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06. 가장 어두운 날
“빨리 좀 가요, 빨리빨리!”
준영은 택시 기사를 연방 닦달했다.
눈길을 달리는 건 위험하다고 투덜거리던 기사도 지폐를 건네받자, 이내 입을 닫고 액셀을 밟아 댔다.
“제발… 제발 늦지 마라!”
준영은 30분 전에 독일에 도착했다.
서둘러 뮌헨으로 갈 방법을 찾다가, 브라운 회장에게서 슈타른베르크로 가는 화물용 비행정을 소개받았다.
슈타른베르크에서 뮌헨 공항까지는 자동차로 50분 정도.
하지만 눈 때문에 도로 사정이 나빴기에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떻게든 오후 3시 안에 도착하지 않으면……!”
시계를 보고 속이 타들어 가는 가운데, 마침내 시곗바늘이 오후 3시를 가리켰다.
“젠장, 아직도 멀었나?”
“Ist eingetroffen(도착했소)!”
3시를 약간 넘겼을 때, 택시가 마침내 뮌헨 공항 앞에 도착했다.
마음이 급했던 준영은 계산할 틈도 없이 지폐 다발을 던져 주고는 공항으로 달려 들어갔다.
“비행기! 맨체스터행 비행기는 어딨죠?”
준영은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그는 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늦었어요. 이미 이륙하고 있으니 다음 비행기를 타세요.”
“이륙 중이라고?”
“그래요. 벌써 두 번이나 이륙 실패를 했는데 조종사가 고집을 부려서… 앗! 이봐요, 어디 갑니까!”
준영은 곧장 활주로로 뛰쳐나갔다.
앞을 막는 공항 직원이나 보안 요원들을 뿌리치고서.
“저건가?”
활주로를 내달리는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
준영은 황급히 비행기를 향해 달려갔다.
“이륙하지 마! 날면 안 돼!”
“Stop!”
“Tu nichts Gefährliches(위험한 짓 하지 마시오)!”
보안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준영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달리는 것보다 비행기는 훨씬 빨랐다. 그리고 이미 멈출 수 없는 속도로 활주로를 달려 나갔다.
‘젠장, 멈추지 않는다면 차라리 날아가! 추락하지 말고 맨체스터까지 날아가라고!’
준영의 눈앞에서 비행기는 날아올랐다.
하지만 공중에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우뚱하면서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추진력을 얻지 못한 것.
“아아…….”
낯빛이 하얗게 변한 준영의 눈동자로 비행기가 추락하는 광경이 보였다.
활주로 끝 울타리를 부수고 도로를 가로지른 다음, 주택에 충돌하는.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21세기에서 검색해서 본 적이 있던 기록 그대로.
“안 돼, 안 된다고! 이럴 순 없어!”
가장 어두운 날.
그렇게 막아 내고자 했지만, 결국 눈앞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
하얀 눈 위로 흩어진 부서진 파편들.
처참하게 부서진 비행기의 잔해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새어 나왔다.
미친 듯이 현장으로 달려온 준영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눈앞에 벌어진 참혹한 광경은 어릴 때 겪었던 기차 사고와 너무나 흡사했으니까.
눈동자가 얼어붙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리의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지만…….
“존? 리틀 존 맞냐?”
“해리?”
골키퍼 해리 그렉.
머리에서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상태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와줘. 이쪽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어!”
“어, 알았어!”
준영은 그를 도와 파편을 걷어 내고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으으윽…….”
“데니스, 괜찮아요?”
잔해에 깔려 있던 데니스 바이올렛이 준영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늑골이라도 부러졌는지 몹시 불편해 보였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는지 생존자 구조를 거들었다.
“뭐 하고 있어, 개자식들아! 구경하지 말고 사람을 구해!”
사건 현장을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해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우물쭈물하던 사람들은 그 호통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생존자들을 구조하고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곧이어 공항과 경찰, 소방서에서도 인력을 와서 본격적인 구조가 시작되었다.
“으으, 존……?”
“던, 괜찮냐?”
준영의 물음에 던컨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네 경고를… 들을걸.”
“됐어. 얼른 병원에나 가.”
준영은 현장에서 구조를 거들며 생존자와 사망자를 살폈다.
부디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는 죽은 사람이 없기를 바랐지만,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도니 데이비스 기자님도…….”
멘체스터 가디언의 기자 도니 데이비스.
준영의 기사도 곧잘 실어 주고, 핸드볼 오심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적극적으로 옹호해 준 사람이었다.
기자들 중에 제일 호감을 느끼던 사람이었는데, 이 사고에 희생되고 말았다.
‘방심하는 게 아니었어! 전용기 하나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었는데!’
예전에 계획한 대로 뮌헨 공항 활주로에도 손을 썼다면, 아니 감독님과 동료들에게 충분한 경고를 했다면 오늘의 사고는 없었을지 모른다.
“어이, 존.”
망연자실하게 선 채 눈물을 삼키던 준영에게 빌 포크스가 말을 건넸다.
머리에 대충 붕대를 감고 있던 그는 해리 그렉과 더불어 승객들 중 몇 안 되는 행운아에 속했다.
“여기 있을 필요 없어. 사망자 수습도 끝났고, 다친 사람들도 다 병원으로 갔다고.”
“그렇죠. 다 끝났으니까…….”
빌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는 준영의 등을 쳐 주며 위로했다.
“힘내. 그래도 네 덕에 우린 다 살아남았다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준영이 세 번째로 보낸 전보 때문이었다.
거기엔 절대 ‘꼬리 쪽에 타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통 비행기가 추락하면 머리부터 떨어지잖아. 그런데 꼬리 쪽에 타지 말라는 말을 납득하기 힘들었지.”
하지만 이번 사고는 꼬리 쪽의 피해가 컸다.
꼬리 쪽에 탑승했던 승객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우린 네 덕에 다들 살았어. 두 번이나 비행기가 날지 못하니까 혹시나 진짜 사고가 날지 모른다 싶어서 좌석만 바꿨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준영은 위로를 얻지 못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닌, 다른 의미로 생명이 끝나 버린 이들도 많았으니까.
***
추락 사고 부상자들은 뮌헨시에 있는 레히츠 데 이사르 병원으로 옮겨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도 마찬가지.
14명의 부상자들은 각기 부상 정도에 따라 수술과 집중 치료를 받았다.
“왜 그리 우거지상이냐?”
수술을 끝내고 나온 주장 로저 바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준영에게 피식 웃음을 건넸다.
“야 인마, 누가 보면 나 이제 곧 죽는 줄 알겠다.”
“주장…….”
“괜찮아. 금방 쌩쌩해질 거니까.”
미소를 지으며 장담하는 로저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 아래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비단 로저 혼자만이 아니다.
리암 휄란은 아예 두 다리를 몽땅 잃었고, 에디 콜먼은 하반신 불수 상태.
그렇게 선수 생명이 끝날 수준의 부상을 입은 이들이 무려 10명에 달했다.
“왜 이런 일이… 왜? 왜?”
“…….”
“이런 꼴로 어떻게 살아가라고!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재기 불능이 된 동료들의 넋두리와 우울한 침묵, 절망 섞인 울분.
이를 바라보는 준영은 속이 갈가리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뛰면서 웃고 떠들던 친구들.
죽음을 피한 대신, 저들은 앞이 깜깜한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말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은 저래도 곧 진정하겠지.”
“던…….”
“젠장, 다쳐도 갈비뼈가 부러질 게 뭐람. 숨도 쉬기 불편하네.”
던컨 에드워즈는 늑골과 양다리 골절.
늑골은 몰라도 다리 골절 상태는 심각하기에 회복된다 해도 원래의 기량을 되찾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난 의사 말은 안 믿어. 그치들은 꼭 부풀려서 병원에 오래 있게 만드는 게 특기잖아.”
“그럴지도.”
“너무 걱정하지도, 신경 쓰지도 마. 네가 미안해할 건 없어. 멍청하게 추락할 비행기를 탄 우리가 바보지.”
던컨은 쓴웃음을 지었다.
준영이 보낸 전보를 보고도 다들 비행기에 올라탔다.
더구나 비행기는 두 번이나 이륙에 실패했다.
“두 번 실패했으니까 다음번엔 이륙에 성공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도박에 실패해 버린 거야.”
“성공한 녀석도 있잖아.”
던컨의 옆자리에 있던 마크 존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바비 녀석은 세 번째 이륙 때는 타지 않았어. 맨체스터에 도착하면 겁쟁이라고 놀려 주려 했는데…….”
마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존, 바비 좀 찾아서 살펴 줘. 그 녀석, 다치진 않았어도 뭔가 심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으니까.”
“응.”
“아 참, 그리고 부탁할 게 하나 더 있어.”
“뭔데? 뭐든 들어줄게.”
마크의 간절한 눈빛에 준영도 진지하게 경청했다.
“담배랑 파이프 좀 갖다 줘. 여기 간호사들이 절대 피우지 말라고 하는데…….”
“안 돼.”
“뭐든 들어준다며!”
골초의 부탁을 냉정히 거절한 준영은 곧장 바비를 찾으러 갔다.
***
바비는 병원 뒤뜰 화단에 있었다.
준영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바비, 괜찮아?”
“존, 나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던 바비는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난… 나는 비겁했어요. 존의 말이 맞을 걸 알면서 나 혼자만 타지 않았어. 모두를 말리지 않았다고.”
“그런 생각하지 마.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나는 비겁자야. 나만 피해서 멀쩡하게…….”
혼자만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데서 느끼는 죄책감.
그 기분을 준영도 모르지 않았다.
한때 자신도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으니까.
“자책하지 마. 불의의 사고였다고. 누구도 널 원망하지 않아.”
준영은 자신도 몇 번은 들었던 말로 바비를 위로하려 애썼다.
하지만 예전의 자신이 그러했듯 바비도 쉽게 떨쳐 내지 못했다.
“날 좀 내버려 둬.”
“이봐, 바비.”
“부탁이니까 제발…….”
결국 준영은 바비를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가 느끼는 충격은 말 한마디로 낫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젠장……! 나는 도대체… 뭘 한 거지? 뭘 위해 이 시대로 온 거야? 무엇 때문에!’
죽을 사람들을 살렸다.
겨우 그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
꿈 많고 재능 있는 젊은 선수들이, 이제는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녀석들이 폐인 신세가 되어 절규하고 있는데!
“이쪽 병실입니다.”
힘없이 친구들에게 돌아가던 준영은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다.
맨체스터 시티의 골키퍼 버트 트라우트만, 유나이티드의 하드먼 회장과 지미 머피 코치, 그리고 축구협회 총무 스탠리 루스.
루스의 면상을 본 순간, 준영의 분노는 순식간에 폭발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비참한 사고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게 누군지.
알량한 권위와 자존심 때문에 일말의 배려도 해 주지 않았던 높으신 분.
그가 뻔뻔하게도 나타났다.
“존 Y. 리?”
“이, 이봐, 자네……?”
아무도 만류하지도, 만류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루스에게 달려간 준영은 그대로 주먹을 후려갈겼다.
***
뮌헨 비행기 참사의 원인은 눈이 녹으면서 생긴 슬러시 때문입니다.
사고 기체의 기장 제임스 테인은 11년간 결백을 주장한 끝에 누명을 벗었습니다.
근데 당시 규정에 따르면 그날 비행에 실패하면 뮌헨에서 하룻밤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장은 그게 싫어서 끝까지 비행을 시도하다 사고가 나고 말았죠.
과연 결백하다고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