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66화 (66/400)

Round 66. 치킨 군단의 먼치킨

버스비 감독의 첫 번째 아이인 재키 블란치플라워.

북아일랜드 출신의 이 선수는 준영이나 던컨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하지만 중원에서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팀을 지탱하는 뛰어난 선수였다.

준영도 터너 신부님에게서 그의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다.

유나이티드의 중원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라고.

하지만 그의 위상은 높지 않았다.

그의 형이 그에게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

대니 블란치플라워.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다.

현재 토트넘 핫스퍼의 주장을 맡고 있는데, 훗날 토트넘에 더블 우승을 안겨 준 역대급 레전드 선수가 된다.

‘넓은 시야와 뛰어난 패스 능력을 가진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고 했던가.’

21세기 토트넘의 레전드인 손웅민에게서 그의 이야기를 곧잘 듣곤 했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외국인 선수로 활약이 좋다 보니 올드팬들에게 그와 많이 비교를 당했다고 말이다.

아직은 영광을 이루진 못했지만, 이미 영국 축구계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고 있는 선수였다.

“재키, 너네 구단,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예? 무슨 짓이라니?”

형의 물음에 재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인마, 맛있는 냄새가 풍겨서 경기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 안 그래도 경기 뛴다고 속을 비우고 왔는데…….”

상대 팀 레전드의 후각에 테러를 가할 정도로 21세기 치킨의 위력은 엄청났다.

곤란해하는 재키를 대신해 준영이 대답했다.

“닭 잡는 날이라서 닭 좀 왕창 튀겼습니다. 제가 아는 레시피를 끼워 넣어서요.”

“허, 우리 팀을 잡아먹겠다 이거군?”

당돌하다는 듯 대니는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거 알고 있나? 닭을 보고 겁쟁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굉장히 용감한 짐승이야.”

“뭐, 그렇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억관을 만나러 차이나타운으로 가면 시장 한편에서 중국인들이 투계(鬪鷄)를 하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었다.

19세기 영국에서도 즐겼다고 하는데, 그래서 나이 지긋한 영국인들도 어울려 구경하곤 했다.

“그래도 닭은 닭이죠. 악마를 상대로는 통하지 않아요.”

“악마라…….”

“요즘 우리 팀을 그렇게 칭하더군요.”

실제로 맨유가 악마(Devils)라고 불린 건 1960년대 들어서였다.

그런데 9라운드 블랙풀전 이후로 무패 행진을 이어 가자, 축구계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악마 같은 녀석들’이라고 들먹여지고 있었다.

“악마라. 확실히 그렇게 불릴 만해.”

대니 블란치플라워는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웃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닭 모이 신세가 될 거야.”

“하하, 바싹 튀겨지실 텐데.”

각오해라. 신나게 씹고, 뜯고, 맛봐 줄 테니.

요리(?)를 앞두고 싹싹 칼을 가는 준영에게 대니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무튼 경기 끝나면 튀긴 닭 좀 챙겨 줘라. 냄새만 맡고는 런던으론 못 돌아가겠어.”

동족상잔(?)을 서슴지 않는 레전드의 발언에 준영은 그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단어는 킥 앤 러시(Kick&Rush).

공격으로 전환할 때 수비 진영에서 최대한 빠르게 최전방 공격수에게 공을 전달하는 수법이다.

그런데 토트넘은 이 킥 앤 러시가 체계화되기 전부터 스피드를 중시한 공격 전술을 써 왔다.

푸시 앤 러시(Push&Rush).

1950-1951시즌 토트넘을 우승시킨 아서 로위 감독이 고안한 전술이다.

이 전술은 공격 시에 빠르게 동료에게 패스를 건네 수비벽을 피해서 리턴 패스를 받는 돌파법이었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티키타카네. 그것도 좀 원시적인.’

경기 시작과 동시에 준영은 토트넘 선수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폈다.

아직 토털 사커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토트넘 선수들은 상당히 빠르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동료들과 패스 플레이를 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맨유 수비 진영을 헤집고 파고들려 애썼다.

‘아직까진 문제없어. 빌과 로저 주장이 흔들리지 않고 잘 지키고 있으니까.’

오늘 레이 우드 대신 출전한 골키퍼 데이비드 가스켈도 침착하게 문전으로 들어오는 크로스나 침투 패스 등을 잘 끊어 냈다.

겉으로 봐선 아직 이렇다 할 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준영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공 점유율이 토트넘 쪽이 높다!’

겨우 10분 정도 지났을 뿐이지만, 준영을 비롯한 맨유 선수들은 아직 공에 발을 제대로 대지 못했다.

토트넘의 패스 플레이가 좋아서 여간해선 인터셉트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

그 패스 플레이를 중원에서 지휘하는 사람이 바로 대니 블란치플라워.

점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압박하던 그는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올렸다.

‘온다!’

준영은 빠르게 공을 몰고 치고 들어오는 대니의 앞을 막아섰다.

좌우에 있는 동료들과 패스 플레이로 빠져나가려는 걸까?

그리 판단했을 때, 대니가 준영의 다리 사이로 공을 통과시켰다.

‘아니……!’

준영은 잽싸게 옆으로 빠져나가려는 대니의 다리를 걸어 쓰러트렸다.

삑-!

변명할 수 없는 파울.

다행히 페널티 박스 밖이었지만, 준영은 안도할 수 없었다.

‘젠장, 송곳에 심장을 찔린 기분이군.’

제대로 허를 찔렸다!

찰나의 순간을 노린 것도 모자라서, 과감하게 정면으로 치고 오다니!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분명히 노리고, 제대로 계산해서 시도한 공격이다.

‘위험한 작자야. 조심하지 않으면 된통 당하겠어!’

무패 행진의 악마들에 맞서는 용감한 치킨 군단.

그들의 지휘자는 먼치킨이었다.

***

준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대니 블란치플라워의 돌파.

하지만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왼쪽으로! 좀 더 왼쪽으로 이동해요!”

올해 17살 소년 골키퍼 데이비드 가스켈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맨유의 수비벽을 조정했다.

그 수비벽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준영은 슬그머니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바로 심판이 지적하고 나섰다.

“자네, 10야드(9.15미터) 안으로 들어왔어. 뒤로 물러서도록.”

‘쳇!’

이 시대 거리 측정은 대강 눈짐작이다.

그래서 프리킥 상황에서 약간 거리를 좁혀도 대충 넘어가는 일도 있다.

하지만 경력이 많고 깐깐한 심판들은 컴퓨터만큼이나 정확하게 거리 조정을 하곤 했다.

‘슛을 하는 사람은… 역시 대니인가.’

자신이 얻은 프리킥을 직접 처리하겠다는 듯, 그가 공 앞에 섰다.

수비벽을 구축하고 있던 준영을 슬쩍 노려봤던 그는 곧장 슛을 시도했다.

“막아라!”

슈팅과 동시에 준영이 뛰어올랐다.

벽을 넘길 의도로 찼던 슈팅은 그를 피해 측면으로 휘어져 날아갔다.

수비벽 제일 왼쪽에 있었던 재키 블란치플라워는 힘껏 뛰어올라 슛에 머리를 댔다.

형이 날린 슈팅을 걷어 낼 생각이었지만, 방향이 꺾인 슈팅은 그대로 골대 쪽으로 날아갔다.

역동작에 걸린 와중에서도 가스켈은 손을 뻗어 봤지만, 공이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아, 젠장! 골 먹었잖아!”

“걷어 내야지. 골인시키면 어떡해!”

관중들이 탄식을 토하는 가운데, 경기 기록원은 난감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이게 골이야, 아니면 자책골이야?”

그냥 수비수 맞고 들어갔으면 대니 블란치플라워의 골이다.

그런데 굴절치고 너무 꺾였다는 게 문제였고, 여기에 관여한 사람도 재키 블란치플라워였다.

자책골이면 재키의 실책이 된다.

어쨌거나 토트넘의 선제골은 북아일랜드 출신 형제가 만들어 낸 셈이 되었다.

“아, 젠장! 어쩌다가…….”

“재수가 없었을 뿐이야. 잊어버려.”

“그래,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다고.”

던컨과 함께 재키를 위로하던 준영은 대니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동생의 불운 때문인지, 그는 골을 넣고도 그다지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어쨌든 골을 먹었으니 갚아 줘야지.”

“배로 갚아 주자!”

실점한 맨유는 곧장 역공에 나섰다.

중앙에서 던컨이 돌파해 가면서 측면으로 달려가던 데이비드 펙에게 패스, 팩은 라인 아웃되기 직전에 날카롭게 크로스를 올렸다.

쇄도해 들어가던 공격수 리암과 숀을 노린 패스였지만, 토트넘의 골키퍼 테드 디치번이 먼저 낚아챘다.

사실 크로스가 빠르고 강해서 공중에서 한 번 놓칠 뻔했지만, 그래도 실수하지 않고 처리했다.

준영은 올해 36살인 상대 골키퍼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눈길을 끄는 물건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에도 살인마 장갑이 팔리고 있구나.’

일전에 조셉이 만들었던 골키퍼 장갑, 아니 작업용 목장갑.

잭 글러브라 이름 지어진 이 상품은 예상대로 발매와 동시에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주요 구매층은 목수와 광부 등 노동자 계층.

하지만 준영이 의도했던 대로 골키퍼들 중에서도 사용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손바닥 부분에 발린 라텍스 덕분에 공을 보다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손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며 쓰지 않는 이들도 아직 많았다.

오늘 레이 우드를 대신해 출전한 가스켈도 맨손이었다.

‘본의 아니게 적군을 이롭게 한 셈이군.’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공이 다시 토트넘 쪽으로 넘어갔으니 얼른 수비로 전환해야 했다.

조금 전처럼 또다시 허를 찔릴 수 없으므로.

***

토트넘은 계속 공 점유율을 높여 가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진영을 들쑤셔 놓았다.

“침착해! 아직은 서두를 필요 없어!”

“공을 쉽게 넘겨주지 마!”

버스비 감독과 머피 코치도 원인을 파악했던지 선수들에게 침착과 절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토트넘의 빠른 공격과 패스에 신경 쓰느라, 대다수 선수들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형편이 못 되었다.

“조심해, 빌! 등 뒤로 상대 공격수가…….”

“앗!”

빠르게 오가는 패스에 현혹당한 빌 포크스는 상대 인사이드 포워드 조니 브룩스가 슬쩍 배후로 파고드는 걸 파악하지 못했다.

드리블을 하며 맨유 수비수들을 유인하던 대니 블란치플라워는 침투하는 브룩스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찔러 주었다.

황급히 빌이 마크에 나섰지만, 공은 이미 브룩스의 발을 떠난 뒤였다.

그 패스를 받은 토트넘의 공격수 로버트 A. 스미스는 논스톱 슛으로 두 번째 골을 터트렸다.

“헉! 이럴 수가……!”

“전반전도 안 끝났는데 벌써 두 골이나 내주다니!”

쾌재를 부르는 토트넘 쪽과 달리 홈팬들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최근에 맨유가 무패 가도를 달려왔기에 이렇게 연달아 실점하게 될 것은 상상을 못했으므로.

더구나 골키퍼 가스켈과 공격수 숀을 빼면 모두 팀의 간판선수들이었다.

그런데 두 골이나 얻어맞을 줄이야!

“그, 그래도 역전하겠지?”

“그럼, 토트넘보다 강한 팀도 이겼는걸.”

여기저기서 실망 섞인 원성이 터져 나왔지만, 대다수가 아직까진 좀 더 믿어 보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필드의 선수들은 혼란과 충격에서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다.

“토트넘의 패스 플레이가 이 정도였나?”

“더 빨라지고 정교해진 것 같아.”

당황하는 맨유 선수들의 모습에 대니는 가늘게 웃음 지었다.

올드 트래퍼드에서 2 대 0으로 앞서가는 이 결과는 단지 운 때문이 아니었다.

철저한 분석과 훈련 덕분이다.

‘우리는 저 동양인 거인에 맞설 선수를 구하지 못했어. 그래도 이길 방법을 찾아냈지.’

그 승리의 비책은 제대로 통하고 있었다. 그것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전반에 이미 2 대 0.

승리의 여신은 토트넘 쪽의 손을 들고 있었다.

***

로버트 A. 스미스는 통칭 바비 스미스라고 불렸습니다. 1957-1958시즌 득점왕이지요. 토트넘에서 271경기 176골을 넣었는데, 이는 토트넘 역대 최고 득점 기록이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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