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29화 (129/400)

Round 129. 최고의 선물

‘찬스!’

페널티 박스로 들어왔던 케니 모건스는 바로 슈팅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건 페인트.

태클하는 수비수와 각을 좁힌 골키퍼까지 낚아 버린 그는 중앙으로 쇄도해 들어온 바비 찰튼의 발 앞에 공을 밀어 주었다.

‘들어갔다!’

살짝 터치만 해도 그대로 득점.

그런데 바비가 발끝을 대려는 순간, 선더랜드 수비수 찰스 헐 리가 뒤에서 발을 걸었다.

그 바람에 바비는 나동그라졌고, 공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버렸다.

“반칙이다!”

“맞아. 페널티킥 감이라고!”

선더랜드 팬들조차 단체로 머리를 움켜쥘 정도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파울.

하지만 심판의 판정은 영 딴판이었다.

그는 파울을 불기는커녕, 쓰러진 바비에게 일어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우- 우우-!”

맨유 서포터들이 거센 야유를 보냈다.

그걸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맥주 캔을 던지거나, 필드로 진입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 이거야 원.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뒤끝이 심해도 정도가 있지…….”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심판의 판정.

머피 코치나 준영은 축구 협회 루스 총무의 수작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언론에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맨유에 불리한 판정이 내려지는 것을 두고 배후를 의심하고 있었다.

‘유나이티드가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동정적인 판정을 해 줘서는 안 됩니다. 그런 짓은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을 모독할 뿐이지요.’

얼마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루스 총무는 이런 뻔뻔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기사를 본 준영은 자신이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달았다.

‘수정 펀치가 아니라 헥토파스칼 킥을 날렸어야 했어!’

아무튼 지금 심판에게 항의하고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 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그랬다간 몰수 패를 당하고 말 테니까.

‘아무튼 뭔가 작전을 바꾸지 않으면…….’

시계와 필드를 번갈아서 보던 준영은 머피 코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선 떡밥을 던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만?”

“떡밥이라…….”

“선더랜드도 이대로 끝나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까요.”

머피도 준영의 말에 동의했다.

저쪽도 강등을 피하려면 어떻게든 승리를, 더 많은 승점을 따내야 할 테니까.

“근데 떡밥을 던진다고 쟤들이 쉽게 물까? 바보가 아닌 이상 의도적으로 라인을 내리는 까닭을 눈치챌 텐데 말이야.”

“물론 그렇죠. 그러니까 반대로 해야죠.”

머피는 준영의 말뜻을 금방 이해했다.

그는 곧장 필드에 있는 선수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엥? 전진하라고?’

‘아니, 그러다 잘못하면…….’

선수들은 내심 불안했지만, 코치의 지시에는 충실히 따랐다.

“어쨌거나 이겨야 하니까.”

“그래, 다섯 경기 무승으로 끝낼 순 없지.”

“그보다 이겨야 승리 수당을 받는다고!”

후반 40분대에 들어 맨유의 포메이션이 바뀌었다.

그 변화를 본 선더랜드 측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5?”

“맙소사, 피라미드 포메이션이잖아. 저 케케묵은 전술을…….”

“유나이티드도 어지간히 이기고 싶은 모양이군.”

수비 둘, 하프백 셋, 공격수 다섯.

19세기에 탄생해, 1930년 첫 번째 월드컵까지 사용된 고전적인 전술.

굉장히 공격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수비에 허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선더랜드 입장에서는 훤히 드러난 맨유의 측면 뒷공간에 눈길이 갔다.

‘저 뒷공간에 제대로 파고들기만 하면……!’

‘어차피 시간도 없어. 한 점만 따내면 승부가 결정돼.’

선더랜드 선수들은 맨유의 양쪽 측면 공간을 공략하기 위해 움직였다.

머피 코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양날의 검.

적은 수비로 상대 공격을 잘 저지해서 역습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그대로 패망할 수 있다.

“걱정 마세요. 선더랜드에는 패스에 뛰어난 선수가 없으니까.”

“그래, 알고 있지만…….”

“어차피 저쪽에서 할 만한 짓도 우리 측면 공간을 노려 롱 패스를 밀어 넣는… 저 봐요. 저런 식이라니까요.”

선더랜드 수비수가 맨유 측면 빈 공간으로 달려 들어가는 자기편 공격수를 향해 길게 롱 패스를 올려 보냈다.

“저런 롱 패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보내는 건 쉽지 않아요. 저 정도면 빌이 충분히 헤딩으로 커트할…….”

“이런, 빌이 놓쳤어!”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일까.

빌 포크스는 낙하지점을 잘못 보고 점프를 해 버렸다.

그가 흘린 공을 선더랜드 공격수가 냉큼 주워서 맨유 골대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안 돼! 제발……!’

몇 초 안 되는 시간.

준영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사이, 일대일 기회를 잡은 선더랜드 공격수가 슈팅을 날렸다.

그 슈팅은 황급히 각을 좁힌 해리 그렉의 발을 맞고 튕겨 났다.

“휴, 살았다.”

“해리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정말 해리에게 압도적인 감사를 해야 할 판.

아무튼 공은 맨유 쪽으로 넘어갔고, 이것은 하프백들의 발을 거쳐 선더랜드 진영으로 넘어갔다.

‘중앙이 텅 비었구만.’

맨유의 뒷공간 공략에 정신이 팔린 탓인지, 선더랜드는 중원에서 맨유의 패스를 제대로 막아 낼 선수가 많지 않았다.

빠르게 주고받은 패스는 바비 찰튼의 발을 거쳐 페널티 박스로 파고들던 어니 테일러에게 연결되었다.

‘좋았어!’

페인팅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슛!

골키퍼의 펀칭을 맞고 뜬 공을 벼락같이 쇄도해 들어간 콜린 웹스터가 헤딩으로 밀어 넣었다.

공이 그물을 흔드는 순간, 맨유 측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역전 골이다!”

“드디어 들어갔어!”

잠시 골 셀레브레이션을 즐긴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서둘러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얼마 안 남은 시간, 이제 실점하지 않으며 잘 버텨야 한다.

“다들 방심하지 마. 아스톤 빌라전 때처럼 마지막에 통한의 골을 먹어서는 안 돼.”

“물론이지! 오늘은 반드시 이긴다!”

똘똘 뭉친 선수들은 이후 선더랜드의 발악과도 같은 맹공을 잘 막아 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달콤한 승리를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

선더랜드전을 끝낸 다음 날 아침.

준영은 보호대에서 오른팔을 빼서 조심스럽게 어깨를 움직여 보았다.

“좀 어때요?”

곁에서 지켜보던 리즈가 물었다.

“그게, 원래보다 60∼70퍼센트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직 완벽하다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야.”

상태가 나아진 후로 준영은 조금씩 어깨를 움직였다.

회복 운동을 한 초기에는 어깨가 굳어서인지 움직일 때마다 아팠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니 많이 좋아졌다.

“예상보다 빨리 나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완쾌되는 데는 2∼3주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그럼 아직 경기를 못 뛰는 거예요?”

“글쎄,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지만…….”

지난번에 머피 코치가 말했다.

4월은 생각하지 말라고.

5월의 FA컵 결승과 이후 치러질 유러피언 컵 4강전을 신경 쓰라고.

하지만 그 전에 경기에 뛸 수 있으면 뛰고 싶었다.

요즘 리그 경기에서 팀이 고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뛰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으려니까, 몸이 근질근질해서 못 참겠더라고.”

“역시나 축구 선수라서?”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병상에 있는 던컨이나 다른 친구들의 심정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부상으로 쉬는 동안 마냥 답답하지는 않았어.”

오른팔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니, 그다지 쓸 일 없던 왼팔, 왼손 사용에 제법 능숙해졌다.

회사 일도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고 여러 가지 생각할 시간도 얻었다.

“미뤄 뒀던 책들도 읽었고 말이야.”

“식사 시간 때 시중받은 건 어땠어요?”

“그거야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지.”

준영은 부상 초기 때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때는 진짜 오른팔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서 밥을 먹기도 좀 불편했다.

그때 리즈가 곁에서 음식을 썰어 주거나 직접 떠먹여 주었다.

소위 말하는 ‘앙∼’이란 상황.

그 다정한 모습에 알버트에게는 따가운 눈총을 좀 받았고, 앤지나 카린에게서 놀림을 받기도 했다.

“아 참, 곧 있으면 카린의 생일이구나. 생일 선물을 마련해야겠는데…….”

“따로 생각해 놓은 거 있어요?”

“글쎄, 그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에게 뭐가 좋을까?”

장난감이나 인형을 사 줄까 생각을 했지만, 그건 너무 성의가 없을 것 같았다.

책이나 학용품 같은 것도 좀 그렇고.

“안 그래도 오후에 카린의 선물 사러 가 볼 생각인데, 같이 둘러보는 건 어때요?”

“그럴까?”

찾다 보면 선물로 줄 만한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판단한 준영은 오후에 리즈와 함께 시내에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

오후가 되자, 준영과 리즈는 맨체스터 시내로 나왔다.

그들이 들른 곳은 시내의 유명 완구점.

거기엔 인형을 비롯해서 각종 장난감과 자전거, 카드와 퍼즐 등 아이들이 좋아할 것들이 잔뜩 있었다.

‘시대가 1950년대라 그런가? 앤티크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걸.’

태엽으로 가는 자동차나 기차 등등, 이것저것 둘러보던 준영의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있었다.

‘제기랑 훌라후프도 있네.’

나2키 상호가 선명하게 찍힌 그 상품들을 보자니 준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의 주머니를 꽤 두둑하게 만들어 준 효자 상품들이었으니까.

“준, 이것 봐요. 준도 있어요.”

한쪽에서 상품을 살펴보던 리즈가 카드를 보여 주었다.

유명 축구 선수들의 사진을 박아 놓은 카드였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 중에 준영도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간략한 설명과 함께 소위 스탯이라 할 만한 항목들도 있었다.

테크닉, 스피드, 피지컬 등등.

별 5개가 만점이었는데, 준영은 피지컬만 만점일 뿐 테크닉은 별 4개, 스피드는 2개였다.

“근데 수치가 왜 이리 낮아? 나는 발도 빠른데.”

“준이 장신 선수니까 막연히 발이 느리다고 본 거겠죠.”

“그런가? 아무튼 어느 회사에서 만든 건지 보고 수정 요청을 해야겠군.”

준영은 계속해서 리즈와 함께 상품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한쪽에서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앙리?”

“오랜만이군. 오, 마드모아젤도 같이 온 건가?”

리즈를 본 앙리는 금방 반색을 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어쩐 일로 여기에 왔소? 혹시 카린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맞아요. 알고 계신 거예요?”

“후후, 그러니까 여길 찾은 거 아니겠소.”

으스대던 앙리는 자신이 고른 카린의 선물을 보란 듯이 보여 주었다.

“길버트 아저씨의 원자력 에너지 실험실?”

“알프레드 길버트라는 미국인 발명가가 내놓은 과학 실험 장난감이지. 호기심 많은 꼬마 아가씨에겐 딱이다 싶더군.”

호기심 어린 기색을 보이는 리즈와 달리 준영은 정색, 아니 경악을 하고 말았다.

“야 인마, 너 미쳤어? 그런 방사능 덩어리를 선물하겠다고?”

“왜? 이거 미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장난감인데…….”

“시끄러! 생일날 초상 치르게 할 생각 아니면 당장 다른 걸 골라!”

서슬 퍼런 준영의 기세에 앙리는 과학 실험 장난감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말았다.

깜짝 놀란 건 리즈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그렇게 위험한 건가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난감 중에 당당히 1위를 차지했지.”

“어머, 세상에…….”

정말 와일드한 시대다.

방사능 물질을 실험하는 장난감을 내놓다니!

‘휴, 저런 걸 파는 곳에서 과연 좋은 선물을 찾을 수 있으려나?’

회의적인 마음이 치밀어 오르던 그때, 준영의 눈에 번쩍 띈 상품이 있었다.

“그래, 이거라면 카린도 좋아할 거야!”

***

작년에 ‘위 캔 게임’이라고 안정환과 이을용 두 선수가 피파 온라인 4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죠.

그때 2002년 월드컵 멤버들 스탯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기도 했지요.

번외로 일본에 이가와 게이(…;;;)라는 이름의 야구 선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프로 야구 선수가 된 이유가 자기가 즐겨 하는 ‘실황 파워풀 프로 야구’라는 게임에 등장하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결국 소원대로 게임에 등장했는데, 스탯이 형편없는 것에 분노해서 열심히 훈련, 나중에 팀의 에이스가 되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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