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00화 (200/400)

Round 200. 변화하는 세계

“이런 맙소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저택 서재에서 신문을 보던 준영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몹시 당황하는 그의 반응에 리즈는 슬그머니 다가가 신문 기사를 보았다.

“브라질의 축구 신동 펠레, 리버풀 전격 입단…….”

“원래 역사에선 없었던 일이야.”

펠레는 현역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산투스 FC에서만 뛰었다.

해외에서 활동한 건 은퇴한 후 사업 실패로 급전이 필요해서 미국 프로 축구 리그에서 잠시 뛴 게 고작이다.

그런데 붉은 제국에 축구 황제가 입성하다니!

말도 안 된다 싶지만, 섕클리 감독과 악수를 하는 펠레의 사진은 이것이 진실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섕클리 감독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네요.”

“최강의 사기 유닛을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지. 거참… 대체 산투스 FC를 어떻게 구워삶은 거지?”

이렇다면 내년 시즌에 틀림없이 리버풀은 1부 리그에 올라온다.

그리고 퍼스트 디비전 팀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맛보게 해 줄 터.

“유나이티드는 괜찮겠죠? 준도 있고 던컨 씨도 있으니까.”

“글쎄, 역사가 달라졌으니 펠레가 어떤 괴물로 진화할지 상상이 안 돼.”

기왕이면 ‘맨유는 앞으로 우승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주면 고마우련만.

“펠레는 시작일 뿐이지. 앞으로 이안 캘러헨이나 토미 로렌스, 론 예이츠 등 붉은 제국의 건국 공신들도 줄줄이 나타날 거야.”

“그럼 그 건국 공신들 중 몇 명을 가로채 보는 건 어때요?”

리즈의 제의에 준영은 솔깃한 기색을 보였다.

골백번 고쳐 죽어도 리버풀이라는 충신 이안 캘러헨이라면 몰라도, 스코틀랜드 출신인 론 예이츠나 이안 세인트 존은 잘 꼬드기면 영입이 가능할 테니까.

“괜찮다고 보는데, 결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버스비 감독님이나 머피 코치님은 선수 영입보다 육성을 중요시하고 계셔.”

그래서 그들은 준영이 여러 기업에서 끌어온 투자 자금도 유망주 육성에 쓰기를 바라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게 맞긴 해. 하지만 그러다 미래에 우리 팀에 합류하는 선수까지 뺏기지 않을까 좀 걱정되는군.”

“미래의 맨유 선수라면 누가 있죠?”

“일단 대표적으로 데니스 로와 조지 베스트가 있지.”

“아, 데니가 나중에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군요. 근데 조지 베스트는 누구죠?”

“북아일랜드의 악동이지. 이름처럼 실력은 최고야.”

과연 역사대로 그들이 맨유에 올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울버햄프턴을 비롯한 상위권 팀의 스카우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실력 있는 선수를 찾아다니는 상황이다.

심지어 영국뿐만 아니라 노르웨이나 스웨덴, 중남미나 아프리카까지 돌아다닌다는 얘기가 있었다.

“준의 고국에는 지금 시대에 유명한 선수가 없어요?”

“최정민이라고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를 장식하고 있는 분이 현재 활동하고 있긴 해. 근데 아시아라면 모를까, 유럽에서도 통할 실력인지는…….”

말끝을 흐리던 준영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차,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나가는 거예요? 오늘 오전엔 훈련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회사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먼저 나가 볼게. 오후에 보자.”

리즈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춰 준 후, 준영은 차를 몰고 트래퍼드 파크의 미스터리 푸드 공장으로 향했다.

***

준영이 회사에서 업무 보고를 받고 몇 가지 서류를 처리할 즈음,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MI6의 제이미 번즈.

준영은 곧장 주변 사람들을 물리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일본에서의 ‘비즈니스’ 말이군요. 일단 가장 큰 핵심 멤버는 처리했습니다.”

지난번 준영의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진 이후, MI6에서는 자꾸 성가시게 구는 흑룡회를 처리해 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좋은(?) 곳에 모셔다 둔 츠지 마사노부에게서 현재 조직 상황과 핵심 멤버들과 우익 성향 단체들에 대한 정보를 알뜰살뜰하게 빼냈다.

“일단 갱들 간의 항쟁으로 처리했습니다. 비슷한 우익계 조직을 부추겨 일어난 일이니 의심을 받진 않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뭘요. 중요한 미래 정보를 지키기 위한 것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서비스를 해 줬으면 합니다만?”

번즈의 은근한 표정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현재 북아일랜드 쪽에서 IRA가 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죠.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현재는 그렇죠. 하지만 영국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드는 6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불황으로 인한 생활고는 카톨릭계인 아일랜드 주민과 성공회 계열의 영국인들과의 분쟁을 부채질했다.

이것이 점점 아일랜드계의 핍박과 박해로 이어지고, IRA 내 강경 분파들의 무장 투쟁을 활발히 일으키게 된다.

“마치 드라마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군요.”

“후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북아일랜드 사태는 유명하니까요.”

“거참…….”

“아무튼 그러다가 1972년에 영국군이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게 되죠. 그 보복으로 IRA가 1979년 폭탄 테러를 해서 영국 왕족을 암살하고요.”

“시해당하는 분이 누굽니까?”

준영의 이야기에 번즈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입니다.”

“오, 이런…….”

왕실의 방계 혈통인 루이 마운트배튼은 군인으로서 전쟁에서 여러 공훈을 세웠고, 인도 총독과 국방참모총장, 해군 원수를 두루 거친 거물급 인사다.

거기다 현재 여왕의 부군인 필립 공의 외삼촌으로 영국 왕실에서 예우받는 웃어른이다.

그런 사람이 암살, 그것도 폭탄 테러를 당한다니!

“앞으로 20년 후의 일이라지만, 지금부터라도 미리 대비를 하는 게 좋다고 봐요.”

“IRA 강경파를 제거… 아니, 그보다 무장 투쟁이 일어나지 않게 북아일랜드에 대한 정책을 바꿔야겠군요.”

그건 정치인들이 할 일이다.

오늘 준영이 들려준 정보는 그들이 좀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끔 도움을 줄 것이다.

한편으로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에 대한 경호도 소홀히 해선 안 될 터.

“아 참, 일전에 알려 준 쿠바 혁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그 건도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쿠바는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다.

그럼에도 준영이 이야기한 정보를 흘려버리지 않은 건 영국이 외교적인 중재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

거기다 쿠바 문제로 하마터면 세계 3차 대전이 터질 뻔했다고 하지 않은가.

국제적으로 공조해야 할 사안임이 분명했다.

“정부군이 카스트로의 혁명군에 계속 밀리고 있죠. 미국도 카스트로를 일단 인정해 주자는 분위기입니다.”

“공산 정권이 들어서는 건 막을 수 없는 거군요.”

카스트로가 대세인 게, 현재 바티스타 정권이 워낙에 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은 카스트로를 마냥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영국 측의 지적대로, 턱밑에 들어선 공산 국가에 소련군과 그들의 핵전력이 배치되어선 곤란하니까.

“그렇다 보니 유고처럼 제3 세계에 속하게끔 유도할 방침이라지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수에즈 전쟁 때 소련의 진출을 견제했던 것처럼, 쿠바에 경제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카스트로가 받아들일까요? 미국이 경제 종속을 시킨 것 때문에 거부감이 강할 텐데요?”

“그자도 당장 현실은 무시하기 힘들 겁니다. 거기다 경제 지원이야 우회해서 들어가도 되니까요.”

영국, 아니면 영연방인 인도 공화국을 통해 지원해도 된다.

인도도 일단은 제3 세계니까.

어찌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하지만 카스트로 입장에선 체면을 살릴 수 있고, 미국도 소련의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게 현재 쿠바에 있는 미국계 기업과 미국인 소유의 토지인데… 가급적 점진적으로 국유화하도록 협상해야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이더군요.”

“뭐, CIA가 피그만 침공 같은 삽질만 안 하면 지나치게 악화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아무튼 쿠바 혁명이 실제 역사와 다르게 진행된다면, 미사일 위기 같은 위태로운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터.

거기다 처칠 역시 앞으로도 쿠바산 시가를 마음껏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알려 준 정보로 점점 역사가, 세상이 바뀌어 가는군.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눈앞으로 나타나는 거야.’

다가올 미래는 원래 역사보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세계가 되기를.

미지의 세상에서 마음껏 필드를 누비며 레전드로 이름을 남기길 원하는 준영은 진심으로 기원했다.

***

2027년 런던.

슬슬 현역 은퇴 준비를 하던 손웅민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K리그에서 플레잉 코치로 뛸 생각이 없냐고요?”

“응, 은퇴 전에 국내 팬들에게 서비스를 하면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도 괜찮다고 보는데?”

이런 제의를 하는 사람은 국가대표팀 선배인 염기윤.

그는 현재 수원 블루윙스의 스카우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괜찮을 것 같아요. 근데 기왕이면 제 고향인 강원도 팀에서 뛰고 싶어요.”

“야, 네가 아무리 연봉 낮춘다고 해도 도민 구단 살림으론 무리야. 그냥 수원으로 와. 섭섭잖게 챙겨 줄게.”

“근데 정말 플레잉 코치로 영입하는 거죠? 나중에 사기 치려는 거 아닙니까?”

“사기는 무슨…….”

“없는 일도 아니잖아요.”

종종 플레잉 코치로 영입되었다가 조커가 아닌 주전급으로 혹사(?)당하는 케이스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과거 아시안컵 득점왕인 조윤옥.

그는 영국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하고 말년에 플레잉 코치로 서울에 입단, 3시즌 동안 여러 차례 풀타임을 뛰며 주전으로 혹사당했다.

영국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퍼스트 레전드 이준영 옹은 ‘명백한 취업 사기’라는 우스갯소리를 남겼다.

“그 할배는 자발적으로 취업 사기를 당하지 않았냐?”

“은퇴할 때 그랬다죠? 마라도나와 맞붙어 보지 못해 아쉽다고.”

“그거 은퇴할 때가 아니고 은퇴하고 나서 한 말이었어.”

스탠리 매튜스를 존경한 이준영은 40대 중반에 은퇴했다.

은퇴 직전까지도 웬만한 젊은 선수들보다 체력이 좋았을 정도였다.

그만큼 몸 관리에 철저했던 것.

“진짜 괴물 같은 할배이지. 외계인이란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야.”

“훗, 슈퍼 혈청 맞은 미래인이란 얘기도 있던데요.”

외계인이나 미래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의 기량은 놀라웠고, 무엇보다 뛰어난 안목을 갖고 있었다.

저주를 남발하는 흑마법사(?) 펠레와 달리, 그가 한 예언은 상당히 잘 맞는 편이었다.

마라도나나 차범곤, 로베르토 바조, 호마리우, 라이언 긱스 등 그가 장래성이 있다고 본 선수들은 대부분 레전드급 반열에 올랐다.

어디 축구뿐인가.

일찍이 3성 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을 예견하고 협력했으며, 북해의 석유도 개발해 석유왕의 타이틀도 땄다.

거기다 컴퓨터와 통신 사업의 발전을 예언하며 직접 상당한 투자를 했다.

“그건 당시 영국에서 이미 차세대 산업으로 정보 통신 쪽을 밀고 있어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럴지도. 거기다 부인 되시는 분도 프로그래머로 유명했다니까.”

아무튼 영국은 이 시기에 넥스트를 비롯해 여러 정보 통신 업체들이 설립되었다.

그 기업들과 인도에서 온 IT 인재들을 통해 영국은 유럽에서 3차 산업 혁명 시대를 선도해 가는 나라가 되었다.

“아무튼 이준영 할배는 이런 선견지명 때문에 죽을 뻔한 적도 있었대.”

“정말요? 언제요?”

“그러니까 그게 1959년 초의 일인데…….”

이어지는 염기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손웅민은 계속 귀를 기울였다.

***

최근에 취업 사기 피해자로 유명한 선수가 대구의 이용래 코치(?)죠.

한창 팔팔하던 시절에도 이미 조광래 사장(당시 감독)의 노예(…;;;)로 유명했는데, 그 악연(?)이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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