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17화 (117/400)

Round 117. 신의 손

실점 위기를 모면한 맨유는 해리 그렉의 롱 킥으로 다시 공격을 전개했다.

알비온의 빈 공간에 제대로 떨어진 공을 콜린이 잡아 내 숀에게 패스.

하지만 숀은 돌아서서 슈팅을 날리는 데 실패했고, 뒤쪽에서 접근해 온 바비 찰튼에게 보냈다.

뻐엉-!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바비는 과감하게 중거리 슛을 날렸다.

기습적인 슈팅을 예상하지 못했던지, 알비온의 골키퍼 지미 샌더스는 깜짝 놀라 펀칭으로 공을 쳐 냈다.

그런데 리바운드 볼이 쇄도하던 알렉스 퍼거슨의 앞에 떨어졌다.

‘럭키!’

알렉스가 반색을 하며 슈팅을 날리려는 순간, 수비수 도날드 하우가 황급히 태클로 공을 걷어 냈다.

“악! 아까비!”

“흥, 어림도 없다, 꼬마야.”

큰소리를 뻥뻥 치던 도날드도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스코틀랜드 애송이의 위치 선정 능력은 정말 뛰어났으니까.

“다들 정신 차려!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어!”

“마크할 놈을 놓치지 마!”

이어지는 코너킥 상황.

알비온 선수들은 로날드 엘런 한 명만 남겨 두고 전원 페널티 박스에 들어왔다.

높이에서 유나이티드가 앞서고 있었기 때문.

190대의 장신인 이준영, 188센티미터인 숀, 여기에 알렉스 퍼거슨과 하프백인 프레디 굿윈에 로니 코프 역시 180대의 장신이었다.

‘코너킥만 제대로 오면 선제골은 우리 거다.’

그러나 준영의 예상과 달리 문전에서의 몸싸움은 그리 쉽지 않았다.

준영 역시 데릭 케반의 마크에 막혀 고전하고 있었다.

‘젠장, 조그만 놈이 뭐 이리 힘이 세?’

‘내가 괜히 탱크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데릭과 몸싸움을 하는 사이, 콜린이 올린 코너킥이 골대 앞으로 떨어졌다.

낙하지점을 확보하려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숀이 떨어지는 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 닿기 직전, 샌더스 골키퍼가 펀칭으로 공을 쳐 냈다.

“막았나?”

“아냐. 멀리 가지 않았어!”

페널티 아크 쪽에 떨어진 공은 바비 찰튼이 잡았다.

알비온 수비수들은 일제히 몸을 던졌다.

슈팅을 막을 의도였지만, 오히려 그 상황에서 바비는 슛이 아닌 패스를 찔러 넣었다.

공을 잡은 사람은 준영.

데릭의 마크에 쉽사리 돌아설 수 없었던 그는 다리 사이로 공을 통과시키다가 뒤꿈치로 살짝 방향만 돌려놓았다.

완전히 허를 찌른 슈팅.

공은 알비온의 골대 왼쪽 구석으로 그대로 굴러 들어갔다.

“뭐야? 골인?”

“아니, 어떻게 들어간 거지?”

대부분의 선수나 관중들은 선제골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냥 바비 찰튼의 슛(?)이 굴절되어 들어간 줄 알았을 정도.

“대단한데, 바비! 복귀하자마자 골이라니!”

“아니, 그게, 슈팅은 아니었는데…….”

얼떨결에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게 된 바비 찰튼은 준영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마지막에 그가 뭔가 했던 것 같았으니까.

“복귀전 선물이다.”

“존, 그건 역시…….”

“네가 만든 골이 맞아.”

준영은 바비의 어깨를 툭 치고 자기 위치로 되돌아갔다.

잠시 준영을 바라보던 바비도 이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끝나면 한턱 쏘리라 다짐하면서.

***

어이없는 실점.

맨유의 선제골이 알비온 입장에선 딱 그랬지만, 다행히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아직 전반전이 30분 넘게 남아 있었으니까.

“좀 더 침착해야 했는데…….”

“애송이들이라고 해도 피지컬은 얕볼 수준이 아니야. 좀 더 조심하지 않으면!”

다들 실점은 자신들의 실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준영의 감각적인 슛을 눈앞에서 본 데릭 케반은 달랐다.

‘우연이 아니었어. 분명히 의도하고 찬 것이었지.’

빠르게 날아든 송곳 같은 패스를 순간적으로 그렇게 처리하다니!

도대체 저 동양인의 볼 감각은 어떻게 된 수준이란 말인가!

“데릭! 뭐 하고 있는 거야? 패스가 갈 땐 같이 움직여 줘야지!”

바비 롭슨의 외침에 데릭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방금 엘런 쪽으로 패스가 갈 때, 딴생각을 하느라 자신은 제대로 원호해 주지 못했다.

그 바람에 맨유 수비수들이 엘런에게 달려들어 손쉽게 공을 빼앗았다.

‘쳇! 경기 중에 무슨 멍청한 짓을…….’

되찾으러 쫓아갈 틈도 없이 맨유는 빠른 역습을 전개했다.

측면 빈 공간으로 달리는 콜린 웹스터에게 제대로 패스가 들어갔고, 이것이 페널티 박스 쪽으로 크로스로 이어졌다.

그리고 무섭게 쇄도해 들어간 숀이 다이빙 헤딩슛으로 마무리.

하지만 공은 골대 옆으로 지나쳐 버렸다.

“으아아, 방금도 위험했다.”

“유나이티드 놈들, 전력이 약해진 거 맞나?”

연이은 위기에 알비온 팬들은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달리 맨유 서포터들은 신나게 함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신 차려! 이대로 90분 내내 끌려다니고 싶냐?”

보다 못한 알비온의 감독 빅 버킹엄이 필드 가까이 다가와 호통을 쳤다.

공을 가진 롭슨은 일부러 수비진에 공을 돌렸다.

동료들이 침착해질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고, 맨유 선수들을 전방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저 녀석들도 우리와 비슷한 부류니까 말이야.’

포메이션에 차이는 있지만, 풀백이나 센터백들이 틈만 나면 공격 가담을 하는 점은 비슷했다.

공격 시 수적인 우위를 위해 라인을 올리면 그만큼 뒤가 비기 마련.

그 빈틈을 노리면 동점 골을 얻기 쉬웠다.

‘문제는 이놈들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야.’

선제골을 얻은 맨유 입장에선 딱히 급할 게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현재 공세로 나오는 알비온의 뒷공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유인이 되지 않아? 그럼 흔들어 줄 수밖에.’

견고한 적의 전열을 무너트리려면 강력한 돌파 수단이 있어야 한다.

중세의 기사나 현대의 전차와 같은.

그리고 알비온에는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선수가 있었다.

“데릭이 공을 잡았다!”

“가라, 데릭! 유나이티드 놈들을 싹 다 밀어 버려!”

홈팬들의 성원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데릭은 공을 치고 거침없이 유나이티드 진영을 뚫고 들어갔다.

도중에 스탠 크루거나 로니 코프 등의 마크를 받았지만, 몸싸움에서 그들을 가볍게 밀어 버리고 맨유 문전까지 당도했다.

“더 이상은 못 간다.”

“흥, 네 녀석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준영이 달라붙자, 데릭은 더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났다.

별다른 경합 없이 물러나는 데릭의 움직임에 준영은 냉큼 의도를 파악했다.

‘날 밖으로 빼내려는 수작이군. 하지만 그 수법은 통하지 않아.’

준영이 비우고 떠난 빈 공간은 빌 포크스가 바로 메웠다. 그리고 수비진에서 생긴 다른 공간도 프레디와 바비 찰튼이 내려와서 채웠고.

‘분명히 너희는 좀 더 마크가 헐거운 반대편 측면을 노리겠지.’

준영이 예상한 대로 데릭은 뒤쪽의 같은 편에게 패스를 건넸고, 곧바로 반대편 측면에 있는 롭슨에게로 연결되었다.

‘저 상황에서 선택은 돌파를 시도, 아님 중앙으로 패스나 크로스겠지.’

시시하게 뒤로 공을 돌리진 않겠지.

준영은 롭슨이 직접 돌파해 올 것이라 판단했다.

이미 앞서 측면에서 이안 그리브스를 제쳐 버린 적이 있으므로.

그리고 예상대로 롭슨은 돌파를 시도했다.

“이안! 파울하지 마!”

“안쪽으로 들어오지만 못하게 해!”

슈팅 각을 좁히면 롭슨의 선택지도 그만큼 좁아진다.

뒤쪽에 따라온 동료에게 패스하거나, 중앙으로 크로스를 보내거나.

아마 데릭의 저돌적인 돌파를 생각하면 크로스를 노릴 듯싶었다.

‘역시 크로스군!’

낮고 빠른 크로스.

하지만 대응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빌 포크스는 곧장 오른발로 크로스를 걷어 냈다.

그런데 그것이 때마침 쇄도하던 로날드 엘런에게 걸려 버렸다.

“앗!”

공을 잡아챈 엘런은 일말의 주저 없이 슈팅을 날렸다.

지면을 좍 깔며 날아간 슈팅은 해리 그렉의 옆구리를 스치며 골대 안에 박혔다.

“와아아아아-!”

호손스 경기장이 크게 들썩였다.

그와 동시에 맨유 선수들도 폭발했다.

“손에 맞았잖아!”

“핸들링 파울이라고요!”

동점 골 직전, 빌 포크스가 걷어 낸 공은 엘런의 왼손에 맞았다.

빌뿐만 아니라 준영과 해리도 똑똑히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고개를 갸웃할 뿐.

“손에 맞았다고? 옆구리에 걸린 게 아니라?”

“손에 맞았어요. 골대 뒤에 있는 기자들도 다 봤다고요!”

21세기라면 VAR감.

하지만 지금은 오직 심판의 판정이 절대적이다.

그리고 오늘의 심판은 공정하지 않았다.

맨유 측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알비온의 동점 골은 그대로 인정되었다.

“아니 Cval, 뭐 저런 개자식이 다 있어!”

“Cval, 진짜 확 패고 싶구만!”

맨유 선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입으로 식빵을 씹어 댔다.

준영이 곧잘 내뱉는 이 찰진 단어는 지금처럼 열 받는 상황을 토로하기에 딱 좋았으니까.

“이걸로 확실해졌군. 지금 우린 11 대 12 상황이다.”

앞서 데릭의 파울도 눈감고 넘어갔던 점을 생각하면 고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노골적인 편파 판정은 안 하겠지만, 분명히 애매하거나 중요한 판정에서는 알비온의 편을 들 게 틀림없다.

“더럽고 불리한 상황인데 지고 싶지는 않구만.”

“지면 기분이 더 더러워질 것 같아.”

“죽어도 이겨야 해!”

신의 손을 묵인한 판정은 맨유 선수들에게 찬물이 아닌 기름을 끼얹었다.

그렇게 타오른 분노는 필승의 의지를 뜨겁게 피워 올렸다.

***

동점 골이 터진 후, 경기는 무척 뜨거워졌다.

어처구니없는 동점 골이 인정된 것을 보고 유나이티드 서포터들은 알비온이 공을 잡을 때마다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에라이, 더러운 놈들!”

“그런 식으로 골 넣으면 좋냐?”

“공에 손대고 싶으면 럭비나 농구를 해!”

이렇게 펄펄 뛰는 건 관중들뿐만이 아니었다.

준영과 맨유 선수들은 마치 상처 입은 짐승처럼 사납게 알비온을 몰아붙였다.

대놓고 파울을 남발하진 않았지만, 일단 경합 상황이 벌어지면 거침없이 어깨로 밀어붙이고 태클을 날려 댔다.

그런데 심판은 여기에 별다른 주의를 주지 않았다. 당연히 퇴장도 없었다.

‘젠장, 쓸데없는 짓은 해 가지곤.’

롭슨은 심판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판정에서 홈팀은 득을 보는 편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승부에 영향이 갈 만한 상황에서 이상한 판정이 나오면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이득을 봤다지만, 홈팀 선수들도 기분이 찝찝한 건 마찬가지.

심란하고 미안한 상태에서 상대의 거친 플레이가 날아들다 보니 경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편을 들려면 몰래 해야지.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치면 어쩌자는 거야.’

집중을 못하는 건 롭슨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데릭을 노려 올린 크로스는 곧바로 차단을 당하고, 맨유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공을 차단한 준영은 거침없이 알비온 진영으로 치고 들어왔다.

“저놈, 설마……?”

“설마가 아니라 진짜 저지를 놈이라고! 얼른 막아!”

아스날도, 최근에 셰필드 웬즈데이도 놈을 놔뒀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그 망신을 당할 수 없었던 알비온 선수들이 준영에게로 일제히 몰려들었다.

“마치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군.”

포위당하기 직전, 준영은 텅 빈 공간을 노려 패스를 찔러 넣었다.

그 패스는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총알같이 튀어 나가는 알렉스의 발 앞으로 정확히 전달되었다.

“역시 주장의 패스는 예술이라니까!”

깔끔한 패스를 시원한 돌파로 이어 간 알렉스는 순식간에 알비온 문전에 당도했다.

잔뜩 긴장한 골키퍼가 서둘러 각을 좁히며 나왔다.

일대일의 찬스.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

신의 손으로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멕시코 월드컵 8강에서 잉글랜드에게 핸드볼 골을 넣은 마라도나입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신의 손 사건은 1999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인데, 당시 수원 삼성의 샤샤가 연장전 골든골을 대놓고 팔로 밀어 넣었죠.

필드의 선수도, 관중도, TV 시청자들도 다 핸드볼인 걸 봤는데, 순바오제 심판은 자기는 못 봤다면서 이걸 그대로 골로 인정했습니다.

나름 챔피언 결정전이라 중립을 지킨다고 한국 심판이 아닌 중국 심판을 썼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판정이 나왔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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