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4화 (34/400)

Round 34. 천재와 이단아

‘펠레와 마라도나……. 아니, 그 이상이라고 했던가?’

던컨 에드워즈를 아는 축구계 명사들은 다들 그렇게 평가했다.

피지컬이나 기술, 지능 등 모든 게 완벽한 선수.

어떤 포지션에 가져다 놔도 기대 이상을 해내는 환상적인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

불행한 사고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세계 축구계에 이름을 길이 남겼을 천재라고 말이다.

“너무 뚫어지게 바라보지 말라고. 잘못하면 이상한 성벽을 갖고 있다고 연인에게 오해를 살걸.”

“연인?”

던컨은 턱짓으로 저편에서 지켜보는 리즈를 가리켰다.

준영은 냉큼 손을 내저었다.

“그냥 주인집 손녀야. 뭐라고 말할 만한 사이는 아니라고.”

“그랬나?”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던컨에게 준영은 공을 건네줬다.

“자질구레한 잡담은 그만하자고. 지금 무얼 바라고 있는지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하하하, 대단하군! 그거 동양의 신비한 마법인가?”

“그냥 경험이지.”

준영은 던컨의 순진한 표정에 깃든 호기심과 투쟁심을 읽어 냈다.

마치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사자 같다고 할까.

하지만 그 사자를 바라보는 준영의 눈빛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버스비의 에이스. 어디 어느 정도 실력인지 한번 보자고.’

‘만만찮은걸. 감독님이 기를 쓰고 영입하려는 이유가 있었어.’

일대일의 승부.

서로를 주시하던 두 사람은 천천히 간격을 좁혀 갔다.

그러다 준영의 빈틈을 살핀 던컨이 곧장 선공을 펼쳤다.

재빠르게 공을 드리블한 그는 준영을 제치려 들었다.

‘못 간… 우와앗!’

막아서던 준영은 던컨의 페인팅에 그대로 속을 뻔했다.

중심을 잃을 뻔한 몸에 반동을 넣은 그는 던컨을 쫓아가 차징을 펼쳤다.

‘헐, 안 밀리네!’

‘맙소사! 무시무시한 힘이군!’

어깨싸움에서 준영과 던컨 둘 다 혀를 내둘렀다.

결과는 팽팽했지만, 준영은 못마땅했다.

체격은 자신이 더 커서 얼마든지 밀쳐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던컨은 끝까지 버티며 공을 지켜 냈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

‘허, 이런 거구인데 순발력도 뛰어나군.’

던컨은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마크를 펼치는 준영의 실력에 또 한 번 감탄했다.

그러다 준영이 슬쩍 발을 내밀어 공을 가져가자 또 한 번 놀랐다.

‘발바닥으로 공을 긁어냈다고? 헝가리식 테크닉이잖아!’

‘미래 축구 맛 좀 봐라, 레전드야.’

최고의 선수라 평가받았다 하나 어차피 1950년대 선수.

테크닉은 이쪽이 더 월등하다!

준영은 자신 있게 반격에 나섰다.

“헉! 무슨 기술이야, 그건?”

‘헛다리 짚기란다, 레전드야.’

준영의 현란한 발놀림에 던컨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표정만 그럴 뿐, 그는 헛다리에 현혹되지 않고 정확하게 준영의 앞을 막아섰다.

심지어 정확하게 태클을 해서 준영의 발밑에 있는 공을 쳐 냈다.

“앗, 이런!”

“하하핫! 나는 원래 수비수라고!”

냉큼 몸을 퉁기며 일어난 던컨은 잽싸게 공을 낚아챘다.

다시 공격권은 던컨에게 넘어갔다.

마크에 나서던 준영은 던컨의 달라진 드리블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거 방금 내가 썼던……!”

“하하, 허리와 상체의 움직임이 중요한 기술이로군.”

헛다리 짚기를 그대로 흉내 낼 뿐만 아니라, 발바닥으로 공을 컨트롤하는 드래그 백 비슷한 기술까지 쓰다니!

그것도 데니스 로처럼 어설프거나 풋내 나는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다.

‘이 녀석, 진짜 천재구나!’

자신이 맛보여 준 미래 축구 기술들을 바로 소화해 버릴 줄이야!

괜히 신부님이나 축구계 명사들이 침이 튀도록 찬사를 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질 수는 없지!’

준영은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다.

21세기에 있을 때 월드컵과 챔스에서 만났던 특급 공격수들과 맞섰을 때처럼 집중력 있는 수비를 펼쳤다.

이런 강도 높은 마크와 압박에 던컨의 표정도 변했다.

신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는데, 계속 그랬다간 망신을 당할 것 같았다.

“헉, 헉…….”

“후욱, 후… 끈질기군.”

가볍게 맨투맨 승부를 시작했던 두 사람의 몸에선 열기와 함께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공을 가운데 두고 몸을 부딪치고, 부지런히 스텝을 밟으며 진로를 막고, 돌파를 시도했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아.’

거리를 두고 가만히 지켜보던 리즈는 거칠면서도 현란한 몸놀림을 두근거리며 지켜보았다.

막상막하.

누구 하나 우세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팽팽하게 승부는 이어졌다.

그렇게 치열하게 다투는 와중에 튕겨진 공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내가 잡는다!”

“아니, 내가……!”

동시에 점프한 두 사람.

엇비슷한 높이로 뛰어오른 둘은 떨어지는 공을 향해 머리를 가져다 댔다.

빡-!

“으악!”

“아이고!”

눈에서 불똥이 튀면서 몸이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준영뿐만 아니라, 던컨도 머리를 움켜쥔 채 잔디 위를 굴렀다.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 리즈가 달려왔다.

“둘 다 괜찮아요?”

“으윽, 걱정할 거 없어요.”

“시합하다 보면 이 정도 충돌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은 준영은 던컨에게 말을 건넸다.

“계속할 거야?”

“비긴 걸로 치지.”

“좋아. 그럼 다음에.”

“알았어. 다음에 또 붙자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제 한솥밥을 먹는 동료가 되었으니까.

던컨이 내미는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준영은 그와 사이좋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

1957년 9월 7일.

허더스필드 타운와 로더럼 유나이티드 FC의 디비전2 5라운드 경기가 리즈 로드에서 열렸다.

이 경기는 준영이 허더스필드에서 뛰는 마지막 경기였다.

고별전을 깔끔하게 끝내고 싶었던 그는 로더럼의 날카로운 역습을 잘 차단해 냈다.

이런 준영의 선전에 힘입어 허더스필드는 후반전 공격수 알렉스 베인이 골을 터트리며 1 대 0의 승리를 거두었다.

5연승.

신명 나는 결과를 거두었음에도 리즈 로드에 모인 2만의 관중들은 아쉬운 한숨을 토했다.

“오늘로 존을 보는 게 마지막이구나.”

“함부로 팔 선수가 아닌데.”

“버나드 뉴먼(* 1955~1958 허더스필드의 회장)이나 구단 이사들은 팀을 일으켜 세울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

리즈 로드에 몰려온 기자들은 허더스필드 팬들의 아쉬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웨스트요크셔와 그레이터맨체스터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심지어 런던에서 온 기자들도 있었다.

“버스비가 엄청난 이단아를 뽑았군!”

“동양인 선수라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문제는 이적 조건이라고!”

준영의 이적과 관련해 줄다리기를 하던 허더스필드와 맨유는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합의를 봤다.

1. 존 Y. 리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3만 파운드를 지불한다.

2. 이적료와 함께 2명의 선수를 허더스필드로 보낸다.

이적료 3만에 선수 2명을 끼워 넣은 트레이드.

준영의 실력을 잘 아는 섕클리 감독은 이 거래에 만족하지 못했다.

“고작 2명이 뭐야? 존은 7명분은 충분히 할 선수라고!”

그러나 실력과 별개로 이 거래에 불만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노랑 원숭이를 사는 데 백인 둘을 바꾼 것도 모자라 웃돈을 줬다고?”

“흥, 정말 말세구만!”

“빅토리아 여왕님 시절엔 이렇지 않았는데…….”

인종적인 문제와 별개로 2부 리그의 선수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고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들은 준영의 플레이를 직접 보지 못했다.

아무튼 이슈나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기자들에게는 이번 일이 좋은 취재 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경기 후에 엄청난 취재 요청이 쏟아졌다.

“리 선수, 본인이 보기에 유나이티드라는 팀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까?”

“네. 청색 줄무늬도 괜찮았지만, 붉은 저지도 맘에 드네요.”

“영국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구단입니다. 자신이 있습니까?”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 영국에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유나이티드 팬들 중에서도 이번 이적을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만?”

“하하, 그랬던 건 허더스필드 팬들도 마찬가지였죠.”

이리저리 쏟아지는 질문 중에는 정말 시답잖은 것들도 많았다.

정말 아시아인이 맞냐는 둥, 조상 중에 백인이 있지 않냐는 둥.

그러나 개중에는 꽤 날카롭고 찔끔한 질문들도 있었다.

“맨체스터 가디언의 헨리 도널드 데이비스입니다. 리 선수는 한국계 홍콩 시민이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홍콩에 있는 제 지인과 연락해 봤는데, 리 선수에 대해선 전혀 들어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건…….”

준영의 말문이 막힌 상황에서 헨리 기자의 공세가 계속 날아들었다.

“리 선수, 영국에 와서 처음 축구를 한 건 아니지요?”

“…예, 그렇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제가 본 귀하의 플레이에서도 분명히 프로 수준의 경험과 노하우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과거 경력은 오리무중인 거지요?”

뒷조사 한번 제대로 했구나!

준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엉뚱한 헛소문을 지어내거나 가십거리만 찾는 작자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훗날 영국 정론지 더 가디언이 되는 맨체스터 가디언의 기자는 정말 만만찮게 날카로웠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땀이 다 날 정도로 말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축구협회들에 문의해 봤지만, 리 선수에 대해선 모른다는 답신이 왔습니다. 귀하는 대체 어디에서 축구를 했던 겁니까?”

삽시간에 장내는 조용해졌고, 기자들의 시선은 준영의 굳게 다문 입으로 향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을 끝내고, 그 입은 천천히 열렸다.

“제가 축구를 배웠던, 예전에 몸담았던 팀은…….”

준영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다시 돌아가기 힘든, 아니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있습니다.”

‘뭐?’

‘도대체 무슨 소릴……?’

처음에 어리둥절해하던 기자들.

이내 그들 사이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설마 철의 장막 너머에서?’

‘그렇군! 망명자였던 거야!’

유럽이라도 철의 장막 너머, 소련과 공산권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알기 힘들다.

그나마 잘 알려진 일이 작년에 헝가리에서 벌어진 민주화 항쟁.

그때 많은 헝가리인들이 서구로 망명해 왔다.

그중에는 페렌츠 푸스카스를 비롯한 매직 마자르의 선수들도 있었다.

‘확실히 언급하기 껄끄럽겠군.’

‘거기다 공산권 상층부에 연줄이 닿은 고위층 인사의 일가라면…….’

‘어쩐지 비싼 차를 타고 다닌다 했는데, 심상찮은 신분이었군.’

‘폴란드계인 프레드로 남작에게 신세 지는 걸 보면 폴란드 쪽과 관련이 있나?’

‘이거 괜히 파고들다간 MI6에서 찾아오는 거 아냐?’

설마 미래에서 왔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기자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하다 준영에게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심지어 처음 질문을 건넨 헨리 데이비스 기자는 사과까지 했다.

“리 선수, 사정도 모르고 민감한 질문을 해서 미안합니다.”

‘어라? 이 갑자기 왜 이러지?’

그냥 좀 두루뭉술하게 돌려 말했을 뿐인데.

진땀을 뺐던 준영은 예상 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했지만,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

던컨 에드워즈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들을 보면 정말 당대 축구에 걸맞지 않은 놀라운 기량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21세기 기준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피지컬에 굉장한 창의성과 기술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거기다 투쟁심도 강하고, 성실하고 사생활도 깔끔했죠.

그야말로 완벽한 선수였던 셈인데, 천재박명이라는 운명을 피해 가진 못했습니다. 그 운명이 보수적이고 옹졸한 사람들의 책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안타깝기 짝이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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