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84화 (184/400)

Round 184. 아닌 밤에 홍두깨

“안녕, 친구들. 훈련은 할 만해?”

어린애처럼 천진난만 미소를 지으며 훈련장에 나타난 선수.

그는 바로 던컨 에드워즈였다.

뮌헨 사고 이후로 줄곧 회복과 재활에 힘쓰던 그가 마침내 팀에 복귀했다!

다시 돌아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이스에게 준영과 팀원들이 몰려와 환영해 주었다.

“오랜만이야, 던!”

“이 녀석, 못 본 사이에 살찐 거 봐.”

“멍청하긴! 이건 살이 아니라 근육이라고!”

던컨은 보란 듯이 상의를 벗고 자신의 상체를 보여 주었다.

훌륭하게 분할된 복근과 탄탄한 대흉근, 그리고 떡하니 벌어진 어깨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너 보디빌딩 대회라도 나갔다 온 거냐?”

“아니, 다리가 불편해서 상체 단련만 죽어라고 했더니 이렇게 되더라고.”

그리고 양다리 뼈가 굳은 뒤에는 하체 단련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 리틀 존 선생이 그랬거든. 균형 있는 단련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준영은 내심 놀랐다.

자신도 겪어 봤지만, 저만한 근육을 만드는 건 쉽지 않으니까.

그동안 던컨이 얼마나 절치부심하며 재활에 힘썼는지 알 만했다.

“아 참, 궁금해서 그러는데, 월드컵에서 제일 인상 깊던 놈이 누구였어?”

던컨의 물음에 준영과 바비 찰튼, 그리고 콜린 웹스터는 망설이지 않고 동시에 대답했다.

“당근 펠레지.”

“펠레.”

“펠레, 진짜 엄청난 놈이야.”

바비는 자신이 마크했던 가린샤도 인상 깊었지만, 펠레의 플레이에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성인 선수들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의 재능을 갖고 있었으니까.

펠레에게 결승 골을 먹으며 고배를 마셨던 콜린 역시 그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흠, 펠레라면 신문에 난 브라질의 울보 꼬맹이?”

던컨이 펠레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준영은 확실히 알려 주었다.

“던, 내가 장담하는데, 그 울보 꼬맹이는 4년 후에 진짜 괴물이 될 거야.”

지금도 충분히 괴물이지만, 그때는 명실상부 축구 황제가 되리라.

준영의 진지한 표정을 본 던컨도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 악몽 같은 뮌헨의 비행기 사고도 그렇지만, 준영이 말하는 정보나 예상은 잘 적중했으니까.

“그렇군. 4년 후에 괴물이 될 펠레 녀석을 무찌르는 데 이 천재 에이스님이 필요한 거지? 그렇지?”

던컨의 말에 바비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참 나, 잘난 척하긴…….”

“와! 바비 너 많이 컸다? 나한테 코웃음 칠 줄도 알고.”

“많이 컸지. 네가 없는 사이에 레알 마드리드도 격파하고, 월드컵 우승까지 했으니까.”

준영이 보기에도 바비 찰튼은 정말 무섭게 성장했다.

유러피언 컵과 월드컵을 경험하며 자신감이 많이 붙고, 그만큼 플레이도 과감해졌다.

그 때문에 축구인들과 언론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지켜볼 만한 유망주에서 잉글랜드의 새로운 희망으로.

“인석들아, 뭘 그리 떠들고 있어? 훈련 안 할 거야?”

머피 코치의 호통에 선수들은 냉큼 입을 잠그고 훈련에 열중했다.

누군가는 새로운 시즌에도 화려한 행보를 계속하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다시 날아오르기 위하여.

레전드로 족적을 깊이 남기고 싶었던 준영은 그들과 더불어 부지런히 땀방울을 흘렸다.

***

팀 훈련을 마친 후, 준영은 트래퍼드 파크에 있는 미스터리 푸드 컴퍼니를 찾았다.

월드컵 때문에 부재가 길었다 보니 운영 상황이나 매출 등, 보고받거나 살펴볼 점들이 많았기 때문.

다행히 우려할 만큼 큰 문제는 없었다.

경쟁 업체들이 슬금슬금 짝퉁 라면, 짝퉁 빼빼Ro 등을 내놓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원조를 더 선호하고 있었기에 판매 실적도 계속 늘고 있었다.

“문제는 치킨 사업입니다. 이대로라면 늘어 가는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겁니다.”

시즌 중 올드 트래퍼드에서만 판매하던 미스터리 치킨은 맨체스터는 물론 주변 지역에도 신설 매장이 계속 늘고 있었다.

천상의 맛이더라, 맥주와 궁합이 딱 맞더라는 입소문이 퍼져 나간 덕분.

“맨체스터 주변의 양계장으로는 부족한 건가요?”

준영의 물음에 헨리 케일 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계 농가가 늘고 있지만, 앞으로 늘어나는 소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미리 대규모 양계장 운영을 준비해야겠군요.”

“그것도 좋지만, 가까운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합니다. 닭고기뿐만 아니라 다른 식자재들도요.”

프랑스는 손꼽히는 농업 강국.

농사짓기 적합한 기후와 드넓은 농경지를 가지고 있어 주변국에 대량의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당장 마늘은 수입해야 할 실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마늘 값이 폭등했다던가…….”

본래 영국에서는 마늘 수요가 많지 않았다.

먹고 나면 입 냄새와 체취가 심해져서 꺼리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앙숙인 프랑스인들이 곧잘 애용하는 향신료라서 거부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국 국내에서 마늘 생산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2차 대전 때 프랑스 군인들과 피난 온 민간인들에 의해 수요와 생산이 약간 늘어났다.

그런데 최근에 수요가 늘어나게 된 주범은 따로 있었다.

“다 사장님 때문입니다. 왜 방송과 언론에 그런 소리를 해 가지곤…….”

“좋은 건 사실이니까 그렇죠.”

사실 준영은 예전부터 식초에 절인 마늘을 스태미나용으로 섭취하고 있음을 이야기했고, 냄새 지우는 법까지 알려 주며 주변인들에게 적극 권유했다.

그러다 영국 전역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월드컵 우승을 하고 돌아오면서였다.

기자들은 여느 동양인들과 다른 그의 체격과 스태미나에 어떤 비결이 있는지 몹시 궁금해했다.

그래서 준영은 평소대로 마늘 예찬론을 펼쳤다.

‘마늘 그거 냄새 심하잖아. 그런 게 좋다고?’

‘원래 좋은 약은 입에 쓰고 고약한 법이지.’

‘존 Y. 리가 말한 대로 고기랑 구워 먹으니 맛있던데? 옛날 사람들은 왜 못 먹게 한 걸까?’

‘남자에게 좋다고 하잖아. 금욕을 중시하는 교회에서 용납할 수 없었던 거겠지.’

‘그거 진짜 남자에게 좋대?’

이런 식으로 말이 퍼져 나가면서 수요가 늘게 된 것.

남자들뿐만 아니라 남편과 애인을 염려(?)하는 여성들이 열심히 구매했다.

마늘 냄새를 지우는 용도로 레몬과 우유, 향수 등도 덩달아 잘 팔려 나갔다.

이를 두고 영국답지 않은 프랑스의 날라리 풍조가 퍼진다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스태미나 향상에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인 데다, 마늘의 유무에 따라 음식 맛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뭐, 당장 수입해야 한다면 계약을 서두르는 편이 낫겠죠.”

“알겠습니다. 바로 수입업자들과 접선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상무와의 대화를 마친 준영은 공장과 종업원들을 두루두루 살펴본 후 집으로 돌아갔다.

***

“어디 보자, 내일은 조셉을 만나기로 했지? 의류 사업 쪽으로 소개해 줄 사람들도 있다고 했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

신호등 앞에서 차를 잠시 멈춘 준영이 수첩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스쿠터를 탄 청년들이 크리켓 배트를 들고 다가왔다.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선두의 스쿠터를 타고 있던 흰색 양복이 다짜고짜 차창을 향해 배트를 내리쳤다.

퍼억! 와장창!

차창이 깨지면서 묵직한 배트가 운전석으로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기울여 공격을 피한 준영은 곧장 액셀을 밟아 달아났다.

“잡아!”

“저 원숭이 새끼 놓치지 마!”

스쿠터 무리들이 도망치는 준영의 라곤다를 쫓아왔다.

바싹 쫓아온 녀석들 중에는 배트로 차체를 두들겨 부수기도 했다.

‘젠장, 뭐 하는 놈들이야?’

행색을 보면 이 시대의 양아치라 할 수 있는 테디 보이 혹은 모드족 같았다.

돈을 노리고 달려든 강도일까, 그렇지 않으면…….

‘개자식들, 일단 좀 죽어 봐라.’

달아나던 준영은 갑자기 브레이크를 콱 밟았다.

갑자기 차가 멈춰 서자, 뒤쫓아 오던 스쿠터들이 화들짝 놀라 핸들을 꺾었다.

그 와중에 두세 대가 쓰러져 길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아아악, 내 다리…….”

“저 망할 원숭이 새끼!”

흰 양복을 비롯해 스쿠터 몇 대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영은 다시 액셀을 밟아 막아서는 스쿠터들을 들이받았다.

“우와앗!”

“피, 피해!”

화들짝 놀라 몸을 피한 흰 양복과 그의 졸개들.

조금만 늦었더라도 스쿠터와 함께 깔아뭉개질 뻔했다.

“저런 개새… 으와아앗!”

이를 갈던 폭도들은 준영이 다시 후진해서 들이받으려 들자 허둥지둥 흩어졌다.

그들은 준영이 이렇게 무식하게 대응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설마 라곤다 같은 고급 자동차를 불도저처럼 쓸 줄이야!

“저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누굴 죽이려고 작정했나?”

앞서 저지른 본인들의 행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폭도들은 치를 떨었다.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순찰차들이 달려왔다.

거리에서 난동이 벌어졌다는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것.

폭도들은 다친 동료들을 부축해서 허둥지둥 도망쳤다.

“두고 보자, 원숭이. 이 빚은 반드시 갚아 주마!”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흰 양복은 분통한 표정으로 준영을 노려보다 등을 돌렸다.

잔뜩 긴장해 있던 준영은 놈들이 물러난 후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아닌 밤에 홍두깨도 아니고, 크리켓 배트에 맞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

“세상에!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

귀가 중에 습격당했다는 준영의 이야기에 리즈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랐다.

그것은 알버트나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다치진 않았어. 깨진 유리가 튀어서 약간 찰과상이 생긴 정도니까.”

“그나마 다행이네요. 근데 대체 범인은 누구죠?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짓을……!”

리즈는 범인이 눈앞에 있으면 당장이라도 따귀를 후려갈길 것처럼 펄펄 뛰었다.

준영은 그녀를 진정시키며 현장을 조사한 경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와일드 테리어라는 폭력 조직이래. 런던에서 몇 건의 폭력 사건을 저질렀던 놈들인데, 최근 맨체스터에 와서도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하더라고.”

문제는 놈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이거나 카리브계 흑인들이었다는 것.

21세기의 스킨헤드들처럼, 증오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아마 내가 엄청 눈엣가시였던 거겠지.’

이번 월드컵 우승을 마냥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 극우적인 매체에서는 순수 영국인들의 힘으로 우승하지 못한 건 수치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심 불만을 쌓고 있는 상황에서 황인종 따위가 여왕에게 훈장을 받고, 국민적인 스타로 인기를 얻고 있으니 얼마나 부아가 치밀어 올랐겠는가.

“혹시 스탠리 루스라는 사람이 배후에 있는 거 아닐까? 그 사람, 호시탐탐 존을 축구계에서 몰아내려 했잖아.”

앤지의 추리에 준영은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지만, 그 사람은 무뢰한들을 동원할 만큼 무식하진 않아.”

그럴 생각이 있었으면 벌써 손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루스는 그 정도까지 막 나가지는 않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자네도 몸조심을 할 필요는 있다는 거야.”

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게 알버트의 생각이었다.

“자네가 호신술을 익히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임을 잊지 말게.”

“경호원을 고용하라는 거군요.”

“이미 그럴 만큼 재력은 되지 않나. 실력 있는 젊은이들을 추천해 줄 수도 있네만?”

준영은 알버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레이시스트(Racist)에게 쓰러진 비운의 스타로 남고 싶은 생각은 깨알만큼도 없었으니까.

***

와일드 테리어는 앞서 150화에 잠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테디 보이 같은 서브컬처 집단들 중 일부가 편향된 정치 성향과 사회 인식을 가지고 있었죠.

거기에 부채질한 게 저기 사진에 나오는 ‘화이트 디펜스 리그’라는 인종 차별 정치 집단입니다.

영국인 파시스트 오스왈드 모슬리에 의해 창설되었는데, 그냥 영국판 네오나치라고 보면 됩니다.

저들은 실제로 1958년 런던 노팅힐 폭동에 가담해서 이민자들을 습격하는 등, 많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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