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82화 (82/400)

Round 82. 일진일퇴

텅-!

슈팅 같던 반즈의 코너킥이 골대를 맞고 튕겨 났다.

“아아아아아-!”

맨시티 팬들이 아쉬워하는 와중에 엉겁결에 리바운드 볼을 잡은 빌 포크스는 황급히 페널티 박스 밖으로 공을 차 냈다.

그 공을 잡은 건 케니 모건스.

그는 훈련 때 준영이 보였던 움직임을 떠올리며 미리 전진할 방향으로 몸을 살짝 돌려놓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공을 앞으로 차서 떨어트리곤 그대로 뛰어나갔다.

「위기를 모면한 유나이티드가 이번엔 절호의 찬스를 맞습니다. 시티의 측면을 내달리는 케니 모건스, 그야말로 질풍 같습니다!」

라디오 중계 캐스터의 말대로 케니는 질풍 같은 치달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마침 맨시티 측면 자원들은 공격 지원에 나서느라 전진해 있었고, 그만큼 공간이 넓고 마크도 헐거웠다.

이대로 측면에서 대각선으로 잘 치고 들어가면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도 만들 수 있을 터!

“저 녀석 잡아!”

“조심해, 케니! 뒤에 바로 붙었어!”

상대 선수들의 고함과 동료들의 외침.

정신이 없었지만 케니는 앞만 보고 뛰었다.

뒤쪽에서 누가 태클을 하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뒤꿈치를 살짝 스치며 지나갔다.

‘골대는 아직 멀었나?’

아니, 이제 다 왔다.

하지만 그 앞에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철벽 수문장 버트 트라우트만.

다가갈수록 괴물같이 커지는 그의 모습에 케니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슛을……!’

이럴 때 존은 어떻게 슈팅을 했더라?

토트넘과의 경기 때 공 밑을 차는 로빙슛으로 골키퍼를 넘겨 버렸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머리와 달리, 다리는 익숙한 슈팅을 시도했다.

‘들어가라!’

지면에 깔려 살짝 휘어 들어간 슈팅.

각을 좁히고 나오던 버트 트라우트만은 황급히 몸을 기울이며 손을 뻗었다.

퉁!

손끝에 살짝 닿은 슈팅이 골대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꺾였다.

하지만 버트는 안도할 수 없었다.

유나이티드의 명사수 데니스 바이올렛.

자기편 수비수들 사이로 송곳같이 튀어나온 그가 몸을 날리며 공에 발을 댔으므로.

황급히 달려간 버트가 손을 뻗었지만, 공은 그대로 골대 안으로 굴러가고 말았다.

「골! 골인! 유나이티드의 특급 골잡이 데니스 바이올렛! 중요한 더비전에서 중요한 선제골을 기록합니다!」

“와아아아아!”

방금 전 위기 상황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맨유 팬들은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질러 댔다.

어찌나 그 함성이 큰지, 메인 로드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잘했어, 케니! 정말 잘 뛰어 주었어!”

“고마워요, 데니스.”

데니스를 비롯해 다들 케니를 치켜세웠다.

방금 전 골은 그의 폭발적인 질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역시 뒷공간이 약점인가.”

버스비는 득점에 기뻐하면서도 그 와중에 맨시티의 전술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들이 방금 역습에 당한 것은 측면 자원들이 전진해 있을 때 허를 찔린 것이 컸다.

수적인 우위를 보이지 못할 때 케니가 정확히 치고 들어갔고, 뒤따라간 데니스가 마무리를 지었다.

“아직 보완할 점이 많죠.”

“그런 것 같군.”

고개를 끄덕이는 버스비에게 맥도웰이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실전에선 쓸 만하지요.”

맥도웰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맨시티 선수들은 선제골의 충격을 금방 떨쳐 내고 반격을 시작했다.

윙어들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공격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가더니, 잽싸게 패스를 주고받았다.

‘위험해. 수비 간격이 벌어졌어!’

3명의 공격수와 하프백 2명이 부챗살처럼 확 펴지며 밀고 들어오자, 맨유 수비수들도 흩어져 마크에 나섰다.

하지만 그런 대응은 준영이 본 대로 수비 간격을 넓히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고, 그 빈 공간을 맨시티에서는 놓치지 않았다.

던컨의 마크를 피한 케네스 반즈가 빈 공간을 파고든 동료 조 헤이즈에게 공을 찔러 주었다.

망설이지 않고 찬 헤이즈의 슈팅은 유나이티드의 골 그물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지!”

“그거야! 당했으면 바로 갚아 줘야지!”

순식간에 분위기가 돌변했다.

선제골을 넣은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터진 동점 골에 준영은 물론 맨유 선수들은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단히 준비하고 나왔다더니 사실이었나 본데?”

“그렇다고 순순히 당해 줄 순 없지.”

옆 동네 이웃은 지난 2라운드 때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낙심하거나 주눅이 들지 않았다.

“가자. 우리가 악마라 불리는 이유를 알려 주자!”

“Roger!”

준영의 외침에 모두들 전의를 뜨겁게 불태워 올렸다.

***

원점으로 돌아간 경기.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맨시티는 동점 골을 터트렸던 대로 양 측면을 활용하여 맨유 수비를 흔들어 댔다.

이에 맨시티가 전진하면서 나온 수비 뒷공간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양 팀 공격수들이 찬스를 잡아 슈팅을 날렸다.

전반 20분에 데니스 바이올렛의 슈팅이 아슬아슬하게 맨시티 골대 왼쪽으로 벗어났다.

이에 답하기라도 하듯, 3분 후 맨시티의 바비 존스턴이 위협적인 헤딩슛을 날렸다.

전반 30분에 준영의 패스를 받은 알버트 스캔론이 맨시티 골대를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5분 후, 동점 골을 터트린 조 헤이즈가 케네스 반즈의 패스를 받아 멋진 발리킥을 날렸지만, 해리 그렉의 선방에 막혔다.

“완전히 일진일퇴구만!”

“난타전을 벌이는 복싱 시합 같아.”

“과연 누가 먼저 다운당할지?”

양 팀 관중들이 몰입해서 경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반즈가 유나이티드 진영 측면을 파고들었다.

마크 존스의 중심을 무너트리고 페널티 박스로 들어온 그는 곧바로 슈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 준영이 달려와 그의 발밑에 있던 공을 가로챘다.

“듣던 대로 제법 빠르구만! 하지만 뒤를 조심하셔야지.”

그 말에 준영이 힐끔 고개를 돌리자, 반즈는 냉큼 달려들어 인터셉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준영의 드래그 백에 허공만 시원하게 가르고 말았다.

“속임수는 이제 안 통해.”

“쳇!”

“너네 전술도 이제 안 통할 거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영은 전방을 향해 길게 롱 패스를 보냈다.

맨시티 진영 측면 빈 공간에 떨어진 그 공을 알버트 스캔론이 달려가 낚아챘다.

“달려! 달려!”

“멈추지 말고 돌파해 들어가라고!”

동료들의 외침에 부응하듯, 스캔론은 코너 플래그 부근까지 파고들었다.

그사이 중앙에서 데니스 바이올렛을 비롯한 동료 선수들이 달려와 자리를 잡았다.

’공격 숫자가 부족한데…….’

이대로 문전으로 크로스를 올릴까, 아니면 마크하러 오는 수비의 발에 맞춰 코너킥을 따낼까.

망설이던 스캔론이 선택한 건 후자.

그런데 상대 수비가 껑충 뛰면서 그의 의도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상대 수비에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가길 기대했던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맨시티의 수비수 데이브 유잉이 차지하고 말았다.

“아이고! 그걸 그렇게 날리면 어떡해!”

“왜 거기까지 가서 공을 갖다 바치냐고!”

지켜보던 맨유 팬들은 가슴을 쳤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비호같이 달려온 준영이 데이브 유잉을 밀어내고 그대로 슈팅을 날렸다.

뻐엉-

묵직한 폭음과 함께 지면을 깎듯이 날아간 슈팅은 골키퍼 버트 트라우트만의 손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우아아아아!”

한순간 환희와 비명이 교차해서 울려 퍼졌다.

전반 종료 직전의 역전 골!

하지만 이어진 심판의 판정에서 다시 희비는 엇갈리고 말았다.

“뭐야, 차징 파울이라고?”

“휴, 간 떨어질 뻔했네.”

원망의 야유와 안도의 한숨이 맴도는 가운데, 양 팀 팬들이 자리한 경계선에서는 판정이 맞다, 그르다 말다툼이 벌어졌다.

“저게 무슨 차징이냐고!”

“손으로 밀쳤는데 차징이 아니면 뭔데?”

“그렇게 세게 밀었던 것도 아니잖아! 그 정도는 봐줄 수도 있는 거 아냐?”

“야 인마, 여긴 메인 로드야! 올드 트래퍼드가 아니라고!”

당사자인 준영은 덤덤하게 판정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서둘러 맨시티의 역습을 끊겠다는 목적으로 공을 빼앗아 슛을 날렸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골로 인정되었으면 그야말로 럭키 골이고, 안 되어도 원래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니 크게 아쉬울 건 없었다.

“미안해, 존.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그만…….”

“됐어. 실수할 때도 있는 거야. 신경 쓰지 말고 잊어버려.”

스캔론의 사과에 준영은 손을 내저었다.

실수는 누구나 하니까.

자신만 해도 전반 초반에 케네스 반즈에게 속아 넘어갔던 게 그대로 실점으로 이어졌다면, 진짜 얼굴도 못 들 뻔했다.

“시간도 다 됐으니 전반은 여기서 마무리하자. 결판은 후반에 보면 돼.”

“알았어.”

아마 후반전엔 맨유 쪽이 유리할 것이다.

아니면 맨시티 쪽에서 전술을 바꾸고 나오거나.

4-1-2-3 포메이션의 문제를 알고 있던 준영은 이를 확신할 수 있었다.

***

“잘하고 있어. 후반전에도 계속 시티 놈들의 뒷공간을 노리도록 해.”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 모인 선수들에게 버스비 감독과 머피 코치는 맨시티 전술의 취약점에 대해서 선수들에게 일러 주었다.

“지역 방어에서 제법 촘촘한 수비망을 보이고 측면 움직임이 왕성하지만, 아무런 대가가 없는 건 아니지. 분명 후반엔 발이 무거워질 거다.”

‘내가 딱히 말해 줄 것도 없구만.’

유능한 지도자들이라 그럴까,

두 사람 다 4-1-2-3 포메이션의 문제를 금세 눈치챘다.

덕분에 준영도 혀를 피곤하게 할 필요 없이 목을 축일 수 있었다.

“바비, 후반전엔 자네가 전진해서 맨시티 진영을 휘저어 놔.”

“녀석들을 더 지치게 하라는 거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버스비 감독은 준영과 던컨에게도 따로 지시를 내렸다.

“자네들은 수비에 신경 쓰면서 역습 시에 공격수들에게 정확한 패스를 전달하도록 하게. 정확한 패스 하나가 결과를 바꿔 놓을 수 있으니까.”

“빌드업을 제대로 하라 이거로군요.”

“Build up? 그래, 공격을 제대로 만들어 가자면 수비에서 시작되는 패스가 중요하니까.”

몇 가지 세부적인 지시를 내리고 나니 금방 하프타임이 끝났다.

준영은 후반전 맨시티가 그대로 4-1-2-3 포메이션으로 나온 것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아직 문제를 모르고 있나 보군.’

후반 30분, 아니 20분만 되어도 지쳐서 쓰러지거나 쥐가 나서 쓰러지는 녀석들이 속출할 게 틀림없다.

교체 규정도 없고, 거기다 이틀 전에 크리스마스와 박싱데이 연속 경기를 치르는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던가.

당연히 체력은 바닥이 나고 말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후반 20분, 아니 30분이 지났음에도 맨시티 선수들은 크게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다소 퀭한 게 피로해 보이기는 했지만, 몸은 움직일 만큼 움직이고 있었던 것.

“어떻게 된 거야? 저 자식들, 아직 멀쩡하잖아?”

“우리보다 더 잘 뛰는 것 같지 않냐?”

순식간에 지난 후반 30분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바비 찰튼은 버스비 감독의 지시대로 부지런히 맨시티 진영을 휘젓고 다녔고, 스캔론과 케니는 계속 빈 공간을 파고들며 피곤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대체 어째서?

“이 자식들, 단체로 약 먹었나.”

투덜대며 혼잣말을 내뱉던 준영은 순간 움찔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라는 상황이 아닌가 싶었으니까.

***

스포츠에서 도핑은 19세기부터 있었습니다. 육상 선수들이 알코올을 섭취하면서 시작했다죠.

축구에선 1954년 월드컵 결승에서 서독이 헝가리를 물리칠 때 암페타민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었습니다.

FIFA에선 1966년부터 약물 검사를 실시했는데, 나중에 적발된 사람 중에 유명한 선수가 마라도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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