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67화 (67/400)

Round 67. 쉽지 않은 경기

존 Y. 리.

스탠리 매튜스와 빌리 라이트라는 영국 축구계의 거목을 쓰러트린 버스비의 이단아.

이 괴물 같은 녀석의 실력을 본 퍼스트 디비전 팀들은 놈에게 맞설 만한 선수를 찾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녔다.

190센티미터대의 장신에 맞설 만한 체격이 있든지, 아니면 특출한 발재간이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늑대같이 상대를 물어뜯을 기세로 투지가 넘치든지.

‘하지만 우리 영감님은 이런 대책 마련에 무관심했단 말이지.’

현재 토트넘의 감독을 맡고 있는 지미 앤더슨은 나이가 많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만큼 의욕도 부족해서 우승권으로 발돋움하기 원하는 구단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의 야심 찬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코치인 빌 니콜슨과 주장인 대니 블란치플라워가 머리를 맞대 가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금 상황에선 당장 신규 선수 영입이 쉽지 않아.”

“그 정도입니까?”

“그래. 공 좀 찰 줄 아는 럭비 선수는 다른 팀에서 죄다 집어 가 버렸으니까.”

그래서 외국인 선수 영입에 나서는 구단도 있다고.

웨일즈나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기존의 주요 용병 수급처 말고 남아공이나 자메이카 쪽 선수들도 찾아보는 상황이란다.

“흑인 선수도 뽑는다고요?”

“동양인도 뛰는 판에 흑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라고 보는 거지. 이미 흑인 선수가 뛰고 있는 팀도 있고.”

“그렇군요. 그래도 유럽 쪽 선수들을 영입해도 되지 않아요? 프랑스나 스페인 쪽 선수들은 상당히 실력이 있는데…….”

“걔들이 주급 상한선이 있는 리그를 거들떠볼 것 같아? 더구나 영어를 못하면 영국에서 뛸 수도 없어.”

빌어먹을 협회 놈들, 거지 같은 규정을 만들어서 발목을 잡아채다니!

하지만 울분을 토한다고 대책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럼 차라리 기존의 잘하는 전술을 좀 더 빠르고 짜임새 있게 구축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장점을 최대로 한다……. 그래, 지금은 그게 최선이겠군. 유나이티드 녀석들이 전부 존 Y. 리인 건 아니니까 빠르고 부지런히 빈틈을 찾아 파고든다면…….”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폭격했던 것처럼 초반 러시로 점수를 따낸다!

그리고 안정적인 패스로 공을 오래 소유하며 유나이티드의 공격 기회를 최대한 줄인다!

이것이 토트넘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내놓은 필승책이었다.

***

팀원들이 연습 구장에서 합숙하다시피 하며 오래 연습했던 전술은 제대로 먹혔다.

점수가 벌어지자 유나이티드 녀석들이 흔들리는 모습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아직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버스비의 아이들.

타오를 땐 뜨겁지만, 한번 꺼지면 다시 불붙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한 골만 더 도망갈 수 있으면 승부를 확정 지을 수 있어!’

맨유의 버스비 감독도 대니와 똑같이 판단했다.

3골 차까지 벌어지면 경기를 뒤집기 정말 힘들어진다.

“서두르지 마! 침착하게…….”

그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공격수들은 킥오프와 동시에 성급하게 공격 패스를 시도하다 공을 빼앗겨 버렸다.

탄식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토트넘의 역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잽싸게 패스를 주고받은 그들은 공격의 시발점인 대니 블란치플라워 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계속 당하고 있을 것 같냐!”

과감하게 자기 위치에서 벗어난 준영이 공을 가로챘다.

“잘했어, 존! 얼른 패스해!”

던컨의 말에도 불구하고 준영은 공을 지키고만 있을 뿐, 패스를 하지 않았다.

“왜 그래? 머뭇거리고 있으면 스퍼스(* Spurs 토트넘의 별명)가 수비할 시간을 벌게 되잖아.”

“잘 들어, 던. 저 녀석들은 지금 우리를 조급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야.”

급하면 패스도, 슛도 마음대로 안 나간다.

시야도 좁아지고, 플레이도 단순해지게 된다.

즉, 상대가 그만큼 쉽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독님과 코치님도 그러잖아. 서두르지 말고, 공을 아끼라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던컨도 듣긴 했지만, 명심하지는 못했다.

상대의 빠른 공격과 패스에 대응, 아니 휘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휘둘리고 있었지만 말이야.’

준영은 대니 블란치플라워의 날카로운 판단력과 빠르고 정교한 패스 능력을 경계하느라 다른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놓쳐 버렸다.

“일단 침착하게 가자. 상대의 의도에 휘둘려서는 안 돼.”

“알았어.”

그제야 패스를 건네받은 던컨은 일단 자기 팀 공격수들의 움직임부터 살폈다.

“뭐 하냐, 애송이? 계속 그렇게 넋 놓고 있을 거야?”

지공으로 나선 던컨에게 토트넘 선수들이 공을 뺏기 위해 접근해 왔다.

“와아아아!”

마르세유 턴, 아니 이제는 스트레인지 룰렛이라고 불리는 기술로 던컨은 토트넘 선수들을 연달아 제쳤다.

이런 묘기에 시무룩해 있던 홈팬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저 자식, 또 기술을 훔쳐 갔네.’

잠시 어이없어하던 준영은 잽싸게 상대 문전으로 달려갔다.

마크를 따돌린 던컨이 측면의 빈 공간에 있던 바비 찰튼에게 패스를 찔러 줬던 것.

“바비, 침착하게 해!”

곧바로 크로스를 올리려던 바비 찰튼은 던컨의 말에 잠시 멈칫하며 공격수들의 위치를 살폈다.

그리고 달라붙은 상대 수비를 끌고 토트넘 측면을 허물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 과감한 돌파!”

“때려, 슛!”

관중들은 고개를 길게 빼며 바비 찰튼을 응원했다.

과감한 돌파에 깜짝 놀랐던지, 토트넘 수비가 순간 바비 찰튼 쪽으로 쏠렸다.

‘지금이다!’

수비수들을 충분히 끌어들였다 판단한 바비는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장신인 리암, 숀을 노린 높고 빠른 크로스.

하지만 공은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 약간 뒤에 처져 있었던 준영을 향해 떨어졌다.

“나이스 크로… 앗!”

헤딩을 시도하던 준영의 눈앞으로 토트넘 골키퍼 테드 디치번이 나타났다.

처음엔 리암과 숀을 경계하던 테드는 바비의 크로스가 공격수들의 배후에 침투해 있던 준영을 노린 것임을 알고 곧장 달려 나오며 점프를 했다.

‘캐치… 는 힘들겠군.’

테드는 잡는 걸 포기하고 주먹으로 공을 쳐 냈다.

준영이 몸을 날리며 머리를 댔지만, 장신이라도 손을 쓰는 골키퍼를 이길 수는 없었다.

‘누가 리바운드 볼을… 아!’

준영의 간절함에 응했던 걸까.

측면에 있던 데이비드 펙이 테드 디치번이 쳐 낸 공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황급히 수비가 달라붙자 공을 잡는 대신 곧바로 헤딩으로 띄워 올렸다.

퉁-!

약간 먼 거리에서 마치 박격포처럼 떨어지는 헤딩슛.

테드 디치번은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공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은 골대 상단 구석으로 들어가 버렸다.

“골이다!”

“우와, 저게 들어가다니!”

혹시나 했던 관중들은 득점이 터지자 방방 뛰어올랐다.

누구보다 기뻐했던 건 맨유 선수들이었다.

그야말로 천금 같은 추격 골이 터졌으니까.

“정말 멋진 슛이었어, 데이브!”

“어떻게 거기서 그렇게 넣을 생각을 한 거야?”

동료들의 격찬에 데이비드 펙은 얼떨떨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방금 그것이 들어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실은 잘못 맞은 거였는데.’

원래는 중앙에 있는 리암이나 숀에게 보내려는 헤딩 크로스였다.

그런데 살짝 삐딱하게 방향이 틀어져 버려서 낙심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골대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자, 이걸로 2 대 1이다.”

두 골 차에서 한 골 차.

이렇게 되면 추격하는 쪽이 기세가 오르고, 쫓기는 토트넘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준영의 생각과 달리 토트넘 선수들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맞아. 어차피 우리 선제골도 운 좋게 얻은 거였으니까.”

어차피 한두 골 정도는 얻어맞을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토트넘 선수들은 이를 비교적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좋아하지 마라, 애송이들. 아직은 우리가 리드하고 있어.”

“우쭐대지 마시죠. 곧 우리가 역전할 테니 말입니다.”

대니 블란치플라워의 엄포를 받아친 준영은 가늘게 미소를 지었다.

쉽지 않은 경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 기대와 흥분이 치솟고 있었다.

***

데이비드 펙의 추격 골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토트넘 핫스퍼는 동요하지 않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안정적으로 수행해 나갔다.

결국 전반전은 1-2로 종료.

10여 분의 휴식 후, 양 팀은 승부를 결정지을 후반전 경기를 시작했다.

‘흠, 유나이티드의 진형이 변한 것 같은데?’

맨유의 포진을 본 대니는 자신의 앞을 떡하니 막는 금발의 청년을 보았다.

바비 찰튼이라고 했던가.

전반전 유나이티드의 추격 골을 만들어 내는 과감한 돌파를 시도했던 선수였다.

“감독이 날 적극 마크하라고 하던가?”

“당신이 스퍼스의 공격 핵심이니까요.”

토트넘의 패스는 반드시 대니 블란치플라워의 발끝을 거쳐 간다.

그래서 하프타임 때, 머피 코치는 바비에게 대니를 찰거머리처럼 마크할 것을 지시했다.

“넌 좋은 선수야. 확실히 앞으로 대성할 테지.”

“…….”

“하지만 날 막기에는 아직 일러.”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니는 자신에게 들어온 패스의 방향을 살짝 돌려놓은 뒤, 그대로 바비 찰튼을 제쳤다.

하지만 제쳤다고 생각했던 바비가 곧장 쫓아와서는 태클로 대니에게 들어오는 리턴 패스를 잘라 내 버렸다.

‘쉬운 상대가 아닐걸. 끈질긴 구석이 있는 친구니까.’

상대 에이스에 대한 전담 마크.

스탠리 매튜스를 집까지 쫓아갈 기세로 마크했던 준영은 오늘 대니 블란치플라워도 그렇게 마크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머피 코치는 그 역할을 바비 찰튼에게 맡겼다.

‘너나 던컨의 수비력도 나쁘진 않지. 하지만 그런 데 쓰기엔 너희의 공격력이 아깝거든.’

추격을, 그리고 역전을 노려야 할 상황에서 좋은 공격 자원이 수비에만 전념해선 곤란했다.

그래서 찰거머리로 낙점된 사람은 바로 바비 찰튼.

이미 21세기에 있을 때부터 그의 실력을 잘 아는 준영은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약간 불안하단 말이야.’

바비 찰튼은 아직 만개하지 못한 선수.

그런 그가 현재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대니 블란치플라워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까?

“뭐, 위험하다 싶으면 도와주면 되는 거잖아.”

“하긴 그렇다만…….”

던컨도 토트넘의 캡틴을 상대할 기회를 양보한 게 아쉬운 모양.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득점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

바비 찰튼의 찰떡 마크로 대니 쪽으로 가는 패스는 줄었지만, 토트넘은 쉽게 공을 뺏기지 않았다.

그들은 부지런히 패스를 주고받으며 야금야금 맨유 골문 쪽으로 접근했다.

“당황하지 말고 확실히 마크해!”

공이 어디로 어떻게 가든 사람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결국 슛을 하는 건 사람이니까.

문제는 토트넘 선수들의 기동력과 발재간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이리저리 패스를 돌리던 그들은 은근슬쩍 위치를 바꾸며 맨유 선수들에게 혼란을 안겨 주었다.

“이런, 측면이……!”

토트넘의 미드필더 조지 롭이 공을 잡는 척하다 슬쩍 흘린 공이 측면에 있던 공격수 토미 하머의 발에 걸렸다.

그와 제일 가까이 있던 맨유 선수 에디 콜먼이 황급히 달려가 마크에 나섰다.

그러자 토미 하머는 에디가 바싹 달라붙기 전에 문전 쪽으로 서둘러 낮은 크로스를 찔러 넣었다.

“잡았… 아앗!”

황급히 몸을 날렸던 골키퍼 가스켈의 두 손 사이로 공이 빠졌다.

생각지도 못한 실수.

흘러나온 공을 향해 토트넘 추가 골의 주인공 스미스가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주장인 로저 바인이 몸을 던졌지만, 공은 스미스의 발끝에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1 대 3.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은 토트넘의 추가 골.

홈 관중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머리를 움켜쥐었다.

***

저번에 동양계 선수로 홍잉수를 소개했는데, 저때도 많진 않지만 흑인 선수도 몇 명 있었습니다.

영국 최초 흑인 축구 선수는 앤드류 왓슨이라고 하는 선수인데, 1870년대 스코틀랜드 퀸즈 파크에서 뛰었습니다.

이후 아서 와튼이라는 흑인 선수가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서 뛰었고, 이후에도 드물지만 흑인 선수들이 종종 나왔습니다.

현재 소설 배경인 1950년대에는 로이 브라운, 스티브 모코네라는 선수가 각각 왓포드와 카디프 시티에서 뛰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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