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56화 (156/400)

Round 156. 후반전의 악재

하프타임 동안 양 팀은 휴식을 취하며 후반전 전술과 작전을 논의했다.

“후반전 20분 동안은 전반에 했던 대로 간다. 그 뒤부터는 본격적인 체력전이야.”

머피 코치의 말에 맨유 선수들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전반전 실점이 아쉽긴 했지만, 1 대 1로 팽팽하게 경기가 전개되었다.

그래서 후반도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상상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아.’

‘디 스테파노는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만… 아예 못 막을 상대가 아니야.’

‘바비가 잘해 주고 있고, 그다음엔 리틀 존이 막아 줄 테니까.’

뚜껑을 열어 보니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레알 마드리드.

앞서 언급한 경기력도 자신이 있었지만, 체력 문제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품고 있었다.

바로 자신들이 월등히 우위에 있다고 말이다.

브뤼셀에 오기 전까지 충분히 쉬고, 준영의 도움을 받아 체력 보강에 도움이 되는 훈련을 했다.

여기에 충분한 영양과 수분 보충을 하면서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맞췄다.

“아무도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 이제 남은 시간은 45분. 한 발 더 많이 뛰고, 이를 악물고서 놈들을 몰아붙여. 알겠나!”

“Yes, Sir!”

우렁차게 대답한 준영과 그의 동료들은 다시 필드로 나갔다.

레알 마드리드 쪽도 전반전을 마쳤을 때보다 훨씬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물러나거나 숨 돌릴 시간은 없다는 것을.

남은 시간 45분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승부를 결판 지어야 했다.

‘여기까지 와서 준우승으로 만족할 순 없지.’

‘대회 3연패는 반드시 이루고 말겠어.’

필드에 서서 서로를 응시하던 양 팀 선수들.

그들은 후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과 기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우와, 시작하자마자 불꽃이 튀는군.”

“전반전 초반하곤 완전히 딴판의 양상이야.”

“저러다 한 명 실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겠어.”

양 팀 모두 과감하고 사납게 맞부딪쳤다.

거칠게 어깨를 부딪치는 건 예사였고, 공을 두고는 거침없이 발길질들이 오갔다.

‘큭! 아프잖아!’

‘이 자식, 양말 속에 뭘 넣어 둔 거야?’

치열하게 진행된 볼 다툼에서 먼저 기선을 잡은 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은 레알의 마크를 몸 사리지 않는 과감한 돌파로 뿌리쳤다.

“나 참, 애송이 하나에게 언제까지 휘둘릴 거야!”

“크로스 올리지 못하게 해!”

측면에서 크로스하는 척하며 라파엘 레스메스를 제쳐 낸 알렉스는 박스 중앙으로 쇄도하는 데니스 바이올렛을 향해 빠른 컷백을 보냈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그것을 그냥 흘려보냈다.

배후에서 이 패스를 잡은 선수는 어니 테일러.

전반전에는 약간 2선으로 내려와 패스에 치중했던 이 노장 공격수는 기회가 오자 거침없이 슛을 날렸다.

“골… 아, 저걸 막다니!”

“리바운드 볼을 따내!”

후안 알론소 골키퍼의 펀칭을 맞고 높이 떠오른 공을 향해 숀이 머리를 갖다 댔다.

하지만 재차 뛰어오른 알론소가 잡아채면서 공격은 무위로 끝났다.

“휴, 위험했다.”

“정신 차려! 상대 공격수를 놓치지 마!”

알론소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몇 분 후 레알은 다시 또 위기를 맞았다.

미드필드 지역에서 패스를 돌리던 중에 프레디 굿윈에게 차단당했고, 이것이 어니 테일러의 발을 거쳐 중앙으로 쇄도하던 숀 코너리에게 연결된 것.

어니의 날카로운 패스를 받고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 낸 숀.

하지만 달려 나온 알론소를 상대로 로빙슛을 시도하다 그만 골대를 넘겨 버렸다.

“큭!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렸군!”

아쉬운 마음에 머리를 움켜쥔 숀.

예전에 준영이 이런 기회에서 로빙슛으로 골키퍼를 넘기는 슈팅을 보여 준 적이 있어서 시도해 본 것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 기회는 또 올 테니까.”

어니는 숀을 위로하면서 힐끔 레알 수비수들을 가리켰다.

움직임이 무뎌지고, 표정이 굳어진 것이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전에 예상했던 대로, 스페인에서 코파 델 레이 경기를 치르고 오느라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더 몰아붙이면 틀림없이 쓰러진다.’

어쩌면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우승컵을 들게 될지도.

그런 기대감에 어니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

‘좋아, 딱 좋은 흐름을 탔군.’

후방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준영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진행된 맹렬한 볼 다툼에서 기선을 잡은 것이 확실히 컸다.

비록 골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어니와 숀의 슛은 레알 마드리드를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불안감에 체력 고갈이 가중되면 집중력은 더욱 흐트러지게 될 터!

“어이, 존, 디 스테파노가 뭔가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만?”

빌의 말에 준영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디 스테파노는 끈덕지게 쫓아오는 바비 찰튼을 뿌리치려 애쓰는 한편, 맨유 수비 라인과 레알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후방에서 패스가 전달되자, 논스톱으로 슬쩍 방향만 돌려서 침투하는 프란시스코 헨토에게 공을 건넸다.

머리 위로 넘어오는 공을 능숙하게 잡아 낸 헨토는 그대로 슛을 때려 골망을 흔들었다.

“됐다. 역전이다!”

“골키퍼가 꼼짝도 못했어!”

“역시 유럽 최강 레알 마드리드!”

환호하던 관중들의 함성은 금세 사그라졌다.

선심이 들어 올린 깃발을 보았던 것.

알베르트 심판도 방금 전의 상황을 오프사이드로 판정했다.

디 스테파노의 패스가 전해지기 직전, 헨토가 맨유 수비수들보다 앞서 있었던 것이다.

결국 레알의 역전 골은 취소되었다.

“쩝, 내가 좀 성급했군.”

디 스테파노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반전 맨유의 공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역전 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성급한 플레이로 이어진 모양이다.

이런 자신의 실수는 인정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좀 신경 쓰이는 부분은 있었다.

‘내가 패스 넣으려는 순간에 맨유 수비수들이 일제히 전진해 나온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나?’

디 스테파노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해리 그렉의 롱 킥으로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먼저 낙하지점을 선점해서 공을 따낸 산타마리아는 하프백 산티스테반에게 패스를 건넸다.

센터 서클까지 공을 몰고 간 산티스테반은 측면의 레몽 코파 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하지만 이 패스는 레몽 코파를 견제하던 이안 그리브스에게 차단당하고 말았다.

이안은 가까이 있던 로니에게 패스했고, 이것은 다시 수비 라인에서 뛰어나온 준영에게 연결되었다.

「유나이티드 5번 존 Y. 리,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달려갑니다. 사라가가 태클을 하지만, 그냥 뛰어넘고 계속 뛰어갑니다! 그 앞을 가로막는 산티스테반…….」

라디오 중계 캐스터의 기대와 달리 산티스테반은 섣불리 준영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다만 질주하지 못하게 견제하면서, 주변의 동료들이 달려와 가세하기를 기다렸다.

‘좋은 판단이야. 하지만 나는 시간을 끌 생각이 전혀 없어.’

살짝 앞으로 공을 툭 친 준영은 그대로 레알 골대를 향해 강슛을 날렸다.

콰앙-

굉음과 함께 터진 무회전 슛.

산티스테반의 옆머리를 스치고 날아간 그 슈팅은 알론소 골키퍼 쪽으로 곧장 날아갔다.

‘정면? 아냐. 왼쪽으로 휠 거야!’

본능적으로 몸을 날린 알론소는 마지막에 방향을 꺾은 슈팅을 쳐 냈다.

‘마, 막았다!’

반색을 하던 알론소의 표정이 구겨졌다.

자신이 쳐 낸 공을 향해 어니 테일러가 뛰어들고 있었기에.

‘젠장, 하필이면!’

황급히 몸을 던진 알론소.

그는 간발의 차이로 공을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이어 멈추지 않고 쇄도했던 어니와 부딪쳤다.

***

퍼억!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알론소의 몸에 걸린 어니가 공중에서 돌면서 필드에 나동그라졌다.

“아아악!”

“어니!”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양 팀 선수들, 그리고 팀 닥터가 황급히 쓰러진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둘 중에 먼저 일어난 건 알론소였다.

어니와 충돌할 때 오른쪽 어깨에 부딪쳤는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경기를 하는 데는 그리 지장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어니 테일러.

준영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그는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틀렸어! 아까 떨어지면서 무릎이 나간 것 같아.”

“맙소사…….”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준영에게 어니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이렇게 민폐가 될 줄이야.”

올 시즌 블랙풀에서 뛰던 그는 뮌헨 사고 이후 선수가 부족해진 맨유로 임대를 왔다.

‘그 녀석들, 많이 힘들 거야. 자네가 많이 도와주라고.’

하늘 같은 선배 스탠리 매튜스가 이렇게 말했다.

이에 어니도 경기에 나가서 최선을 다해 뛰었고, 훈련을 할 때도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그 결과 맨유는 FA컵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결승까지 왔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젠장… 이렇게 되면 매튜스 선배를 볼 낯이 없는데…….”

“자책하지 마세요.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겨우 울음을 참은 어니 테일러가 필드 밖으로 실려 나가는 것을 보던 준영은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난감한 자신만큼이나 다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주장, 이제 어떡하죠?”

알렉스의 물음에 준영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긴, 뭘?”

“그야 어니 아저씨가 나갔으니까 우린 이제 10명이잖아요.”

10명으로 11명의 레알 마드리드를 이길 수 있을까.

상대가 체력적으로 지쳐 가는 상황에서 좋은 공격 찬스까지 만들며 좋은 흐름을 탔다고 생각했건만, 이런 사고가 터지다니!

아쉬움과 걱정으로 뒤범벅이 된 팀원들에게 준영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뭘 그리 걱정하냐? 축구 한두 번 해? 한 명 나갔으면 10명이서 뛰면 되는 거지. 다들 어니 형님 몫만큼 조금씩 더 뛰면 돼.”

“하지만…….”

“왜? 그럼 퍼기 네가 어니 형님 몫까지 다 뛸 거야?”

웃고 있긴 하지만, 사실 준영도 속이 꽉 막히는 심정이었다.

만약 여기서 분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면 와르르 무너져 버릴지 모른다.

“…알겠어요. 제가 어니 아저씨 몫만큼 뛸게요.”

뭔가를 다짐한 듯, 알렉스가 진지한 눈빛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진짜?”

“네. 어차피 오늘 경기 공도 많이 못 만져서 힘은 남아돌거든요. 그러니 선배들도 걱정 말고 자기 포지션에 전념하라고요.”

알렉스의 말에 다들 굳어진 얼굴을 폈다.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고 가는 숀에 이어 데니스 바이올렛은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고 갔다.

“잘난 척하긴. 방금 전까진 자기가 제일 걱정해 놓고 말이야.”

“그러니까 만회하겠다고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준영은 팀원들을 데리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디 스테파노는 쓴웃음을 지었다.

“불쌍하게 되었다만, 승부는 냉정한 법. 그러니 봐주지 않겠어.”

애초에 봐줘서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 남은 시간 전력을 다해서 쓰러트리기로 마음먹었다.

***

어니 테일러는 뉴캐슬에서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951년 FA컵 결승에서 뉴캐슬이 블랙풀을 2 대 0으로 무찌르고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때 블랙풀에 있던 스탠리 매튜스가 그의 플레이에 매우 주목했습니다.

매튜스는 감독에게 다음 시즌 반드시 영입해야 할 선수로 어니 테일러를 추천했고, 결국 1951년 10월 10일 어니 테일러는 블랙풀로 이적합니다.

그래서 어니 테일러는 자신을 추천한 매튜스를 무척이나 존경했고, 돈독한 사이로 지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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