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71화 (171/400)

Round 171. 역사를 바꾸는 자

“아아…….”

칼레 골키퍼를 비롯해 스웨덴 선수들이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사이, 골을 넣은 바비 찰튼은 하늘로 날 것처럼 껑충 뛰어올랐다.

“넣었어! 내가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다고!”

신이 나서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는 바비를 보며 준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자신의 월드컵 첫 골이 생각났다.

2026년 북미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넣었던 결승 골로 이준영이라는 이름을 단번에 세계 전역에 알렸다.

‘그때는 나도 바비만큼이나 감격했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골을 넣고 그런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어.’

아마 두 번째로 출전하는 월드컵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무엇이든 첫 경험은 흥분될 수밖에 없으니까.

‘이 대회에서 날 흥분시킬 만한 건… 역시 우승컵이겠지?’

유러피언 컵에서도 빅 이어를 들었을 때 얼마나 감격했던가.

낯선 시대에 와서 레전드를 증명하는 상징을 마침내 손에 넣었을 때의 그 기분이란 정말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그 감동을 다시 맛보려면 월드컵 우승 말고는 불가능하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스웨덴을 꺾어야 해.’

실제 역사에선 스웨덴은 결승까지 승승장구하면서 준우승을 거둔다.

하지만 이제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

헤이젤에서 맨유가 빅 이어를 들어 올렸던 것처럼, 삼사자 군단이 이 대회의 정상에 서리라!

‘그렇게 만들 거다. 내가 그렇게 할 거야. 역사의 변동? 그럼 오히려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거지.’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미래가 달라져 버릴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준영은 기꺼이 그 미래를 반길 수 있었다.

미지에 찬 새로운 세계를 걷는 흥미진진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새로운 세계에 나는 이름을 남길 거야. 누구와 비교해도 최고로 꼽을 수 있는 레전드급 플레이어로!’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고 말리라.

의욕을 불태우는 준영의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

전반 38분에 터진 바비 찰튼의 동점 골로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함린의 골로 제대로 흐름을 타고 전진하던 스웨덴 입장에서는 꽝에 걸려 스타트 지점으로 되돌아온 격이었다.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이런 난관을 반기는 이가 있었다.

“그래, 8강전쯤 되면 이래야지. 안 그러면 스페셜 디너로 의미가 없으니까.”

레나트 스코일룬.

술기운에 흔들거리는 몸과 달리 그의 마음은 굳건했다.

그렇다 보니 다른 선수들이 동요하고 있을 때도 그는 냉정하게 위협적인 플레이를 계속해 갔다.

덕분에 에디 클램프와 토미 뱅크스는 땀을 뻘뻘 흘려 대며 레나트를 쫓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땀 흘린 보람은 있었다.

더 이상 실점을 하지 않고 전반전을 마칠 수 있었으므로.

“다들 잘했어. 후반전에 분명 스웨덴은 총공세로 나올 거야. 그러니까 수비를 좀 더 촘촘하게 해서…….”

윈터보텀 감독은 작은 칠판에 포진까지 그려 가며 후반전 작전을 설명했다.

“놈들이 공격하는 만큼 뒷공간이 나오게 되어 있어. 공격수들은 이런 빈틈을 절대 놓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존과 찰튼은 공수를 바꾸면서 놈들에게 혼란을 줘. 동점 골을 얻었을 때처럼 플레이하면 더 바랄 게 없겠군.”

감독의 기대에 준영과 바비 찰튼은 싱긋 웃음을 지었다.

후반전에도 작품 하나 제대로 만들면 오늘 경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 후반전도 멋지게 하고 돌아와! 너희 선배들이 넘지 못했던 8강의 문턱을 넘는 거다!”

감독의 독려에 고양된 잉글랜드 선수들이 다시 필드로 나갔다.

동시에 나온 스웨덴 선수들도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를 겨우 8강에서 그칠 맘이 없었던 것.

“후반전에 결판을 내자.”

“그래야죠. 연장전까지 가면 여러모로 피곤하니까.”

재경기는 결코 생각하지 않고 있던 레나트와 함린.

그들은 전반전보다 더 매섭게 잉글랜드 측면을 파고들었다.

“주정뱅이가 온다!”

“섣불리 달려들지 마! 협력해서 마크를……!”

에디와 토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레나트는 둘을 차례로 제쳐 버리며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하지만 택배급 크로스는 쇄도하던 시몬손의 머리에 닿지 못했다.

수비에 가담했던 준영이 잽싸게 머리로 걷어 냈기 때문.

‘어떻게 된 거야? 저놈, 공격수로 나오지 않았나?’

‘그럼 최전방에 있는 건……?’

스웨덴 선수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전진해 나가며 준영이 걷어 낸 볼을 잡은 빌리 라이트가 공격수로 위치를 이동한 바비 찰튼에게 길게 패스를 보냈다.

하지만 너무 뻔했던 그 패스는 리드홀름에게 차단당해, 곧바로 함린 쪽으로 전달되었다.

빽빽한 숲속을 날아가는 한 마리 새처럼 잉글랜드 수비진을 제쳐 내며 문전으로 들어온 함린.

그는 골키퍼를 앞두고 슛을 날렸다.

뻐엉-!

작정하고 날린 슈팅은 측면에서 달려든 수비수의 발을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휴, 바쁘다, 바빠!”

마지막에 함린의 슛을 저지한 건 이준영.

그는 이어지는 코너킥에서도 낙하지점을 잘 포착하여 공을 안전한 곳으로 걷어 냈다.

그런 후에 재빨리 전방으로 뛰어가며 역습에 가담했다.

‘빠르다!’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싶더니 어느새 중앙선을 넘었다.

동시에 그에게 공이 전달되자, 군나르 그렌이 황급히 앞을 막았다.

“비켜, 머머리 아저씨.”

스텝 오버로 그렌을 제친 준영은 중앙으로 들어가던 조니 헤인스에게 패스를 찔러 주었다.

패스를 슬쩍 흘리는 척하며 수비수를 따돌린 헤인스는 달려 나오는 골키퍼의 선방을 피해 슛을 날렸다.

하지만 아깝게도 슈팅은 옆 그물을 때리고 말았다.

“으아, 위험했다!”

“역시 축구 종가, 쉽게 볼 상대가 아니야.”

“그보다 저 큰 놈이 문제라고.”

스웨덴 관중들은 경계 어린 눈길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자기들 나라의 좋은 찬수를 연달아 막아 냈을 뿐만 아니라 공격으로 들어와서도 좋은 패스를 찔러 주었으니까.

“아무래도 후반전엔 저 동양인이 일을 낼 것 같아.”

“과연 그럴지…….”

“디 스테파노도 잡은 놈이야. 판단력이나 경기 템포가 보통 선수들보다 훨씬 빠르다고.”

기자들의 카메라가 준영에게로 쏠렸다.

한차례 공격에 가담했던 그는 다시 수비 진영으로 내려갔다.

아직 스웨덴의 양 날개는 지치지 않았기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으니까.

***

후반전, 스웨덴은 함린과 레나트를 이용한 측면 흔들기로 잉글랜드 수비를 계속 교란했다.

그러면서 중앙에 박힌 공격수 시몬손의 머리와 발로 마무리를 하려 했지만,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레나트,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이리저리 틈을 보면서 크로스! 아… 이번에도 잉글랜드의 거인이 헤딩으로 걷어 냅니다.」

기대감에 목소리를 높였던 스웨덴 라디오 방송 중계 캐스터가 맥 빠진 목소리로 뒤이어 벌어진 상황을 설명했다.

어지간히 답답했던지, 중계하면서 한숨 소리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제일 답답했던 건 필드에 뛰고 있는 스웨덴 선수들.

미드필드에 있는 군나르 그렌과 닐스 리드홀름이 번갈아 올라와 슈팅을 날리거나 돌파를 시도했다.

이렇게 스웨덴 대표팀 최고참들이 나서자, 최전방 공격수 아그네 시몬손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큭!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건가?’

냉정하게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면 못 미더워하는 게 지극히 당연했다.

하지만 자책감보다 눈앞에 있는 동양인이 더 미웠다.

결국 참다못한 시몬손은 동양인이 공을 잡았을 때 거칠게 태클을 날렸다.

‘이게 미쳤나!’

발바닥의 스터드가 훤히 보이는 높은 태클.

다리를 부러트릴 기세로 날아오는 살인 태클에 준영의 몸이 쓰러졌다.

“아악!”

“커어어억!”

크게 들려온 2개의 비명에 심판이 냉큼 경기를 중지시켰다.

팀 닥터가 달려 들어오자, 준영은 그가 건넨 얼음주머니를 방금 태클을 맞은 발목에 댔다.

“어때? 뛸 수 있겠나?”

“예, 다행스럽게도요.”

태클이 날아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터.

사실 태클을 맞은 준영보다 시몬손이 쉬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준영이 낙법을 펼치는 과정에서 그의 몸을 깔아뭉개 버렸으니까.

잠시 후, 간신히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늑골에 타격이 좀 있나 보군.’

부러지거나 금이 간 정도는 아닌 듯하지만, 연방 옆구리를 매만지며 불편해하고 있었다.

달리거나 뛰는 것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순발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난 몰라. 본인이 자초한 거니까.’

준영은 시몬손을 무시하고 자신의 플레이를 계속해 나갔다.

***

후반전 30분대가 가까이 오면서 맹렬하던 스웨덴의 공격도 주춤해졌다.

눈에 띄게 움직임이 굼떠진 건 레나트 스코일룬.

공이 와도 돌파를 못하고 바로 근처에 있는 동료에게 건넬 정도로 주력이 떨어졌다.

“저 주정뱅이 자식, 쇼하는 거 아냐?”

“방심하면 안 돼. 우릴 속이려고 드는 걸 수도 있으니까.”

에디와 토미는 방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레나트는 정말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였다.

“헉헉… 아이고, 적당히 마실걸…….”

레나트의 상태를 본 스웨덴 감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병원에서 알코올 중독 판정을 받을 정도로 행실이 심각하긴 해도, 빼어난 스피드와 개인기가 있어 그걸 믿고 출전을 시켰다.

실제 선제골에 기여하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퍼져 버렸다.

안 그래도 최전방의 시몬손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레나트까지 굼뜬 상태가 되다니!

이제 스웨덴 공격진 중에서 믿을 건 함린뿐이었다.

“쳇, 이렇게 된 이상 내 발로 이 경기를 끝내 주겠어!”

의욕을 불태운 함린은 어떻게 하면 골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궁리했다.

그러다 상대 수비수 도널드 하우의 몸에 일부러 공을 맞혔다.

팔에 공이 맞을 뻔했던 도널드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 틈에 달려든 함린이 슛을 시도했지만, 백전노장 빌리 라이트가 걷어 내는 게 더 빨랐다.

‘제법 머리를 굴리는 애송이로군. 하지만 혼자서는 힘들지.’

‘쳇, 아깝군.’

홀로 고전하는 함린을 돕기 위해 군나르 그렌이 가세하고 나섰다.

하지만 함린이 그에게 보낸 패스는 빌리 라이트에게 차단당했다.

“좋아, 바로 튀어 올라가라!”

빌리는 바비 찰튼에게 공을 건넸다.

좀 전에 준영과 위치를 바꾸어 수비에 치중하던 바비는 공을 치고 스웨덴 진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수비의 견제가 들어오자, 조니 헤인스에게 패스.

헤인스는 이것을 최전방에 있는 준영에게 보냈다.

데릭 케반이 오바르 베리마크를 비롯해 수비수들을 유인해 갔지만, 뱅트 구스타프손은 준영에게 바싹 붙어 있었다.

‘슛은 못한다. 절대 못 돌아서게 만들 테다!’

바위처럼 막아선 뱅트.

공을 잡은 준영이 밀어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으로 밀어서는 답이 안 나오겠군.’

준영은 공격에 가담하러 올라온 바비에게 패스를 건넸다.

슈팅하는 척하던 바비는 잽싸게 뱅트의 옆으로 돌아 들어가는 준영에게로 로빙 패스를 건넸다.

같은 팀에서 발을 맞춘 자들이 할 수 있는 콤비 플레이.

화들짝 놀란 골키퍼 칼레가 뛰쳐나오고, 뱅트가 준영의 어깨를 잡아채 쓰러트렸다.

“페널티킥이다!”

“저건 파울이라고!”

잉글랜드 선수들의 외침에 소련 심판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쓰러지는 준영의 발끝에 맞은 공이 칼레를 지나 골대 안으로 굴러 들어가 버렸으므로.

“골! 골이다! 골-!”

“역전 골이 터졌어!”

항의하던 잉글랜드 선수들이 만세로 태세 전환을 펼쳤다.

그사이 벌떡 일어난 준영은 기자들 앞으로 달려가 힘껏 뛰어오르며 양쪽으로 두 팔을 펼쳤다.

똑똑히 보아라!

내가 역사를 바꾸고 있는 레전드 플레이어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준영의 모습이 수많은 카메라에 찍혔다.

***

‘새’라는 별명을 가진 쿠르트 함린은 양발을 잘 쓰고 굉장히 빠른 발을 가진 윙어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알까기를 진짜 잘했으며, 머리도 좋아서 창의적인 플레이도 잘했습니다.

실제 8강 소련과의 경기에서는 본문에 언급된 것처럼 상대 수비수의 몸에 공을 맞혀 바운드된 것을 헤딩으로 밀어 넣는 방법으로 야신을 속여 골을 만들어 냈다는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