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85화 (85/400)

Round 85. 수상한 움직임

“그러니까, 제가 좀 더 자주 지도해 주기를 바라는 거군요.”

준영의 말에 모즐리 AFC의 선수 겸 감독인 에디 퀴글리는 물론 성요셉 성당의 찰스 신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찰스 신부도 왕년에 골키퍼를 맡아 뛰었을 정도로 축구를 매우 좋아했다.

“지난번에 존 자네가 말한 대로 유소년 팀을 만드는 것도 진행 중이지.”

모즐리 AFC에 청소년 팀은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유소년 팀은 없었다.

그냥 동네나 학교에서 공 좀 잘 차는 아이들이 있으면 지켜봤다 데려오는 정도였다.

“주민들이나 스폰서를 맡은 유지분들이 찬성했던가요?”

“그래, 상당히 긍정적이었어. 마냥 놀기만 하거나 어울려 다니며 못된 짓을 하는 것보단 낫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하긴, 그렇겠네요.”

19세기부터 공립학교 등에서 축구와 여러 스포츠를 권장한 까닭도 이런 교육적인 목적 때문.

준영도 이러한 요청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지역 사회에 많은 봉사를 베풀수록 보다 가까워지고, 인망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맨체스터의 노숙자들에게 라면으로 한 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다만…….

“저는 일단 프로 선수이고, 따로 진행하는 사업도 있어요. 지금처럼 종종 찾아와서 가르치는 덴 문제가 없죠. 하지만 그걸로는 제대로 지도가 안 될 겁니다.”

“맞는 말이야.”

전담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것도 가급적이면 유능한 인물이!

‘문제는 그런 인물을 당장 찾기는 힘들다는 거지.’

준영은 현재 풋볼 리그 선수나 지도자들을 잘 아는 편은 아니다.

안다 해도 그들이 변두리 마을 아마추어 클럽팀의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려 들겠는가?

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고, 수입도 쏠쏠한 팀을 맡으려고 할 게 뻔하지 않은가.

“일단은 제가 아는 경로를 통해 문의는 해 보겠습니다. 이 근방에 가까이 살거나 일하고 있는 은퇴 선수나 지도자들이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해 준다니 고맙군. 아 참, 이건 좀 다른 일인데…….”

찰스 신부는 이야기의 주제를 바꿔서 준영에게 말을 건넸다.

“린든 씨 알지? 이 마을에서 200여 년째 대를 이어 사업을 하고 있는 유지 중의 한 사람이지.”

“예, 분명히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알버트와도 친분이 있기에 소개도 받았다. 모즐리 AFC의 스폰서도 맡고 있다고 들었다.

“린든 씨가 요즘 장사가 잘 안 돼서 고민이라 하더군. 그래서 자네가 지혜를 나눠 줬으면 하네.”

“제가요? 전 축구 선수입니다만?”

“그냥 선수는 아니지. 자네, 알루미늄 캔이라는 것의 특허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간편한 캔 뚜껑을 적용한 가벼운 알루미늄 캔에 담긴 보딩톤 맥주는 매우 핫한 반응을 보이며 폭발적인 매출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일전에 찰리 사장을 만나서 들은 바에 따르면, 경쟁에서 뒤진 업체들이 제발 캔 뚜껑이라도 쓸 수 있게 해 달라며 애원하는 판이라고.

“그런 발명을 해냈을 정도면 다른 쓸 만한 물건도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보네만?”

‘그건 사실 제가 생각한 게 아니라서요.’

애초에 준영은 알루미늄 캔이 쓸 만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가치를 알아본 것은 알버트였으니까.

“당장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건 생각나지 않네요.”

“그래, 당장은 그렇겠지. 뭔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도움을 주게. 그럼 매우 고마워할 게야.”

“그러죠.”

이런 엉뚱한 부탁까지 받게 될 줄이야.

황당했지만, 준영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강제는 아닌 데다, 그만큼 기대를 받고 있다는 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

오후에 준영은 허더스필드를 찾아갔다.

리즈 로드를 찾아가서 데니스 로나 옛 동료들과 만나고, 빌 섕클리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감독님.”

“복은 됐으니까 승점이나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 근데 이렇게 찾아오다니, 오늘 유나이티드 훈련이 없냐?”

“예, 새해 첫날이니까 푹 쉬라고 하던데요.”

“여유만만이구만. 하긴 그럴 만큼 승점을 쌓았을 테니까.”

섕클리는 아쉬운 표정으로 준영의 몸을 툭 쳤다.

“역시 네 녀석을 보내지 않는 건데. 정말이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준영이 있을 때는 개막전을 비롯해 5연승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던 허더스필드 타운은 최근 10위까지 떨어졌다.

“데니에게 듣자니, 맨유에서 온 선수들이 잘해 주고 있다던데요?”

“그래도 네 녀석만큼은 아니라서 말이야.”

기량을 떠나 적극성부터 비교가 되지 않았다.

공수 양쪽에서 매우 적극성을 보인 준영은 팀 전력 상승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래도 데니 그 녀석이 부쩍 기량이 올라 다행이지. 어린놈이 그리 분발하니 다른 녀석들도 열심히 하고 있고 말이야.”

“데니는 분명히 크게 될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그러면 또 버스비에게 빼앗기겠구먼.”

잠시 투덜거리던 섕클리는 뭔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준영에게 물음을 건넸다.

“아 참, 어제 웬 녀석들이 찾아왔다. 존 네 녀석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던데?”

“예? 어떤 걸 말입니까?”

“정확히 언제 입단했는지, 과거에 어디에서 활동했는지, 누구 추천을 받았는지 등등.”

이상한 일이다.

왜 이제 와서 허더스필드 시절을 알아보는 걸까?

더구나 기자가 취재를 하는 거라면 이준영 본인을 찾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자칭 기자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땐 수상한 냄새가 나더군. 분명히 누군가에게 고용된 탐정 같아 보였어.”

“탐정이면 범죄 사건이나 조사를 하지, 왜 뒷조사를 하죠?”

“뭘 모르는군. 탐정이니까 오히려 그런 일을 더 많이 하는 게야.”

탐정 하면 셜록 홈즈를 떠올리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섕클리는 준영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했다.

“나도 솔직히 네 녀석 과거는 궁금하다만, 억지로 알고 싶지는 않아. 다만 그러고 싶어 하는 놈들이 있는 모양이니 조심하도록 해.”

섕클리도 준영이 체코슬로바키아에 갔을 때 당한 일에 대해서 들은 바 있었다.

그 일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좀 거슬리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해결되기를 비마.”

섕클리와 대화를 마치고 나온 준영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지만, 주의를 듣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참 나, 뮌헨 참사에 신경 쓰는 것도 머리 아픈 판인데…….”

그렇다고 무시할 순 없는 일이다.

이미 앙심이 생긴 놈들이 가만있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충분한 대비를 해 놓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니 데이비드 브라운 회장님께 찾아가 볼까?”

안 그래도 부탁할 일이 있었기에 준영은 차에 올라 그의 저택으로 향했다.

***

“어서 오게, 존. 신년은 즐겁게 보내고 있나?”

애S턴 마틴의 회장 데이비드 브라운은 자신을 찾아온 준영을 반갑게 맞았다.

“즐겁지만,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 벌어질 일을 대비하자면 준비할 게 좀 있거든요.”

“다음 달에 벌어질 일이라니?”

브라운 회장은 자신이 미래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그래서 준영은 망설임 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뮌헨에서 비행기 사고가 난단 말인가. 거기다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많이 죽고 다친다니…….”

“회장님께서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어떻게?”

“전용기를 갖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번만 빌려 주세요.”

브라운 회장은 조종사 면허가 있고, 허더스필드 남서쪽에 개인 비행장까지 있었다.

만약 그의 전용기를 빌려 쓸 수 있으면 굳이 뮌헨을 들를 필요가 없으리라.

중간에 급유가 필요하다 해도 취리히나 로마를 경유하면 될 것이다.

“다가올 사고를 막으려 애쓰는 걸 보니 동료들과 꽤 정이 쌓인 모양이군.”

“물론이죠. 그게 아니라도 막을 수 있으면 막을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건 사실이다.

처음 이 시대에 왔을 때만 해도 내 앞가림부터 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으니까.

“비행기와 조종사를 빌려 주는 거야 어렵진 않아. 문제는 유고슬라비아 정부가 허락해 줄까 모르겠군.”

유고는 다른 공산권 국가들에 비해 서방에 우호적이다.

하지만 아무 항공기나 선뜻 통과시켜 줄 리 만무하다.

“그건 내가 유고 대사관 쪽에 문의해 보겠네. 그건 그렇고, 자네가 왔으니 하는 말인데…….”

뭔가 곤란한 표정을 지은 브라운은 어렵게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공장 직원들이나 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자네의 정보를 캐는 녀석들이 있는 것 같더군.”

“탐정들인가요?”

“맞아. 알고 있었나?”

“여기 오기 전에 주의를 들었던 참이었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섕클리에게 들었을 때보다도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브라운 회장은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인 데다, 미래에서 왔다는 증거까지 보관하고 연구 중이었으니까.

“안 그래도 그 자동차는 좀 더 안전한 연구 시설로 보낼 예정이야. 끝내주는 차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타 보고 싶어 안달하는 녀석도 있어서 말이지.”

“누군데요?”

“캐롤 셸비라고, 우리 레이싱팀 드라이버이지. 아니, 왜 그러나?”

준영이 조금 놀란 반응을 보이자, 브라운은 호기심을 느꼈다.

혹시 그 미국인 속도광 녀석이 나중에 유명해지는 걸까?

“그 사람 영화가 제 노트북에 있어서요. 나중에 멋진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니 놓치지 마십쇼. 아, 심장 질환도 있으니 꼼꼼히 보살펴 주고요.”

“그래, 알려 줘서 고맙군.”

중요한 정보를 얻은 브라운 회장은 곧장 수첩을 꺼내 체크를 해 두었다.

“아 참, 존, 방금 이야기를 들으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만?”

“뭐가 말입니까?”

올해 르망 24시 경주 결과라도 궁금한 걸까.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혹시 미래에 내 일대기 영화는 없나?”

“…….”

기대감에 설레는 브라운의 앞에서 준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다음 날 오전, 준영은 트래퍼드 파크에 있는 미스터리 푸드 컴퍼니 공장으로 향했다.

‘어제 들은 이야기 때문인가? 괜히 신경 쓰이는걸.’

자신의 뒷조사를 하는 놈들.

그 때문에 뒤따라오는 자동차나 길에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이 은근히 신경 쓰였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네, 수고 많으십니다.”

공장에 도착한 준영은 헨리 케일 상무와 인사를 나눈 후, 라면 생산 과정을 지켜보았다.

근로자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지만, 지난번보다는 좀 여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청에 따라 증원을 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신설 공장과 설비 확충도 진행 중이었다.

“신규 채용한 사람들의 일솜씨는 어때요?”

“처음 해 보는 일이지만 다들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제과 업체나 다른 식품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니까요.”

그래서 반죽하고 튀기는 일은 다들 이력이 나 있다고.

거기다 면을 뽑아 튀기는 기계도 약간 더 개량해서 능률을 높였다고 한다.

그런데 공장에서는 예전과 달리 영어가 아닌 낯선 말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폴란드어입니다. 신규 채용자 중에 폴란드인들이 좀 있어요.”

“그러고 보니 영국에 폴란드 사람들이 꽤 많단 얘기는 듣긴 했어요.”

“네. 나치가 싫어서도 오고, 소련 놈들이 싫어서 남은 사람도 많다고 하더군요.”

살펴보는 사이, 앰프에서 점심 식사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다들 일손을 놓고 식당으로 모여 끼니를 해결했다.

준영도 같이 어울려 식사를 하면서 근로자들의 불편이나 개선해 줬으면 하는 사항들을 들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창밖에서 공을 차는 이들이 보였다.

남은 점심시간 동안 여가라도 즐기는 모양.

그런데 그 속에 제법 발재간이 예사롭지 않은 이도 있었다.

‘저거 틀림없이 선출이로군.’

거의 프로 수준의 솜씨.

호기심이 든 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은거 고수(?)에게로 다가갔다.

***

탐정은 사실을 합법적으로 조사하는 직업입니다. 피해 사실에 관한 확인과 증거 자료 수집, 실종 및 가출인 소재 파악 등 각종 조사를 하는 전문직이죠.

특정 작품들 때문에 탐정 주변에는 항상 사건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 나간다(…)고 여겨지지만 말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