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44화 (44/400)

Round 44. 펠레 스코어

1 대 2는 뒤집기 어려운 스코어가 아니다.

다만 지금은 역전된 상황이고, 전세는 아스날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문제는 팀원들인데…….’

축구는 혼자 잘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렇기에 동료들의 사기부터 북돋을 필요가 있었다.

“괜찮아!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어!”

준영은 동료들에게 크게 소리치며 박수를 쳤다.

“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최강이야! 금방 역전할 수 있어!”

“당연하지! 저 런던 거지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가장 먼저 준영에게 맞장구를 친 건 던컨이었다.

그는 오늘 아스날의 거친 플레이에 휘둘리면서 평소 같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역전 골을 얻어맞고 나니, 흥분으로 달아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렇게 냉정을 되찾은 건 던컨만이 아니었다.

주장으로 할 일을 못했던 로저 바인, 역전 골의 빌미가 되는 파울을 저질렀던 빌 포크스, 중원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재키 블란치플라워 등등.

준영의 독려에 대다수 선수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래, 우린 최강이다.’

‘여기서 쓰러지면 유나이티드가 아니지!’

‘허드 저 자식 면상이 구겨지는 꼴을 보고야 말겠어!’

먹은 거 이상으로 돌려주리라!

이렇게 투지를 불사르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도 있었다.

공격수 리암 휄란.

덩치는 크지만 성격은 점잖고 온순했던 그는 아스날 수비수들의 맹렬한 수비에 잔뜩 주눅이 든 상태였다.

준영은 그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등짝을 철썩 후려쳤다.

“아얏! 왜 그래, 리틀 존?”

“고개 들어. 땅만 보고 있어선 골대가 안 보일 거야.”

준영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리암은 쉽게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이렇다 할 기회도 못 잡고…….”

“야 인마, 자신감을 가져. 저 런던 거지들이 더럽게 경기하는 건 다 널 실력으로 이길 자신이 없어서라고.”

너는 저들보다 뛰어난 선수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당당히 맞서 싸워라!

리암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준영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쉽게 따르지 않았다.

지금도 아스날 수비수들과 눈이 마주치면 발에 납이라도 단 것처럼 무거워졌다.

역전했다고 저들이 봐주지는 않을 터.

전반에 당했던 것처럼 거친 헤딩이나 팔꿈치, 태클이 들어오면 어쩌나.

자칫 여기서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면?

“리암, 네가 명심해야 할 게 있어.”

연방 리암의 어깨를 다독여 주던 준영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저것들에게 쫄아서 고개 숙이고 있으면, 경기 끝난 뒤에도 고개 들고 다니지 못해.”

“그건…….”

“너나 나나 여기선 외국인 용병에 불과하잖아. 제일 만만한 타깃이라고.”

리틀 존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패하면 관중들의 비난은 무기력한 공격수에게 쏟아지겠지.

리암도 자신이 가장 만만한 표적임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영국인들에게 차별과 멸시를 받아 온 아일랜드인이었으니까.

‘그래, 경기 끝난 뒤에도 고개를 숙이고 다닐 순 없지!’

영국인들이 찬사하는 선수가 되어야지, 손가락질을 당하는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고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을 응원해 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맞서 싸워야 한다!

리암은 고개를 들었다.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눈빛은 방금 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고마워, 존.”

“낯간지러운 소리 하지 말고, 골이나 박아 넣어.”

준영은 공이 놓인 센터마크 쪽으로 리암을 떠밀어 보냈다.

이제 어떤 식으로 경기를 뒤집을까 고민을 하면서.

***

“다행히 기가 죽진 않은 모양이에요.”

역전당한 후, 경기를 재개한 선수들을 살펴보던 머피 코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작 정신 차리고 할 것이지.”

“그만큼 부담스러운 경기라 그럴 테지. 아스날은 그 부담을 제대로 비집고 들어왔고 말이야.”

버스비 감독은 선수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경기를 이겨야 리그 선두를 유지할 수 있고, 마음 편히 유러피언 컵 예선에 임할 수 있다.

그리고 28일 울버햄프턴 원정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고.

“분위기가 바뀐 건 좋지만, 여기서 더 과열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군요.”

머피는 걱정스럽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역전을 이뤄 낸 아스날이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나이티드가 맹공을 펼치면 저들도 그만큼 저항하려 들 건 뻔한 일.

그 와중에 경기가 더욱 거칠어져 심한 부상자가 나오면 패배 이상으로 심한 타격이 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난 우리 선수들이 해낼 수 있다고 믿어.”

“네, 무엇보다 던컨이 있으니까요.”

제대로 집중하면 홀로 경기를 뒤집을 역량을 가진 슈퍼 플레이어 던컨 에드워즈.

버스비도 그의 기량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믿는 승리의 카드는 또 하나 있었다.

“거기다 리틀 존도 있지.”

감독의 믿음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슈퍼 플레이어.

이준영이 던컨의 패스를 받아 아스날 진영으로 바람같이 달려 들어갔다.

“칭크가 온다! 쓴맛을 보여 줘!”

전반에 호되게 데었던 아스날 선수들은 기를 쓰고 준영을 쫓아갔다.

근접한 이들은 유니폼을 잡아당기는 건 물론, 발바닥을 내미는 높은 태클을 날리며 위협했다.

“어이쿠, 좀 살살 합시다.”

“닥치고 공이나 내놔, 쿨리 새끼야.”

이렇게 에워싸인 상황에서도 준영은 아직 공을 뺏기지 않았다.

‘참 나, 여럿이서 둘러싸고 공 하나 못 뺏고 있나?’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에반스는 자신도 합세하려다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런, 반대편은 텅 비었잖아!’

저 동양인에게 다들 너무 쏠렸다!

에반스가 그것을 인식했을 때, 준영이 수비수 스탠 찰튼을 따돌리고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날아오는 이 공을 차지하기 위해 2명의 선수가 뛰어올랐다.

리암 휄란과 아스날 골키퍼 코르넬리우스 설리반.

공을 향해 거침없이 몸을 날린 그들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퍽-!

“크억!”

설리반이 뻗은 양손이 리암의 얼굴을 후려쳤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공이 리암의 이마에 맞았다.

“우아아아아!”

상대 골키퍼의 쌍 펀치를 맞고 쓰러졌던 리암.

그는 관중들의 함성에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공이 골대 안에서 그물을 살포시 덮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색을 한 그는 바로 벌떡 일어나 망아지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들어갔어, 존!”

“거봐, 인마. 할 수 있잖아.”

준영은 쌍코피를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는 리암을 보곤 너털웃음을 지었다.

「2 대 2! 아일랜드 공격수의 골로 유나이티드가 동점을 만들어 냅니다! 아스날의 리드를 불과 몇 분 만에 원점으로 되돌려 버렸습니다!」

라디오 캐스터만큼이나 관중들도 흥분했다.

아스날에 역전 골을 먹었을 때만 해도 망연자실하거나, 깊은 침묵으로 분노를 삭이고 있던 차였다.

이렇게 오늘도 지고 마는 걸까.

한탄하고 있던 차에 터진 골은 막혀 있던 체증을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크하핫! 자식들, 이제 발동이 걸렸구만!”

“이제 역전으로 가자!”

“할 수 있어! 충분히 가능하다고!”

우레와 같은 관중들의 응원에 더욱 힘을 얻은 걸까.

맨유 선수들의 발놀림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이에 반해 동점 골을 허용한 아스날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흔들리고 있었다.

역전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경기가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여겼건만.

경기 흐름과 주도권은 거짓말처럼 맨유에게 넘어갔다.

‘제길, 이 칭크 놈 때문에!’

성급하게 공격하다 패스를 차단당한 아스날은 준영이 다시 공을 몰고 들어오자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가장 이성을 잃었던 건 아까 준영에게 농락당했던 스탠 찰튼이었다.

그는 준영이 레인보우 플립으로 동료 데이브 보웬을 따돌리고 들어오자 거칠게 발을 올려 찼다.

떨어지는 볼을 노렸던 그의 발끝은 그대로 준영의 명치에 꽂혔다.

“커억!”

삐익-!

몸싸움에 관대하던 심판도 이 상황은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심판이 최종 판정을 내리기도 전에 맨유 선수들이 스탠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심지어 골대에 있던 골키퍼 레이 우드까지도!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개자식, 넌 뒤졌어!”

제일 먼저 달려든 던컨은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스탠이 화들짝 놀라 피하지 않았으면 아마 안면에 정통으로 맞았을 것이다.

“이거 놔. 저 자식, 죽여 버리겠어!”

“참아. 그러다 너도 퇴장당해!”

“우리가 잘못했으니 좀 진정하라고!”

경기 내내 거친 플레이로 일관했던 아스날 선수들도 지금은 쩔쩔맸다.

그만큼 방금 전 스탠의 파울은 심한 수준.

그래서 펄펄 뛰는 던컨이나 들소처럼 몰려온 맨유 선수들을 진정시키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도 준영은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주장인 로저가 다가와 준영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좀 어때? 괜찮아?”

“그게… 갑자기 숨이 턱 막혀서…….”

준영이 가까스로 일어났을 무렵, 양 팀의 충돌은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심판은 스탠 찰튼에게 퇴장 판정을 내렸다.

“우우우우우-”

“꺼져라, 쌍놈아!”

“여기가 런던 뒷골목인 줄 아냐?”

홈 관중들의 거센 야유를 받으며 스탠은 필드에서 나왔다.

고개를 푹 떨군 그의 표정은 납덩이처럼 변해 있었다.

“진짜 걷어찰 생각은 아니었다고, 진짜…….”

그냥 겁만 주려는 정도였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릴 줄이야.

“최악이구만.”

잭 크레이스턴 감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동점 골 허용에 퇴장까지.

연달아 악재가 발생한 상황에서 그는 일단 수비를 강화하며 맨유 쪽으로 기울어진 흐름을 돌려 보고자 애썼다.

하지만 수적인 열세로 인한 빈틈을 메우기란 쉽지 않았다.

전세는 완전히 상대에게 기울였고, 분기탱천한 버스비의 아이들은 거침없이 그 빈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이런, 던컨이 들어온다!”

“막아, 얼른!”

아스날 문전 측면으로 쇄도해 온 던컨 에드워즈.

아까 흥분해서 성난 사자 같은 모습을 보여 줬던 그는 지금은 너무나 침착하게 크로스를 올렸다.

중앙으로 올려진 그 크로스를 쇄도하던 리암이 슬쩍 흘려 내고 지나쳤다.

그를 마크하던 아스날 수비수 에반스는 흠칫해서 돌아섰다.

‘아차, 반대편 쪽이면……!’

그의 눈에 유나이티드의 윙어 데이비드 펙이 보였다.

투웅-

펙이 발끝으로 가볍게 밀어 넣은 슈팅이 골키퍼의 옆구리로 빠지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아아아!”

“Goo-ooal!”

올드 트래퍼드가 또다시 들썩였다.

「3 대 2, 정말 대단한 경기네요. 버스비의 아이들이 경기 막판에 재역전을 만들어 냈습니다!」

축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상황.

신이 난 홈 관중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모자와 손수건을 하늘로 집어 던졌다.

여전히 아픈 명치를 매만지고 있던 준영은 한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드디어 뒤집었군.”

이겼다. 승리가 눈앞으로 왔다!

하지만 준영은 방심하지 않았다.

오만과 방심은 공을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가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눈을 부릅뜨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아스날 선수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

실제 기록을 보면 아스날의 스탠 찰튼은 이 경기 이후로 한동안 출전하지 않습니다. 부상인지 징계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설에선 퇴장 징계로 설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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