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52화 (52/400)

Round 52. 예상 밖의 득점

“뭐, 뭐야?”

“골대가 부서졌다!”

관중들도, 취재 온 기자들도, 필드에 있는 양 팀 선수들은 물론 슈팅을 날린 장본인인 준영까지 놀랐다.

정말 이런 경우는 처음.

아쉬워할 틈도 없이 어이없어하던 그는 골대 가까이 가 보았다.

어떻게 해서 부서졌나 궁금했는데, 공교롭게도 빌리 라이트와 나란히 보게 되었다.

“밑동 쪽이 부러졌구만. 오래돼서 좀 썩은 건가?”

“썩다뇨? 골대가 썩어요?”

“나무니까 오래되면 당연히 썩지.”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는 빌리와 달리 준영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무로 된 골대라고? 골대는 쇠로 만드는 거 아니었어?’

21세기는 물론이고, 현 시대 올드 트래퍼드 골대도 금속이다.

그런데 나무 골대가 있었단 말인가!

“근데 이러면 경기는…….”

“그야 골대를 고칠 때까지 쉬는 거지, 뭐.”

빌리 라이트는 어처구니없긴 해도 나쁘진 않다고 여겼다.

안 그래도 맹공에 시달리느라 다들 지쳤고, 분위기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럴 틈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무지막지하군.’

밑동이 약간 썩긴 했다지만 골대를 부러트릴 위력의 슈팅이라니!

정말이지 간담이 서늘했다.

“빨리 예비 골대 가져와!”

“일단 그물부터 걷어 내야 하지 않을지…….”

골대 파괴라는 황당한 사건에 경기장 관리요원들이 허둥지둥하는 사이 경기는 중단되었고, 양 팀 선수들은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했다.

감독들은 선수들을 연방 격려하며 남은 시간 진행할 작전을 설명했다.

“잘하고 있어! 계속 그렇게 공격을 진행하도록. 두드리다 보면 골은 반드시 터질 게야.”

계속 공격을 독려하는 맷 버스비와 달리, 울버햄프턴의 스탠 컬리스는 냉정을 요구했다.

“상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다. 그렇지만 안달할 필요 없어!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올 테니까.”

유나이티드의 젊은 선수들은 재능이 있고 패기가 좋지만, 미숙한 면이 많았다.

그렇기에 컬리스 감독은 그 허점을 찌르면 승리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상대편 5번에 대한 마크를 게을리하지 마! 두세 명이 붙어도 상관없으니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해 놓으라고.”

컬리스의 말에 준영에게 농락당한 선수가 이를 갈았다.

“두세 명은 필요도 없습니다. 그 시건방진 원숭이 녀석은 내가 처치해 버리겠습니다!”

이미 경기 시작 전에 빌리 라이트에게 도발을 해 올 정도로 시건방진 녀석.

후반전에는 마치 푸스카스가 된 것처럼 설치고 있었다.

“두고 보십쇼. 발목을 작살내서 계집애처럼 엉엉 울게 만들어 놓을 테니!”

‘바보 녀석, 다 들린다고!’

컬리스 감독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곳은 라커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큰소리를 탕탕 치면 상대방도 다 듣게 된다.

그런데 상대인 존 Y. 리는 못 들은 척 물만 홀짝이고 있었다.

‘무시하는 건가? 그만큼 자기 상대가 아니라고 보는 건가?’

확실히 그럴 만한 실력을 가진 선수다.

아직 페널티 박스로 직접 치고 들어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만약 그 상황이 벌어지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일 터이다.

그 유일한 실력자가 열혈 바보를 다독이고 있었다.

“의지를 보이는 건 좋지만, 지나쳐선 곤란해. 자칫 퇴장이라도 당하면 우리 쪽이 불리해진다고.”

“걱정 마십쇼! 저 혼자 퇴장당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절대 쓸데없는 모험은 하지 마.”

공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승리의 여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모른다.

빌리 라이트는 수많은 경기를 뛰면서 그 점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부디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없기를 바랐다.

***

부러진 골대의 수리가 끝나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아쉬운 찬스들을 만회하기 위함인 듯, 맨유에서는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숀 코너리의 헤딩슛이 아깝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연이어 토미 테일러의 위협적인 슈팅이 터졌다.

이에 질세라 울버햄프턴도 역습을 시도했지만, 대부분의 공격은 중원에서 끊겼다.

공중볼이든, 지면을 구르고 들어오는 패스든, 준영과 던컨 2명의 하프백에게 거의 다 차단당했다.

이를 피해 측면이나 다른 빈 공간을 노리고 들어가면 바비 찰튼이 부지런히 달려와서 공을 가로채 갔다.

“젠장, 또 저 금발 애송이 자식에게……!”

“폐가 3개라도 달린 놈인가.”

마치 그동안 뛰지 못한 것을 다 뛰겠다는 듯, 엄청난 활동력을 보이는 바비 찰튼의 커버 덕분에 맨유 수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문제는 공격.

적극적인 공세에 불구하고 아직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빌리 라이트를 비롯해 울버햄프턴 수비수들의 저항이 워낙 완강했던 탓이었다.

“피곤할 정도로 끈질기게… 이크!”

갑자기 들어온 깊은 태클에 준영은 황급히 뛰어넘었다.

어떤 녀석인가 했더니 아까 자신의 발목을 작살내겠다고 하던 떠버리였다.

“쳇! 미꾸라지 같은 놈!”

“언제는 원숭이라더니?”

준영은 코웃음을 날려 주고 계속 드리블해 나갔다.

좀 전의 태클에서 공을 빼앗기지 않은 덕분이다.

“잘했어, 리틀 존! 이쪽으로 패스해!”

“아니, 내 쪽으로…….”

손을 드는 공격수들의 위치를 힐끔 바라봤던 준영은 공의 밑동을 가볍게 찼다.

크로스를 올리는 듯했지만, 실제론 황급히 달려드는 상대 수비수를 피하려고 살짝 띄워 올렸을 뿐.

패스가 아닌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칭크가 치고 들어오고 있어!”

“막아! 막으라고!”

준영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오자 울버햄프턴 수비수들이 몰려들었다.

성급하게 덤비는 건 결코 아니었다.

한 명이 준영을 마크하는 사이, 다른 한쪽에선 위험 지역으로 갈 만한 패스 길목을 막아섰다.

‘직접 돌파 후 슈팅을 날릴 속셈이군!’

재빨리 맨유 공격수들의 위치와 준영의 드리블 방향을 읽은 빌리 라이트는 곧장 대응에 나섰다.

그는 상체를 흔드는 페인팅으로 동료 수비수를 제쳐 낸 준영이 슈팅을 날리는 순간을 노려 태클을 날렸다.

“엇!”

‘역시 슈팅이었어!’

투웅-!

슛과 태클이 충돌하면서 공이 위로 튀어 올랐다.

슛이 막힌 준영은 물론,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공이 튀는 걸 본 빌리 역시 당황했다.

‘어째서 위로 튀는 거야? 태클에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갔어야지!’

빌리 라이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태클에 놀란 준영이 황급히 슈팅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

그렇게 슈팅의 파워가 줄면서 공이 공중으로 튀어 올라 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막지 않으면!’

‘여기서 놓칠 수 없어!’

빌리 라이트가 황급히 몸을 튀어 올리며 발을 뻗었다.

준영도 질세라 발을 가져다 댔다.

순간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이 경합에서 이긴 사람은 준영.

하지만 빌리 라이트는 만족했다.

준영의 발에 맞은 공은 골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각도로 날아갔으니까.

‘훗, 성급해서 제대로 슈팅을 날리지 못했…….”

안도하던 빌리의 미소가 굳어 버렸다.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로 빠르게 휙 지나갔던 공.

왼쪽 골포스트를 지나 라인 밖으로 나갈 거라고 봤던 그 공에 발끝을 댄 사람이 있었다.

슈팅보다 동료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는 데 주력했던 유나이티드의 장신 공격수, 숀 코너리는 단 한 번 나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쭉 뻗은 그의 발에 맞은 공은 골대 왼쪽 구석에 떨어졌다.

난데없는 실점.

망연자실한 울버햄프턴 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들어갔어! 한 골 먹었다고!”

“오프사이드 아냐?”

혹시나 반칙이 아닐까?

하지만 오프사이드는 아닌지 부심은 기를 들지 않았다.

주심 역시 이의를 보이지 않았다.

수비수 등 뒤에 처져 있던 숀 코너리가 마지막에 몸을 날려 발끝으로 골을 넣는 모습을 보았으므로.

1 대 0.

팽팽하던 경기의 균형이 맨유 쪽으로 기울어졌다.

“해냈어! 내가 골을 넣었다고!”

“하하핫! 축하해요, 숀!”

선제골의 주인공인 숀 코너리는 애들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의 골인지!

간만에 출전한 경기의 상대 팀은 울버햄프턴.

그것도 빌리 라이트가 출전한다고 하니, 골 넣을 기회가 거의 없을 거라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득점력은 형편없었으니까.

그런데 마치 기적처럼 절호의 기회가 왔고, 놓치지 않고 밀어 넣었다!

“하하핫! 왔노라! 보았노라! 넣었노라! 그리고 이겼노라!”

“아, 숀, 기쁜 건 알지만 아직 경기 안 끝났거든요. 설레발은 자제하죠.”

준영이 흥분한 숀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빌리 라이트는 늑대 군단의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멍하니 서 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녀석에게 실점할 줄이야…….’

토미 테일러나 던컨 에드워즈, 데이비드 펙 정도의 실력자도 아니다.

체격은 좋고, 패스를 잘하지만 단지 그뿐.

경기 경험도 부족하고 결정력 이전에 자신감도 모자라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런 녀석이 선제골의 마침표를 찍었다!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인데……. 나도 그걸 잠시 잊고 있었군.”

실망스럽긴 해도, 포기할 때는 아니다.

아직 시간은 10분가량 남아 있으니까.

동점 골을 넣으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고, 그럼 역전도 가능하다.

“그래, 아직은 몰라.”

승리의 여신은 아직 누구의 손도 들지 않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대장 늑대는 날카롭게 눈빛을 번득였다.

***

뼈아픈 실점을 허용한 울버햄프턴은 이후 총공세에 나섰다.

수비수들까지 적극적으로 전진해 올라가서 공격에 힘을 보탰던 것.

‘아직 토털 사커 개념이 없어도 급하니까 뭐든 하게 되는 거군.’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던 준영은 곧바로 내려와 수비에 힘을 보탰다.

다 된 밥이 무가 되는 상황은 원치 않았으므로.

“슛해라, 지미!”

“키 큰 원숭이 따위 제쳐 버리라고!”

홈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은 지미 머레이는 맨유 문전에서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찰떡같이 바싹 따라붙은 준영 때문에 그는 슈팅을 시도하지 못했다.

‘안 돼. 여기선 슛을 할 각이 없어.’

난감해하던 그는 중앙 쪽으로 침투해 오는 노먼 딜리를 보고 그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하지만 그쪽은 빌 포크스가 커버하고 있었다.

빌은 냉큼 달려가 공을 멀리 걷어 냈다.

“좋아! 역습 찬스다!”

“놓치지 말아요, 숀!”

빌이 걷어 낸 공은 센터 서클 부근에 있던 숀 코너리가 잡아 냈다.

가슴으로 공을 받아 떨어트린 후, 곧바로 울버햄프턴 진영 쪽으로 돌아섰다.

“가게 내버려 둘 것 같냐!”

“이크! 달라붙지 말라고. 난 그런 취향 없으니까.”

전진해 있던 울버햄프턴 수비수가 거칠게 달려들자, 숀은 공을 빼앗기지 않게 접근해 오는 동료 쪽으로 밀어 주었다.

그 패스를 받은 건 바비 찰튼.

준영과 위치를 바꿔 전진해 있었던 그는 이번엔 과감하게 공격에 나섰다.

“애송이 주제에 어딜 감히!”

“앗, 이런!”

빌리 라이트가 태클로 공을 걷어 내는 바람에 바비 찰튼의 찬스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그 태클로는 이미 기세가 오른 버스비의 아이들을 막아 세울 수 없었다.

‘여기서 한 골 더 넣으면 완전히 주저앉힐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준영뿐만이 아니라 맨유의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경기 막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투지는 뜨겁게 치솟아 올랐다.

***

나무 골대는 의외로 많았고, 파손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슈팅 때문이 아니라 선수들이 부딪쳐서 그런 거였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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