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34화 (134/400)

Round 134. 유명 인사

“거참, 준영이 이 친구, 이런 일까지 나한테 맡기다니…….”

이억관은 택시를 타고 명동으로 가고 있었다.

명동의 ‘모나리자’라는 다방에서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

“그래도 이런 일을 알 만한 분을 소개받았으니 다행이군.”

얼마 전 준영은 조셉 포스터의 나2키 해외 공장 건설 문제로 그에게 연락을 했다.

제화업과 관련해 한국에 있는 유능한 기술자와 업체를 찾아봐 달라면서 말이다.

이억관의 입장에선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신발 만드는 일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으니까.

당연히 인맥도 마찬가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서울에서 재회한 고려 독립 청년당 동지로부터 이런 일에 관심이 많고 지식도 있는 분을 소개받았다.

‘소벽(少碧) 선생님과 상의해 보는 건 어떤가? 임시 정부 선전위원회와 광복군 정훈 훈련 과장을 맡았던 분인데, 의류 산업에 관심이 많으셔.’

일제 강점기 때 미국에 유학을 가서 직조 기술을 익혔고, 해방 이후 조선 방직 협회 이사도 맡았던 분이라 했다.

아무튼 그 동지가 연락처를 알려 준 덕분에 이억관은 소벽 선생과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여기가 모나리자로군.”

목적지에 도착한 억관은 모나리자 다방 안으로 들어가 마담에게 물음을 건넸다.

“실례합니다. 여기서 소벽 선생님을 뵙기로 했는데, 혹시 언질 받으셨습니까?”

“아, 네. 혹시 이활 사장님이신가요?”

“예, 제가 이활입니다.”

소벽 선생이 미리 말을 해 두었던지, 마담은 이억관을 창가에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갸름한 인상을 한 60대 노인과 청년 둘이 자리해 있었다.

노인은 억관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건넸다.

“이활 사장이시오?”

“그렇습니다, 선생님.”

“오, 반갑소. 내가 소벽 양우조요.”

억관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 양우조는 자신이 데려온 청년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여기 명동에서 미진 양화를 운영하는 김용운 군이오. 그리고 저쪽은 제화 공업 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김동신 군이지.”

김용운과 김동신 두 사람은 억관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오기 전에 이미 양우조에게서 이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에서 활동했던 한국인 사업가라고. 그리고 한국에 공장을 설립하려는 영국 기업의 부탁을 받아 기술자와 협력 업체를 찾고 있다고 말이다.

“젊은 분들이군요.”

“맞소. 그래도 실력은 있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구두를 제일 잘 만드는 친구들을 꼽으라면 바로 이들일 거요.”

양우조의 말에 김용운과 김동신 둘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슬쩍 따가운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업계 라이벌쯤 되는 사이인 모양.

그들은 챙겨 온 종이 상자를 억관에게 내밀었다.

“이건… 구두로군요.”

“예, 저희 실력을 보여 드리고자 가지고 왔습니다.”

억관은 두 사람이 가져온 구두를 살펴보았다.

제화업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그래도 정말 감탄이 날 만큼 깔끔하고 꼼꼼히 잘 만들었다.

이만하면 준영의 의동생인 조셉 포스터란 친구도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참 튼튼하게 잘 만들었군요. 안감도 부드러운 게 발이 편할 것 같고요.”

억관의 평가에 두 청년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김용운이 먼저 물음을 건넸다.

“이활 사장님, 국내에 공장을 설립하겠다는 영국 기업은 어떤 곳입니까?”

“나2키라는 회사요.”

“나2키?”

“듣자니 승리의 여신의 이름을 땄다고 하더군요.”

김용운은 고개를 갸웃하며 김동신을 바라보았다.

혹시 들은 적이 있냐는 듯이 바라봤지만, 김동신도 고개를 저을 따름.

‘혹시 사기꾼 아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업체일 수도 있지만…….’

뭔가 미심쩍어하는 그들에게 억관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에서 설명을 해 주었다.

“볼턴이라고, 내가 살던 맨체스터 부근 도시에서 제화업을 하던 가문의 형제가 세웠소. 동생인 조셉 포스터가 주로 영업을 하고 있는데…….”

“조셉 포스터? 혹시 조셉 윌리엄스 포스터를 말하는 겁니까? 그분은 돌아가셨을 텐데요?”

김용운이 뭔가 아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이에 억관도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본 조셉 포스터는 20대의 청년이오. 아마 돌아가신 분의 손자인 듯싶소. 집안에서 운영하는 회사에서 독립했다니 말이오.”

“오, 그랬습니까?”

김용운은 언제 의심했냐는 듯 표정을 활짝 폈다.

그러자 김동신의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이봐, 조셉인지 뭔지 아는 사람이야?”

“이런, 김 형은 사업을 크게 하면서 이런 것도 아직 모릅니까?”

으스대는 김용운의 모습에 김동신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잘난 척하지 말고 말해 봐.”

“예, 조셉 W. 포스터는 영국 육상 금메달리스트의 신발을 만들어 준 사람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땐 영국군에 군화를 납품했다고 하고요.”

김용운도 전쟁 때 영국군 장교들의 단화 수선을 해 주다 우연히 들었다.

젊은이가 손재주가 참 좋다며, 자기 고향에도 신발 잘 만드는 유명한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 사람의 손자라면 상당한 수완을 갖고 있겠군. 근데 왜 한국에 투자하려는 거지?”

외국 자본가가 국내에 투자하고 협력 업체를 찾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고, 아직도 북괴의 위협을 받는 나라에 투자를 한다니.

여기에 대한 이유를 억관이 밝혔다.

“나2키를 창업할 때 그 형제와 함께한 한국인이 있소.”

“한국 사람이 같이 창업했다고요?”

“그렇소. 요즘 신문에도 나오는 아주 유명한 친구지.”

이억관이 씩 웃음을 짓자, 김용운과 김동신, 그리고 양우조까지 깜짝 놀랐다.

“설마 축구왕 이준영이……?”

“예, 맞습니다, 소벽 선생님. 조셉이 일본에 투자하려는 걸 만류하고 한국에 공장을 짓자며 권유했지요.”

“허허! 정말 기특한 친구로군.”

양우조는 정말 대견하다는 듯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젊은 시절 미국에 가서 직조 기술을 배웠던 건, 일제의 수탈로 헐벗은 동포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의복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사업을 인생 말년에 와서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런데 이역만리에서 뜻밖의 인물이 도움을 줄 줄이야!

“이활 사장은 이준영과 잘 아는 사이인가 보구려.”

“예, 선생님. 그 친구 덕에 사업가로 새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억관의 맑은 눈빛을 보며 미소 짓던 양우조는 두 젊은 인재들을 향해 말했다.

“나라에 큰 기회가 될 일일세. 자네들에게도 호기일 테니 부디 다투지 말고 잘 진행해 보게. 이 늙은이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겠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네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서 앞으로 일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했다.

‘나2키 코리아’, 혹은 ‘승리제화’라 불리는 유한 회사는 그들의 논의로부터 만들어졌다.

***

이억관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을 때.

영국에 있는 미스터리 푸드 컴퍼니도 계속해서 매출 증가를 이어 가고 있었다.

런던에서 짝퉁 라면들이 나와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신제품 토마토 스파게티 맛이 대히트를 치면서 독보적인 지위를 고수했다.

여기에 드레싱 소스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고, 제과 쪽에서는 경이적인 수준의 매출을 기록했다.

“와! 빼빼Ro가 이렇게 많이 팔렸다고요?”

“재고 물량이 전무한 수준이지요. 어떤 가게에서는 팔리지 않는 과자들을 빼빼Ro와 묶어서 팔기도 한답니다.”

헨리 상무의 보고에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거 완전 허Ni버터칩이군.”

“예? 꿀하고 버터가 어쨌다고요?”

“그런 게 있어요. 아직 개발 중인 신제품이랄까.”

준영은 생각난 김에 허Ni버터칩도 만들어 보리라 마음먹었다.

감자튀김 요리는 현재 영국인들도 즐겨 먹고 있으니까.

“아무튼 빼빼Ro가 계속 잘 팔리고 있는 건 앤 공주님, 오드리 헵번 천사님 덕분이죠?”

“네, 여성 잡지에 실린 광고가 여전히 기대 이상의 위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준영도 잡지에 실린 광고 페이지를 봤다.

살짝 빼빼Ro를 물고 있는 오드리 헵번의 모습.

21세기에 그대로 써먹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근사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거기에 꽂힌 여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빼빼Ro를 구매하는 중이고.

“얼마 전 신문사에서 설문 조사를 했는데, 빼빼Ro가 연인에게 받고 싶은 선물 베스트 10에 뽑혔다고 합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애인이랑 같이 나눠 먹기 딱 좋으니까.”

“하긴 그렇습니다. 후후후!”

남녀가 양쪽에서 아삭아삭 씹어 먹다가 키스까지 하는 과자.

이는 준영이 따로 전파하지 않았음에도 다들 알아서 잘 하고 있었다.

“이참에 제과 부서를 더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건 상무가 임원들과 논의해서 진행하세요. 아 참, 이번에 입사한 신입 사원들은 일을 잘하고 있습니까?”

“예, 다들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 확인을 해 봐야겠다.

그리 마음먹은 준영은 집무실을 나가 여러 부서를 살펴보았다.

그러다 윌리엄 터너가 일하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얀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죄송해요, 보스.”

“여기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겠냐?”

“예, 명심할게요, 보스.”

“으이구, 진짜!”

마침 터너는 신입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꽤 친분이 있는 걸 봐서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 같이 뒷골목에서 어울리던 부하인 듯싶었다.

준영이 피식 웃으며 바라보고 있을 때, 헨리 상무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터너가 질 낮은 녀석들을 끌어들인다고 해당 부서 책임자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혹시 사고 터진 거 있습니까? 다른 근로자들하고 다퉜다거나.”

“아직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에 밖에서 불한당들과 어울리는 걸 보면…….”

준영은 손을 들어 헨리의 말을 중지시켰다.

“됐습니다. 아직까지 없었다면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함부로 확신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괜찮아요. 터질 일이 있었으면 진작 터졌을 테니까.”

준영은 윌리엄 터너를 믿었다.

미래에 자신을 키워 준 은인이기도 하지만, 맨유 경기 때 항상 찾아와서 응원을 보내 주는 열성 팬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는 준영이 전수하는 미래의 서포팅 문화도 곧잘 받아들여 전파하곤 했다.

“혹시 터너 씨와 관련해서 지나치다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업무를 마친 준영은 차를 몰고 위딩턴 여학교로 향했다.

수업 종료 시간이 되었기에 자매들을 마중 가기 위해서였다.

“와, 존 Y. 리잖아.”

“저기요, 사인 좀 해 주세요.”

하교 시간이 되자, 여학생들이 반색을 하고서 준영에게 몰려들었다.

예전에는 신기하고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확실히 달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에, 사업가로 성공한 유명 인사였으니까.

덕분에 준영은 자매들이 나오기 전까지 여학생들에게 잡혀 사인을 해 줘야 했다.

“준은 인기 폭발이네요.”

“요청을 마냥 무시할 순 없으니까. 냉담하고 거만하게 굴다 인심을 잃는 경우도 많이 봤고 말이야.”

리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앤지는 그냥 넘어가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 것치고 은근히 즐기는 것 같던데?”

“즐기다니, 뭐가?”

“마치 플레밍의 신작에 나오는 호색한 악당 같다고 할까나.”

“뭐?”

어리둥절해하는 준영에게 앤지는 새로 나온 신작 소설을 보여 줬다.

이안 플레밍의 007 시리즈 여섯 번째 이야기 ‘Dr. Lee’.

앞쪽에 나온 캐릭터 소개와 삽화를 본 준영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게 뭐야, 도대체!”

***

소벽 양우조 선생은 미국에서 안창호 선생의 흥사단 창립 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 독립운동가입니다.

본문에 함께 언급된 김용운과 김동신 이 두 사업가는 일찍 해외 시장 개척을 진행했을 정도로 한국 제화 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훗날 이들이 세운 회사가 엘칸토, 금강제화로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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