수들이 콜롬비아 리그에서 뛰었다.

“저 자식이 산타페 팀에서 꿀을 빠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래, 나도 몹시 섭섭하긴 했어. 말도 없이 가 버렸으니까.”

1년 후, 콜롬비아가 정식으로 FIFA에 가입하면서 미튼의 행복도 끝났다.

그는 여전히 맨유에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산타페에서 뛸 수 없었다.

이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 회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게 영입 제안도 받았지만, 맨유와의 계약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친정 팀으로 돌아온 미튼은 FA로부터 막대한 벌금과 함께 6개월 출장 금지 처분을 당했다.

코칭스태프나 선수들, 그리고 팬들까지도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결국 미튼은 풀럼으로 이적, 맨유에서 사실상 쫓겨나고 말았다.

“미튼이 잘한 건 아니지.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주급 제한 때문이 아닌가. 지금도 실력 있는 선수를 그만큼 대우해 주지 못하는 게 사실이고.”

버스비 감독은 열심히 수비를 조율하고 있는 준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미튼과 여러모로 다른 선수였다.

불행한 사고로 팀이 정말 어려울 때도 떠나지 않고, 전력을 재건하고 우승컵을 따냈다.

거기다 자신이 사업해서 번 돈으로 구단 주식을 사고, 주변에서 투자를 유도하며 팀의 살림을 안정시켜 주었다.

최근에는 클럽 하우스 건설에 나서며 선수들을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었다.

‘선수로서 보여 준 활약만 해도 대단한데, 뒤에서 이 같은 지원까지 하니 고맙다 못해 정말 미안할 정도란 말이지.’

괜히 최근에 ‘캡틴 리’라고 불리고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팬들에게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후대 사람들이 이 시대 유나이티드의 대표 선수를 꼽으라면 존을 말할지도 모르겠군.”

“그리될 겁니다. 이미 그만한 활약과 공헌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본인은 이제까지의 성과에도 성이 차지 않은 듯, 활약을 계속하고 있었다.

지금도 뉴캐슬의 공격을 저지한 후, 직접 공을 몰고 전진해 가며 측면으로 달려가는 레논에게 좋은 패스를 연결해 주었다.

“나이스 패스예요, 주장!”

자신의 앞으로 떨어진 공을 잡아챈 레논은 중앙으로 날카로운 컷백을 넣었다.

그리고 패스는 쇄도하던 알버트 퀵솔이 마무리를 지었다.

“Goal! Goal!”

“이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두 번째 골과 함께 관중석이 열광적으로 끓어올랐다.

그 뜨겁고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 주인공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기세라면 오늘 경기 승리는 문제없을 것 같았다.

***

“큭, 내 이럴 줄 알았지!”

귀빈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뉴캐슬 구단 임원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의 이름은 조지 스탠리 시모어.

20년대 뉴캐슬에서 9년을 뛰고, 이후 감독으로도 팀을 지휘하며 FA컵 우승을 일궈 낸 능력자였다.

1954년에 감독에서 물러나 구단 부회장이 되었지만, 그는 이후로도 사실상 뉴캐슬의 감독으로 군림했다.

실제 찰스 미튼이 부임하기 전에도 감독들이 있었지만, 사사건건 간섭하는 시모어의 등쌀에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나마 미튼은 그 간섭에서 뚝심 있게 버티고 있었다.

다만 성과가 미비하다 못해 강등 위기까지 겪다 보니, 큰소리를 칠 입장은 못 되었다.

“미튼 이 망할 자식, 내가 몇 번이고 수비를 강화하라고 했는데 영 들은 척을 하지 않으니!”

미튼은 공격적인 전술을 좋아했다.

문제는 공격적인 전술로 팀을 운영하면서도 득점이 빈약하다는 것.

더구나 공격수로 뛰어난 기량을 가진 레너드나 아이버 등을 데리고 삽질을 하고 있으니, 임원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팬들도 불만이 많았다.

“어휴, 전반전이 절반도 지나기 전에 2 대 0이라니…….”

“아무리 상대가 1위 팀이라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다니!”

“야! 정신 차려, 이것들아!”

원정 응원을 온 뉴캐슬 팬들의 원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캐슬 선수들은 딱히 위축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크게 분발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신입인 고스와미 추니는 동료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까닭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나란 놈도 참……. 하필이면 형편없는 식당에 들어오다니.”

아무리 좋은 재료와 실력 있는 요리사들이 있어도 운영을 엉망으로 하면 식당은 파리가 날리기 마련.

현재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그랬다.

분명 선수들의 기량은 뛰어나고, 감독의 공격적인 전술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선수나 감독에 대한 대우가 영 좋지 못하다는 점.

선수들은 주급이나 보너스만으로는 부족해서 부업을 하는데, 이를 뉴캐슬 구단에서 간섭하고 있었다.

본인이 꺼리는 일을 구단에서 강권하다 보니, 선수들이 불만을 품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거기다 아무리 감독 출신이라고 하지만, 부회장은 사사건건 팀 전술이나 선수 관리에 간섭을 해 댔다.

‘이러니 선수든 감독이든 제대로 의욕이 날 리 없지.’

경기가 잘되는 날이면 모를까, 이렇게 초반부터 고전하는 날은 경기를 단념해 버리곤 했다.

“하지만 난 포기할 생각이 없어.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지.”

시궁창에 묻혀 있어도 보석은 빛난다.

추니는 영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공을 잡고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이번엔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조! 서두르지 마!”

준영의 외침은 아직 풋내기 수비수였던 조 캐롤런의 귀에 제대로 박히지 못했다.

의욕이 강했지만, 냉정함은 부족했던 캐롤런은 추니의 페인트에 또다시 넘어가 버렸다.

“쳇, 서두르지 말라니까!”

준영이 황급히 마크에 나설 때, 추니가 크로스를 띄워 올렸다.

빠르고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온 그 크로스는 빈 공간으로 쇄도하던 아이버 올처치의 머리에 제대로 걸렸다.

“아앗, 이런……!”

“나이스 크로스에 나이스 슛이구만.”

제대로 당했다!

맨유 팬들이 한숨을 토하는 사이, 추니는 득점을 한 아이버가 자신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았다.

‘포기할 생각이 없는 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군.’

추니가 보아도 아이버는 뉴캐슬이란 팀에 묻혀 있기 아까운 금덩이였다.

하지만 둘이 지펴 올린 추격의 의지는 다른 팀원들이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다.

추격 골이 터진 지 단 2분 만에 이준영과 바비 찰튼, 바이올렛의 패스를 거쳐 알버트 스캔론이 추가 골을 터트렸다.

반색을 했던 뉴캐슬 팬들이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더 황당한 일이 3분 후에 벌어졌다.

레논의 패스를 받은 데니스 바이올렛이 수비수 둘을 제치며 갈긴 슈팅이 그대로 골대에 박혀 버린 것.

4 대 1.

겨우 5분 사이에 스코어가 3점 차이로 벌어지자 뉴캐슬 팬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크악! 뭐 하는 거야, 진짜!”

“수비할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때려치워라, 이 자식들아!”

조금 전보다 더 거세게 쏟아지는 야유와 욕설.

뉴캐슬 선수들뿐만 아니라 맨유 측도 주눅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 골 더 넣었다간 내일 뉴캐슬에서 살인 사건이 나겠군.”

“거참, 9월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그땐 우리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점수 차가 여유롭다 보니 맨유 선수들도 지나친 공격은 자제했다.

자칫 팬들의 성화에 떠밀린 상대 수비수에게 위험한 파울을 당할 수 있으니까.

괜히 다치면 본인은 물론이고, 팀에도 손해였다.

그래서 무리하게 상대 박스 안으로 돌파를 시도하기보다, 외곽에서 슈팅을 날리곤 했다.

덕분에 뉴캐슬은 더 이상의 실점 없이 전반전을 마칠 수 있었다.

“우-! 우우!”

필드에서 나오는 뉴캐슬 선수들을 향해 야유가 쏟아졌다.

복잡한 울분이 치솟아 올랐지만, 그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

뉴캐슬의 라커룸.

다들 무거운 표정으로 목을 축이거나 답답한 마음에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피워 올렸다.

‘이 녀석들을 뭐라고 다독여야 하지?’

찰스 미튼 감독이 고민하고 있을 때, 러커룸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이런 머저리 같은 것들! 그걸 경기라고 한 거야!”

들어와서 다짜고짜 호통을 치는 노인은 부회장인 조지 스탠리 시모어였다.

“허수아비를 세워 놔도 네놈들보다 나을 거야! 어떻게 그리 쉽게 골을 내줄 수 있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분노를 드러내는 시모어는 연방 비난과 질책을 쏟아 냈다.

보다 못한 미튼 감독이 그를 만류하고 나섰다.

“그만하십쇼. 꾸짖기만 한다고 나아지진 않을 겁니다.”

시모어의 눈길이 미튼에게로 향했다.

맹수처럼 자신을 노려보는 눈길에도 불구하고, 미튼은 이참에 해야 한다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부회장님, 시대는 변했습니다. 저 녀석들이 뛰어난 활약을 하기를 바라신다면, 녀석들이 마음 편히 축구를 할 수 있게 구단에서 잘 지원해 주십시오.”

“뭐라고?”

시모어는 심하게 낯을 찌푸리며 미튼에게 쏘아붙였다.

“자네는 감독이야, 미튼 군.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다그치는 게 자네 일이지. 구단 운영에 대해서 감히 간섭하지 말게.”

“선수들의 사기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감독까지 하셨으니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실 텐데요?”

“내가 아는 건 자네 전술이 형편없다는 것뿐이야! 맥키그 회장만 아니면 자네는 벌써 모가지였을 게야!”

시모어의 비난에 미튼은 이를 악물었다.

수비가 중요하다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격에 무게를 둔 전술을 쓰는 건, 현재 뉴캐슬에는 공격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거기다 팬들도 많은 골이 들어가는 경기를 더 좋아하고.

“똑바로 하게, 미튼. 언제까지 맥키그 회장이 자넬 감싸 줄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렇게 을러 준 뒤 시모어는 라커룸에서 나갔다.

분한 마음에 주먹을 말아 쥐었던 미튼은 우두커니 자신을 바라보는 선수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제 하프타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무슨 말로 이 녀석들을 일으켜 세울까 생각해 보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탈주범이다. 여기 올드 트래퍼드에서 도망쳤지. 내 실력에 비해 대우가 형편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어.”

잘한 짓은 아니란 건 미튼 본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자신에게만 잘못이 있는가?

스타플레이어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FA의 책임은 없는가?

“지금 너희를 짓누르고 있는 부당함은 쉽게 해결되지 않아. 그러니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 스스로를 위해 뛰어.”

현실은 시궁창.

하지만 그 시궁창에서 벗어날 방법은 보석처럼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뿐이다.

아이버와 추니 등 이미 이를 깨닫고 있는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방금 감독의 말을 이해한 이들도 다시 의욕을 불태웠다.

“어디 한번 해 보자.”

“더는 물러설 구석도 없으니까.”

뉴캐슬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들어올 때와 사뭇 다른 기세로 다시 필드로 나갔다.

***

조지 스탠리 시모어는 당시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본 사람이었죠.

확실히 능력은 있었지만, 뉴캐슬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임원이 된 후에도 지나치게 팀에 간섭했고, 회장인 윌리엄 맥키그와 마찰을 빚었습니다.

거기다 당시 뉴캐슬은 선수들에 대해서 꽤 강압적이라 선수의 이적 요청은 물론 대표팀 차출도 거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조지 이스트햄이란 선수가 이에 반기를 들면서,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는 현황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모어는 아주 오래 임원직을 유지했고, 1976년에는 종신 회장으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있는 동안 뉴캐슬은 1부와 2부를 오락가락하며 장기 침체를 겪었고, 부채도 많이 늘었고 관중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죠.

이런 문제는 1980년대 케빈 키건을 영입하는 등 구단이 혁신에 나서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었습니다.

근데 당시에 그 혁신을 이끈 회장은 조지 스탠리 시모어 주니어, 그러니까 시모어의 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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