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08화 (108/400)

Round 108. 원석 찾기

“다녀왔어요?”

“응.”

리즈는 귀가한 준영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그렇게 막아 내고자 했던 사고가 역사대로 일어나 버렸기에 그의 상심이 클 거라 생각했건만.

절대 풀이 죽은 기세는 아니었다.

오히려 전투를 앞둔 전사처럼 결연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너무 진지하다 보니 함부로 말을 붙이기도 힘들 정도.

“남작님은 어디 나가신 건가?”

“네, 시내의 사교계 모임에 가셨어요. 비행기 사고 피해자들을 도울 방안을 모색하신다면서요.”

버스비의 아이들은 그동안 맨체스터를 빛내 주었다.

그렇기에 지역의 명사들이나 유지들을 움직여 성금을 모으거나 지원할 방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이미 자발적으로 나서는 분들도 있다고 해요.”

“그래? 고마운 일이군.”

옅은 미소를 지으며 리즈를 뒤로한 준영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트를 펼쳐 들고, 팀의 재건에 도움이 될 만한 선수들의 이름을 적어 보았다.

‘조지 베스트, 이 양반은 아직 너무 어린가? 지미 그리브스는 이미 첼시의 간판 공격수니까 안 내줄 거고. 바비 무어는 지금 웨스트햄의 유소년 선수일 텐데 영입이 가능할까?’

외부에서 영입해 올 만한 선수.

하지만 영입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떠나 문제는 자금이다.

하드먼 회장은 무겁게 침묵을 지켰지만, 준영은 이번 사고로 구단이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사망자 보상금, 부상 선수 치료와 재활 등으로 구단이 엄청난 지출을 했다고 하니까.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가 일부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친선 경기를 해 주며 입장 수익을 올려 줬을 정도였다.

‘사망자는 없다고 해도 지출은 상당할 테지. 그러니 구단을 지원할 자금을 만들어야 해.’

자신이 갹출하든, 인맥으로 후원 기업을 늘리든.

이리저리 끄적여 보던 준영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예요. 들어가도 되죠?”

‘리즈?’

또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의아해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리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쟁반에 홍차와 샌드위치를 담아 온 그녀는 준영의 앞에 내려놓았다.

“제대로 식사도 못했죠?”

“그게…….”

생각해 보니 정말 뮌헨에 갔을 때 먹은 거라곤 버트 트라우트만과 커피를 마신 게 고작.

제대로 뭔가를 먹거나 마실 겨를도, 그럴 기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얼른 먹어요. 속이 비면 몸은 물론 머리도 굴러가지 않으니까.”

“고마워. 리즈가 직접 만든 거야?”

“네. 어때요? 맛있어요?”

“정말 맛있어.”

제법 잘 만들기도 했지만, 몸에서 칼로리를 원하고 있기 때문인지 정말 꿀맛 같았다.

“앞으로 이보다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줄게요.”

“괜찮아? 수험생인데?”

“걱정 마요. 그 정도 시간은 없지 않으니까.”

준영은 힘든 길을 가고 있다.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될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일단은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것.

리즈는 그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믿었다.

***

숀 코너리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어릴 때 독일군의 대침공에 대비하던 어른들의 기분이 어땠는지 알 것 같았다.

“갑자기 주전 공격수가 되다니!”

뮌헨에서의 사고 소식은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덜컥 큰 짐을 안게 될 줄이야!

기쁨보다 부담감이 배로 컸다.

“어렵게 여길 거 없어요. 숀은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잖아요.”

“맞아. 빌리 라이트를 뚫고 골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요?”

“거기다 유러피언 컵에서도 투혼의 골을 넣었으니까.”

준영과 빌 포크스의 아부에 숀의 긴장도 풀어졌다.

“그래, 운명의 각본이 참으로 혹독하긴 하지만, 주연을 걷어찰 순 없는 노릇이지.”

“우린 드라마틱한 전개가 필요해요. 난 숀이 충분히 해 줄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 드라마를 만드는 건 배우의 일이지. 어디 명작을 만들어 보자고!”

기운차게 훈련장으로 나간 그들은 이미 도착해 있던 선수들을 보았다.

2군과 유소년 팀 선수들 중에서 나름 쓸 만하다고 보고 차출한 이들이다.

“이 애송이들을 훈련시켜서 경기에 투입해야 한단 말이지?”

“10여 일 정도 남았죠.”

“방영 일자가 빡빡하구만. 서둘러야겠어.”

훈련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럽게 발탁이 된 어린 선수들은 1군 선수가 되었다는 기쁨보다 부담감이 더 커 보였다.

준영은 그들의 부담을 덜어 내는 작업부터 먼저 했다.

“첼시의 지미 그리브스라는 녀석 들어 봤어? 17살인데 이미 주전 공격수래. 허더스필드 타운에도 내가 잘 아는 녀석이 있는데, 너희들이랑 비슷한 또래야.”

“저희도 할 수 있다는 건가요?”

“물론이지!”

장담하는 준영에게 한 녀석이 손을 들며 말했다.

“하지만 저희한테 그만한 재능이 있을지……. 리 선수처럼 체격이 특출한 것도 아니고…….”

“그래, 유명 선수가 되려면 재능도 있어야 하고 체격도 남달라야 하지. 하지만…….”

잠시 말문을 닫았던 준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는 애송이들에게 충고를 건넸다.

“제일 중요한 건 의욕이야. 의욕이 없으면 재능도, 체격도 다 필요 없어.”

준영 스스로가 이들 또래 무렵에 그랬다.

꼴찌 팀의 수비수로 욕먹고 비웃음을 들어가면서도 계속 뛰었고, 연령별 대표팀 발탁과 모나코 입단 등,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언젠가 이기겠다는, 성공하겠다는 의욕이 없었다면 축구 선수로서의 꿈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너희 앞에 있는 길은 가시밭길, 그리고 온갖 들개와 승냥이들이 우리 팀을 물어뜯으려 대기하고 있지.”

“…….”

“너희는 어쩔 거냐? 밥이 될 거냐, 아니면 사냥꾼이 될 거냐?”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밥이 되면 그저 그런 선수로 끝나지만, 사냥꾼이 되면 후대에 자랑할 만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는 걸.

“해 보겠어요!”

“저도 사냥꾼이 되겠슴다!”

이렇게 의욕을 불태우면서 훈련의 진척이나 효율은 높아지고 빨라졌다.

하지만 부족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시대 최고의 선수들과 나란히 했던 만큼, 눈높이가 그만큼 올라가 버렸으니까.

***

훈련 시작 나흘 후.

지미 머피 코치는 선수 영입 건으로 준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버풀에서 선수 5명을 임대해 준다고 약속했어.”

“리버풀이요?”

준영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아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경쟁은 치열하지 않았다.

물론 지역 라이벌 정도로 인식은 하고 있지만, 리그도 다르다 보니 크게 맞붙을 일이 없었던 것.

“아마 감독님이 왕년에 리버풀에서 선수 활동을 해서 도와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

“아무튼 고마운 일이군요.”

“그래. 고맙긴 한데, 어떤 선수를 보내 줄지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어. 그쪽도 승격 다툼이 치열하거든.”

오히려 머피 코치가 기대하고 있는 건 따로 있었다.

“놀라지 말라고. 회장님이 그러는데, 레알 마드리드 측에서 우리 팀에 임대 선수를 보내 준대. 그것도 악마의 왼발 푸스카스를!”

레알 마드리드는 데이비드 펙의 전담 선수까지 영입했을 정도로 맨유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랬던 상대가 비극적인 사고로 몰락해 버린 게 딱했던지, 자신들의 특급 공격수를 보내 주겠다는 선심을 쓴 것.

물론 단순한 선심은 아니다.

헝가리 망명자인 푸스카스는 현재 스페인 법률에 의해 출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해외의 다른 팀에 보내서 경기 감각을 쌓게 만들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

“뭐야, 왜 그리 반응이 밋밋해? 혹시 알고 있었던 거야?”

“그게 안 될 겁니다, 아마. 영국 리그는 영어를 못하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선수로 못 뛰잖아요.”

“아… 그렇지.”

지금까지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헝가리에서 했던 푸스카스가 영어를 알 리가.

악마의 왼발이 떨친 명성에 낚여 언어 제한 문제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머피 코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협회에서 딱 한 번 눈감아 주면 좋겠는데.”

“제가 날린 죽빵 때문에라도 안 감으려 할 겁니다.”

루스 총무도 그때 맞은 걸로 보복에 나서진 않았다.

물론 속내는 알 수 없다.

지금은 협회에 대한 여론이 안 좋으니 참고 있다가 나중에 수작을 부리며 원한을 풀려고 들지도 모른다.

“아 참, 코치님, 지난번에 제가 추천한 선수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 애송이들? 걔들은 영입이 힘들 것 같아.”

“바비 무어와 제프 허스트, 마틴 피터스 셋 다 말입니까?”

“그래, 셋 다.”

웨스트햄 출신의 이 삼인방은 훗날 1966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우승으로 이끈 주역들.

아직 유소년 레벨이지만, 쓸 만한 원석들이기에 영입해서 갈아 놓으면 금방 빛을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셋 다 힘들다니.

“그 무어라는 꼬마는 자기가 이적을 거부했어. 허스트는 웨스트햄 구단에서 지켜보며 키우고 있다면서 거절했고…….”

“그럼 피터스는요?”

준영의 물음에 머피 코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은 아직 학생이지만 엄청난 유망주잖아. 웨스트햄뿐만 아니라 첼시, 풀럼, 아스날, 토트넘까지 영입에 나서고 있다고.”

마틴 피터스는 양발잡이에 뛰어난 프리키커, 거기에 공중전 능력도 뛰어났다.

워낙 다재다능해서 현재보다 10년, 아니 20년은 앞서가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고.

“애들이라고 가볍게 영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실수였네요.”

“괜히 유망주겠어? 기왕이면 무명이지만, 크게 될 실력을 가진 녀석이면 좋겠는데…….”

지금은 무명이지만 크게 될 놈.

머피의 말에 머릿속에 든 정보를 뒤지던 준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혹시 쓸 만한 녀석이 생각난 거야?”

“그게… 우연히 알게 된 선수인데 초특급은 아니지만, 일류 수준은 충분히 되는 공격수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어디에 있는데?”

“스코틀랜드요. 분명 글래스고 쪽 아마추어 팀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준영의 말을 들은 머피는 몹시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스코틀랜드는 영국 리그의 중요한 선수 공급처인 데다 뛰어난 선수들도 많았으니까.

그곳의 아마추어 리그 팀에서 뛰던 선수들 중에 프로로 데뷔한 선수도 한둘이 아니었다.

당장 숀 코너리만 해도 스코틀랜드 아마추어에서 뛰지 않았던가.

“글래스고라…….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 한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한 번이 아니라 두고두고 지켜볼 수준인걸요.’

사실 지금 당장 써먹기보다 미래를 두고 영입하는 편이 훨씬 나은 인물이다.

그는 훗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영국 축구 전체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니까.

“추천한 김에 제가 찾아서 데려오겠습니다. 저도 듣기만 해서 어느 정도 선수인지 궁금하니까요.”

“그건 조 스카우터에게 맡기면 되는데……. 근데 그 친구, 이름은 뭐야?”

“그러니까 그의 이름은…….”

준영에게 이름을 들은 머피 코치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인가 싶어 물어봤는데 들어 보지 못했으니까.

“알았어. 한번 데리고 와 봐. 실력 한번 보는 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다음 날, 준영은 조 암스트롱 스카우터와 함께 글래스고로 떠났다.

그곳에 묻혀 있는 거대한 원석을 발굴하기 위해서.

***

이 거대 원석이 누군지 이미 알 만한 분은 아실 거라 믿습니다.

너무 유명한 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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