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14화 (114/400)

Round 114. 불꽃의 전도사

숀 코너리의 동점 골로 전세는 유나이티드 쪽으로 기울었다.

미드필드에서 몸싸움에 밀리고, 숀 코너리의 포스트 플레이에 후방까지 불안해지자, 노팅엄은 좀처럼 전진하지 못했다.

그 틈을 타고 유나이티드는 맹렬히 공세를 퍼부었다.

“젠장, 마치 휘발유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구만!”

“저 스코틀랜드 꼬마를 막아!”

스탠 크루더가 밀어 준 패스를 받은 알렉스는 과감하게 돌진해 들어갔다.

함부로 태클을 할 수 없었던 수비수는 어깨싸움으로 밀어내려 애썼다.

“망할 꼬맹이 자식!”

“뭐래. 나보다 작은 게!”

당해 내지 못한 상대가 유니폼을 잡아채자, 알렉스는 그를 확 떠밀어 버리고는 슈팅을 날렸다.

골 그물이 시원하게 철썩이며 관중석에서 우레 같은 함성이 터졌다.

“역전이다!”

“어, 근데 파울이래.”

심판은 알렉스의 푸싱 파울을 선언했다.

당연히 노골.

알렉스는 펄펄 뛰며 심판에게 항의했다.

“왜요, 왜! 저 인간이 먼저 잡았는데!”

“당했다고 보복하는 건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야.”

“예? 그럼 제가 당한 건 인정하는 거죠? 그럼 페널티킥을… 캑!”

냉큼 달려가 알렉스의 목을 낚아챈 준영은 심판에게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애가 너무 의욕이 넘쳐서요.”

“교육 좀 단단히 시키도록 해! 다음번에 또 그러면 퇴장을 줘 버릴 테니까!”

심판을 보낸 뒤, 준영은 알렉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들었지? 불만스러워도 심판에게 함부로 대들지 마. 나도 너처럼 그러다 퇴장당한 적 있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팀이 떠안았고 말이야.”

“쳇, 알았어요. 하지만 경기 끝나면 분명히 따질 겁니다.”

“그러든가. 지금은 경기에 집중하고.”

겨우 알렉스의 불같은 성질머리를 진화시킨 준영은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편으로, 간담을 쓸어내린 노팅엄 선수들은 보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애송이라도 버스비의 아이라 이건가?”

“저 스코틀랜드 꼬마는 버스비 감독을 보지도 못했을걸.”

“어쨌거나,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거지. 저 꼬마가 박스에 들어오면 조심하라고.”

모처럼 공격에 나선 노팅엄은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유나이티드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공을 가진 선수 주변에 서너 명의 동료들이 함께 따라다녔다.

패스를 받거나, 마크하러 오는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견제하는 게 주변에 있는 이들의 역할이었다.

“무슨 미식축구 하냐?”

준영이 이 대열에 난입했다.

마치 덤프트럭처럼 공을 향해 달려들자, 노팅엄 선수들은 황급히 패스 플레이로 위험 지역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반대편 빈 공간에 들어오는 동료에게 패스.

경기장을 넓게 본 상당히 멋진 패스였지만, 도중에 빌 포크스에게 끊기고 말았다.

‘리틀 존에게… 아니, 반대쪽이다!’

준영의 주변에 노팅엄 선수들이 많은 걸 확인한 빌은 반대편에 있던 스탠 크루더에게 길게 패스를 보냈다.

시원하게 측면을 달려간 크루더는 중앙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숀 코너리를 노려 크로스를 올려 보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크로스는 노팅엄 골키퍼 찰리 톰슨에게 끊기고 말았다.

“아, 조금만 빠르게 공이 들어왔었더라도……!”

“그래도 방금 공격은 좋았다고!”

뭔가 터질 듯한 기미는 보이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흐름을 탄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이에 유나이티드 팬들은 쉬지 않고 응원을 보냈다.

가장 열광적인 건 골대 뒤에 있던 붉은 레플리카 군단.

유나이티드의 12번째 선수를 자처하는 그들의 끊임없는 함성과 들썩이는 율동은 마치 매스 게임처럼 아름다웠다.

물론 그건 유나이티드의 시선에만 그런 것이고, 노팅엄 선수들에게는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골을, 승리를 갈구하는 거대한 붉은 악마 같았던 것.

“또 공격이 들어온다!”

“웹스터다! 웹스터가 공을 잡았어!”

맨유 열성 팬들이 일제히 콜린 웹스터의 이름을 연호했다.

저도 모르게 흥이 오른 콜린은 숀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페널티 박스로 달려갔다.

어느덧 후반 80분대.

여기서 한 골 넣을 수 있다면 승리는 확정적일 터.

“어엇!”

삐익-!

아쉽게도 웹스터는 박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태클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아주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어 냈으니까.

그리고 유나이티드에는 마법사라 할 만한 키커가 있었다.

“존이야. 리틀 존이 해결해 줄 거야.”

“그래, 틀림없고말고!”

모두의 예상대로 준영이 프리킥을 차기 위해 나왔다.

9.15미터 떨어진 자리에서 쭉 벽을 늘어선 노팅엄 선수들은 잔뜩 긴장한 채 준영을 응시했다.

‘벽을 넘어서 올까, 아니면 기습적으로 지면에 깔아 찰까?’

톰슨 골키퍼는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긴장되기도 하지만, 등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관중들 때문에 정신이 산만했던 것.

하지만 상대는 그의 이런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발을 구르다 공을 향해 달려간 준영은 오른발 슛을 날렸다.

‘감아 차기라고?’

수비벽을 살짝 넘어 골대 왼쪽으로 떨어지는 인프런트 킥.

톰슨은 냉큼 몸을 날렸다.

쭉 뻗은 왼손에 공이 닿은 직후, 벼락같이 달려든 유나이티드의 애송이 공격수가 발을 쭉 뻗어 공을 골대 안에 밀어 넣었다.

“터졌다아아아아-!”

“해낼 줄 알았다, 이놈들아!”

거세게 폭발하는 환호성과 함께 모자와 머플러, 맥주 깡통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래, 이것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타올라 결국 상대를 집어삼키고 마는 불꽃같은 저력.

다시 보기 힘들 거라 생각했던 그 뜨거운 열정은 아직 살아 있었다!

“다들 잘했어! 이길 수 있어! 그러니 끝까지 버티자!”

방금 중요한 역전 골을 견인한 준영이 연방 박수를 치며 동료들을 계속 독려했다.

필드에서 떠난 이들의 마음을 이어받은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안고 있는 불꽃을 나누어 주었다.

***

<제왕은 건재. 맨체스터U, 노팅엄을 2-1 제압!>

<캡틴 리, ‘보라, 유나이티드는 약해지지 않았다!’>

스포츠 신문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급기야 분통을 담은 주먹이 탁자 위로 떨어졌다.

쾅-!

필통이 쓰러져 펜이 책상과 바닥을 굴렀지만, 자리의 주인은 거기에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그의 충혈된 두 눈은 스포츠 면에 실린 사진의 인물을 향해 있었다.

“빌어먹을! 마늘 냄새 나는 원숭이 놈이 감히……!”

잉글랜드 축구협회 총무 스탠리 루스의 볼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뮌헨에서 비행기 사고가 나서 찾아갔을 때 얻어맞았던 자리가 아직도 얼얼하게 아팠다.

겉은 다 나았지만, 멍이 든 마음은 그대로였기 때문.

“이런 놈은 진즉에 내쳐야 했는데, 진즉에!”

분통을 터트려도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놈의 신분 문제를 걸고넘어졌다가 망신만 당했고, 뮌헨에서도 얻어맞고 찍소리도 못했다.

물론 뮌헨에서의 대응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

‘드루리 의장이 말리지만 않았더라도……!’

비행기 사고에 있어 협회의 책임을 깊이 통감한 아서 드루리 의장은 루스에게 일절 대응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덕분에 루스는 홀로 분을 삭여야 했다.

하지만 분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노란 원숭이 놈이 이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존심도 없는 유나이티드 쓰레기 놈들! 어떻게 원숭이 따위에게 주장을 맡길 수 있지?”

이대로 둘 수 없다!

원숭이가 날뛰는 꼴도, 그놈이 주장인 팀이 승승장구해서도 안 된다!

이건 오랜 세월 문명개화의 의무를 짊어져 온 백인의, 그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영국인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니까.

단단히 마음먹은 루스는 책상 위에 뒹굴고 있던 종을 두들겼다.

“찾으셨습니까, 총무님?”

“그래, 심판 위원회에 연락을 해. 내가 긴히 보잔다고 말이야.”

루스는 자신이 제일 잘 쓸 수 있는 카드를 뽑아 들었다.

지나친 우월감에 눈이 먼 그는 자신이 얼마나 삐뚤어진 길로 나가고 있는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

노팅엄전을 끝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참혹하고, 한편으로 분주했던 2월 일정을 끝냈다.

물론 쉴 틈은 없다.

3월 1일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과의 FA컵 경기가 있으니까.

그래서 연일 강훈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다음 주 8일 리그 경기 상대도 웨스트 브롬위치지.”

“하여튼 일정하곤…….”

몸싸움 훈련의 파트너를 맡고 있던 숀 코너리의 말에 준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3월 1일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해. 비겼다간 재경기를 할 테니까.”

‘하긴 승부차기 제도가 아직 없지.’

21세기에도 잉글랜드 FA컵은 8강 이전에 비기면 양 팀이 재경기를 했다.

과거의 전통이 약 70년 후까지 남아 있는 셈이다.

‘문제는 웨스트 브롬위치가 진짜 만만찮은 팀이란 거다.’

현재 리그 4위.

38세의 노장 골키퍼 지미 샌더스가 최후방을 지키는 가운데, 수비진에는 현직 웨일즈 대표인 스튜어트 윌리엄스와 잉글랜드 대표팀 수비수인 도날드 하우가 있다.

여기에 로널드 엘런과 데릭 케반 두 공격수도 전직 혹은 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선수는 따로 있다.

바로 측면 공격수 바비 롭슨.

훗날 감독으로 명성을 떨치지만, 선수로서도 이미 리그 최고의 윙어라 평가받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올 시즌 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으며 웨스트 브롬위치의 공격을 선도하는 중이었다.

‘걔들은 우리 팀 멤버가 멀쩡할 때도 못 이겼잖아. 그런데 지금 팀으로 맞붙으면…….’

준영은 작년 10월 26일 웨스트 브롬위치 원정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때 훈련하다 가벼운 발목 부상을 입었기에 버스비 감독이 제외시켰던 것.

그래도 던컨이나 토미 테일러 등 상당수 주전들이 출전했기에 딱히 약한 전력도 아니었다.

“좀 더 전력 보강을 하지 않으면 힘들 거예요.”

“지금으로선 저 애송이들이 빨리 자라 주길 바랄 수밖에 없겠군.”

현재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새싹이 있긴 하다.

알렉스 퍼거슨.

귀신같은 위치 선정으로 두 경기 연속 골을 넣었다.

팀 상황이 힘들 때 해 준 활약이다 보니, 언론에서도 이 스코틀랜드 신성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솔직히 공격보다 미드필드 쪽에서 보강을…….”

“왜? 무슨 일이야?”

준영이 훈련을 하다 말자, 숀은 그가 바라보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저 녀석은!”

준영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모두 훈련장에 찾아온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었으니까.

“이야, 바비 찰튼 경! 여긴 어쩐 일이시죠?”

“놀리지 말아요, 존.”

“놀리는 거 아냐. 반가워서 그런 거지.”

준영의 말에 바비 찰튼은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그때, 빌 포크스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너 축구 관둔다고 하지 않았냐?”

“맞아요. 그랬죠. 정말 그러려고 했어요.”

집에 있던 축구공이나 축구화도 죄다 정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팀의 소식을 접했다.

셰필드 웬즈데이에게 대승, 그리고 어제 노팅엄 포레스트전 역전승.

“사실 어제 경기는 나도 보러 갔었어요.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상대의 맹공을 막아 내는 옛 동료들.

주눅 들지 않고 상대 진영으로 파고드는 애송이 후배.

그들뿐만 아니라 필드 밖의 관중들에게도 불꽃같은 투지와 희망을 나눠 주던 새로운 주장.

그 뜨거운 투지와 희망은 죄책감으로 굳어 있던 바비 찰튼의 마음도 어느새 녹여 버렸다.

***

바비 롭슨은 명감독에 선수 시절에도 뛰어난 플레이어였지만, 당시 영국 축구를 개선하는 데 앞장선 투쟁가이기도 했습니다.

소설에서도 몇 번 언급된 바 있는 주급 상한제에 대해서 철폐를 주장했기 때문이죠.

투쟁할 당시에는 롭슨의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였고, 팀 동료인 제임스 힐이 선수협회 의장을 맡아 주급 상한제 폐지를 주장했기에 적극 동참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결국 1961년 주급 20파운드로 묶여 있던 주급 상한제가 폐지되었죠.

현재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이 어마무시한 급료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제임스 힐이나 바비 롭슨의 공이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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