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13화 (113/400)

Round 113. 폭스하운드

‘이놈들, 왜 이리 몰려들어?’

마크 붙겠다고 몰려오는 놈들이 두서너 명도 아니고, 무려 6명이나 되었다.

모양새가 마치 옛날 월드컵 영상에서 보았던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랑 비슷했다.

‘어쨌거나 저 무리에 둘러싸이면 힘이고 개인기고 의미 없어.’

다수에는 장사 없다.

이럴 때는 안전한 곳으로 패스를 하는 게 답.

이에 준영은 반대편 쪽에 있던 동료 스탠 크루더에게 패스를 보냈다.

그런데 크루더가 잠시 패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노팅엄 선수가 잽싸게 달려들어 인터셉트를 해 버렸다.

“이, 이런!”

당황한 크루더는 황급히 상대를 잡아채 쓰러트렸다.

하지만 이미 공은 떠난 다음.

페널티 박스에서 그 패스를 받은 것은 노팅엄의 윙어, 스튜어트 임라흐.

빌 포크스의 마크를 페인팅 동작으로 벗겨 낸 스튜어트는 반대편 골포스트를 노리고 슈팅을 날렸다.

골키퍼 해리 그렉이 몸을 날렸지만, 그의 손을 스치고 지나간 공은 그대로 골대 안으로 박혔다.

“으악, 실점이잖아!”

“도대체 왜 저런 실수를……!”

찬물을 확 끼얹는 듯한 실점에 선수도, 관중들도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실책을 저지른 크루더는 동료들을 볼 면목이 없어 고개를 떨궜다.

정말이지, 눈앞에서 그렇게 순식간에 빼앗길 줄이야!

“고개 들어, 스탠. 땅만 보고 있다간 또 사람을 놓칠걸.”

“주장, 나는…….”

“네 이적료만 18,000파운드라고. 팬들이 헛돈 썼다고 투덜대게 만들지 마.”

스탠 크루더는 뮌헨 비행기 사고 이후 영입된 선수였다.

작년 아스톤 빌라의 FA컵 우승에 공헌해 주목을 받다가 이번에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 것.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셰필드와의 FA컵 경기에 뛰었고, 오늘이 두 경기째.

방금 저지른 일은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지만, 주장의 말대로 지금은 경기에 집중할 때였다.

“아직 만회할 시간은 충분히 있어!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플레이한다. 알겠나?”

“Aye, Sir!”

다들 힘껏 외쳤다.

이렇게 고함을 치지 않으면 점점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

“힘들어지겠구만.”

손녀들과 함께 경기를 보러 온 알버트는 맨유의 실점 상황을 보고 혀를 찼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이후 유나이티드는 노팅엄의 맹공에 시달렸다.

미드필드까지 쉽게 전진해 올라온 노팅엄은 연달아 좋은 찬스를 만들어 냈다.

선제골의 주인공 스튜어트 임라흐가 날린 중거리 슛이 왼쪽 골포스트를 살짝 스쳐 갔다.

2분 후 노팅엄은 또 한 번 찬스를 맞았지만, 이번엔 준영의 육탄 마크에 막혀 추가 골 획득에는 실패했다.

“준이 고생을 하네요.”

“기가 오른 상대를 막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것도 대다수가 후보에 애송이들이라면 더더욱.

그 와중에서도 준영은 악착같이 수비를 하고 있었다.

날아오는 크로스를 헤딩으로 끊어 내고, 위험 지역으로 파고드는 상대 공격수를 몸싸움으로 밀어내고 공을 되찾아 왔다.

그리고 직접 치고 올라가는 역습 시도까지.

그런데 그가 공을 잡았을 때 노팅엄에서 보이는 대응이 굉장했다.

공격수든 수비수든 가리지 않고 가까이 있는 선수들이 떼로 몰려든 것.

그런 식으로 패스를 막거나 공을 빼앗아 냈다.

“우! 비겁해!”

카린의 말에 프레드로 일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동의했다.

더구나 노팅엄 쪽에서는 단순히 떼로 달려드는 게 아니라, 높은 태클을 날리거나 발을 밟는 등 위험한 플레이도 서슴지 않았다.

“작작 해라, 망할 놈팡이들아!”

“그따위로 할 거면 꺼져!”

성난 맨유 팬들의 원성이 필드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노팅엄 쪽에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쓰러진 준영에게 이렇게 빈정거리기도 했다.

“왜? 오늘은 쓸 만한 마법이 없는 거냐?”

“지난번처럼 재주를 부려 보시지 그래?”

노팅엄 선수들은 홈에서 준영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않았다.

그때 준영의 발재간에 완전히 농락당했던 그들은 이를 악물고 ‘키 큰 원숭이’를 꺾을 방법을 모색했다.

다른 팀은 체격이나 기술이 좋은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노팅엄은 전술적인 대응 방안을 찾았다.

바로 폭스하운드 전술.

여우 사냥을 하듯, 준영이 공을 잡으면 누구든 가까이 있는 이가 견제를 붙고 주변에서 몰려들어 압박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 방법이 언제나 성공하지는 않았다.

거친 태클을 날리거나 유니폼을 잡다 보면 파울 판정도 나오니까.

‘그래도 저놈들이 손해 볼 건 없단 말이지.’

준영도 노팅엄 쪽의 노림수를 눈치챘다.

어떻게든 자신을 저지시키기만 하면 저들에게 손해는 아니었다.

일단 역습을 막을 수 있고, 공격 지역에서 공을 빼앗는 데 성공하면 찬스를 만들 수 있으니까.

거기다 위험한 파울로 주눅 들게 해서 플레이를 위축시킨다는 의도 또한 있을 터이다.

‘그래도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달려들다니, 뒤가 털리면 어쩌려고?’

아니, 노팅엄은 지금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 듯했다.

현재 맨유 애송이들의 실력은 잠시 빈틈을 내준다고 해도 위험하지 않다고 보았던 것.

물론 애송이들이라고 이 사실을 모를 리 만무했다.

“젠장! 이 자식들, 우릴 얕보고 있어!”

“다들 주장을 도와주자!”

애송이 선수들의 분노와 의욕은 뜨거웠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준영을 돕기 위해 패스를 건네받으러 온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순간 폭스하운드의 표적은 준영에서 공을 잡은 선수가 되었다.

경험과 발재간이 충분치 않은 애송이 선수는 제대로 공을 지켜 내지 못했다.

“어어, 위험해!”

“안 돼! 노마크다!”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차단한 공으로 노팅엄이 다시 기회를 만들었다.

박스 왼쪽 무인 지대에서 공을 잡은 스튜어트 임라흐는 주저 없이 슛을 날렸다.

까앙-!

해리 그렉의 손을 스친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 올드 트래퍼드에 가득 울려 퍼졌다.

“휴, 골대 신의 가호를 받았군.”

“방금 저게 들어갔으면 볼장 다 봤을 거야.”

이어지는 노팅엄의 코너킥.

준영은 이것을 헤딩으로 멀리 걷어 냈다.

그리고 심판의 휘슬이 울리며 위태로웠던 전반전이 끝났다.

“운이 좋구나, 애송이들.”

“가서 속옷이나 갈아입고 와. 후반전에도 지리게 해 줄 테니까.”

노팅엄 측의 도발에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준영도 짜증이 났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지리게 해 준다고? 흥, 과연 누가 지리게 될까.”

후반전, 노팅엄 진영에서 지옥이 열린다.

얼마든지 장담할 수 있었다.

이미 경기 시작 전에 그렇게 의도해 놓았으니까.

***

하프타임 휴식과 정비를 끝낸 양 팀 선수들이 다시 필드로 돌아왔다.

진영을 바꾼 가운데, 노팅엄의 찰리 톰슨 골키퍼는 골대 뒤쪽의 광경을 보고 움찔 놀랐다.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입은 것과 똑같은 빨간 저지를 입은 수백 명의 관중들이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뭘 봐, 이 자식아!”

“눈알을 확 뽑아 버릴까 보다!”

전반전에 멀리서 보긴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눈앞에 지옥의 악마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톰슨은 저도 모르게 돌아서 시선을 피했다.

“어쭈! 저게 사람을 무시하네!”

“노팅엄 촌놈아! 경기 끝나고 보자!”

시끄럽게 쏟아지던 욕설과 고함은 후반전 경기가 시작되자, 뚝 그쳤다.

하지만 그 대신 우레 같은 응원 구호와 함성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Manchester is Wonderful!”

“We love United, we do, Oh, United we love you!”

“We hate Nottingham!”

선두에서 메가폰을 든 노인과 치어리더들의 율동에 따라 유나이티드의 열성 팬들은 쉬지 않고 박수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등 뒤에서 적개심이 진득하게 묻어 있는 응원을 들은 톰슨 골키퍼는 머리가 대략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 신이여, 이 소릴 45분 동안 들어야 한다고요?’

친애하는 동료들이여, 제발 빨리 추가 골을 넣어 이들의 기세를 죽여 주기를!

그러나 톰슨의 바람과 달리, 후반전은 시작부터 노팅엄이 밀리고 있었다.

지미 머피는 후반전에 전열을 재편했다.

준영을 하프백으로 전진시키는 등, 보다 공격적으로 선수들을 배치시켰던 것.

물론 이 정도는 노팅엄 쪽에서도 예상하고 있었다.

상대가 동점 골을 위해 공격적으로 나설 것은 뻔하니까.

문제는 전반에 재미를 봤던 폭스하운드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미드필드 지역으로 올라간 준영은 노팅엄 쪽이 공을 잡는다 싶으면 거침없이 태클과 차징을 가했다.

“컥! 이건 반칙…….”

“흥, 전반에 남의 발등 밟았던 놈이 할 말이냐?”

전반에 당한 게 있다 보니, 준영의 대응은 거친 감이 있었다.

실제로 어깨싸움에서 밀린 노팅엄 선수가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유나이티드 5번, 지나친 대응은 삼가도록.”

“눼눼, 노력해 보죠.”

준영은 선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상대 선수들을 거칠게 다뤘다.

“내 마법 맛이 어떠냐?”

“이게 무슨 마법이야!”

작정하고 힘법사(?) 모드로 나선 준영.

그 전투적인 모습에 고무되었던지, 동료인 로니 코프와 프레디 굿윈도 큰 체격을 앞세워 노팅엄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잘한다! 위험 지역에서만 파울하지 말고 조져 버려!”

그렇게 마법(물리)을 가해 공을 빼앗으면 망설이지 않고 후방으로 돌리거나, 최전방의 공격수들에게 곧장 롱 패스를 날렸다.

조금이라도 끌다간 곧장 사냥개들이 달려들 테니까.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공격이 단조로워지지만, 그래도 맨유 쪽은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공격수가 있었다.

바로 숀 코너리.

공을 잘 따낼 수 있는 장신인 데다, 패스 능력도 좋은 그는 알렉스나 콜린에게 찬스를 만들어 주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과감하게 결정을 짓기도 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니까!’

상대 수비수는 빌리 라이트만큼의 실력도, 적극성도 없었다.

이에 숀은 가슴으로 받은 공을 골대 쪽으로 돌려놓았다.

수비수가 마크하려 애썼지만, 보디빌딩으로 단련된 숀을 몸싸움에서 당해 내지 못했다.

간단히 수비수를 떨쳐 낸 숀은 그대로 슈팅을 날렸다.

뻐엉-

페널티 박스 바깥쪽에서 작정하고 갈긴 중거리 슛.

살짝 휘어져 날아오는 슈팅에 찰리 톰슨 골키퍼는 황급히 몸을 날려 펀칭을 시도했다.

하지만 슈팅이 너무 강했던 걸까.

슈팅은 손에 맞고도 골대 안쪽으로 떨어졌다.

‘안 돼! 안 된다고!’

재차 몸을 날린 톰슨은 공을 냉큼 밖으로 걷어 냈다.

리바운드 볼을 노리고 달려들던 알렉스는 이 모습을 보고 냉큼 심판에게 외쳤다.

“들어갔어! 방금 그 슛, 선을 넘었다고요!”

“그래, 틀림없이 골인이다!”

골대 바로 뒤에 있던 유나이티드 열성 팬들도 알렉스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들도 보았다. 상대 골키퍼의 손에 맞은 공이 선을 넘어 골대 안에 떨어진 것을.

“어이, 노팅엄 촌놈아! 빨리 실토해!”

“양심은 어디 임대 보냈냐?”

사납게 쏟아지는 야유 속에서도 톰슨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깐 보람도 없이, 심판은 골인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렇지! 역시 골일 줄 알았어!”

“역전 가즈아-!”

신이 난 열성 팬들은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열기는 일반 관중들에게까지 퍼져 나가 거대한 함성으로 만들어졌다.

“United! United!”

“U-n-i-t-e-d-!”

“United we love you!”

점수는 1 대 1.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경기를 뒤집어 볼 시간이.

***

스탠 크루더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계약에 사인한 건 1958년 2월 19일,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FA컵 경기 겨우 한 시간 전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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