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43. 폭풍이 몰아치다
AC 밀란은 곧장 스로잉을 처리하며 공격을 이어 갔다.
패스를 받은 지안카를로가 낮고 빠른 크로스를 맨유 문전으로 찔러 넣었다.
‘페르 브레데센 쪽이군!’
준영은 냉큼 크로스를 끊어 냈다.
그리고 곧장 앞을 막는 쿠치아로니를 제쳐 내고, 재빨리 측면의 케니 모건스 쪽으로 패스를 건넸다.
하지만 그 패스는 케니가 잡기 전에 AC 밀란의 미드필더 루이지 자니에르에게 잘리고 말았다.
자니에르는 망설이지 않고 스키아피노에게 공을 건넸다.
앞서 준영의 선방에 막혀 실패하긴 했지만, 그의 돌파력은 믿을 만했으니까.
그 믿음에 부응하여 스키아피노는 재차 맨유 페널티 박스 돌파를 시도했다.
“망할 놈! 또 당할 것 같으냐!”
좀 전에 당했던 빌 포크스가 아주 찰거머리처럼 스키아피노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그 마크를 당해 낼 수 없었던지, 스키아피노는 슬쩍 박스 밖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돌아섰다 싶던 그 순간, 그는 슬며시 사각으로 파고드는 동료에게 패스를 흘려 주었다.
‘위험해!’
뻐엉-
준영의 가슴이 철렁하는 것과 동시에 그물이 크게 철렁였다.
그리고 우레 같은 함성이 산 시로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골! 골! 골…….”
“아냐. 옆 그물인가 봐.”
약속한 것처럼 고개를 쭉 내밀었던 AC 밀란 팬들은 이내 아쉬움에 고개를 내저었다.
“휴, 폭풍이 몰아친 것 같군.”
안도하던 해리는 빈 공간 쪽으로 달려가는 데니스 바이올렛을 보고 곧장 길게 공을 내찼다.
하지만 데니스가 받기 전에 말디니가 귀신같이 달려들어 차단, 공격권은 다시 AC 밀란에게로 넘어갔다.
“저 자식들, 아주 작정하고 공격해 오는구만.”
“그만큼 급하니까.”
1차전은 우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 대 1로 승리했다.
그 바람에 2차전은 AC 밀란이 반드시 이겨야 했다.
져도 탈락, 비겨도 탈락.
승리가, 그리고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느긋하게 행동할 리 만무했다.
감독이 침착함을 요구하더라도 선수들 스스로 급하게 대응하기 마련.
그래서 AC 밀란은 경기 초반부터 거센 공세로 나왔다.
‘오히려 놈들의 성급함을 잘 이용한다면 손쉽게 잡을 수 있을지 몰라.’
AC 밀란은 꽤 전진해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운터 어택 하나를 제대로 터트린다면 경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쫓아가! 따라붙으라고!”
“슛 못하게 해!”
AC 밀란 공격수나 미드필더들의 패스는 쉽사리 끊기지 않았다.
닐스 리드홀름을 비롯해, 오늘 출전한 선수들은 노련한 데다 발도 잘 맞췄으니까.
“달라. 이놈들, 올드 트래퍼드에서 맞붙었을 때보다 세 보여.”
“그야 자기 집 안방이니까 그렇죠.”
원정 경기가 힘든 건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차뿐만 아니라, 날씨나 잔디 상태 같은 필드 환경, 관중이 만드는 경기장 분위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AC 밀란이 세졌다기보다 맨유 선수들이 낯선 환경에서 발이 무거운 것일 수 있다.
아무리 승리에 대한 의욕이, 지지 않겠다는 투쟁심이 강하더라도 부담감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니까.
‘어쨌거나 지금은 공부터 빼앗아야 해.’
그러나 마음과 달리 인터셉트는 쉽지 않았다.
AC 밀란의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자르기도 힘들거니와, 서투르게 뛰쳐나오면 그대로 공간이 생겨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틈이 생기면 어김없이 검붉은 줄무늬들이 치고 들어와 위협적인 돌파를 시도하거나 슛을 날리곤 했다.
‘이대로는 안 돼.’
아직 전반 10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맨유 선수들은 45분을 뛴 것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상대의 거센 공세가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 정신적인 피로까지 가중시키고 있었기 때문.
‘이러다 실점하면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버릴 거야.’
일반적으로 볼 점유율을 높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속 상대가 공격을 하게 만들면 이쪽의 수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다 제대로 데미지를 받으면 집중력과 자신감도 급감하기 마련.
그 뒤로는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리게 된다.
“쫓아서 빼앗기 힘들면 함정을 깔아야겠군.”
어떻게든 이 흐름을 끊어야 한다고 판단한 준영.
그는 곧장 이안과 빌에게 사인을 보냈다.
사인을 본 둘은 우려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순순히 지시한 대로 따랐다.
그 함정이라는 게 위험하긴 해도 효과적인 건 사실이니까.
“지금이야!”
닐스 리드홀름이 패스를 시도하기 직전.
일자로 라인을 딱 맞춘 준영과 맨유 수비진은 슬쩍 전진해 올라갔다.
그 바람에 페르 브레데센을 비롯한 AC 밀란 공격수들은 맨유 수비진 앞으로 툭 튀어나와 버렸다.
그 상황에서 패스가 전달되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삑-!
선심이 기를 들자마자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오프사이드라고?”
“아깝다. 간발의 차이 같았는데!”
관중들이 아쉬움을 토하는 사이, 겨우 공을 되찾아 온 맨유 선수들은 숨을 좀 돌릴 수 있었다.
“역시 효과 만점이군!”
“그래도 좀 위험했어.”
안도하는 선수들을 살피던 준영은 해리 그렉이 곧장 공을 차려는 것을 보고 만류했다.
“천천히 해요. 상대의 바쁜 사정에 같이 어울릴 필요는 없으니까.”
“하긴, 휩쓸려선 안 되지.”
해리는 순순히 준영의 지시에 따랐다.
주장일 뿐만 아니라, 머피 코치도 준영의 말엔 귀를 기울일 정도니까.
사실상 필드 위의 감독.
뮌헨 비행기 사고 이후로 어려운 팀을 위해 여러모로 발 벗고 나서고, FA컵 우승까지 일궈 낸 준영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는 두터웠다.
그리고 그런 끈끈한 신뢰는 상대의 맹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
준영이 시킨 대로 해리 그렉은 충분히 뜸을 들인 후에 공을 찼다.
공중으로 높이 솟구쳐 올랐던 공은 최전방에 있는 숀 코너리에게 떨어졌다.
슬쩍 눈을 돌려 접근해 오는 말디니를 보았던 숀은 헤딩으로 공을 콜린 웹스터 쪽으로 돌려놓았다.
‘일단 측면으로!’
공을 몰고 빈 공간이 많은 측면으로 빠졌던 콜린은 거의 라인 가까이 와서는 과감히 돌파를 시도했다.
수비수 한 명 정도는 제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
‘해낼 수 있어! 아니, 해내야 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스웨덴 월드컵.
거기서 좋은 활약을 하기 위해서는 AC 밀란 같은 강팀을 상대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돌파하던 콜린은 수비를 달고 있는 상황에서도 슈팅을 날렸다.
잔디 위로 낮고 빠르게 날아간 슛은 골키퍼의 옆구리 사이를 지나 골대 하단 구석으로 날아들었다.
“들어갔… 아!”
주먹을 불끈 쥐었던 콜린은 회심의 슛이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오자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쉬워하는 건 동료들도 마찬가지.
비록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효과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좀 전까지 맹공을 펼치던 AC 밀란이 화들짝 놀랐으니까.
골대를 맞고 나온 공을 허둥지둥 처리하다 그만 터치라인 밖으로 내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좋아, 이제 밥값을 할 시간이군!”
콜린뿐만 아니라 데니스 바이올렛도 의욕을 갖고 활발히 움직였다.
사고로 인한 부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석 달 가까이 뛰지 못했다.
그 바람에 팀은 리그 우승을 울버햄프턴에게 내주고 말았다.
‘FA컵은 따냈다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순 없지!’
그러나 이러한 의욕과 달리, 지금까지 이렇다 할 패스가 오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지만, 이제 알려 줄 때가 되었다.
유나이티드 최고의 명사수가 누군지 말이다.
“패스! 나에게 공을 줘!”
스로잉으로 던져진 공을 잡은 바비 찰튼이 한 명을 제쳐 내고 페널티 박스로 침투한 바이올렛에게 패스를 찔러 주었다.
거의 슈팅급으로 빠른 패스.
그래서 공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았고, 발에 맞고 튀어 올라 버렸다.
‘아니, 이것도 나쁘지 않아!’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을 마크하던 수비수 루이지 라디체가 더 놀란 것 같았다.
발을 들어 튀어 오른 공을 골문 쪽으로 떨어트려 놓은 데니스는 곧장 반대편 발로 강슛을 날렸다.
“우와아아!”
불규칙 바운드를 도리어 응용해서 만들어 낸 멋진 터닝 슛.
벼락같은 그 슈팅은 크로스바 하단을 맞고 골대 안으로 떨어졌다.
‘골이다!’
데니스 바이올렛이 확신한 그 순간, AC 밀란의 골키퍼 로렌초 부폰이 황급히 공을 쳐 냈다.
그리고 그대로 경기가 이어지자, 바이올렛은 물론 맨유 선수들은 펄쩍 뛰었다.
“뭐야, 들어갔다고!”
“분명히 골대 안으로 들어갔단 말입니다!”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독일 심판 알베르트 두쉬는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바이올렛의 슛이 골대 안으로 떨어진 건 맞지만, 골라인을 완전히 넘지 않았다고 보았던 것.
하지만 이러한 그의 판정에 맨유 선수들은 더욱 격분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닌데!”
“내가 봤을 땐 그건 골인이야!”
진실을 알고 있는 건 골키퍼 로렌초 부폰뿐.
그는 이 상황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공이 골라인을 완전히 넘었는지, 걸렸는지.
그저 급해서 황급히 쳐 냈던 부폰의 입장에선 후자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행히 덩치가 큰 독일 심판은 판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런 젠장, 이 망할 나…….”
“참아요, 참아.”
준영이 황급히 달려와 바이올렛을 뜯어말렸다.
심상치 않아 보여 재빨리 만류한 게 다행이었다.
심판에게 나치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간 곧바로 퇴장당했을 테니까.
“여긴 적진 한가운데잖아요. 심판이 AC 밀란 편을 들더라도 이상한 건 아니라고요.”
“그래도 그렇지……!”
“기회는 또 와요. 그러니까 냉정하라고요. 아직 전반전도 안 끝났다고.”
준영은 간신히 바이올렛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경기는 맨유의 스로잉으로 다시 진행되었다.
아까 부폰이 쳐 낸 공을 말디니가 밖으로 멀리 걷어 냈기 때문이다.
맨유 선수들이 간신히 끓어오르는 기분을 억누르며 경기를 이어 가는 가운데, 관중과 기자들은 방금 전의 골인 논란에 대해 떠들어 댔다.
“자넨 분명 그 상황을 찍었지? 넘어간 거야, 안 넘어간 거야?”
“몰라. 카메라 필름을 현상해 봐야 알지.”
“만약 넘어간 게 맞으면, 그리고 오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면 굉장히 시끄러워지겠군.”
시끄러워졌으면 좋겠다.
그게 기자들의 심정이었다. 대중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좋은 소재가 될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큰 기회를 놓친 맨유는 과연 어떤 플레이를 보여 주려나?”
“많지 않은 공격 찬스에서 골대만 두 번이나 맞혔…….”
중얼대던 기자의 말이 뚝 그쳤다.
때마침 전진해 온 준영의 패스를 받은 데니스 바이올렛이 냅다 슛을 날렸으니까.
분노를 머금은 그 강슛은 말디니의 등을 맞고 튕겨 나왔다.
페널티 아크 외곽으로 떨어진 그 리바운드 볼은 숀이 달려가서 잡아 냈다.
그와 동시에 마리오 베르가마스치의 태클이 날아들었다.
“허억!”
딱 적당한 위치에서 들어오는 태클.
여기에 숀은 할리우드급 액션을 끼얹었다.
분명히 걸려 넘어졌으니 파울이다. 그러니 틀림없이 프리킥을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쓰러지던 숀의 눈앞으로 준영이 비호같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숀이 흘린 공을 잡아챈 그는 AC 밀란 골문으로 곧장 돌진해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파란을 예고하는 폭풍과 같았다.
***
영국과 다르게 1950년대 이탈리아 축구의 문호는 상당히 개방적이었습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선수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터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개방성과 달리, 리그 자체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경제나 정치 상황에 따라 리그의 팀 숫자가 늘었다 줄었다 반복하는 데다, 강팀과 약팀의 전력 차가 커서 지나친 수비 전술로 일관하는 팀들도 많았죠.
선수 급료도 잘하는 선수는 너무 많이 받고, 못하는 선수는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선수들이 도박이나 승부 조작 같은 유혹에 곧잘 빠지곤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1980년 토토네로 스캔들로 드러났지만, 21세기에 들어서도 깔끔히 해결되지 않아 칼치오폴리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