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09. 네? 누구라고요?
글래스고.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던 이 도시는 스코틀랜드의 학문 중심 지역이자, 가장 큰 항구였다.
그 항구 도시의 도로 위로 준영과 조 암스트롱이 탄 붉은색 라곤다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 아마추어 팀 이름이 뭐라고?”
“그러니까… 퀸즈 파크 FC요.”
“그래? 꽤 명문 팀에 있구먼.”
조 스카우터의 말에 준영은 귀를 기울였다.
21세기에 있을 때 해당 인물이 선수 시절 어디에서 뛰었냐만 검색해 보았을 뿐, 그 팀이 어떤 팀인지는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으니까.
“거긴 말이야.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오래된 팀이야. 스코틀랜드 축구협회 창설에도 기여했지.”
“뼈대 있는 팀이란 거네요.”
“그렇지. 현대 축구에서 뺄 수 없는 패스 플레이도 그 팀에서 최초로 시도했었어.”
조 스카우터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사이, 퀸즈 파크 FC 구단 사무실이 있는 햄던 파크에 도착했다.
준영과 조 암스트롱은 곧장 사무실로 찾아가 해당 선수를 찾았다.
“그러니까, 알을 보러 오셨다고?”
“예, 그렇습니다.”
구단 직원은 준영을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다 말했다.
“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존 Y. 리?”
“맞습니다.”
“허, 거기 선수가 진짜 씨가 말랐나.”
구단 직원의 말을 들은 준영의 심정은 복잡했다.
자신이 유명해진 것을 확인한 건 좋지만, 팀의 처참한 현실을 노골적인 표현으로 듣는 건 거북했으니까.
“어디 보자… 좀 기다리십쇼. 한 시간 후면 훈련 시작이거든요. 그 녀석, 힐링턴의 공장에서 일하는데 지금쯤 퇴근해서 오고 있을 거예요.”
구단 직원이 말한 대로 한 시간 후.
퀸즈 파크 FC 훈련장으로 가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창문을 통해 살펴보고 있던 준영은 표적을 단숨에 찾아냈다.
‘저 영감님, 예나 지금이나 껌 씹는 폼은 똑같네.’
인물이야 젊은 시절인 지금이 훨씬 신수가 훤하고 잘생겼다고나 할까.
준영이 신기한 마음에 계속 바라보고 있을 때, 조 암스트롱이 물음을 건넸다.
“누군가? 누군지 나도 알려 줘.”
“저기 덩치 큰 친구 있죠? 키가 한 180센티미터, 그러니까 6피트 정도 되는.”
“아, 저 인상 좋은 녀석? 확실히 체격은 좋군.”
두 사람은 조용히 훈련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연습 경기가 벌어지자 좀 더 심도 있게 관찰을 계속했다.
“체격은 확실히 좋아. 스피드도 있고, 공도 꽤 영리하게 차는군. 그런데 말이야…….”
호평을 하던 조 암스트롱은 곤란한 표정으로 준영을 보았다.
“너무 어리지 않나?”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준영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데니스 로, 아니 그보다 더 어려 보일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도 과감함은 느껴집니다.”
“글쎄, 그렇긴 해도 내가 볼 땐 성급하고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데…….”
조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구단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 녀석,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애송이니까.”
“뭐라고? 이봐, 존! 올 때 분명 나에게 그랬지? 초특급은 아니지만 일류 수준은 충분히 된다고?”
“그게… 저도 소문으로 들은 거라서요.”
수박 겉핥기식으로 본 인터넷 정보에 따라 행동한 대가는 민망한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다.
설마 아직 그 정도의 풋내기 선수일 줄이야!
“뭐, 그래도 장래성은 있어 보이는데요?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장래성이야 있지. 하지만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건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선수잖나!”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조를 준영은 계속 설득하고 나섰다.
“즉시 전력이 될 만한지 아닌지, 데려가서 한번 테스트해 보죠. 안 되면 내치셔도 됩니다. 그럼 제가 데려가서 제대로 된 선수로 만들 테니까.”
준영은 기왕 찾은 원석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분명 대성할 인물 아닌가. 그러니 미리 인간관계를 맺어 두는 게 낫다.
‘잠깐, 이거 내 성급한 행동이 오히려 저 영감님, 아니 저 애의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불안이 들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 있으니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주워 담기도 전에 조 암스트롱이 결정을 내려 버렸다.
“자네가 책임지겠다면 좋네. 어디 한번 데려가 보자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허락을 받아 낸 준영은 훈련장으로 나갔다.
그의 모습에 선수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와, 저렇게 키 큰 중국인은 처음 봐!”
“멍청아, 저 사람, 존 Y. 리잖아!”
“어? 누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 수비수라고! 신문 좀 보고 살아!”
퀸즈 파크 선수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 때.
준영은 점찍어 둔 상대에게 다가갔다.
“알렉스 퍼거슨?”
“예, 제가 알렉산더 채프먼 퍼거슨인데요.”
최근에 영국 리그에서 이슈를 일으킨 동양인 선수가 자신을 아는 척하자 알렉스는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Sir, 아니 퍼거슨 군, 내가 개인적으로 네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우리 구단에 데려가서 테스트를 해 보려 하는데…….”
“진짜요? 합격하면 입단이 되는 거죠?”
“그, 그거야 물론이지.”
“할게요, 할게!”
엄청 적극적으로 나왔다.
하기야 현재는 망했다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영국 리그 톱 구단이 솔깃한 제의를 하는데 거절할 리가.
“아, 근데 그 전에 할 일이 있어요.”
“뭔데?”
“캐시에게, 여자 친구에게 알려 줘야 해요. 맨체스터에 간다고.”
벌써부터 잡혀 사는 건가.
준영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술 마스터.
헤이젤 참사로 나락까지 떨어진 영국 축구를 유럽 최정상에 올려놓은 위대한 감독.
지금은 그저 애송이 아마추어 선수에 불과한 이 거대한 원석을 준영은 손에 넣었다.
***
준영을 따라온 알렉스 퍼거슨.
그는 곧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훈련에 참가하여 테스트를 받았다.
일단 기초적인 체력 테스트부터 시작해서 스피드, 순발력, 테크닉 등을 살펴본 후 연습 시합에 투입되었다.
기운차게 시합에 나선 알렉스였지만, 정작 공 잡을 기회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두각을 보인 기성 선수도 아니고, 데뷔전도 치르지 않은 16살 애송이에게 누가 패스를 하겠는가.
더구나 기존 선수들 입장에선 경쟁자가 되려고 나타난 놈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알렉스는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팀원들을 닦달했다.
“이쪽이야. 나한테 패스해!”
“뭐 하고 있어요! 꾸물거리지 말라고!”
“야-!”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자 알렉스는 버럭 성질을 냈다.
그 모습을 본 준영은 이마를 움켜잡았다.
‘아이고야…….’
한 성깔 하는 건 늙어서나 젊어서나 마찬가지인 모양.
이래서는 완전히 텄다.
준영은 고개를 저었고, 이미 회의적으로 보고 있던 조 암스트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기대한 정도는 아니지만, 쓸 만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군요. 입단시켜 보죠.”
의외로 지미 머피 코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보게!”
조가 깜짝 놀랐지만, 머피 코치는 뜻을 꺾지 않았다.
“물론 성급하고 경험이 많이 부족하긴 해요. 하지만 공이 있거나 없거나 영리하게 플레이를 하려는 녀석이에요.”
테크닉이 그렇게 모자라거나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애송이치고 경기 보는 눈은 제법 좋았다.
찬스가 날 만한 위치나 패스를 연결하기 적절한 곳에 잘 찾아 들어가고.
“성급함을 지적하셨는데, 확실히 공격에선 그런 면이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그건 과감하다는 거고,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
풋내기와 애송이들뿐인 상황에서 과감하게 플레이할 선수가 필요하다.
기존의 주전급들은 안 된다.
비슷한 풋내기나 애송이여야 한다.
그래야 ‘나도 할 수 있다.’, ‘지지 않을 테다.’라는 의욕을 불태울 수 있으니까.
“알인지 퍼기인지 하는 그 애송이 녀석은 딱 그런 식으로 자극하기 좋아요. 더구나 성깔도 제법 있잖아요. 성인 선수들 상대로도 기가 죽지 않을 정도로.”
“팀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지나 않을지 걱정이군.”
“그 정도까지 개차반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오히려 그런 강한 성격이 카리스마가 될 수도 있죠. 안 그런가, 존?”
머피의 물음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어수선한 위기 상황에선 강하게 다그치거나 선도할 줄 아는 인물이 필요할 테니까요.”
어쩌면 명감독 이전에 뛰어난 주장으로 명성을 떨치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플레이가 맘에 안 든다고 동료에게 슬리퍼나 헤어드라이어를 집어 던지지는 말기를.
“그나저나 리버풀에서 보내 준 다섯 녀석들은 좀 어떤가?”
“그냥 그래요. 실망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썩 뛰어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저기 존 레논이라는 애송이는 제법 발재간이 있더군요.”
조와 머피의 대화를 듣던 준영은 깜짝 놀랐다.
“네? 누구라고요?”
준영의 물음에 머피가 웃음을 지었다.
“존 레논. 이름이 같은 녀석이 있어서 관심이 든 거야?”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준영은 황급히 훈련장 한편에서 휴식 중인 선수들을 살폈다.
좀 전에는 성질 남다르신 퍼기 경에게 주목하느라, 다른 선수들은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동일 인물일 리가 있나.
그 사람이 뜬금없이 축구를, 그것도 프로 선수가 왜 되었겠는가.
“존 레논?”
“예, 그런데요.”
준영은 동그랗게 입을 벌린 채 굳어 버렸다.
방금 자신의 물음에 대답한 장발의 소년 플레이어.
흑백사진으로 봤던 젊은 시절의 존 레논이 틀림없었다.
***
“존 레논? 유명한 사람인가요?”
“지구에 스파이로 보내진 외계인인 거지?”
저녁에 저택 도서관에서 세 자매들은 준영에게서 오늘 있었던 놀라운 만남에 대해 들었다.
그런데 앤지는 존 레논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사람, 쿼리멘의 기타리스트야. 리버풀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한다니까 맞을걸.”
“쿼리멘? 비틀즈가 아니고?”
준영의 물음에 앤지는 금시초문이란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밴드는 못 들어 봤는데? 유명한 밴드야?”
“유명하고말고! 나중에 영국 밴드들이 미국 가요계를 정복할 때 선봉에 선다고.”
그렇게 말한 준영은 말을 덧붙였다.
“앤지 너, 내가 예전에 연주했던 Imagine 기억나지? 그거 부른 가수가 존 레논이야.”
“정말?”
워낙 좋은 노래라 한 번 듣고 그대로 외워 버린 곡.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자신이 좋아하는 쿼리멘의 기타리스트였을 줄이야!
“과연! 그 사람은 진짜 최고가 되는구나!”
“그런데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존 레논이 축구 선수였단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냥 알려지지 않았던 거 아냐?”
앤지의 물음에 준영은 고개를 저었다.
“영국, 아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인이었기 때문에 그만한 행적이 알려지지 않을 수는 없어.”
그 점에서는 숀 코너리도 마찬가지다.
그만한 커리어라면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있었다는 게 화젯거리라도 될 텐데 그렇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어찌 된 걸까? 내가 온 이 시대가 내가 있던 세계의 과거가 맞긴 한 건가?”
***
퍼기 경의 선수 생활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제법 잘하는 선수 축에 들었습니다.
출전 대비 골 기록만 봐도 2경기 1골 수준인 데다, 스코틀랜드 리그 최강팀 중 하나인 레인저스를 상대로도 해트트릭을 했다고 하니까요.
존 레논은 좀 뜬금없어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었습니다.
또한 비틀즈 시절 드러머의 증언에 따르면 존 레논은 항상 공을 갖고 놀았고, 밴드로 성공하기 전에는 축구 선수를 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훗날 리버풀의 빌 섕클리 감독이 1965년 FA컵 결승전에 나설 때 비틀즈가 승리를 기원하는 전보를 보낸 것도 단지 고향 팀이기 때문이 아니라 축구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