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1화 (21/400)

Round 21. 오버헤드

조의 설명에 젊은 스카우터도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근데 보통 다른 공격수들은 저 꺽다리처럼 열심히 견제하진 않잖아요?”

“그야 체력을 아껴야 하니까. 공격하기 전에 힘을 빼선 곤란하다고 여기거든.”

교체 규정이 없는 시대의 선수들은 지나친 체력 낭비는 피하려고 애썼다.

더구나 현재 허더스필드는 3∼4일 간격으로 시합을 하는 중이다.

오늘 경기 엔트리에 다소 변동이 있긴 했지만, 주축 선수들은 그대로 출전했다.

“당연히 체력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 그런 상황에서 최전방 공격수가 저렇게 수비를 거들어 주면 수비수들 입장에선 매우 고마울 수밖에 없지.”

“근데 그 말대로라면 공격수도 체력에 신경 써야 하잖아요. 수비하는 데 힘을 다 뺄 수는 없는 노릇일 텐데요.”

“저 꺽다리 녀석은 부지런하게 움직일 만큼, 체력에 자신이 있는 거겠지.”

실제로 준영은 필드 선수들 중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다.

순간 스피드나 점프 등을 보면 확실히 움직임에 있어 차이를 보였다.

“저거 타고난 걸까요? 아니면 그만큼 훈련을 한 걸까요?”

“둘 다가 아니겠나.”

조 암스트롱은 지금까지 수많은 선수들을 봐 왔다.

그중에서도 존 Y. 리는 상당히 특이한 별종이었다.

‘사람의 몸이란 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야. 아무리 타고나더라도 저 정도로 발달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히 엄격한 단련과 절제를 해 왔을 테지.’

그 단련과 절제를 저 젊은 선수 홀로 해냈을까?

조는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았다.

세상에 천재라는 부류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도 교육이라는 과정은 거친다.

원석을 다듬기 위해 연마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뛰어난 인재들의 뒤에는 우수한 스승이 있기 마련인 것.

‘도대체 누가 저런 괴물을 키워 낸 걸까?’

이런 의문을 갖고 있는 건 조 암스트롱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준영을 지도하고 있는 빌 섕클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항상 중시하던 강한 피지컬에 뛰어난 양발 테크닉을 저 녀석은 당연한 것처럼 갖고 있지.’

여기에 여러 포지션을 수행할 수 있는 전술적인 능력까지 있다.

섕클리는 이미 리그 개막 전부터 준영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임을 파악했다.

수비만 시키기엔 너무 아까운 피지컬과 테크닉이라 훈련이나 연습 경기 때 시험을 해 봤던 것.

그러자 준영은 어색해하지 않고 잘 수행했다.

‘2개 이상의 포지션은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고 했던가? 녀석이 배운 곳에선 그게 당연한 건가?’

확실히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으면 유리하다.

경기 중에 다채롭게 전술 변화를 꾀할 수 있으니까.

거기다 퇴장이나 부상 아웃과 같은 돌발적인 사태에도 대처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존의 나라가 지난 월드컵 때 헝가리와 싸워서 졌다지?’

그 푸스카스가 있는 매직 마자르를 상대로 9 대 0으로 졌다고 한다.

헝가리가 상대라면 9 대 0도 형편없는 스코어는 아니다. 당장 잉글랜드만 해도 헝가리에게 7 대 1로 깨졌으니까.

더구나 듣자 하니 한국은 경기 도중 부상이나 피로로 선수가 4명이나 빠진 채 뛰었다고 한다.

‘혹시 그 경험 때문에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도록 권장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스위스 월드컵은 겨우 3년 전에 있었던 대회다.

3년 사이에 그런 식으로 선수를 육성할 수 있단 말인가?

잠시 생각하고 있는 사이, 허더스필드 원정 팬들이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레이 윌슨에게 공을 받은 데니스 로가 측면을 돌파해 들어간 것.

시원한 돌파였지만, 마무리는 깔끔하지 못했다.

마크하는 수비수 한 명을 제치려고 공을 한 번 더 건드렸던 것이 너무 힘이 들어가 버렸다.

‘라인 아웃이군.’

필드가 질척하지만, 저 속도라면 분명히 나간다.

하지만 기를 쓰고 질주한 데니는 공이 나가기 직전에 크로스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간신히 살려 낸 공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준영의 달려들며 헤딩할 수 있게 앞으로 줘야 하는데 뒤쪽으로 떨어졌던 것.

이번 공격은 실패.

섕클리가 고개를 내저었을 때였다.

황급히 돌아선 준영이 발을 뻗어 공을 받아 냈다.

발등에 맞은 공은 튀어 올랐지만, 준영이 그 공을 제대로 컨트롤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지진 않았다.

이미 중심이 무너진 몸이 쓰러지고 있었으니까.

저런 자세로는 슛은커녕 공을 확보하기도 힘들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준영이 허공을 향해 힘차게 반대편 발을 치켜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섕클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저건……!”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린 브라질의 특급 공격수로, 1938년 프랑스 월드컵 득점왕이다.

그는 난이도가 높은 킥을 선보인 인물로 유명했다.

월드컵에서도 선보였던 그의 멋진 슈팅은 이후 축구 팬들을 흥분시키는 최고의 진기명기로 자리 잡았다.

그 고난도의 킥이 지금 준영의 발끝에서 터졌다.

“바이시클 킥이다!”

“이런 맙소사!”

월드컵에서나 나올 정도로 멋진 원더골.

진흙투성이가 된 채 일어난 준영은 발에 맞은 공이 골대 우측에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하핫,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역시 형님은 최고야!”

흥분한 허더스필드 선수들이 준영에게 달려와 엉겨 붙었다.

반면 돈캐스터 홈 관중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과 달리 허더스필드 원정 팬들은 손을 흔들며 준영의 이름을 연호했다.

“John Young Lee!”

“John Young Lee!”

“John Young Lee!”

자신에게 환호하는 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준영.

그는 눈을 돌려 상대 골키퍼인 해리 그렉을 바라보았다.

아까 회심의 프리킥을 막아 냈던 해리도 방금 전에는 얼어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못했다.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던 그는 준영과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아까 준영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에 준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저 자식, 분명 크게 될 거야.’

내심 그리 확신한 해리 그렉은 손바닥으로 뺨을 두들기며 심기일전했다.

아직 경기가 끝나려면 한참 남아 있었으니까.

***

전반에 2골을 앞서간 허더스필드는 후반에도 준영을 앞세워 경기를 주도해 갔다.

당연히 돈캐스터의 골대는 맹폭을 당했지만, 추가 득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돈캐스터의 골키퍼 해리 그렉이 연달아 선방 쇼를 펼쳤기 때문.

그는 후반 12분 빅터 맷칼프와 일대일 상황을 훌륭하게 막아 냈고, 이후 준영의 코너킥 헤딩골도 쳐 냈다.

여기에 후방에서 날아드는 중거리 슛이나 크로스 등도 잘 잡아 내거나 안전한 곳으로 펀칭했다.

“해리 녀석, 정말 잘 막는군.”

“그러게. 우리 팀같이 허약한 데 있기엔 아까워 보여.”

2골 차에 시무룩해져 있던 홈팬들도 해리의 멋진 선방에 기운이 났던지 박수를 치며 다시 응원에 열을 올렸다.

이에 탄력을 받은 돈캐스터는 지난 시즌 팀 내 최다 득점자 허버트 B. 틴딜과 레이시 니콜슨을 앞세워 득점을 노렸다.

그들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중거리 슛을 날리기도 하고, 수비수 2명을 멋지게 제치고 슈팅을 날리기도 했다.

‘수비 지역으로 내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

자기 팀 골대가 위태롭자, 준영은 섕클리 감독을 바라보았다.

아직 20분 넘게 시간이 남아 있다.

2-0에서 2-1이 되면 경기는 흥미진진해지지만, 쫓기는 허더스필드 입장에선 염통이 쫄깃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수비를 강화하는 게 낫지 않을지?

‘일단은 이번 공격부터 처리하고…….’

준영은 레이 윌슨이 꽤 전진해 와서 올려 준 크로스를 헤딩으로 떨어트렸다.

빅터 쪽으로 떨어트린 그 공을 돈캐스터 수비수가 가로챘다.

그런데 그 상황을 본 준영과 빅터가 펄쩍 뛰었다.

“핸드볼이다!”

“분명히 팔에 맞았다고!”

심판도 목격했던지 바로 휘슬을 불었다.

파울을 한 당사자는 물론이고, 돈캐스터 선수들의 안색은 파랗게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파울이 일어난 곳은 페널티 박스 안이었으니까.

망했어요.

이렇게 4자로 함축할 수 있는 분위기의 홈 관중들과 달리 허더스필드 원정 팬들은 신이 났다.

“앗싸, 페널티킥이다!”

“누가 처리할까? 존이겠지?”

“존이 차러 나왔어!”

준영은 현재 팀 내에서 가장 득점이 많은 선수.

거기다 이 페널티킥은 준영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했다.

다만 지켜보는 맨유의 수석 스카우터 조 암스트롱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최대한 포인트를 몰아줄 생각이로구먼.”

현재 준영에 대한 영입 제의가 쇄도하고 있다.

아직 선수 본인과 접선한 곳은 없지만, 허더스필드에서도 준영을 오래 잡아 두는 건 힘들다고 보는 듯했다.

‘그러니 생각했겠지. 기왕에 팔 거, 최대한 비싸게 팔아 치우자고.’

골이나 어시스트같이 눈에 보이는 기록들은 선수 이적료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지금 페널티킥도 준영에게 넘겨준 게 아닐까?

“와아아아!”

조가 생각에 잠긴 사이, 준영이 득점에 성공했다.

해리가 방향을 읽었지만, 슛이 너무 빠르다 보니 손에 닿기도 전에 그물을 흔들어 버렸다.

3 대 0.

후반전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승산은 허더스필드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 수훈자인 준영을 카메라 렌즈에 담은 기자들은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 댔다.

***

재즈 음악이 울리는 펍.

리그 3연승을 기록하고 돌아온 허더스필드 선수들은 단골 주점에 모여 뒤풀이를 즐겼다.

“오늘은 내가 쏜다.”

“Yay∼!”

오늘 경기 수훈자인 준영은 동료들에게 맥주를 돌렸다.

다들 시원하게 생맥주를 들이켰지만, 정작 준영은 입만 살짝 축이고 말았다.

“존, 넌 무슨 낙으로 사는 거야? 담배도 싫어하고, 술도 별로 안 마시고…….”

고참 선수인 빅터의 물음에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술, 담배 말고도 낙이 될 건 많아요.”

“어떤 거? 혹시 여자?”

그걸 의도한 건 아니건만.

하지만 다들 그쪽 주제를 기대하는 듯하여 조금은 부응해 주기로 했다.

“내가 영국에 오기 직전에 모나코, 아니 지중해 휴양지 근방에 있는 팀에서 잠시 있었는데… 예쁜 아가씨들이 응원하러 많이 와 줬죠.”

“뛸 맛이 났겠구만.”

“맞아요. 경기가 끝난 다음 날은 해변에서 헌팅을 즐기기도 했죠.”

“Hunting? 갈매기라도 잡았나?”

“나 참, 갈매기를 왜 잡아요. 돌아다니면서 비키니 미녀들을 꼬셨다는 겁니다.”

“비, 비키니!”

화끈하고 위력적인 단어가 언급되자, 다들 잔뜩 흥분해서는 떠들어 댔다.

“비, 비키니면 배꼽 다 내놓은 수영복 맞지?”

“프랑스 여자들은 소문대로 과감하군!”

“그거 금지되지 않았어요?”

“멍청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법이지!”

부럽다!

나도 프랑스에 가고 싶다!

다들 저 멀리 지중해의 해변을 동경하고 있을 때, 맥주 대신 청량음료를 홀짝이던 데니가 준영에게 물음을 건넸다.

“형님, 외국 리그는 어때요?”

“응? 뭐가? 경기력 말이야?”

“그런 것도 있지만… 급료나 보너스 같은 거요. 듣자 하니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데는 영국보다 급료도 높고 선수들에 대한 대우도 좋다고 하던데요?”

데니의 눈빛이 반짝였다.

미래에 맨체스터의 왕이 되는 소년.

그는 해외 진출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강한 동경과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

비키니 수영복은 1946년 프랑스 디자이너들이 만들었는데, 당시 교황 비오 12세가 비판을 했을 정도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금지되었지만, 오히려 그게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바람에 계속 확산이 되었지요.

이것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떨친 영화배우가 브리짓 바르도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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