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96화 (196/400)

Round 196. 붉은 제국의 축구 황제

“이드송, 우리 팀에선 네 영입이 불가능하단 결론을 내렸다.”

입단 거부.

예상치 못한 대답에 펠레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벨라 구트만 감독이 계속 말을 이었다.

“너의 실력은 인정한다. 진짜 탐이 나. 그래서 구단주와도 몇 번이나 이야기를…….”

“왜 안 된다는 겁니까!”

펠레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구트만 감독이 눈을 동그랗게 뜨건 말건, 그는 화산처럼 울분을 터트렸다.

“왜죠? 외국인이라서요? 그렇지 않으면 제 피부색 때문입니까? 깜둥이 따위 입단시킬 수 없다고 하던가요?”

“이드송…….”

“실망입니다. 실력이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제가 바보였어요.”

펠레는 최근 신문을 통해 영국에서 일어난 인종 차별 폭동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흑인이 백인 여자와 사귀었다고 끌려 나와 몰매를 맞고, 폭도들의 돌팔매에 집의 유리창이 깨졌다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기사를 보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오늘 아침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존 Y. 리가 피습을 당할 뻔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자신도 존 Y. 리를 미워하고 있지만, 그건 우승컵을 가로채 갔기 때문이지 인종 문제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자신도 비슷한 일을 당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좋습니다. 떠나겠습니다. 제 선택지가 포르투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스포르팅도 있고, 벤피카도…….”

“휴우, 이드송. 이건 다 네 탓이다.”

“네, 제 탓이겠죠. 저는 옛 식민지에서 온 깜둥이에 불과할 테니까요.”

펠레의 빈정거림에 아까부터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구트만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놈아! 다 네 녀석이 멋대로 산투스에서 뛰쳐나와서 그렇잖아!”

“예?”

얼이 빠진 펠레에게 구트만이 침을 튀기며 호통쳤다.

“내가 맘에 들면 뭐 하냐! 구단주가 애타게 원하면 뭐 하냐고! 산투스에서는 절대 이적시킬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

“아… 그 문제였군요.”

펠레는 산투스 구단의 허락 없이 유럽으로 왔다.

허락해 줄 리 없으니 그대로 줄행랑을 친 것이다.

하지만 선수가 새로운 팀에서 뛰자면 전 소속 팀의 허락을 받거나 계약이 종료되어야 했다.

하지만 펠레는 아직 산투스와 계약이 남아 있었다.

그 상태에서 무단이탈로 유럽에 와서 입단한다?

산투스에서 알고 제소를 하면 펠레는 물론이고, 포르투까지 징계를 당하고 말 것이다.

“네가 유럽에 왔다고 들떠 있는 동안 우린 산투스 구단주에게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어! 대체 어떤 감언이설로 애를 꼬셔 갔냐고 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자신이 터무니없는 오해를 했음을 깨달은 펠레는 연방 사과를 했다.

얼마 후, 구트만 감독이 진정된 기색을 보이자 펠레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근데 정말 산투스에서 절대 이적시키지 않겠다고 하던가요?”

“예수님이 부활해서 이적을 명하더라도 따르지 않을 기세더군.”

“그런…….”

어깨를 축 늘어트린 펠레에게 구트만이 말했다.

“산투스로 돌아가렴. 넌 아직 젊어. 아니, 어리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중에라도 유럽에서 뛸 기회는 분명히 올 거다.”

결국 부풀었던 기대는 크나큰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숙소로 돌아온 펠레는 답답한 마음에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제길, 어쩐지 다른 팀에서는 연락이 안 온다 싶더니…….”

자신이 유럽에 와 있다는 건 이미 신문에도 났다.

그런데 스포르팅이나 벤피카는 물론, 레알 마드리드나 유벤투스 등 다른 유럽 구단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처음에는 포르투에 들어갈 것 같으니 포기했나 보다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들도 나름 알아보고 산투스 측과 연락하여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던 것이다.

아마 멋대로 팀을 이탈한 문제아를 영입하는 건 곤란하다고 여기고 있을 터.

“아아, 지금 내 신세는 악덕 농장주에게 잡혀 있는 노예나 다름없군.”

산투스 구단에서 들었다면 펄쩍 뛸 말을 내뱉던 펠레.

한숨과 분통을 돌아가며 토하고 있을 때, 누군가 숙소 문을 노크했다.

***

“누구시죠?”

문을 열고 나온 펠레는 정장을 입은 흑인 청년과 백인 노인을 보았다.

백인 노인은 흑인 청년의 통역을 통해 자신을 소개했다.

“리버풀 FC의 회장 토마스 발렌타인 윌리엄스라고 하네.”

“어, 리버풀이면…….”

“영국에서 왔네.”

존 Y. 리가 있는 영국, 그곳의 축구팀 구단주가 직접 찾아오다니!

허둥지둥 숙소를 정리한 펠레는 회장 일행을 안으로 모셨다.

“커피 드릴까요? 아니, 홍차를 드시려나?”

“자네가 주는 거라면 맹물이라도 마시겠네.”

부랴부랴 물을 끓인 펠레는 윌리엄스 회장에게 커피를 타서 올렸다.

잠시 덕담을 나누며 커피를 마신 윌리엄스는 찻잔이 비워질 즈음에 본론을 이야기했다.

“올 시즌부터 풋볼 리그의 외국인 선수 제한이 풀렸어. 영어를 못해도 출전할 수 있게 된 거지.”

이에 새로 리버풀 감독이 된 빌 섕클리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외국인 공격수를 요청했다.

영국 선수들과 다른 특성을 가진 외국인 선수를 활용해서 공격력을 강화하고 상대 팀 수비를 흔들어 보고자 했던 것.

“그래서 유럽 본토에 스카우터들을 보냈는데,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지. 포르투갈에 자네가 와 있다고 말이야.”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한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리버풀 공격수인 알란 아코트도 있었다.

비록 바비 찰튼에게 밀려 1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결승전까지 모든 경기를 관람했다.

당연히 펠레의 플레이도 보았다.

“알란은 리버풀로 돌아와 이번 대회에서 소문난 신인에 대해 침이 튀게 이야기했어.”

“그래서 절 영입하러 직접 포르투까지 오신 거군요.”

“맞아.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윌리엄스 회장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펠레는 이내 우울한 표정을 보였다.

“참으로 감사한 말씀이지만, 절 영입하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산투스 구단에서 놔주지 않으려 해서 말인가?”

윌리엄스는 다 알고 왔다는 듯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산투스 구단에서 완강히 이적을 반대하는 까닭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야 제가 무단으로 이탈했으니까…….”

“단지 그 때문은 아니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 대해서 들어 봤겠지? 그 친구처럼 남미의 뛰어난 선수들이 유럽으로 넘어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야.”

단순히 이적만 한 게 아니라, 아예 국적까지 바꾼 경우도 많다.

브라질 선수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마 산투스뿐만 아니라, 브라질 축구협회에서도 자네의 이적을 반대하고 있을 게야.”

“으… 그럼 제가 유럽에서 뛰는 건 영 가망이 없는 건가요?”

“아니지, 그들이 안심하게 만들어 주면 되는 거지.”

유럽에서 활동을 마치면 반드시 산투스로 돌아간다거나, 타 팀으로 이적시키지 않겠다고 약조하거나.

그리고 절대 국적을 바꾸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각서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 우리 팀이나 잉글랜드 리그가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윌리엄스 회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주급 상한 제도가 있는 풋볼 리그는 넉넉한 임금을 지불하지 못한다.

자금적인 면에서 외국인 선수에게 있어 매력적인 무대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영국 시민권 취득은 보통 최소 6년은 거주해야 발급이 가능했다.

이러한 제한적인 환경에서라면 산투스나 브라질 축구협회도 선수를 빼앗긴다는 우려를 떨칠 수 있으리라.

“자네가 우리 팀에서 뛰겠다고 하면 산투스 구단은 반드시 설득해 보겠네.”

“알겠습니다. 존 Y. 리나 바비 찰튼에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펠레의 말에 윌리엄스 회장은 좀 머뭇거리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 가지 미리 일러 줄 게 있어. 우리 구단은 현재 2부 리그에 있네.”

“예? 그럼…….”

“자네가 말하는 녀석들이 있는 유나이티드와 맞붙자면 일단 승격부터 해야 하지. 아, 하지만 FA컵도 있으니까 영 기회가 없는 건 아니야.”

2부 리그 팀이란 말에 펠레의 마음이 달라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우려는 금세 사라졌다.

“상관없습니다. 복수의 기회만 주신다면 팀을 승격, 아니 우승까지도 이뤄 드리죠.”

패기만만한 펠레의 발언에 윌리엄스 회장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이준영에 의해 빗나간 역사.

그로 인해 붉은 제국은 축구 황제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

존 Y. 리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여론은 여전히 과격한 인종 차별적 행태를 질타하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사건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사이 당사자인 준영은 평정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자신을 대신해 죽은 사람도 신경 쓰이고, 혹시나 또 다른 습격이 있진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멍하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사이 두 경기나 놓쳤으니까 말이야.’

9월 8일 웨스트햄 원정에서는 2 대 3 패, 13일 뉴캐슬 원정에서도 1 대 1로 비기며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심란하다 보니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고, 상대 공격수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러자 몇몇 언론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난과 조롱을 쏟아 냈다.

<약발이 다 된 거인의 무기력한 원정 2연전.>

<존 Y. 리, 7경기 0골. 지난 시즌 가공할 득점력은 어디로?>

<혼이 나간 버스비의 이단아, 이대로 괜찮은가?>

“정말 너무해요. 사람이 늘 잘할 수도 없는 건데……. 더구나 준은 위험한 사고까지 겪었잖아요!”

리즈는 준영을 비난하는 언론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자신을 편드는 연인의 반응에 준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뭐, 그런 걸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니니까. 그래도 다들 그런 건 아니고, 리즈처럼 이해해 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괜찮아.”

뉴캐슬전이 끝나고 버스비 감독은 준영에게 사과했다.

마음이 어지러울 텐데 억지로 기용해서 미안하다며.

이에 준영은 자신이 극복하지 못한 탓이라고 버스비를 감쌌다.

“앞으로도 경기가 있으니까 그때 잘하면 돼. 이기면 또 부정적인 여론은 쑥 들어가니까.”

앞으로 맨시티나 울버햄프턴, 아스날과 에버튼 등 만만찮은 팀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상대로 승리를 따내면 지금 빈정대는 기자들도 입을 다물게 될 터.

“그보다 앞을 봐야지. 운전할 때 딴 데 보면 안 돼.”

“네, 알겠습니다, 교관님.”

리즈는 대입 시험을 마친 후 운전학원에 다녔다.

면허증을 따도 될 나이가 되었고, 직접 운전을 하며 등하교를 하고 싶었으므로.

엊그제 까다로운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한 후, 그녀는 준영에게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준은 운전면허는요? 미래에서 왔으니 무면허일 텐데?”

“그것도 작년에 어르신이 시민권 만들어 줄 때 손써 주셨지.”

두 사람이 탄 줄리에타 스파이더는 마을 근교를 한 바퀴 돈 후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니 저택 분위기가 뭔가 시끌벅적했다.

아무래도 누군가 또 찾아온 듯싶었다.

***

일전에 이야기했지만, 당시 실력 있는 남미 선수들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곧잘 귀화를 하곤 했습니다.

돈 때문에 나라를 버렸다고 비판을 받았습니다만, 솔직하게 그 당시에 남미 축구 인프라는 좋은 편이 못 되었습니다. 선수들의 혹사도 심했고요.

펠레는 1961년 브라질의 국보(…)로 지정되어 해외 이적이 금지되었는데, 당시 대표팀 동료였던 호세 알타피니가 이탈리아로 귀화한 게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정작 알타피니는 ‘내가 조국을 버린 게 아니라 조국이 날 버린 거다.’라며 항변했었죠.

당시 유럽이나 남미 축구계는 해외에서 뛰는 선수는 국가대표팀에 선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알타피니의 경우 대표팀 주전 자리도 불투명하니 이탈리아 대표팀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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