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0화 (30/400)

Round 30. 영광스러운 만남

레이 윌슨.

준영도 인정할 정도로 체력이 좋고 수비력이 뛰어난 풀백 플레이어다.

그런 그가 수비수 켄 테일러 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아마 적당히 공을 돌리며 시간을 끌 생각이었지만…….

“앗! 저, 저거!”

켄은 레이가 전방으로 공을 보낼 거라 생각하고, 다소 전진해 있었다.

완전히 엇박자가 나면서 공은 엉뚱한 곳으로 가 버렸다.

그리고 그 미스를 파고들며 공을 잡아챈 선수는 리버풀의 알란 아코트.

그가 날린 슛을 골키퍼 샌디 캐논이 펀칭해 냈지만, 이어진 토미 롤리의 발리슛은 막아 내지 못했다.

준영이 손쓸 틈도 없이 벌어진 사고였다.

“이런 바보 자식, 어디로 패스하는 거야!”

“보고 줬어야지!”

관중석에서 아쉬움의 탄식과 짜증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개막 후 연속 무실점 기록이 4경기째에 막을 내렸으니까.

너무나 어이없는 실수에 레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존, 미안해. 미리 확인하고 패스를 해야 했는데…….”

“다음에 안 그러면 돼.”

준영은 레이를 다독여 주었다.

패배가 확정 난 것도 아니고, 아직 허더스필드가 리드 중이다.

‘물론 1골 차 점수란 게 위험하지만.’

후반전 시간도 아직 10분가량 남아 있다.

리버풀의 입장에선 동점은 물론 역전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

그 희망의 불씨가 지친 그들을 불타오르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둘 순 없지.”

기세가 오르기 전에 막는다.

그리 결정지은 준영은 패스를 건네받자마자 리버풀 진영으로 공을 몰고 달려갔다.

“칭크가 온다!”

“오라고 해! 본때를 보여 주자고!”

준영에게 적잖은 감정이 쌓여 있던 리버풀 선수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몰려들었다.

공격수든, 수비수든 가리지 않고서.

그 광경을 본 관중들은 혀를 내둘렀다.

“여우를 쫓아가는 사냥개 무리 같군.”

“저 멍청이들, 저러면 반대편은 완전 노마크라는 걸 모르나?”

크로스 한 방이면 끝장낼 수 있다.

다들 그리 봤지만, 준영은 패스를 하지 않았다.

“존, 얼른 패스해!”

“형님, 뭐 해요! 패스하라고, 패스!”

반대편에서 손을 흔들던 동료들은 물론이고, 관전하던 데니스 로도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준영은 공을 계속 몰고 갔다.

‘뚫고 갈 수 있어!’

리버풀 선수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들의 압박은 체계적이지 못했다.

21세기는커녕, 70년대 토털 사커와 비교해도 부족한 수준.

빈 공간 쪽으로 먼저 공을 툭 쳐 놓은 준영은 속도를 올려 달려가며 태클은 피해 내고, 차징은 튕겨 냈다.

시원스러운 치달에 관중들은 열광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잘한다, 꺽다리!”

“달려! 달리라고!”

오리엔트 특급 열차처럼 리버풀 페널티 박스까지 달려온 준영.

그를 막기 위해 돈 캠벨과 로니 모란이 동시에 마크에 나섰다.

‘이 자식, 더 이상은 못 간다!’

‘몸은 몰라도 공은 두고 가!’

강렬한 투지로 이글거리던 그들의 눈이 이내 휘둥그레졌다.

준영이 공을 슬쩍 뒤로 뺀다 싶더니 이내 뒤꿈치로 쳐서 공중으로 띄워 앞쪽으로 떨어트린 것!

사포(Chapéu), 혹은 레인보우 플릭(Rainbow Flick).

고난도 개인기가 번개같이 펼쳐지자, 수비수들은 물론 뒤에 있던 골키퍼까지 놀라서 굳어 버렸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준영이 골대 안으로 공을 밀어 넣은 다음이었다.

“우와, 뭘 한 거냐!”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언블리버블(Unbelievable).

맥주 캔을 든 관중들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기자들, 필드의 선수들까지.

모두의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그거 하나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 자식, 정말 푸 만추의 제자냐?”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리버풀 진영이었다.

치달은 몰라도, 레인보우 플릭에서 결정타를 먹은 그들은 단체로 넋이 나가 버렸다.

2라운드 완패를 갚아 주겠다는 결심도, 준영에 대한 분노나 투지도 깡그리 증발한 채로.

그들은 더 이상 경기를 뒤집겠다는 의욕을 불태우지 못했다.

***

리버풀에게 3 대 1로 승리한 다음 날.

2명의 신사가 프레드로 저택을 찾아와 준영을 찾았다.

‘이분은…….’

전갈을 듣고 나온 준영은 손님 중 한 사람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챘다.

이 시대 신문과 방송에서도 봤지만, 21세기 축구계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이었으므로.

“자네가 존 Y. 리로군. 만나게 되어 반갑네. 난 유나이티드의 수석 스카우터인 조 암스트롱이라고 하네. 이쪽은…….”

“알고 있습니다. 맷 버스비 감독님이시죠?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버스비 감독님.”

“하하, 이렇게 반겨 주니 고맙군.”

준영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명문 구단으로 만든 위대한 명장.

신부님의 이야기로만 듣던 레전드 감독을 마침내 대면하는 순간이었으니까.

자세한 영문을 모르는 버스비는 준영이 자신의 예상 이상으로 호의를 보이자 매우 기뻐했다.

“빌이 내 험담은 하지 않았나 보군.”

“섕클리 감독님이요? 험담은 안 하지만 질투는 하시던데요.”

준영은 어제 경기 끝나고 펍에서 뒤풀이할 때 들은 섕클리의 넋두리를 떠올렸다.

허더스필드 임원들은 야망이 없다는 둥, 버스비가 부럽다는 둥.

“이미 빌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거라 생각하네. 자네를 반드시 우리 팀 선수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경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좀 달라졌어.”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어제 경기 중 실점은 있었지만, 못한 경기는 아니다.

그런데 왜 마음이 달라졌다는 건지?

의아해하던 준영은 이어지는 버스비의 말에 깜짝 놀랐다.

“나는 자네를 단순한 선수가 아닌 플레잉 코치로 영입하고 싶네.”

***

플레잉 코치(Playing Coach).

보통 은퇴할 때가 다 된 노장 선수가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기 전에 맡는 자리다.

그런 자리를 준다고 하니 준영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벌써 퇴물 선수 취급하는 건 아닐 테고.

“이유가 뭡니까?”

한번 들어나 보고 결정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건넨 물음에 버스비는 순순히 대답했다.

“우리 팀은 유러피언 컵에 참가하고 있네. 지난 시즌에는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아깝게 떨어졌지.”

‘그랬죠. 그 팀에는 괴수들이 있으니까요.’

이때 레알 마드리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프란시스코 헨토, 엑토르 리알을 비롯한 당대 초특급 플레이어들이 즐비했다.

1955-56시즌부터 1959-60시즌까지 5연속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유럽 축구의 끝판왕이었다.

오죽했으면 저승사자 군단이라 불렸겠는가.

차를 한 모금 마셨던 조 암스트롱이 버스비의 말을 이어 나갔다.

“버스비는 이번 시즌에 반드시 그들을 꺾고 유러피언 컵을 손에 넣고 싶어 해. 하지만 아직 우리 팀엔 부족한 게 많지.”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버스비의 아이들이라 불릴 정도로 젊은 선수들이 많았다.

다들 재능이 뛰어나고 패기가 좋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거야. 리그에선 잘하다가도 FA컵 같은 토너먼트 대회에서 미끄러지는 것도 그 때문이지.”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만?”

맨유가 유러피언 컵 우승을 거둔 것은 앞으로 10년 후인 67-68시즌이다.

뮌헨 비행기 참사 같은 사건이 없었다면 더 빨랐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아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을 제패할 만큼 팀이 완성되지도, 선수들의 경험이 쌓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팀의 지도자는 어떻게든 방책을 마련해야 마땅하지.”

“그 방책으로 제가 낙점된 거다 이거군요.”

“맞아. 특출한 개인기에 여유로운 움직임……. 내가 보기에 자넨 프로 경력뿐만 아니라 국제 경험도 두루 갖춘 것 같더군.”

조의 말에 준영은 가늘게 웃음 지었다.

실제 AS 모나코에서 3시즌을 뛰었고,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월드컵에도 나갔으니까.

‘물론 그 미래의 경력은 말할 수 없는 게 되어 버렸지만.’

이제는 사라진 시간과 경력.

준영이 씁쓸해하고 있을 때 버스비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조가 말한 부분도 있지만, 자네의 활동량도 인상적이었지. 쉬지 않고 공수를 오가면서 헌신적이고 지혜롭게 경기를 해 나가더군.”

“제가 있던… 곳에서는 그렇게 뛰라고 배웠습니다.”

21세기 축구는 선수가 갖춰야 할 점들이 많다.

개인기와 우수한 피지컬, 많은 활동량과 넓은 시야, 전술적인 지식과 창조적인 플레이, 그리고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등등.

이 중에는 1957년에도 강조되는 게 있다.

하지만 준영이 습득한 능력들은 70년이란 시간 동안 축적되고 발전한 산물.

돋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번에 빌과 연락을 하면서 들은 말이 있지. 자네가 축구를 배운 곳은 우리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발전된 것 같다고. 뭐, 그리 틀리진 않은 얘기야.”

버스비는 유러피언 컵에 나가 보면서 확실히 알았다.

유럽이나 남미의 축구가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술이나 전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축구 인프라나 선수들에 대한 대우나 지원도 이탈리아나 스페인이 훨씬 나았다.

축구협회의 높으신 분들은 불편하게 여기겠지만, 축구 종가 영국은 더 이상 챔피언이 아니다.

월드컵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도.

“그래서 나는 자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우리 선수들의 부족한 경험을 메워 줄 수 있고, 새로운 축구를 알려 줄 수 있으니까.”

“그렇군요. 말씀하신 뜻은 잘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던 준영은 보다 현실적인 부분을 지적했다.

“아시겠지만, 동양인 선수도 거북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물며 코치를 맡는다고 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확실히…….”

맷 버스비는 물론, 조 암스트롱도 준영이 지적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했다.

백인이, 대영제국 국민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으니까.

그런데 아시아 구석에서 온 동양인이 축구 종가인 영국에서 축구를 가르친다?

사고방식이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펄펄 뛸 게 틀림없다.

“전 영국에 와서 프레드로 남작님이나 섕클리 감독님같이 좋은 분들도 만났지만, 배타적인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렇겠지.”

“심지어는 차별적인 언행이란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건 21세기에서도 쉬이 고쳐지지 않은 문제다.

1957년 현재는 말할 것도 없다.

식어 버린 차로 입을 축이던 버스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존,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 복잡한 걸 싫어하네. 다 같은 신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왜 구분을 하고 편견을 만들어 내 문제를 일으키는 건지…….”

“흥, 두 번의 전쟁에서 배운 게 없는 거지.”

조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던 버스비가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에 옹졸한 자들이 공격한다면 기꺼이 자네의 편에 서지. 나도 자네랑 다르지 않으니까.”

“다르지 않다고요?”

“그래,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리투아니아 출신이야.”

가난한 이민자의 자식이다 보니, 버스비 역시 힘든 일이 많았고 편견이나 멸시를 겪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이방인 청년이 남처럼 여겨지지 않았던 것.

“자네가 우리 팀에 오면 나는 우리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넬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네. 우리 선수들도 기꺼이 환영해 줄 거야.”

‘가족이라…….’

어릴 때 가족을 잃었던 준영이 가장 동경하는 단어다.

물론 그 단어를 악용하는 인간들이 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

***

레인보우 플릭의 경우, 올스타전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현대 축구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압박이 워낙 드세서 어지간한 개인기가 아니면 돌파가 힘드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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