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31화 (131/400)

Round 131. 적반하장

1958년 4월 둘째 토요일.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토트넘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40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홈팀인 토트넘은 주장 대니 블란치플라워를 중심으로 로버트 A. 스미스, 테리 메드윈, 에디 클레이튼, 토미 하머를 공격진에 내세웠다.

이에 맞서는 맨유는 바비 찰튼과 로니 코프가 중원을 지키고, 공격진에는 알렉스 퍼거슨, 숀 코너리, 어니 테일러가 출전했다.

그리고…….

“존 Y. 리다! 리틀 존이 출전했어!”

“괜찮은 건가? 아직 출전하자면 3주는 더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붉은 레플리카의 맨유 서포터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의 눈빛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그를 주시하는 건 토트넘 쪽도 마찬가지였다.

“저 꺽다리 녀석, 오늘은 공격 쪽으로 나오려나 본데?”

“발재간도 좋은 놈이니까, 슛이나 패스로 공격에 무게를 더하겠다는 거겠지.”

“절대 방심해선 안 돼. 봐주지 말고 거칠게 밀어붙여.”

양 팀 주장, 대니와 준영은 심판 앞으로 와서 동전 던지기로 진영을 정했다.

그렇게 정한 뒤, 준영은 심판에게 정중히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오늘 경기,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해도 소용없어.”

심판의 냉랭한 대꾸에 준영은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심판 위원회에서 ‘특별한(Special)’ 지시를 받았을 테니까. 안 그렇습니까?”

움찔.

‘Special’을 강조하는 준영의 말이 심판의 가슴을 푹 찔러 들어왔다.

그리고 그 말은 대니 블란치플라워도 들었다.

‘뭐? 설마 그런 거였어?’

요즘 안 그래도 동생 팀이 유달리 불리한 판정을 받고 있었다.

협회에서 의도적으로 유나이티드를 견제한다는 소문도 있고.

대니가 불쾌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당황한 심판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무슨 말이라니요. 심판 위원회에서는 공정하게 판정하라고 이르지 않던가요? 요즘 판정 문제가 언론에서 시끄러우니 당연히 그렇게 지시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심판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놈은 뭔가 알고 있다.

마치 짐작했다는 투로 뻔뻔히 둘러대고 있지만,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분명 뭔가 알아내고 압박을 하는 게 틀림없다.

“오늘 기자들도 많이 모였네요. 평소보다 훨씬 많아 보여요.”

“…….”

“별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하면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판정 똑바로 해라.

그렇지 않으면 까발릴 것이다.

이런 준영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심판은 어리석지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시합 준비나 해!”

“눼눼, 알겠습니다.”

준영이 돌아서 가 버린 후에도 심판은 여전히 식은땀을 지우지 못했다.

덕분에 휘슬이 울리는 시간도 예정보다 늦어져 버렸다.

***

경기가 시작되자 맨유는 초반부터 과감하게 공격을 전개했다.

토트넘 측의 예상대로 맨유의 공격은 준영이 주도했다.

중원에서 수비를 바비 찰튼과 로니 코프에게 맡기고, 상대 진영으로 파고드는 공격수들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찔러 주었다.

“역시 쓸모가 많은 녀석이야.”

지미 머피 코치는 서포터들처럼 기대와 걱정 반반으로 준영의 플레이를 보고 있었다.

일전에 말한 대로 그는 4월 일정에서 준영을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던 데다, 본인도 뛰고자 하는 의욕이 강해 출전시키게 되었다.

‘잘하지 않아도 돼. 제발 다치지나 마라.’

머피가 조마조마해하는 사이, 바비 찰튼이 끊어 낸 공이 준영에게 전달되었다.

그가 공을 잡자 바로 토트넘 선수들이 거칠게 차징을 걸었다.

“저 자식들! 다친 오른쪽 팔을 노리잖아!”

“이런 비겁한 놈들!”

다행히 준영은 어깨싸움에 휘말리지 않았다.

능숙하게 상체를 비틀어 상대의 차징을 흘려 내면서 동시에 발바닥으로 공을 굴려 마크를 잽싸게 뿌리쳤다.

마치 성난 황소를 농락하는 투우사 같은 몸놀림.

“우와아아아-!”

맨유 서포터들에게서 나오던 우려는 곧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된 놈이야?”

“저 정도로 상체를 기울이고 쓰러지지 않다니!”

“아니, 그보다 순간적인 스피드가…….”

도대체 어떤 훈련을 하기에?

토트넘 선수들이 의아해하는 사이, 준영이 찔러 넣은 패스가 측면으로 달려가던 알렉스 퍼거슨의 앞으로 정확히 전달되었다.

알렉스가 발끝을 뻗어 공을 잡자마자 상대 수비수 론 헨리가 앞을 막아섰다.

‘실패하더라도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파울을 얻어 내라고 했지?’

프리킥 기회를 잡으면 킥이 뛰어난 준영이 그것으로 득점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과감하게 플레이하라!

이 같은 머피 코치의 지시에 알렉스는 충실히 따랐다.

그래서 상대 문전을 향해 과감하게 달려 나갔다.

“어딜!”

론 헨리가 슬쩍 발을 내밀어 알렉스가 치고 나가던 공을 걷어 냈다.

그와 동시에 알렉스가 발에 걸려 나뒹굴었다.

“파울이에요! 저 녀석이 발로 걸었다고요!”

그러나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딱히 토트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알렉스가 약간 늦게 발에 걸린 걸 보았기 때문.

“쯧쯧, 퍼기야, 그런 어설픈 연기로는 파울을 따낼 수 없어.”

숀의 핀잔에 알렉스는 입을 쑥 내밀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데요?”

“좀 이따 내가 하는 걸 잘 봐.”

알렉스에게 그리 일러둔 숀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공은 다시 토트넘 쪽으로 넘어갔다.

빠르게 드리블을 해 가던 대니 블란치플라워는 바비 찰튼의 마크가 들어오자, 발바닥으로 공을 굴리며 몸을 빙글 돌렸다.

‘스트레인지 룰렛?’

‘놀랐냐? 지난번에 너희 주장 놈에게 배운 기술이다.’

1월에 준영이 토트넘에서 잠시 훈련할 때 알려 준 기술 마르세유 턴, 아니 스트레인지 룰렛.

그러나 대니는 마지막에 성공하지 못했다.

돌아가는 방향을 읽은 바비가 정확히 가로막고 공을 빼낸 것이다.

“어라?”

“우린 훈련할 때마다 보는 기술이거든요.”

몇 번 당하다 보면 막는 요령이 생긴다. 거기다 준영은 마크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줬다.

바비는 냉큼 공을 준영에게 패스했다.

패스받기 무섭게 날아든 태클을 뛰어넘어 피한 준영은 살짝 공을 띄워 중앙의 숀 코너리 쪽으로 보냈다.

가슴으로 공을 떨어트린 숀은 상대 페널티 박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수비수가 발을 뻗으며 부딪쳐 오자, 그는 그대로 떠밀려 나동그라졌다.

“끄아악!”

선명한 비명과 고통스러운 몸짓.

화들짝 놀란 양 팀 선수들은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한발 늦게 심판이 휘슬을 불고 달려오자, 파울을 한 선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심하게 친 건 아니었어요.”

“무릎으로 찍은 것 같던데?”

“그게, 부딪친 건 맞는데…….”

“그러니까 찍었다 이거군.”

상대의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알렉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 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봤어? 이 정도 연기는 해 줘야 파울이 나온다고.”

“예? 아니, 그럼…….”

알렉스는 어이가 없었다.

진짜 심하게 다친 줄 알았건만.

“어설프게 걸린 척하면 안 돼. 맞는 척이 아니라, 적당히 맞아 줘야 사람들이 진짜로 받아들이는 거야.”

결론은 파울은 맞다는 것.

상대 선수도 가격 자체는 인정했다.

사실 그냥 무시하고 그대로 플레이해도 되는 수준이지만, 후학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생각에 연기력을 보였던 것이다.

‘시뮬레이션 액션도 할리우드 배우가 하니 급이 다르다니까.’

숀이 라인 밖에서 치료(?)를 받는 사이, 준영은 프리킥 처리를 위해 공 앞에 섰다.

거리는 약 33, 아니 34미터.

좀 멀지만, 직접 슛이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다.

일단 호흡을 가다듬은 준영은 불어오는 바람의 풍향과 세기를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공을 향해 달려가면서 슛!

뻐엉-

묵직한 가죽 공이 강한 추진력을 받고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회전하지 않고 고속으로 날아가던 공은 골키퍼의 양손 사이를 세차게 뚫고 지나갔다.

“Goal!”

“역시! 한 골 넣을 줄 알았다니까!”

전반 22분.

준영의 골로 맨유는 적진에서 리드를 잡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충분히 여유롭게 경기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토트넘 원정에서 1 대 0의 신승을…….」

불쾌한 소식에 스탠리 루스는 바로 라디오를 껐다.

“벌레 같은 놈들 같으니!”

일부러 손을 썼건만, 놈들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꾸역꾸역 상위권에 매달려 있었다.

거기다 FA컵은 결승 진출 확정.

어깨 탈골 부상을 입었다는 빌어먹을 노란 원숭이는 오늘 복귀해서 골까지 넣었다.

“도대체가 주심으로 나간 놈들은 뭘 하는 건지!”

판정이 논란이 되는 건 알고 있다.

언론에서도 떠들고 있고, 얼마 전에 인터뷰도 했었으니까.

그래서 심판들도 몸을 사리는 모양인데, 이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적당히 손을 쓰는 게 그리 어렵단 말인가?

“언론이 떠들어 봤자 증거도 없잖아. 그냥 무시하면 되는 것을!”

팬들이 시끄럽게 군다 해도 마찬가지다.

자기들 팀이 지거나 불리하다 싶은 판정을 받으면 조작이니 매수니 떠드는 건 일상다반사니까.

이슈가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

대체 뭐가 그리 겁이 난단 말인가!

“망할, 한잔하지 않곤 못 견디겠군.”

시간도 늦었겠다, 루스는 자주 들르는 바(Bar)에 가서 목을 좀 축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타는 속이 진정되지 않을 테니까.

“어서 오십시오, 총무님.”

웸블리 근방에 있는 칵테일 바.

단골인 그가 오자, 바텐더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카운터 앞의 빈자리에 앉은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주문을 했다.

“언제나 마시던 걸로.”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짝 황금빛을 띤 러스티 네일(Rusty Nail) 한 잔이 나왔다.

잔을 든 루스가 그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 바텐더가 또 한 잔을 건넸다.

“응? 마티니 아닌가. 주문한 적이 없는데?”

“저쪽에 계신 신사분이 총무님이 오시면 드리라고 했습니다.”

누가 자신에게 술을 산단 말인가.

루스는 바텐더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자리 잡고 있던 청년을 본 루스는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너, 너는…….”

“오랜만입니다, 총무님.”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장신의 동양인 청년, 그는 바로 준영이었다.

루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울긋불긋하게 변했다.

“네, 네놈이 왜 여기에……?”

“그야 오늘 런던에서 경기를 했으니까요.”

경기를 마치고 돌아간 동료들과 달리, 준영은 남았다.

미스터리 푸드 컴퍼니 일로 런던에서 처리할 업무도 있고, 또 이렇게 루스와 한번 만나 봐야 할 일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온 거냐? 설마 내 뒤를 캔 건가?”

“네, 존경하옵는 총무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요.”

루스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준영을 보고 더욱 얼굴을 붉혔다.

감히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동석을 하다니!

“내 뒷조사를 했다고?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냐!”

“목소리 낮추십시오. 우리 말고 다른 분들도 있잖습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던 준영.

그는 막 언성을 높이려던 루스에게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아니면 목소리를 낮추기 힘들 만큼 찔리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뭐, 뭐라……?”

“동양에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이 있습니다. 도둑놈이 매를 들고 성질을 낸다는 뜻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루스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녀석이 뭔가를 알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

요즘 K리그도 판정 때문에 시끄럽죠.

연이은 오심에 휘말린 수원 FC 박지수 선수가 SNS에 불만을 드러냈다가 300만 원 징계를 받았죠.

선수의 불만은 권위에 맞선다면서 징계를 내렸으면서, 정작 오심을 저지른 심판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처벌하는지 의문입니다.

경기를 보면 분명히 특정 팀 편드는 심판들 있거든요.

과거에 오심을 저질렀다 퇴출되었는데 은근슬쩍 복귀한 심판도 있고요.

이런 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닙니다.

2019년 아시안컵에서 편파 판정을 저질렀다 대회 중에 퇴출된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심판은 같은 해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그대로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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