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93. 올드 트래퍼드의 한일전
아일랜드, 더블린.
존 Y. 리 습격 사건으로 수배를 받고 있는 와일드 테리어의 보스 더그는 이곳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을 만났다.
“오스왈드 모슬리일세.”
“만나서 영광입니다, 당수님!”
더그는 오스왈드에게 곧장 오른팔을 쭉 뻗어 올리는 경례를 올렸다.
오스왈드 모슬리.
그는 영국 파시스트 연합의 창시자이자, 현재 파시즘 활동을 하는 연합 운동의 당수, 화이트 디펜스의 후원자였다.
유대인을 비롯해 영국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민자들의 축출을 주장하는 인물이었기에 더그는 그에게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이름이 더글라스라고 했나?”
“그냥 더그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래, 더그 군. 듣자니 자네는 덩치 큰 노란 원숭이를 처리하려다 실패했다지?”
“그건…….”
더그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은 오스왈드가 말했다.
“실패를 탓하고자 부른 건 아니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설 뜻이 있느냐 묻고 싶어서 찾은 게지.”
“기회가 있습니까?”
오스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런던 노팅힐에서 일어난 봉기에 대해서 들었겠지? 아직도 동지들이 불결한 야만인들과 그것들을 두둔하는 정부와 맞서 싸우고 있네.”
오스왈드는 이 기회에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피어난 봉기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자신이 나서서 대중의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전쟁 중인 거나 마찬가지지. 런던에서 싸우는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적의 시선을 좀 더 분산시킬 필요가 있어.”
“그럼 맨체스터에서 봉기하는 겁니까?”
“그래, 거기도 런던 못지않게 오염된 곳 아닌가. 유대인에 폴란드 놈들, 인도인에 중국인…….”
심지어 최근에는 몇 해 전에 전쟁이 났다는 아시아의 반도에서도 이주민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고작 몇십 명 정도지만, 이것들이 얼마나 해충처럼 늘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봉기 결행일은 언제입니까?”
“9월 6일 오후 6시. 자네의 총성을 시작으로 쿨리들의 소굴을 비롯해 맨체스터 곳곳에서 불꽃이 치솟아 오를 게야.”
오스왈드는 더그에게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더그가 상자를 열어 보자 그 안에는 권총 한 자루와 실탄이 들어 있었다.
“이건 대체 어디서…….”
“얼마 전 찾아온 늙은 섬나라 원숭이가 주고 갔지. 원숭이들끼리도 서열을 꽤 따지는 모양이더군.”
비웃음을 지은 오스왈드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그것으로 놓쳐 버린 목표물을 제거하도록 하게. 이번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네.”
공 차는 재주 하나로 여왕까지 홀린 원숭이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미 놈은 사업을 한답시고 백인을 부리고 있었다.
그냥 두면 유대인들처럼 영국인들의 머리 위에 서려고 들 게 틀림없다.
“다시 말하지만,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두 번째 기회마저 날리면 그다음은 절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시길!”
자신만만하게 외친 더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오스왈드가 건넨 권총을 손에 쥐었다.
***
9월 첫 번째 토요일 오후 2시.
경기 시작 전임에도 불구하고, 올드 트래퍼드는 관중들로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오늘 홈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대는 블랙번 로버스.
승격 팀인 블랙번은 4라운드까지 3승 1무로 좋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더구나 4라운드 무승부 전에는 뉴캐슬, 레스터 시티, 토트넘을 상대로 모두 다섯 골을 때려 넣는 엄청난 공격력을 선보였다.
그 블랙번이 오늘은 깜짝 카드를 내놓았다.
“블랙번에도 동양인 선수가 있나?”
“일본인이래. 올해 8월에 계약했다던가…….”
“리틀 존만큼 잘하려나?”
“그러니까 입단시켰겠지.”
관중들의 이런 예상과 달리, 블랙번의 조니 캐리 감독은 영 탐탁잖은 표정으로 가와부치 사부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맷 버스비 감독이 말을 붙여 왔다.
“잘 지냈나, 캐리? 요즘 아주 잘하고 있더군.”
“아뇨. 아직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한걸요.”
아일랜드 출신인 조니 캐리는 1953년 은퇴하기 전까지 수비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당시 버스비는 그를 주장으로 낙점할 정도로 그의 기량과 리더십을 인정했다.
“유럽 챔피언과 겨뤄 보면 제대로 견적이 나오겠지요. 후배들에게 마음껏 두들겨 주라고 해 주세요.”
“그 틈에 역습을 노리려는 거겠지?”
“하하하, 이거 작전을 들켰군요.”
즐겁게 캐리와 대화를 주고받던 버스비는 한창 필드에서 몸을 풀고 있던 가와부치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꽤 재미난 친구를 영입했구만.”
“아주 교과서적인 선수죠. 열정도 대단하고요.”
가와부치는 적당한 체격에 축구를 처음 하는 초짜들이 베이스로 삼을 만한 기량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에서 뛰기엔 체력이나 경험이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캐리 감독은 영입할 의사가 없었다.
그런데 구단주가 제멋대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
‘뭐, 데려와도 손해는 아니라고 하니…….’
구단 운영진에게 듣자니, 가와부치의 급료는 구단이 아닌 녀석을 스폰하는 일본 기업에서 지불한다고 했다.
거기다 훈련 참가나 경기 출전에 따라 스폰서들이 따로 대가를 주기로 했다고.
이렇게 공짜로 쓸 수 있으니,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거기다 만약에 존 Y. 리급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만한 잠재력은 없었다.
‘그래도 큰 경기에 내보내는 건 무리수 같은데?’
버스비는 이미 가와부치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들 샌디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있지만, 전력 분석관들이 몰래 찍어 온 블랙번의 훈련 영상을 봐도 그다지 위협적인 선수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팀이 아니니 간섭할 순 없지.’
캐리의 표정을 봐서는 그가 원하는 기용은 아닌 듯했다.
분명히 구단주의 간섭 때문일 터.
‘외압에 시달려서는 좋은 성적이 나오기 힘든데……. 캐리도 앞으로가 큰일이겠군.’
안쓰러운 마음에 버스비는 옛 제자의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스승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이해한 캐리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그의 마음에 감사했다.
***
필드에서 몸을 풀고 라커룸으로 돌아갔던 선수들은 오후 3시가 다가오자 출전 준비를 갖췄다.
“어이구, 아주 비장함이 철철 넘쳐흐르네.”
준영은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는 가와부치 사부로에게 코웃음을 지었다.
녀석의 이마에 둘러진 하얀 머리띠에는 빨간 일장기와 함께 ‘神風’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마치 자폭 공격을 나가는 가미카제 특공대 파일럿 같았다.
“진짜 GR을 병맛 뚝뚝 떨어지게 하는구만. 너 그러다 나중에 이불킥 오지게 한다?”
준영의 한국말, 특히 GR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가와부치의 눈빛이 더 험악해졌다.
“키루 유(Kill you).”
“되지도 않는 영어 하지 말고 걍 코로스라고 해. 아니면 이 형님이 그 시원찮은 혓바닥을 늘려 주랴?”
“ばかやろう, ふっころしてやろうか(이 자식, 처맞아 죽고 싶냐)!”
두 동아시아인의 말다툼은 필드로 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주변 선수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뭔지 몰라도 사이좋은 게 아닌 건 분명하군.”
“지난번에 들었는데, 옛날에 일본인들이 존의 고향에 와서 사람들의 코와 귀를 잘라 갔대.”
동전을 던져 진영을 정한 양 팀은 오후 3시 정각이 되자, 킥오프와 함께 경기를 시작했다.
맨유는 시작부터 강하게 블랙번을 몰아붙였다.
최전방의 콜린 웹스터, 데니스 바이올렛, 숀 코너리, 알버트 스캔론은 블랙번 선수가 공을 잡으면 곧장 달려들어 인터셉트를 시도했다.
그 기세에 눌린 블랙번은 수비 진영으로 패스를 돌리다 급기야 라인 밖으로 공을 걷어 내 버렸다.
21세기에서나 볼 법한 강한 압박에 관중석에서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잘한다! 콱 눌러 버려!”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어 주라고!”
맨유의 드로잉으로 경기는 재개되었다.
공을 잡은 콜린은 한 명 제치고 블랙번의 박스 왼쪽을 파고들다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숀 코너리가 헤딩을 노리고 쇄도했지만, 블랙번의 골키퍼 해리 레이랜드가 먼저 공을 잡아챘다.
레이랜드 골키퍼는 곧장 전방으로 공을 차 보냈고, 이것은 맨유 진영 좌측면으로 달려가던 피터 도빙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
“어서 옵쇼. 여기서부터는 못 가십니다.”
‘던컨 에드워즈!’
영국 최고의 천재 플레이어.
피터는 그를 상대로 돌파를 시도하다 하마터면 공을 빼앗길 뻔했다.
그러다 부랴부랴 주변의 동료에게 패스했다.
“ヨッシー(좋아)!”
공을 잡은 건 오늘 공격수로 출전한 가와부치 사부로.
이미 맨유 골대 앞으로 들어간 동료 공격수 브라이언 더글라스가 손을 들었지만, 그는 그대로 공을 몰고 갔다.
직접 슈팅을 날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슛을……!’
“어딜!”
슈팅을 날리려는 순간, 준영이 달려와 그의 발밑에서 공을 빼냈다.
시원하게 헛발질을 한 가와부치는 곧바로 준영을 쫓아갔다.
“큭! 서라, 조센징!”
그러나 거리를 좁히기는커녕, 준영은 순식간에 중앙선 부근까지 달려 나갔다.
전방을 응시하던 그는 상대 수비 라인 바로 아래서 대기하고 있는 바비 찰튼을 보았다.
블랙번 수비수들은 데니스나 다른 맨유 수비수들을 마크하느라 바비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지 못했다.
“레디- 액션!”
준영이 침투 패스를 찔러 넣는 것과 동시에 바비 찰튼이 오프사이드를 뚫고 들어가 공을 잡았다.
깜짝 놀란 블랙번의 수비수 윌리엄 에커슬리가 황급히 뒤쫓아 갔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각을 좁히고 나오는 레이랜드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슈팅을 날린 바비 찰튼.
검지를 치켜올린 그는 자신이 오늘 경기 첫 골을 만들어 냈음을 알렸다.
“우와, 바비 녀석, 이번 시즌은 아주 팡팡 터트리는데?”
“완전 득점왕을 할 기세야!”
1라운드 해트트릭에 이어, 2라운드와 4라운드 선제골, 거기다 오늘 경기까지.
벌써 6골을 기록한 그는 자신에게 어시스트를 넣어 준 준영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 모습을 가와부치는 부들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하필이면 내가 빼앗긴 공이…….”
동료들에게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그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이게 다 자신을 망신 주려는 망할 조센징 탓이라고 생각했다.
***
선제골이 터지고 5분 후.
바비 찰튼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측면을 돌파한 던컨의 크로스를 숀 코너리가 머리로 떨어트렸고, 이것을 달려들던 바비가 다이렉트로 꽂아 넣은 것.
두 번째 골이 터지고 우왕좌왕하던 블랙번 선수들은 3분 후에 데니스 바이올렛에게도 골을 내주고 말았다.
“젠장, 우리 공격수들은 뭘 하는 건지!”
“공격을 제대로 못하니까 상대 수비수들이 자꾸 올라오는 거잖아!”
3골이나 먹는 동안 블랙번은 공격은커녕 제대로 된 슈팅조차 날리지 못했다.
그 비난의 눈초리는 가와부치에게 꽂혔다.
단지 만만해서가 아니라 진짜 못하고 있었으니까.
감독이 지시한 전술적인 움직임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건 가와부치 본인도 인식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게 아닌데……!’
오만방자한 조센징을 제치고 맨유 골대에 골을 박아 넣는 영광의 순간을 꿈꿨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동료 브라이언이 미드필드 지역에서 파울을 당하며 프리킥 기회가 생겼던 것.
전반이 끝나기 전에 이 기회를 살리고자 했던 블랙번 공격수들은 맨유 문전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에커슬리가 날카롭게 올린 프리킥이 문전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던 양 팀 선수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낙하지점을 정확히 포착한 가와부치는 공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떨어지는 공이 달덩이처럼 크게 보인다 싶더니 이내 붉은 옷의 거인이 가와부치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리, 리준욘!’
퍼억- 우드득!
어깨와 어깨의 충돌이 일어난 순간, 불길한 소음이 일어났다.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격통이 가와부치를 울부짖게 만들었다.
***
아일랜드 출신인 조니 캐리는 1936년에서 1953년까지 맨유에서 뛰었습니다.
그가 데뷔하던 시기에 맨유의 재정 상태는 엉망이었고, 2부 리그로 강등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조니 캐리는 팀의 1부 리그 복귀를 도왔고,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FA컵 우승과 1951-52 시즌 우승에 기여했지요.
그는 현역 시절에 이미 감독으로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아일랜드 대표팀을 지휘했었죠.
현역 은퇴 후 블랙번과 에버튼, 노팅엄 포레스트 감독을 거쳤는데, 이 시기에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도 겸임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