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09화 (209/400)

Round 209. 작은 도움

‘진짜 시답잖은 짓을 하는군.’

준영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 상황을 무시하고 넘어갈 순 없었다.

휴전이 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 북한이 계속 도발과 위협을 일삼고 있다 보니, 빨갱이 낙인이 찍히면 만인의 공적이 되기 딱 좋다.

‘누군지 몰라도 나한테 쉰내 나는 사상 검증을 하고 싶은 모양이군. 좋아, 그렇다면 21세기 방식으로 검증해 주지.’

그리 마음먹은 준영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기자에게 말했다.

“전 그 당시에 체코슬로바키아 보안국 요원들에게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북한 외교관을 만난 건 사실이죠.”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눈 겁니까?”

“별로 얘기한 것도 없습니다. ‘김일성 개새끼.’ 하니까 얼굴이 새파래지던데요.”

“예? 그런 말을 했다고요? 북괴 외교관에게?”

기자, 아니 검찰의 공안부 수사관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억류되었다는 놈이 제 명줄을 쥐고 있을 상대에게 그런 도발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준영은 뭐가 어떠냐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왜요? 그런 말 하면 안 됩니까? 김일성 개새끼인 거 사실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만…….”

“그렇지만은 뭐가 그렇지만입니까? 스탈린 X꼬 핥아 대며 꼬리 치던 새끼가 개새끼지, 사람 새낍니까?”

수사관은 물론이고, 주변의 다른 취재원들도 입을 떡하니 벌렸다.

아무리 그래도 인터뷰 중인데 점잖지 못하게 적나라한 욕설을 늘어놓다니!

“자, 기자님도 한번 해 보세요. 김일성 개새끼!”

“기, 김일성 개… 새끼.”

“거 똑바로 못합니까? 왜 그리 머뭇거려요?”

다짜고짜 쌍욕을 하라고 하면 제대로 나오는가!

그것도 하필이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사관이 억울한 표정을 지을 때, 준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쏘아보았다.

“혹시 머뭇거릴 만한 이유라도 있나?”

“이, 이유라니! 그런 거 없습니다! 나는 그저…….”

“변명하지 마, 이 빨갱이 새끼야!”

퍼억-!

준영이 휘두른 주먹에 맞은 수사관은 찍소리도 못하고 뻗어 버렸다.

“누가 경찰 좀 불러요. 당장 이 빨갱이 새끼 잡아가서 조사하라고 해요.”

결국 수사관은 많은 취재원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되었다.

그렇게 법무부 장관 홍진기가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카드는 허무한 실패로 끝났다.

***

“도대체 이게 뭡니까? 검찰 공안부 수사관이 빨갱이로 몰려 체포되다니!”

이기붕이 내던진 신문에 난 기사에 홍진기는 진땀을 뻘뻘 흘렸다.

대중 앞에서 의혹을 부풀려서 당황한 이준영의 꼬투리를 잡을 목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열성적인 반공 청년임을 증명시켜 주고 말았으니!

“그놈이 그런 야비한 수작을 부릴 거라곤……. 그래도 아직 실망하시긴 이릅니다. 과거 홍콩에서의 행적이 불분명하다고 하니 그 점을 파고들면…….”

“됐소! 더 이상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시오!”

다시 생각해 보니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다.

놈에게 하자가 있다고 밝혀내면, 놈을 열렬히 환대한 대통령 각하나 자유당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더구나 놈에게 이미 문화 훈장까지 주지 않았던가.

뒤늦게 ‘아, 우리도 속았습니다!’라고 해 봤자 국민들에게 비웃음 아니면 따가운 눈총을 받을 뿐이다.

“그럼 이대로 이준영이가 까부는 걸 두고 봐야 합니까?”

“깡패들과 다툰 것 빼고 우리를 딱히 곤란하게 만든 것도 없잖소. 며칠 있다 영국으로 돌아간다니 그냥 내버려 둡시다.”

괜히 건드렸다 반감만 사면 나중에 이용해야 할 때 써먹지 못하게 된다.

“그나저나 그거 들었소? 일서가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중화민국 대사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요청하던데.”

“개인적인 문제요?”

“듣자니 향수병이라고 하던가? 거의 7년 동안 해외에 있었으니 무리는 아니지.”

문제는 후임자다.

중화민국은 현재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기 때문에 아무나 임명해서 보낼 수 없었다.

“일서처럼 중국통이면 좋겠는데…….”

“그럼 최용덕 장군은 어떻습니까? 과거 중국 공군에 있었고, 3년 전에 퇴역해서 야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딱 좋구만. 일단 각하께 보고해 올리겠소.”

아무도 김홍일이 진짜 무슨 이유로 귀국하려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승만에 대한 충성심이 깊고, 이미 정치 쪽과 멀어진 인물이라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

다들 당장 눈앞에 벌어질 일들, 그리고 그로 인한 이권에 정신이 팔려 멀리 보지는 못했다.

***

자유당의 높으신 분들이 쑥덕이고 있을 즈음.

준영은 일전에 만났던 대한축구협회장 김윤기, 그리고 김용식, 김화집 선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기를 많이 뛰는 겁니다. 단발적인 수준의 대회보다 리그를 만들어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죠.”

“그게 좋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네가 뛰고 있는 영국과 달라. 교통이 불편하니 왕래나 시합도 쉽지 않다고.”

“그럼 영국 아마추어 리그나 독일처럼 지역별로 나눠서 시합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현재 한국의 경제 사정으론 영국과 같은 프로 리그는 불가능.

그렇기에 대학과 실업팀, 특무대와 같은 군대 팀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유소년 육성도 일단은 학원 축구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고.

‘현실적으론 이게 최선이지.’

영국 풋볼 리그도 절대 갑툭튀한 건 아니다.

19세기부터 학교의 아마추어 클럽들과 공장의 실업팀들이 출범하여 점차 규모를 늘리고 체계화하면서 프로 리그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일단 풀뿌리 축구부터 잘 다지게 만들어야지. 그래야 시행착오가 줄어들 테니까.’

한국 축구는 1983년 ‘슈퍼리그’라는 이름으로 프로 리그를 시작했지만, 실제론 부실했다.

리그에 참여한 팀 중에는 완전한 프로팀만 있는 것도 아니고, 팀 사정이 여의치 못해 리그에서 이탈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당연히 승강제도 도입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사상누각.

거기다 국가대표팀이 우선되다 보니 파행 운행이 벌어지거나 스타플레이어가 부재한 상황도 흔하게 벌어졌다.

‘그런 일은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돼.’

한편으로 준영은 유소년 선수 육성에 도움이 될 방안 하나를 더 알려 주었다.

“8인제 축구?”

“11명이서 할 때보다 작은 공간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공을 다룰 기회가 많아지니까 개인 기술 발전이나 공간 활용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죠.”

공수 전환이 빠르니 상황 대처 능력도 키울 수 있으며, 전술 이해 능력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

준영의 이야기를 들은 김용식은 기가 막힌 방법이라며 박수를 쳤다.

“장점이 굉장히 많구만! 회장님, 이런 건 당장 시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잠깐, 8명이 뛰면 11명이 뛸 때보다 뛸 기회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

김화집의 지적에 준영은 그에 대한 대안을 내놓았다.

“교체 규정을 도입하면 됩니다. 농구에서 하듯이 교체를 자유롭게 하면 지나친 혹사도 피할 수 있고, 어린 선수들이 두루두루 뛸 기회가 생기죠.”

“과연……!”

이게 최신의 유럽 축구로구나!

다들 그리 생각했지, 설마 미래 축구의 자산이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안 그래도 출출하니 식사나 하러 가지. 이 근처에 아주 유명한 식당이 있어.”

김윤기 회장이 추천한 곳은 하동관.

21세기에도 유명한 이 국밥집은 1950년대에도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캬, 국물 맛이 끝내주네요.”

“허허, 준영이 자넨 외국 생활 오래 했는데도 국밥을 제대로 먹을 줄 아는군.”

준영이 깍두기 국물까지 섞어 제대로 국밥을 즐기고 있을 때, 그의 경호원들도 한국의 서민 요리를 음미하고 있었다.

“음, 뼈와 고기를 우려서 내장 부위를 넣었나? 대충 플라키(* 폴란드의 내장 수프 요리)와 비슷한 것 같군.”

“한국 사람들은 이 매운 붉은 채소 절임을 정말 좋아하나 봐. 어디에도 빠지지 않으니…….”

로베르트를 비롯한 경호원들은 군말 없이 음식을 삼켰다.

전쟁 때는 이보다 더 흉악한(?) 음식들로 배를 채운 적도 있었기에 이 정도면 감지덕지였다.

터너 역시 깔끔하게 그릇을 비웠다.

“웬일이냐? 음식 안 맞는다고 투덜대던 녀석이?”

로베르트의 물음에 터너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거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게 고마운 것 같아서요.”

터너는 지난번에 본 빈민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코가 석 자.’라고 할 수 있는 게 자신의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자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사장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걸 좋아했지.’

이따가 사장에게 진지하게 요청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그랬듯이,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변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까.

***

오후에 준영은 미스터리 푸드 한국 지부 공장을 찾아갔다.

이억관에게서 라면 공장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

“공장 전경은 맨체스터에 있는 거랑 별 차이가 없군요.”

“필요한 기계와 장비는 영국에서 죄다 가져왔으니 당연하지.”

일하는 사람만 다를 뿐.

다만 영국에서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면을 튀기다 발생하는 부스러기들을 따로 모아 설탕물에 볶아 낸 후 포장하고 있었던 것.

“부스러기를 직원들이 가져가서 간식 삼아 먹더라고. 생각보다 맛있어서 과자처럼 팔면 되겠다 싶었지.”

‘아, 라면땅…….’

준영이 미처 떠올리지 못한 걸 이억관과 한국 지부 직원들이 알아서 만들어 냈다.

“잘 팔립니까?”

“뭐, 저렴하니까. 애들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술안주 대용으로 먹는 모양이더군.”

이억관은 그동안의 매출 실적을 보여 주겠다며 준영을 사무실로 데려갔다.

그런데 정작 사무실로 가니 준영의 눈길을 끄는 건 서류나 장부가 아니었다.

벽에 걸려 있는 무척 낯익은 그림이었다.

“이중섭의 흰 소로군요.”

“그래, 맞아. 준영이 자네도 알고 있었나?”

“물론이죠.”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 아닌가.

한국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걸작이라고 말이다.

“누군지 몰라도 잘 베껴 그렸네요.”

“베끼다니. 그거 진품이야.”

“예?”

“죽은 화가의 친구라는 사업가에게서 작년에 선물로 받았어. 국민들을 배부르게 하는 음식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말이야.”

‘헐……!’

준영의 놀란 반응에 이억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대단한 작품인 건가?”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이중섭은 유명한 화가예요. 더구나 저 피골이 상접한 흰 소는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들을 의미하는 거라고 하죠.”

“아, 그런 의미가 있는 그림이었구만. 왜 저렇게 그렸나 했더니만…….”

숙연한 기색을 보이던 억관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안 그래도 회사 마스코트로 뭘 할까 궁리했는데 잘됐군. 포동포동 살찐 흰 소로 해야겠어.”

“국민들을 살찌우는 사업을 하겠다는 의미군요.”

“바로 그거야!”

그러다 미스터리 푸드 라면은 ‘소표 라면’이라고 불리게 되는 건 아닐까?

뭐, 나쁘지 않아 보였다.

소는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동물이니까.

“아 참, 말이 나왔으니 여쭈어보는 건데, 혹시 당장 쓸 수 있는 재고품이 있을까요?”

“미리 증산해서 창고에 비축해 놓은 게 있긴 해. 근데 그건 어디에 쓰려고?”

“당장 살 좀 찌워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요.”

준영은 좀 전에 터너가 했던 요청을 떠올렸다.

자신이 기억하는 인자한 신부님의 모습이 나타난 것 같아 그 요청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

1. 1939년 개업한 하동관은 우리나라 국밥 역사를 이끌어 간 맛집입니다.

원래는 청계천 부근인 수하동에 있었지만, 2007년 도시 재개발 사업 때문에 명동으로 이전했다고 하네요.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찾았으며, 허영만 화백의 작품 ‘식객’에도 언급되었을 정도로 유명하죠.

참고로 모 드라마에서 4달러(…)로 유명해진 어떤 분은 곧잘 외상을 했다고 합니다.

2. 이중섭의 ‘흰 소’는 모더니즘 시인이자 사업가로 활동했던 김광균 선생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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