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05화 (105/400)

Round 105. 청천벽력

“와아아아아!”

베오그라드 JNA 스타디움에 모인 5만여 명 관중들의 함성은 그칠 줄을 몰랐다.

사실 전반전까지만 해도 다들 기가 죽어 있었다.

레드 스타는 경기 시작 고작 2분 만에 데니스 바이올렛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니까.

거기다 전반 30분과 31분에는 아차 하는 사이 바비 찰튼에게 연속 골을 헌납해 버렸다.

그렇게 원정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0 대 3으로 끌려간 채 전반전은 종료.

하지만 후반전에서는 심기일전한 레드 스타 선수들이 대반격을 개시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공격수 보라 코스티치가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추격 골을 터트렸고, 4분 후에는 페널티킥을 따냈다.

이 페널티킥은 1차전 선제골을 넣은 라자르 타시치가 깔끔하게 골로 만들어 냈다.

2 대 3.

후반 이른 시간에 단 한 골 차이까지 따라붙자, 관중들은 반색을 하며 열렬한 응원전을 펼쳤다.

“하, 어쩐지 이렇게 될 것 같더라니만.”

“4강전에 올라가면 그때는 우리도 여왕 폐하를 모셔 와야겠어.”

“불가능할걸. 그분은 아스날을 지지하니까.”

아차 하다 추격을 허용하고 말았지만, 맨유 선수들은 계속 동요하기보다 부지런히 말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풀어 나갔다.

덕분에 연이은 레드 스타의 맹공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이런, 크로스가…….”

“조심해! 뒤에서 쇄도해 오고 있어!”

레드 스타의 주장 라이코 미티치의 배후에서 재빠르게 달려 들어온 보라 코스티치가 떨어지는 공을 향해 헤딩을 내리찍었다.

땅에 바운드가 된 후에 골대로 떨어지던 그 공을 맨유의 골키퍼 해리 그렉이 황급히 손으로 쳐 냈다.

정말이지 아찔한 순간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신 차려, 마크. 넋 놓고 있지 말라고.”

“미안. 눈치채지 못해서 그만…….”

해리 그렉이 호통을 치긴 했지만, 그의 선방은 맨유 수비수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와 달리 레드 스타 선수들은 아쉬움과 조급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와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이미 원정에서도 3 대 1로 패했는데, 홈에서도 진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결과에 레드 스타 선수들은 남은 힘을 쥐어 짜내 뛰고, 공을 빼앗아 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진출 팀 유나이티드의 저항은 만만찮았다.

오히려 라인을 올린 상황에서 위험한 기회를 내줘 버렸다.

“받아요, 데니스!”

도중에 인터셉트를 해낸 던컨이 전방의 빈 공간으로 뛰어가는 데니스를 향해 긴 롱 패스를 넣었다.

떨어지는 공을 정확히 컨트롤해 발 앞에 떨어트린 데니스는 상대 골키퍼 블라디미르 베아라까지 제치고 공을 골대에 밀어 넣었다.

삑-!

심판의 휘슬과 함께 선심이 깃발을 치켜들었다.

“쳇, 오프사이드라고? 아닌 것 같은데.”

아쉽게 물러난 유나이티드의 명사수.

그는 남은 시간 동안 맨유의 역습을 주도해 갔다.

삐익- 삑!

정규 시간 90분, 그리고 추가로 주어진 약 2분의 시간이 지난 후 시합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길게 울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최종 스코어 6 대 3으로 4강을 확정지었다.

“하하핫, 이겼어!”

“준결승이다!”

낙담하는 레드 스타 선수들과 달리, 맨유 선수들은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를 만끽했다.

승리의 기쁨에 흠뻑 젖어 있던 그들은 5만의 홈팬들이 원통한 심정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훈련장.

준영은 베오그라드 원정에 참여하지 못한 선수들과 이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좀 더 빠르게… 옳지!”

“바싹 붙어서 수비해!”

원정을 떠난 17명의 선수들을 제외하면 남은 선수들은 일부 후보 선수들뿐.

그래서 2군이나 유소년 선수들을 데려와서 같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공을 전진할 방향으로 돌려놔야 다음 대응이 빠르지! 자, 다시 한 번 해 봐.”

숀 코너리는 준영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애송이들의 플레이를 일일이 지적하며 고쳐 주는 준영을 보고 있자니 연극 무대의 감독이나 연출가들이 생각났기 때문.

“넌 당장 코치로 일해도 될 것 같아.”

“이미 그러고 있어요. 동네 아마추어 팀이지만.”

준영은 모즐리 AFC의 코치로 활동 중이었다.

성인 팀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그리고 최근에 창설한 유소년 팀에서는 감독인 에드먼드 짐사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원래 유나이티드와 계약할 때도 플레잉 코치로 할 뻔했죠.”

“하하핫, 입단과 동시에 노땅이 될 뻔한 거군.”

“뭐, 결국 일반 계약으로 했는데… 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

동료들과 떠들면서 애송이들을 지도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렇게 훈련을 끝내고 샤워까지 말끔히 마쳤을 즈음, 구단 직원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레드 스타를 이겼답니다. 3 대 2로!”

“오-!”

다들 기뻐하고 감탄했지만, 제일 놀란 건 준영이었다.

그가 알기로 원래 베오그라드 원정은 3 대 3 무승부로 끝났었으니까.

‘그런데 이겼단 말이지? 전용기의 효과 덕분인가?’

남은 4강, 그리고 결승까지 가면 그때도 브라운 회장에게 부탁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귀국은 예정보다 지연될 거라고 하네요. 오늘 오후에 뮌헨을 경유해서 올 거라고 합니다.”

“뭐라고!”

준영은 벌떡 일어났다.

정말 난데없이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

“뮌헨이라니! 갑자기 뮌헨은 왜?”

그의 격한 반응에 동료들은 물론 소식을 알린 구단 직원도 영문을 몰랐다.

아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왜 뮌헨을 들른다는 거죠! 전용기를 타고 갔잖아요! 갔을 때처럼 로마를 경유하면 될 텐데 어째서?”

“그, 그건 저도 잘…….”

“이런 빌어먹을!”

쾅!

준영은 라커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손등이 까졌지만,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왜 그래, 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숀의 물음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뮌헨으로 가면 안 돼요. 사고가 난다고요.”

“뭐? 사고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젠장,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대충 옷을 걸친 준영은 황급히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뭐가 어찌 된 건지 알아봐야 했으니까.

***

“여보세요? 네, 회장님, 접니다. 준영입니다.”

(존인가? 오, 안 그래도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데이비드 브라운은 준영이 왜 이렇게 다급히 연락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도 방금 베오그라드 쪽에서 연락을 받고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우리 팀이 뮌헨으로 가고 있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죠?”

(그게, 유고슬라비아 당국이 우리 비행기의 이륙을 금지시켰어.)

“예? 그게 무슨 말이죠? 비행이나 출입국 허가를 다 해 준 게 아니었습니까?”

(그래, 그렇게 했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트집을 잡았다는 거야.)

처음에는 금수품의 반출 신고를 받았다면서 밤새 비행기를 뒤지더니, 그다음에는 선수들의 짐까지 일일이 수색했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행정 절차를 핑계로 비행을 지연시키더라고.

(결국 기다리다 못한 선수단이 먼저 항공사 여객기를 이용해서 베오그라드를 떠났다고 하더군.)

‘빌어먹을! 자기네 팀을 이겼다고 심술을 부리는 건가?’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21세기에도 비슷하게 텃세를 부리는 나라들을 봤었으니까.

(존, 정말 뮌헨에서 사고가 나는 건가?)

“예, 틀림없어요! 거기 지금 눈이 와서 비행장 상태가 엉망입니다. 비행기가 이륙을 못한다고요.”

(이거야 뭔……. 아무튼 서둘러 조치하는 게 좋겠어. 정말 큰일이 나기 전에!)

브라운 회장과 통화를 마친 준영은 서둘러 근방의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시죠?”

“뮌헨 공항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에게 알려 줘야 할 게 있습니다.”

준영은 오후 비행기에 탑승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전보를 보냈다.

한 번으로 부족한 것 같아 두 번, 아니 세 번이나.

그렇게 조치를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과연 다들 사고가 날 거라는 자신의 말을 믿을까?

더구나 촉박한 일정 때문에 서둘러 귀국하려는 상황에서 말이다.

‘전보 몇 장으로는 안 돼.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준영은 직접 독일, 뮌헨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직접 가서 만류한다면 모두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

2월 6일 오후 뮌헨 공항.

베오그라드를 떠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은 이곳에서 환승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 눈이 엄청 많이 내렸는걸.”

“심심한데 기다리는 동안 눈사람이나 만들고 있을까?”

“눈사람은 무슨……. 하여간 이 녀석은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니까.”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던컨에게 핀잔을 하던 선수들도 밖으로 나가 눈싸움을 즐겼다.

버스비가 그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고 있을 때, 코치인 버트 윌리가 말을 건네 왔다.

“사전에 계약한 항공권을 취소하지 않길 잘했네요.”

“그러게. 잘못하면 꼼짝없이 베오그라드에서 발이 묶일 뻔했어.”

준영이 전용기를 빌리면서 필요 없게 된 항공권.

하지만 버스비는 이를 폐기하지 않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관계자분 계십니까? 유나이티드 관계자분?”

공항 직원이 이리저리 부르면서 찾자, 버스비는 손을 들어 올렸다.

“무슨 일입니까?”

“맨체스터에서 전보가 왔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공항 직원이 전보를 건네주고 돌아갔다.

전보를 본 버스비와 버트 윌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존이 보낸 게로군. 그런데 내용이…….”

“현재 현지 기상 상황 때문에 사고 가능성이 높으니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하네요.”

두 번째 전문도 똑같았다.

세 번째는 내용이 좀 더 들어 있었지만, 역시 탑승을 만류하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왜 사고가 날 거라 생각하는 걸까? 지금 눈이 많이 와서?”

“하긴 그 때문에 비행기 이착륙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합니다만…….”

버스비는 생각에 잠겼다.

준영이 전용기를 빌렸던 것도 혹시 이때 뮌헨에 눈이 많이 올 것을 알고 그랬던 걸까?

‘그렇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

늦장을 부리다간 다음 경기인 울버햄프턴전에 맞출 수 없다.

협회에서는 1분 1초라도 늦으면 몰수패를 내릴 거라 엄포를 놓았으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날씨가 나쁘다고 반드시 사고가 날 거란 보장도 없잖아요.”

“그렇겠지?”

“그럼요. 존 그 친구, 다 좋은데 어쩔 땐 너무 지나친 게 탈이잖아요. 이것도 하면 안 된다, 저것도 하면 안 된다 등등…….”

지나친 게 탈일까?

분명히 지난번에 존이 말했다.

모자란 것보다 지나친 게 낫다고 말이다.

『알려 드립니다. 맨체스터행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 609편을 타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마침 비행기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왔다.

밖에서 눈싸움을 하던 선수들도 들어와 짐을 챙겨 탑승 준비를 했다.

“감독님, 그 전보는 뭐죠?”

“아, 존이 보낸 건데…….”

버스비는 선수들에게도 준영의 전보를 보여 주었다.

돌아가면서 전보를 본 그들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그 녀석, 덩치는 크면서 너무 조심스럽다니까.”

“그러게요. 경기장에서 뛸 때처럼 과감하게 살면 될 텐데.”

다들 전문의 내용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걱정이 심한 정도로 여겼던 것.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출발하자고.”

“그래, 가서 그 덩치 큰 걱정꾼을 실컷 놀려 주자.”

다들 짐을 챙겨 비행기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전보를 읽고 있던 바비 찰튼도 친구들의 뒤를 따랐다.

문득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감춘 채로.

***

타이타닉도 그렇고, 역대 재난 중에서는 사전에 우려와 경고가 있었던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고 방심하다가 결국 큰 사고로 이어져 버리곤 하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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