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94화 (194/400)

Round 194. 암살

“아아아아악!”

가와부치는 잔디 위를 뒹굴며 몸부림쳤다.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기 때문.

하지만 움직일수록 통증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이 녀석, 왜 이러지?”

“리틀 존이랑 부딪치면서 어딘가 다친 모양이야.”

던컨이 가와부치를 부축해 주려 했다.

하지만 비명이 더 높아지자,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던, 다친 팔을 잡아당기면 어떡해?”

“그게 나도 모르게 그만…….”

준영은 슬쩍 가와부치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오른팔이 축 처진 상태에서 어깨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쇄골이 부러진 것 같았다.

황급히 필드로 달려 들어온 블랙번의 팀 닥터도 같은 진단을 내렸다.

“빗장뼈가 부러졌구만.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야겠어.”

“하아… 산 넘어 산이군.”

블랙번 선수들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하는 녀석이라도 한 명이 빠지면 그만큼 불리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골키퍼는 부상을 당하면 바꿀 수 있는데, 왜 필드 플레이어는 안 되는 거야.”

“난들 아냐? FIFA에서 정한 규칙이니 어쩔 수 없잖아.”

푸념을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한편으로 블랙번 선수들은 부딪치고 멀쩡한 준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리 체격 차이가 있어도 그렇지…….”

“저 녀석, 진짜 인조인간 아닐까 의심스럽다니까.”

가와부치의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니다.

172센티미터로, 여느 일본인들보다 큰 데다 이 시대 선수들의 평균 신장 수준은 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뼈가 부러질 정도로 튕겨 나가다니!

“자, 그만들 떠들고 시합에 집중해야지.”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지만, 이미 맨유 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전세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올 시즌 첫 번째로 망한 경기.

블랙번 선수들은 남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

이대로 경기가 끝나기를 바라는 블랙번과 달리, 맨유 선수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었다.

6만 5천 명의 팬들이 보는 앞에서 시시한 경기를 할 수 없는 데다, 득점하면 추가 보너스를 받을 수 있으니까.

「주장 존 Y. 리, 다시 또 성큼성큼 치고 올라옵니다. 한 명 제치고 측면으로 패스! 알버트 스캔론이 아주 좋은 기회를 잡습니다!」

흥분한 라디오 중계 캐스터가 주먹을 불끈 쥔 순간, 알버트 스캔론이 골을 터트렸다.

전반 41분, 맨유의 네 번째 골.

관중들은 열광하며 신나게 함성을 내질렀다.

“슛도 멋졌지만, 그 전의 패스도 근사했어!”

“당연히 근사할 수밖에. 월드컵 챔피언 플레이어가 찬 거잖아.”

세계 최고의 선수가 우리 팀에 있다!

그 사실이 맨유 팬들에게 안도와 함께 뿌듯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과 또 다른 뿌듯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축구왕 이준영 만세!”

“힘내라, 대한의 자랑!”

태극기를 흔들며 힘껏 응원을 하는 이들은 최근에 맨체스터 인근에 정착한 한국인들이었다.

농장이나 광산 등에서 매일 궂은일을 하는 그들에게 있어, 준영의 활약은 시원한 사이다 그 자체였다.

이준영처럼 자신들도 이 낯선 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래서 그들은 연방 목청이 터져라 응원을 보냈다.

“에휴, 저쪽은 완전 잔치판인데 우린…….”

“너무 지나친 기대를 했어.”

신이 난 한국인들과 달리, 가와부치를 응원하러 왔던 일본인들은 전반전이 끝나자 자리를 떴다.

다들 시무룩한 기색으로 금방 경기장을 떠났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안경을 쓴 일본인 기자는 올드 트래퍼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그러다 선수단 버스가 세워진 출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경기가 끝나면 이쪽으로 나오는 건가?”

계속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슈트 차림의 청년들이 나타났다.

흠칫하던 청년들은 안경잡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젠장, 노란 원숭이잖아! 깜짝 놀랐네!”

“뭘 꼬나봐? 죽고 싶냐?”

청년들의 윽박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던 안경잡이 기자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치 무시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청년들은 화가 났다.

“젠장, 짜증 나는 놈이네. 쫓아가서 박살을 내 버릴까요, 보스?”

부하의 물음에 모자를 깊이 눌러쓴 더그는 고개를 저었다.

“큰일을 앞두고 있어. 쓸데없는 소란을 피우면 우리만 손해야.”

그의 말에 부하들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정말 하시려고요?”

“런던에서 벌어진 일 때문인지 평소보다 경찰도 많은 것 같던데…….”

며칠 전 아일랜드에 있던 오스왈드 모슬리가 런던에 돌아와서는 대규모 봉기를 부추기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그의 낙관적인 예상과 달리 호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거센 야유와 욕설을 듣고 쫓겨나고 말았다.

노팅힐 폭동 역시 소강상태를 보이더니 어제를 기점으로 완전히 끝났다.

“그런 상황에서 맨체스터에서 봉기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멍청아, 맨체스터에서라도 성공해야지.”

“보스, 다시 생각해 보세요. 런던에서 실패한 일이 맨체스터에서 될 리가 없다고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까…….”

여기서 그만 손을 떼자.

더그는 이렇게 권유하는 부하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한 번만 더 지껄이면 다음엔 주먹이 아니라 총알이 날아갈 줄 알아!”

“보스…….”

“너흰 잔말 말고 가서 내가 시킨 일이나 해.”

더그의 윽박에 부하들은 쩔쩔매며 올드 트래퍼드를 떠났다.

그런 부하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더그는 시계를 보았다.

“남은 시간은 2시간…….”

후반전과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생각하면 오후 6시쯤에 이쪽으로 나올 것이다.

더그는 근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거사를 치르기로 했다.

***

경기는 맨유의 6 대 0 완승으로 끝났다.

후반전에서도 맨유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후반 10분 숀 코너리의 헤딩골과 35분 콜린 웹스터의 골을 추가할 수 있었다.

2개의 어시스트로 승리를 견인한 준영은 경기가 끝난 후, 오늘의 수훈 선수들과 함께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리 선수, 올 시즌 아직 골이 없군요. 리 선수의 시원한 중거리 슛을 바라는 팬들이 많습니다만?”

“아, 저도 기회가 오면 넣을 겁니다. 하지만 저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는 동료가 있으면 그에게 공을 줘야죠.”

“10월에 브리티시 챔피언십과 소련과의 친선전이 있는데 출전하십니까?”

“그건 대표팀의 윈터보텀 감독님이 정하실 일이죠.”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친 준영은 이후 배웅을 나온 팬들과도 악수를 나누며 사인을 해 주었다.

그들 중에는 태극기를 든 한국인들도 있었다.

“먼 나라까지 와서 고생하시는데, 이렇게 응원하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영의 인사에 교민들은 손을 내저었다.

“아뇨. 감사한 건 우리인걸요.”

“맞아요. 이준영 선수 덕에 신바람 내며 살 수 있으니까.”

자신을 바라보며 감격하는 동포들의 모습에 준영은 저도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지난번에 이억관에게 듣긴 했다.

조셉이 도움을 줘서 영국에 취업 이민을 간 한국인들이 있다고.

알아보니 대부분 막노동을 하며 살고 있었다.

놀라운 건 그중에 고학력자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같은 한국 사람들인데…….’

21세기 AS 모나코에 있을 때 만났던 이들과 너무 달랐다.

밝고 여유가 넘치던 21세기 한국인들과 달리, 눈앞에 있는 이들의 외모는 까맣고 깡마른 인상이었다.

거기다 악수를 나누는 손은 어떤가.

못이 박인 거친 손 구석구석에는 흙과 탄가루가 까맣게 박혀 있었다.

오히려 운동선수인 자신의 손이 더 부드러울 정도였다.

‘이분들은 정말 고생하며 살고 계시구나.’

식민 지배의 핍박과 전쟁의 참상,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던 이 시대의 한국인들.

단지 글로, 이야기로 들었던 그들의 고난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혹시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준영이 한국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였다.

“죽어라, 원숭이!”

“우아아앗!”

인파에 숨어 있던 더그가 권총을 들고 튀어나왔다.

다들 놀라 비명을 지르며 엎드리는 가운데, 준영의 경호원인 로베르트와 한국인들이 황급히 준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타앙-!

요란한 총성이 울렸지만, 준영은 물론이고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더그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경찰들이 달려들었기 때문.

덕분에 총알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크악! 이거 놔! 놓으라고!”

경찰들에게 수갑이 채워지는 더그를 보며 준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경비를 강화하길 잘했군.’

일전에 MI6의 번즈에게서 흑룡회가 레이시스트들을 부추겨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래서 대비하고 있었는데,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아무튼 끝났으니 다행이야.’

“미스터 리, 피하십쇼!”

로베르트의 다급한 외침.

안도하던 준영은 자신의 옆에 있던 젊은 한국인이 뒤춤에서 칼을 뽑아 드는 광경을 보았다.

“미안하오. 나도 어쩔 수 없었소.”

‘이런……!’

낮게 몸을 낮춘 청년이 순식간에 달려 들어왔다.

푸욱-!

섬뜩한 소음과 함께 붉은 피가 바닥에 뿌려졌다.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다 주저앉은 준영은 자신을 대신해 칼에 찔린 사람을 보았다.

아까 자신 덕에 신바람 내며 살 수 있다던 남자.

허벅지에 칼이 박힌 상황에서도 그는 준영의 안부부터 물었다.

“괘, 괜찮소, 이준영 선수?”

“덕분에……. 뭐 해요, 빨리 구급차 불러!”

로베르트가 칼을 휘두른 청년을 제압하는 사이, 경찰들은 근방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무전을 보냈다.

준영은 넥타이를 풀어 다친 남자의 다리를 묶었다.

응급 처치를 했지만, 지혈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맥을 다친 모양이다.

“빌어먹을, 구급차는 언제 오는 거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경기장 근처에 대기시켜 두었건만!

다급한 마음에 준영은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

“역시 여기가 제일 전망이 좋군.”

올드 트래퍼드 근방의 건물.

좀 전에 선수단 버스가 있는 곳을 둘러보았던 일본인 기자는 가방에 넣어 둔 총기를 능숙하게 조립했다.

그사이 밖에서 총성이 울리고, 칼부림 사태가 벌어졌다.

힐끔 창밖을 내다봤더니 난리도 아니었다.

감독과 선수들은 몸을 숙인 상태에서 넋이 나갔고, 특종이다 싶었던 기자들은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그 와중에 타깃인 리준욘은 멀쩡했다.

“운이 꽤 좋은 놈이군.”

하지만 세 번째 암습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은 육군에서 알아주는 저격수였으니까.

그 실력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

철컥!

장전을 끝낸 일본인 기자, 아니 전직 일본군 저격수는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는 준영을 겨냥했다.

‘걸렸군.’

스코프의 조준선에 준영의 머리가 들어오자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바로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터엉-!

“으악!”

소음기의 둔한 총성과 함께 저격수가 고꾸라졌다.

관통당한 무릎을 움켜쥔 그는 권총을 들고 있는 슈트 차림의 백인 사내를 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영국에 와서 보았던 첩보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했다.

***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주인공인 덕수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시비 거는 학생들을 훈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덕수 본인이 외국인 노동자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그 당시에 우리나라 농촌 여성들도 일본 시골로 매매혼을 많이 갔다고 합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여성들이 한국 시골에 온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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