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46화 (146/400)

Round 146. 국가대표

“존 Y. 리… 그 동양인이 그렇게 잘해요?”

레몽 코파의 물음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혀를 찼다.

“신문 좀 보고 살라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나락에 떨어지지 않게 멱살 잡고 일으킨 게 그놈이라니까.”

이렇게 말하는 스테파노도 존 Y. 리의 플레이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신문이나 축구 잡지에 소개된 정보로만 접했을 뿐.

하지만 그는 활자만 보고도 존 Y. 리의 플레이를 머릿속에 훤하게 그릴 수 있었다.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신장.

철벽과 같은 단단한 육체.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듯한 강인한 체력.

마치 투우사의 몸놀림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개인기.

필드 전 영역에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 등등.

‘틀림없어. 던컨 에드워즈와 같은 부류다.’

스테파노는 작년 유러피언 컵 4강에서 던컨의 플레이를 본 적이 있었다.

마치 그 나이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몹시 흥미로웠다.

그런데 그 녀석과 비슷한, 아니 피지컬에 있어서는 그보다 월등해 보이는 녀석이 나타났다.

어디서 축구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이 정체불명의 동양인은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플레이어들을 쓰러트렸다.

초대 발롱도르 스탠리 매튜스, 체코슬로바키아의 기린아 요제프 마소푸스트, 유고슬라비아 최강 수문장 블라디미르 베아라.

여기에 현재 이탈리아 최강의 리베로 체사레 말디니마저 무찌른 것이다.

“이쯤이면 어디서 튀어나온 놈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분명한 건 우릴 물어뜯을 수 있는 괴물이라는 거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건 아닐까?

레몽 코파를 비롯해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던 이들도 이내 그런 안이한 생각을 접어 버렸다.

지금 자신이 그 존 Y. 리의 입장이라면, 그만한 전과를 올릴 수 있을까 의문이었기에.

“근데 알프레도, 경각심을 보이는 것과 달리 즐거운 것 같네요.”

“당연히 즐겁지! 그런 정체불명의 괴물과 맞서 싸울 기회가 생겼잖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아르헨티나 CA 리버 플레이트에서 데뷔해서 남미를 평정하고, 스페인 국적을 얻어 유럽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유럽 무대도 이내 평정해 버린 제왕은 다소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보다 다양한 강자들과 싸울 수 있는 유러피언 컵이나 월드컵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스웨덴 월드컵에서 스페인은 어이없이 예선 탈락.

스테파노 입장에서 기대할 것은 유러피언 컵뿐이었다.

‘존 Y. 리, 부디 나를 긴장하게 만들 정도의 강자이길 바란다.’

5월 28일 벨기에 헤이젤 경기장에서 열리는 결승전.

스테파노는 그날이 몹시 기다려졌다.

***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으쌰라~ 으쌰~”

밀라노 축구 팬들에게 우울한 밤.

외국인들이 투숙 중인 호텔 클럽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젠 맨유의 응원가로 자리매김한 노래 ‘젊은 그대’.

선수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승리를 만끽하던 지미 머피 코치에게 호텔 직원이 다가왔다.

“응? 무슨 일이요?”

“코치님께 급보가 왔습니다.”

“급보? 누가 보낸 거요?”

무엇 때문에 연락을 했을까.

영어가 유창한 호텔 직원은 자신이 옮겨 적은 메모를 머피 코치에게 건넸다.

그 메모를 본 머피 코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 호텔 직원에게 되물었다.

“이게 사실이오?”

“저는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옮겼을 뿐입니다.”

이건 확인해 봐야 한다.

냉큼 자리에서 일어난 머피 코치는 곧장 자신에게 연락을 보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미 머피요. 급보를 보냈다고 해서 연락했습니다.”

(네, 머피 코치님, 아니 감독님이라 불러 드려야겠군요. 웨일즈 대표팀을 맡고 계시니.)

목소리를 들은 머피는 상대가 자신이 아는 ‘그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책은 됐고, 이쪽으로 보낸 게 사실인지 확실히 알려 주십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머피에게 수화기 너머에 있는 이가 냉큼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진심이오?”

(네, 진심입니다.)

“그럴 리가! 협회가 그런 결정을 내렸을 리 없잖소!”

지미 머피가 아는 영국 축구 협회는 완고함 그 자체.

축구 국가대표 전임 감독을 지정한 것도 이제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다 중요한 선수 선발 권한조차도 감독이 아닌 협회의 선수 선정위원회가 갖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차라리 콩으로 위스키를 만든다는 소리를 믿을 것이다.

(솔직히 저도 기대는 안 하고 부탁했습니다. 근데 처음엔 거절하다 두 번째는 수락해 주더군요.)

갑작스러운 태세 변환에 상당히 놀랐다고.

아무튼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곳에서 떠나기 전에 합류시키고 싶으니 선수 본인에게 통보해 주십쇼.)

“알겠소.”

통화를 마친 머피 코치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거참, 리틀 존을 잉글랜드 대표팀에 선발하겠다고? 그 옹고집들에게 무슨 바람이 분 거야, 대체?”

어찌 되었든 리틀 존이 들으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머피 코치는 그 점도 기대가 되었다.

***

“뭐라고요? 제가 잉글랜드 대표팀에 선발되었다고요?”

이게 무슨 귀신 도시락 까먹는 소리인가.

동료들과 신나게 승전 파티를 즐기다 불려 나온 준영은 영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정부가 인종 차별을 금지해도 여전히 구시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은따를 저지르고 있는 때가 아닌가.

그런데 잉글랜드 대표팀에 비백인 선수를 선발한다고?

“사실이야. 나한테 전화를 건 사람은 분명 현재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월터 윈터보텀이었어.”

“맙소사… 그분이 절 추천했다고요?”

“그래. 얼마 전에 대표팀이 유고슬라비아에서 평가전을 치렀거든. 근데 그 뒤에 주전 하프백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급히 귀국해 버렸대.”

거기다 후보 선수도 부상으로 컨디션이 최악.

고심하던 월터 윈터보텀 감독은 마침 아드리아해 건너 이탈리아에 와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주목하게 되었다.

유나이티드에는 재능 있는 하프백이 둘 있었다.

바비 찰튼과 현재 주장을 맡고 있는 존 Y. 리.

윈터보텀 감독은 둘을 동시에 대표팀에 합류시키기로 결심했단다.

“너희들 활약은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는 수준이니까 말이지.”

“물론 FA컵에서도 우승했으니 그럴 테지만… 솔직히 믿기지 않아요. 바비는 몰라도 전 백인도 아니잖아요.”

“전례가 없는 건 아니야. 전쟁 때였지만, 그때 프랭크 수라는 중국계 선수가 대표팀에 선발된 적이 있었으니까.”

준영도 프랭크 수에 대해서 들었다.

분명 아시아 혈통으론 최초로 영국 리그에서 뛴 선수라고.

“믿기지 않겠지만, 일단 현실이야. 삼사자 군단은 널 필요로 하고 있다고.”

“내가 잉글랜드 대표 선수로 뛴다니…….”

솔깃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당장 월드컵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태.

지금 잉글랜드 대표팀은 한창 평가전으로 최종 담금질을 하는 중이다.

훈련 파트너 노릇만 하거나, 적당히 테스트만 받다 버려질지 모르지만, 막판에 승선할 가능성도 전무한 건 아니다.

그래서 욕심이 났지만…….

“왜? 가서 따돌림당할까 걱정되는 거야?”

“아뇨. 그것보다 과연 수락을 해도 될까 싶어서 말입니다. 자칫 제 고국과 단절해 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준영은 21세기에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그래서 태극 전사에 대한 자부심이 그의 마음속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1950년대 현재 한국의 딱한 상황을 들을 때마다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에 짓밟히고 전쟁에 상처받은 가난한 사람들.

절망의 수렁에 잠겨 있는 그들에게 준영의 활약은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빛과 같았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준영의 활약에 열광하고, 선전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가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어 보세요. 다들 얼마나 낙담하겠어요?”

“하긴, 나라도 재능 있는 웨일즈 선수가 잉글랜드 대표가 된다고 생각하면 몹시 섭섭할 거야.”

“네. 고국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저의 존재를 모르고 외면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거든요.”

오히려 아시안게임에 축구 대표로 뽑겠다며 사람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온 사람이 천하의 개잡놈이었던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대다수 국민들의 성원은 순수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순박한 동포들을 힘없고 가난하다고, 직접적인 득이 되지 않는다고, 어차피 나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라 상관할 필요 없다며 매정하게 등 돌려서 될 일인가.

‘나는 이 시대에 레전드로 남기로 다짐했어. 오욕으로 얼룩진 상태로 남고 싶진 않아.’

그러니 불쌍한 동포들을 외면하거나 그들의 기대를 짓밟는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

“거기다 코치님도 아시겠지만, 선수가 한번 대표팀을 정하면 다시는 못 바꾸잖아요. 비록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 못 나갔지만…….”

“뭔 소리야? 못 바꾸긴 뭘 못 바꿔?”

머피 코치의 반문에 준영은 화들짝 놀랐다.

“바꿀 수 있다고요?”

“그럼. 흔한 일은 아니지만.”

당장 준영이 이번에 상대했던 AC 밀란의 공격수 스키아피노만 해도 우루과이에 우승컵을 안겨 주고 1954년 이탈리아로 귀화, 이탈리아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와 함께 활약했던 알시데스 기지아 역시 작년에 이탈리아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알지? 이 친구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스페인… 무려 세 나라 국가대표로 뛰었어.”

“하지만 그 때문에 징계를 받고 월드컵에도 못 나갔다고 하던데요?”

“그거야 당시에 콜롬비아 여권도 없으면서 콜롬비아 대표로 뛰었으니 그렇지. 제대로 행정 절차만 거쳤으면 왜 못 나갔겠어?”

사실 이런 대표팀 변경은 합법이라 해도 결코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돈 많은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우수한 선수를 돈으로 끌어모은다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

선수 역시 돈을 좇아 나라를 등졌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도덕적인 비판을 받고 싶지 않다면 안 하는 게 맞지. 하지만 존, 넌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가 버린 건 아니잖아.”

“그거야…….”

“한국 대표팀 선수로 선발된 적도 없지? 그렇다면 별다른 문제는 안 될 거라고 보는데?”

지미 머피 코치는 준영이 21세기에서 왔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준영이 대강 만들어 낸 신변 설정대로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을 떠나 중국을 떠돌다 홍콩에 정착해 시민권을 얻어 영국에 온 줄로 알았다.

‘확실히 그 설정대로라면 나는 법적으로 한국인이었던 적도 없지. 코치님 말대로 한국 대표팀 선수로 뽑힌 적도 없고 말이야.’

국적과 대표팀을 옮긴 선수들이 비난받는 이유는 돈 때문에 가난한 조국을 등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얼마든지 부유한 나라의 대표로 뛸 수 있는데, 가난한 고국의 대표를 선택하면 과연 비난을 하겠는가?

‘어쨌거나 손가락질당하지 않게 처신과 발언을 잘해야 하는 건 틀림없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준영에게 머피 코치가 물었다.

“머리가 복잡하겠지만, 결정은 빨리 해야 돼. 어떡할 거야? 할 거야, 말 거야?”

그 말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던 준영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해 보겠습니다. 한번 잉글랜드 대표로 뛰어 보죠.”

***

저 당시엔 푸스카스처럼 정치적인 이유에서든가, 아니면 부와 안정을 좇아 귀화하고 대표팀을 옮기는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남미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죠.

일단 핑계는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간다… 였는데, 이건 누가 봐도 탈주였습니다.

브라질 정부가 펠레에 대해서 법으로 해외 이적 금지를 못 박았던 것도 당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선수들이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일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대표팀 유니폼을 바꿔 입고 월드컵에 출전한 경우도 있고요.

그러다 1962년 칠레 월드컵 직전에 열린 제33차 FIFA 총회에서 선수의 대표팀 변경이 엄격히 제한됩니다.

정치적인 합병이나 분할이 아닌 이상, 선수는 단 하나의 대표팀만 선택할 수 있었죠.

이게 2004년에 와서 다소 완화되었고, 현재는 21세 이하 선수에 한정해서 A매치 3경기 이하, 단순 친선전일 경우에만 혈연이나 영주권이 있는 국가의 대표팀에서 뛸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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