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81화 (181/400)

Round 181. We Are The Champions

‘이 역사가 훗날 축구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로순다의 비극을 바라보던 준영은 생각에 잠겼다.

마라카낭의 비극 때문에 하얀색 유니폼을 없앴던 브라질이 다시 유니폼을 교체하게 될까?

이 고배의 여파로 다음번 칠레 대회에서도 고난을 겪게 될까?

그리고 역사 변동의 수혜자인 잉글랜드는 과연 어떨까?

“야 인마, 존, 뭐 하고 있어?”

“멍하니 있지 말고 이쪽으로 오라고!”

최고참인 톰 피니와 빌리 라이트가 준영을 끌고 선수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막 윈터보텀 감독을 헹가래 쳐 주었던 선수들이 이번엔 준영을 같이 들어 올렸다.

“자, 우리 팀 최고 수훈 선수를 위하여!”

“Hooray!”

“Long live the Player!”

잉글랜드 최고 수훈 선수.

피니의 그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대회 내내 공수에서 활약해 줬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골을 다섯 골이나 넣어 줬으니까.

모두의 손에 실려 공중으로 둥실 날아오른 준영.

그는 박수를 치는 수많은 관중들과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을 보았다.

‘나는 진짜 전설이 되었구나!’

갑자기 과거로 떨어졌을 땐 눈앞이 캄캄했었는데.

그런데 1년도 안 되어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월드컵 우승까지 맛보게 될 줄이야!

“Come on England~ Come on England!”

준영의 헹가래를 끝낸 잉글랜드 선수들은 이번엔 커다란 성 조지 십자기를 들고서 경기장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 행렬을 뒤따라가고 있던 준영은 문득 2026년 북미 월드컵 때 일이 떠올랐다.

‘그때 16강에서 이탈리아를 이기고 대형 태극기를 들고 뛰었지.’

그리고 2002년 대선배님들이 했던 것처럼 다 같이 손잡고 그라운드에 슬라이딩 세리머니도 했었지.

그 기억을 떠올리는 준영의 표정은 아련하게 변했다.

자신에게는 1년이 좀 지났을 뿐인데.

그런데 이젠 그때 일이 아주 아득하게 느껴졌다.

68년의 시간 차이 때문인지, 마치 진짜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어쩌면 그 미래의 일은 없던 일이 될지도……?’

앞으로 이 세상에는 대한민국 대표 선수 이준영은 없고, 잉글랜드 대표 선수 존 Y. 리만 남을지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뭔가 좀 섭섭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잉글랜드 선수들이 신나게 우승 세리머니를 즐긴 후.

경기장에 단상이 마련되고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여전히 아쉬움과 슬픔을 지우지 못한 브라질 선수들이 준우승 메달을 받은 후, 챔피언인 잉글랜드 대표팀이 차례로 우승 메달을 받았다.

“수고했네. 다들 진짜 큰일을 해냈어!”

잉글랜드 축구협회 의장 겸 FIFA 회장인 아서 드루리는 선수들과 악수를 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6세 역시 자국에서 벌어진 대회의 챔피언들을 축하해 주었다.

“우리 선수들이 졌을 땐 실망이 컸지. 하지만 챔피언에게 졌다고 생각하니 잘 싸운 것 같군.”

“네, 스웨덴은 강팀입니다, 폐하.”

구스타프 6세는 자신의 악수를 받는 준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신문을 보니 자네, 한국인이라고 하던데?”

“네, 그렇습니다.”

“그랬군. 30년 전쯤에 내가 한국에 간 적이 있었지. 그때 방문한 도시가 천년 왕국의 수도였다는데 이름이…….”

“경주 말입니까?”

“그래, 경주. 맞네.”

준영도 학창 시절 한국사 수업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스웨덴 왕자가 찾아와서 신라 고분 발굴을 참관했다고.

‘그게 서봉총이었지, 아마?’

중간고사 시험에도 나왔다.

그 역사의 주인공과 이렇게 악수를 나누게 될 줄이야.

‘아마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면 이런 기회도 없었을 테지.’

씩 웃음을 짓던 준영은 주장인 빌리 라이트가 단상에 올라가 우승컵을 받는 모습을 보았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우승컵을 건네받은 빌리 라이트.

감정이 북받쳤는지, 그는 눈시울을 붉히다 이내 눈물을 쏟았다.

“아니, 왜 울어요, 주장?”

“왜 울긴! 눈물이 나오는데 어쩌라고!”

오늘 결승전까지 98경기.

수많은 국제 경기를 뛰며 산전수전 다 겪어 보았다.

승리도 있었지만, 매직 마자르에게 농락당하는 등 괴로운 일들도 많았다.

축구 종가의 주장으로서 우승컵을 가져오지 못하는 점도 크나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이제 떳떳하게 팬들에게 내세울 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렇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빌리와 달리, 펠레는 여전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펠레 군, 자넨 이번 월드컵 최우수 신인으로 선정되었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드루리 회장이 건네는 상패는 펠레의 마음을 조금도 위로해 주지 못했다.

그는 잉글랜드 선수들이 만져 보며 입 맞추는 쥘리메컵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10분 정도만 버텼으면 브라질의 것이 될 수 있었는데!

‘존 Y. 리, 바비 찰튼! 저 둘만 아니었으면……!’

다 이뤄진 꿈을 무너트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 악마들.

그들을 바라보는 펠레의 눈빛은 원한으로 붉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

그날 밤, 잉글랜드 대표팀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승전 파티가 열렸다.

스톡홀름 주재 영국 대사와 같은 정계 인사와 스웨덴에서 사업을 하는 영국인 사업가 등등, 여러 방면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축하를 건넸다.

“제군들, 버킹엄 궁의 귀하신 분께서 전보를 보내셨다!”

“우와아아아!”

축구협회 회장 글로스터 공작의 말에 다들 환호하다 이내 경건하게 전보 내용을 들었다.

“나라의 자존심을 들어 올린 그대들의 노고와 투지에 경의를 표한다… 라고 하시는군.”

전보라서 내용이 짧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충분히 감동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고귀하신 여왕 폐하로부터 이렇게 칭찬을 받겠는가!

“이제 우린 영웅인 거군!”

“연말에 진짜 훈장을 받게 될지도?”

“꿈 깨, 인마. 받아도 주장이나 리틀 존 그 녀석이 받겠지, 딸랑 1경기 나온 너한테 주겠냐?”

“근데 존은 어디 있는 거야?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선수들이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을 때, 준영은 파티장 테라스로 나와 있었다.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그를 찾아 테라스로 온 사람이 있었다.

“리즈?”

“여기서 뭐 해요?”

리즈의 물음에 준영은 씩 웃음을 지었다.

“상쾌한 공기를 들이켜고 있었지. 파티장은 좀 탁했으니까.”

“바람 쐬고 있었던 거예요? 하긴 담배 연기가 자욱하긴 했죠.”

리즈는 동의했지만, 준영의 상념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준영은 그것을 금세 이야기했다.

“다음 달이면 내가 이 시대에 온 지 1년째야. 그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더라고.”

허더스필드를 시작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그리고 월드컵 출전과 우승까지.

보통 선수라면 수년에 걸쳐 경험할 것을 1년도 안 되어 모두 겪었다.

그리고 축구 선수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 우승컵까지 들고 나니 비로소 피로감 같은 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여러 도움을 얻으며 배운 것도 많았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야.”

“음… 그 만남과 도움에 나도 있는 거죠?”

“물론이지! 리즈랑 제일 먼저 만났잖아.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21세기에서도 극복하지 못했던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게 만들어 주었다.

거기다 끝내 막아 내지 못한 뮌헨 사고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묵묵히 지탱해 주었고.

정말 리즈가 아니었다면 훨씬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으리라.

“돌아가면 새로운 시즌이 시작돼.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거지.”

“이를테면 유러피언 컵 연속 우승 같은?”

“놓쳐 버린 리그 우승도 목표로 할 수 있지. 더블은 해 봤으니 트리플 우승도 맛보고 싶어.”

준영은 굵고 짧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기왕이면 굵으면서도 길게 가고 싶었다. 많은 업적과 기록을 쌓아 두어야 미래에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레전드가 될 테니까.

“뭐 그것도 그렇지만, 내 심장의 반쪽인 여왕님께 좀 더 정성을 다하고 싶어.”

“어머? 좀 더 어떻게요?”

“그건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줘야겠지.”

그러면서 슬쩍 리즈를 끌어안은 준영은 곧장 키스를 나누었다.

이전보다 진한 입맞춤과 과감한 스킨십에 심장은 크게 두근거렸고, 얼굴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단 이 정도로 예고편이라고 해 둘게.”

“…모르겠어요.”

“응? 뭐라고?”

“한 번 봐서 모르겠다고요. 몇 번은 더 봐야 알 것 같아요.”

리즈의 새침한 표정에 준영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모르겠다면 알 때까지 해 드릴 수밖에.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었기에 원하는 만큼 서비스를 펼쳐 보였다.

***

영국, 특히 잉글랜드 지역이 크게 들썩였다.

월드컵 우승!

축구 종가로서의 자존심을 세운 쾌거에 축구인들과 팬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인 양 기뻐했다.

“우승이면 세계 최강이 된 거죠?”

“아, 물론이지! 우리가 챔피언이라고! 1등이라 이거지!”

남녀노소, 상하 구분 없이 영국 사람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의 패권은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갔다.

그것은 1956년에 있었던 수에즈 전쟁으로 확실히 증명되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자긍심을 안고 살던 영국인들 입장에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랬는데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

그것도 소련을 조 예선에서 물리치고, 준결승에서는 서독을 격파했단다!

이 통쾌한 소식은 영국인들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무력이나 경제력이 강하다고 해서 세계의 패권을 쥐었다고 할 순 없습니다.”

“맞아요. 우린 아직 세계에 영향력을 가진 요소들이 많아요. 스포츠뿐만 아니라 인문학이나 과학 같은 것만 해도…….”

“아무렴, 지난 세월 대영제국이 쌓아 올린 금자탑이 쉽게 사라지겠습니까?”

우린 여전히 일류 국가다!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 믿게 된 사람들은 자신에게 믿음을 준 영웅들이 개선해 오자, 열렬하게 환영해 주었다.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화려한 카퍼레이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잉글랜드 선수단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굉장하구만!”

“그러게요. 우리도 저런 영광을 맛볼 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인파 속에서 카퍼레이드를 지켜보는 동양인들이 있었다.

히라키 류조, 나가누마 겐, 가와부치 사부로.

영국 풋볼 리그에 입성하기 위해 멀리 일본에서 온 이 세 선수는 감탄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We are the Champions!”

선수들이 탄 2층 버스에서 이준영이 쥘리메컵을 들고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그 외침에 군중들도 환호하며 연호했다.

“We are the Champions!”

“England is the Winner!”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일본인 3인방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수.

그는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물이 되어 있었다.

“설마 월드컵 우승 멤버가 될 줄은…….”

“흥, 평생 쓸 운을 다 쓴 거겠죠. 이제 운발도 끝일 겁니다.”

애써 준영을 무시하는 가와부치는 강한 시기심을 드러냈다.

‘두고 봐라. 네 녀석의 코앞에서 반드시 골을 때려 박아 줄 테니까!’

아직 현실을 맛보지 못한 패기만만한 젊은 공격수.

그는 점점 멀어져 가는 준영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

본문에 나온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는 1926년에 한국을 방문하였고, 경주에 있는 동안 그 유명한 최부자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런 인연 때문에 6.25전쟁 때도 의료 지원단을 파견하여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하네요.

당시 스웨덴 의료 지원단은 부상병이나 민간인 치료뿐만 아니라 선진 의료 기술도 전수하면서 의학 교육을 위한 병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훗날 국립중앙의료원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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