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14. Management
“다녀왔습니다~”
훈련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귀에 익은 음성에 반색을 했다.
고개를 돌리자 준영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주장, 돌아왔군요!”
“이 자식, 연락 자주 하랬잖아!”
“안 돌아오는 줄 알았다고.”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들도 한걸음에 준영에게 다가왔다.
“한국은 어땠어? 아직도 전쟁 중이야?”
“신문을 보니 대통령한테 훈장 받았다면서요? 구경 좀 시켜 줘요.”
“가서 시합도 했다면서?”
질문이 이리저리 날아들자, 버스비 감독이 나서서 모두를 진정시켰다.
그러곤 모두를 대표해서 준영에게 말을 건넸다.
“무사히 돌아와서 기쁘군. 그런데 같이 온 분은 누군가? 이틀 전에 전화로 말한 사람인가?”
“예. 한국에서 유명한 축구인이세요. 1948년 런던 올림픽에도 출전하셨죠.”
준영의 소개에 이어, 당사자가 정중히 버스비 감독에게 인사를 했다.
“김용식이라 합니다. 간단하게 김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반갑습니다, 김. 영어를 꽤 잘하시는군요.”
“선교사분에게 배웠지요.”
버스비 감독은 김용식과 악수를 나누며 말했다.
“영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원하신다지요? 저와 우리 코치들이 도와 드릴 테니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십시오.”
“갑자기 찾아온 이방인을 이렇게 거리낌 없이 맞아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허허, 괜찮습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있는 이는 누구나 환영이니까요.”
김용식은 비슷한 연배인 버스비 감독, 그리고 지미 코치와 금세 친해졌다.
그들이 축구에 대해서 이리저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준영은 동료들에게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공항에서 대통령 관저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의를 베풀더군. 돌아올 땐 대통령에게 선물도 많이 받았어.”
그러면서 준영은 손에 들고 온 가방에서 선물들을 꺼내 풀어 헤쳤다.
“자, 훈련하느라 다들 칼로리를 소모했을 테니까 이거 먹어.”
“이거 말린 과일이야?”
“곶감이라고, 호랑이가 무서워하는 거지.”
“엥? 왜 이걸 무서워해? 혹시 독이 들었나?”
“내가 독이 든 걸 주겠냐. 일단 한번 먹어 보라고.”
표면에는 하얀 당분이 뿌려져 있고, 속에는 호두가 채워져 있었다.
제일 먼저 먹어 본 던컨은 이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곶감호두말이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에 다른 선수들도 손을 뻗었다.
“맛있네. 건자두랑 비슷한 것 같아.”
“홍차랑 마실 때 먹어도 괜찮겠어.”
우물거리고 있던 선수들은 뒤이어 준영이 내미는 것을 보고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그게 뭐야? 나무뿌리인가?”
“이건 척 봐도 맛없어 보인다.”
“냄새도 좀 이상해.”
숀 코너리는 문제의 나무뿌리(?)를 유심히 살펴보다 정체를 파악해 냈다.
“이거 Ginseng이군.”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일전에 연극단 사람들과 차이나타운에 식사를 하러 갔다가 봤어. 꽤 비싸게 거래되는 모양이던데…….”
“비싸죠. 동양에선 명약으로 통하니까. 원래는 인삼이라고 불려요. 이렇게 쪄서 말린 건 홍삼이라고 하죠.”
동양의 명약이란 말에 관심을 끊으려던 선수들이 다시 눈을 반짝였다.
“꽤 좋은 건가 보군.”
“아주 좋죠. 체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마늘 따위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죠.”
“오오오!”
남자에게 좋은 것!
언제 신통찮아 했냐는 듯, 선수들은 준영이 나눠 주는 홍삼을 금덩이인 양 귀하게 받아 들었다.
“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
“조금씩 썰어서 차처럼 끓여 마시면 돼. 그건 그렇고, FA컵 3라운드는 어떻게 됐어?”
“당연히 이겼지!”
그 경기에서 맹활약했던 던컨이 한껏 으스댔다.
하지만 준영은 맨유의 승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리버풀은?”
“거기도 이겼어. 원정 경기라고 하지만, 절대 패할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초반에 기습 선제골을 먹긴 했지만, 이후 펠레가 6골을 터트리며 압승을 거두었다고.
“역시 이번에도 펠레가 활약했군.”
“정말 엄청난 녀석이야. 아무리 2부 리그라도 그렇게 골을 많이 넣기는 힘든데 말이지.”
요주의 대상이 되면 온갖 방법으로 견제하려 들기 마련.
준영도 허더스필드에서 뛸 때 그랬지만, 테크닉뿐만 아니라 월등한 피지컬로 그 견제를 뿌리쳤다.
그런데 펠레는 발재간 하나로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1부 리그나 해외 팀에서도 오퍼가 오는 모양인데, 리버풀에서는 절대 안 놔줄 거래. 본인도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고.”
왜 그런지는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펠레가 언론을 상대로 공공연히 ‘타도 유나이티드!’를 외치곤 했으니까.
“그 자식, 월드컵 빼앗긴 게 엄청 원통한 모양이야.”
“분명히 FA컵에서도 벼르고 있겠지.”
원한을 품은 축구 황제의 행보가 놀랍긴 했지만, 준영은 지나친 우려는 하지 않았다.
‘브라질이 상대라면 모를까, 리버풀이잖아.’
펠레가 연전연승을 이끌고 있지만, 아직 붉은 제국의 핵심 멤버들은 자리 잡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맨유는 현재 퍼스트 디비전 1위를 수성하고 있을 정도로 좋은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선발 멤버들뿐만 아니라 후보 선수들의 기량도 골고루 성장해 있었다.
무엇보다 실제 역사에선 이미 사라지고 없을 선수가 건재함을 과시했다.
“던, 펠레 녀석을 다음 월드컵에서 상대해 본다고 했지? 혹시 다음번에 만나면 제대로 리허설을 치러 보라고.”
“알았어. 녀석의 머리에 던컨 에드워즈의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 주도록 하지.”
부디 리버풀이 FA컵에서 중도 탈락하지 말고 올라오기를.
모두들 한바탕 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축구 천재와의 만남을 기대했다.
***
준영이 맨유를 이끌고 승승장구하는 동안, 모즐리 AFC도 순항 중이었다.
현재 그들은 체셔 카운티 리그에서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윤옥은 그 순항에 한몫하고 있었다.
3라운드 렉섬 AFC 리저브 팀과의 경기에서 데뷔한 후, 곧잘 선발 멤버에 발탁되곤 했다.
그리고 1월 17일 열리는 26라운드 뱅고어 시티 FC와의 홈경기에도 선발로 낙점되었다.
‘명심해라, 조윤옥. 오늘 경기는 평소보다 더 잘해야 된다.’
출전 직전, 윤옥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다그쳤다.
준영이나 프레드로 저택 사람들이 보러 오기도 하지만, 김용식 선생님도 구경하러 온다고 했다.
무엇보다 웨일스나 그레이트 맨체스터 지역에서 활동하는 스카우터들이 관전할 계획이란다!
‘한 단계, 아니 어쩌면 두 단계는 더 치고 올라갈 기회가 올지 몰라.’
그러니 반드시 잘하자!
의욕을 불태운 윤옥은 동료 선수들과 함께 필드로 나갔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 과감하고 빠르게 상대 진영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런 그의 모습을 김용식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린 친구가 상당히 적극적이구만. 자신감도 커 보이고.”
“의지가 강한 녀석이니까요.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고요.”
아무리 다그치고 꾸짖어도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조윤옥은 그런 점에서 합격이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본기 연마나 웨이트 트레이닝도 군말 없이 따랐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예습과 복습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부족한 체력도 조금씩 보완이 되었고, 몸싸움을 하면서도 쉽사리 밀리지 않게 되었다.
“운동 능력이 올라가니 발재간을 부리거나 전술적인 움직임을 수행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준영의 설명에 김용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본이 중요하군.”
“모든 일이 다 그렇죠.”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윤옥은 미드필드에서 패스를 받아 측면을 내달리고 있었다.
크로스를 올리는 척 페인트를 걸었던 그는 상대 선수를 따돌리고 페널티 박스 안으로 돌파해 들어갔다.
바로 앞을 수비수가 떡하니 가로막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슈팅을 날렸다.
“Wow! Goal!”
“Wonderful Play!”
골이 들어가자 관중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준영은 땅을 치는 상대 골키퍼를 보며 빙긋 웃음을 지었다.
“골키퍼가 실수를 했네요.”
“그러게. 수비수가 가로막은 방향은 믿고 놔두고 니어 포스트 쪽으로 날아들 것에 대비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물론 과감하게 니어 포스트 하단을 노리고 슈팅을 날린 조윤옥의 플레이도 좋았다.
주특기라 할 만한 날카로운 슈팅도 훨씬 더 예리해진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땐 한참 부족해 보였는데, 정말 많이 는 것 같습니다.”
“어린 친구들이야 배우는 속도가 빠르니까.”
아직 성에 찰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성장했다.
이만하면 튜토리얼은 통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레벨을 높일 수 있는 필드로 나갈 차례였다.
***
조윤옥의 선제골에 힘입어 모즐리 AFC는 뱅고어 시티 FC를 4 대 1로 물리쳤다.
경기가 끝나고 윤옥에게 여러 스카우터들이 찾아와 명함을 건네고 갔다.
상위권 팀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연락하라면서.
‘드디어 오퍼가 왔다!’
흥분감에 들뜨긴 했지만, 윤옥은 결코 경솔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먼저 소속 팀 감독인 에드먼드 짐사와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준영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래? 오퍼를 보낸 팀들이 어디야?”
“예, 올덤 애슬레틱 AFC랑 스톡포드 카운티 FC, 베리 FC에 트랜미어 로버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김용식 선생이 준영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수준의 팀들인가?”
“대부분 3, 4부 팀들입니다. 윤옥이 레벨, 아니 실력으로 버겁긴 해도 출전 기회를 영 못 잡을 수준은 아니죠.”
맨시티의 골키퍼 버트 트라우트만도 아마추어 클럽에서 보인 활약을 발판으로 1부 리그로 점프했다.
물론 조윤옥이 트라우트만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도전해 볼 만한 기량은 쌓았다.
“영 가망이 없거나 잠재성도 보이지 않았다면 스카우터들이 보러 오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겠지. 자네가 볼 땐 어떤 팀이 좋을 것 같나?”
“그건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지요.”
준영의 시선이 다시 윤옥에게 향했다.
솔직히 윤옥도 이번에 오퍼가 온 팀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다만 스스로 바라는 건 있었다.
“경기에 많이 뛸 수 있는 팀이면 좋겠어요.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선수는 많이 뛰어야 한다고.”
굳이 준영의 말이 아니더라도 윤옥은 실전에 나가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구경만 하는 신세는 되고 싶지 않았다.
보는 것만 해도 배우는 게 있다고 하지만, 직접 뛰면 그보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으니까.
“그래, 선수는 되도록 많이 뛰어야 해. 바로 결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너에게 정말 관심 있고, 필요로 하는 팀이라면 먼저 연락을 해 올 테니까.”
한편으로 준영도 오퍼가 온 팀들에 대해서 좀 더 조사를 해 보기로 했다.
이적은 선수의 기량 발전과 인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기왕에 키우기로 한 제자에게 좀 더 여건이 좋은 팀을 골라 주고 싶었다.
***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기대감에 부풀었던 분들이 많았을 거라고 봅니다.
아무리 천재 소리를 듣는 역대급 재능의 선수라도 결국 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저때 뼈저리게 느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