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5화 (15/400)

Round 15. 재벌이 되는 방법

“북해에 유전이 터진다고?”

“예, 70년대부터 석유와 천연가스가 개발되었다고 교과서에도 나와요.”

준영의 말에 알버트가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유.

어떤 과학자들은 20년 후에 석유가 고갈된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준영에게 들으니, 인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석유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

“석유는 국가의 중요한 전략 자원이지. 지난 대전 때 일본인들이 동남아시아로 밀고 내려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석유 수급을 민감하게 여기는 건 영국과 미국도 마찬가지.

그건 최근 두 나라가 중동에서 보인 행보만 봐도 알 수 있다.

“6년 전에 이란 총리가 석유 회사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영국과 단교를 한 적이 있었어. 그러자 미국과 영국 정보부에서 공작을 벌여 그 총리를 쫓아냈지.”

“이란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러니 그런 거겠지. 하지만 바로 코앞에 석유가 묻혀 있다면…….”

아무런 근거도 없었다면 준영의 말은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해 유전의 가능성은 19세기부터 거론되고 있었다.

이미 당시에 독일 근해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되었을 정도.

거기다 최근엔 네덜란드에서도 유전 탐색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지금 해저 유전을 개발할 기술이 충분한지 의문이군.”

“수요가 많아지면 그런 문제는 해결이 될 거라고 봅니다. 실제로 개발이 되었고요.”

“그렇겠지. 거기다 괜히 남의 나라를 들쑤시며 얼굴 붉히는 것보다야, 코앞에 있는 유전에 빨대를 꽂는 편이 나을 테니까.”

중동 정세는 불안정하다.

앞서 이란도 그렇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에 갑툭튀한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화약고 그 자체.

투자자 입장에선 언제 난장판이 될지 모르는 지역보다 안정적인 곳에 투자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니 북해 유전 개발도 상당한 메리트가 있을 터.

“그런데 갑자기 석유 이야기는 왜 꺼냈나?”

“지금 시대를 보니 현역 은퇴 후를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거기다 미래에는 오일 머니가 축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거든요.”

로만 아브라모비치,

만수르 빈 자예드 알나얀.

21세기 축구계에 일대 폭풍을 불러온 석유 재벌들이다.

이후에도 그들에게 질 수 없다며 여러 석유 갑부들이 뛰어들었다.

‘나도 유전에 투자해서 막대한 부를 쌓으면 그들처럼 축구계의 거물로 군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되면 선수로서도, 구단주로서도 레전드로 남는 인생.

그야말로 멋지지 않은가!

히죽 웃고 있는 준영에게 알버트가 냉정한 현실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유전 개발 같은 곳에 투자할 자금은 있나? 쌈짓돈 정도로는 턱도 없네만.”

“아, 그건…….”

허더스필드에서 받은 주급과 보너스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 많지는 않다.

이에 준영은 히든카드를 뽑아 들었다.

“제 차를 팔까요? 미래 기술로 만들어진 모델이니, 관심을 보일 곳이 많을 텐데 말이죠.”

“미래 기술도 어느 정도 알아야 분석을 하지.”

알버트는 이미 준영의 허락을 받아 DB12를 나름 꼼꼼히 살펴봤다.

그 결과 전자 계통을 비롯해 대부분의 기술 레벨이 현재보다 몇 단계는 건너뛴 수준임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본격적으로 분석하자면 분해를 해야 하잖아. 그 차는 당장 작업에 필요한 공구도 없어.”

“어, 그 정도입니까?”

“육각형이면 모를까, 별 모양의 소켓 볼트는 처음 봤네. 미래인들이 이 정도로 짓궂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말이야.”

거기다 미래의 자동차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차를 타고 온 미래인도 있을 것이고, 그에게서 진귀한 미래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긴, 그렇게 되면 정보기관에서 절 잡아가려고 들겠군요.”

“MI6 입장에선 흥미로운 일이니 말일세.”

그럼 살인 면허가 있는 호색가 요원이 권총을 겨누며 따라오라고 하려나?

어쨌거나 그런 복잡하고 난감한 일에 휘말리면 선수 활동은 접어야 할 게 틀림없다.

“안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들을 구하고 있으니까 자동차는 일단 그냥 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돈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도 벌 수 있지. 기발한 아이디어나 상품으로도 말이야.”

“지금은 아직 없는 걸로요?”

“그래, 기왕이면 현재 기술로 만들 수 있고 수요가 있는 거라면 좋지.”

준영의 눈빛이 반짝였다.

알버트의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른 게 있었기 때문이다.

“왜? 좋은 게 있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가져올 테니까요.”

준영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

잠시 후, 준영이 가져온 것은 음료수가 든 깡통.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21세기 음료였다.

“이건……?”

“이온 음료입니다. 미래에서 가져온 유산 중 하나죠.”

“이온이면 마이클 패러데이가 발견한 전기 원소가 아닌가. 21세기에는 그런 것도 물에 섞어 마시나?”

“물보다 흡수가 빠르니까요.”

이온 음료는 격렬한 노동이나 운동을 하고 난 후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마신다.

축구 선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준영은 물과 이온 음료를 반반 섞어서 섭취했다.

대표팀 선배 중에는 직접 만들어 마시는 이도 있었다.

“수분 보충에 좋다고? 그런 게 있다면 확실히 도움이 되겠군.”

“노동자, 특히 광부들이 많이 찾을 거라 생각합니다.”

1950년대 영국에는 1,300여 개의 탄광이 있고, 수십만의 광부들이 일하고 있다.

흑백 TV에서 나오던 석탄 노조 관련 뉴스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다.

“가게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찾아도 보고 물어도 봤는데… 전혀 모르더라고요. 아마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도?”

딸깍.

준영이 손가락으로 캔 뚜껑을 젖혀서 열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알버트는 준영이 위스키 잔에 따른 음료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색깔 한번 굉장하군. 도대체 재료가 뭔가?”

“과당에 구연산, 소금, 천연 향료, 비타민과 식용 색소… 라고 적혀 있네요.”

준영은 캔에 적힌 성분표를 가리켰다.

그것을 확인한 알버트는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어떻습니까?”

“누가 남긴 과일 주스에 물과 소금을 부어 놓은 것 같군.”

“맛을 목적으로 한 음료수는 아니니까요.”

“그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신다고 했지? 그래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군.”

색깔도, 맛도 너무 낯설다.

미국인들의 콜라같이 달콤하고 자극적인 식감도 아니다.

준영은 땀 흘릴 일이 많은 광부나 노동자들이 마실 거라 보는 모양이지만, 알버트가 보기에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사람들은 이런 이상한 음료수보다 맥주나 그로그를 더 좋아할걸. 오랫동안 그걸 마시며 살았으니까.”

“하긴… 익숙한 맛이 더 끌리겠지요.”

알버트의 냉정한 평가에 준영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 이 시대에 내놓을 신상 아이템이라고 여겼건만!

그런데 알버트가 예상 밖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사실 난 내용물보다 용기에 더 관심이 가네.”

알버트는 음료수가 들어 있던 깡통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무척 가볍고 얇군. 이거 혹시 알루미늄으로 만든 건가?”

“예, 그건 왜 물으시죠?”

“지금은 알루미늄 캔이 없으니까. 죄다 양철 캔이야.”

양철은 흔하지만, 쉽게 부식되는 문제가 있어서 주석 도금 공정이 필수적.

하지만 내식성이 뛰어난 알루미늄이라면 그런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 없다.

“소재도 소재지만, 가장 획기적인 건 이거야.”

알버트는 뻥 뚫린 캔 뚜껑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금속 캔에는 이렇게 쉽게 여는 장치가 없어. 병뚜껑 같은 크라운 마개를 쓰거나 아니면 통조림 따개를 써서 열어야 해.”

‘그러고 보니…….’

지난번 회식할 때 선수나 코치들이 마시던 맥주 캔도 병처럼 주둥이가 달렸고 마개로 봉인된 것들이었다.

그런 것을 이빨로 따기에 참 와일드한 상남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식구들과 소풍을 갔었는데, 그때 통조림 따개를 잊어서 맥주 캔을 따느라 애를 먹었지. 체트리는 포크로 내리찍다 손을 다치기도 했고.”

“어휴, 생각만 해도 아프네요.”

알루미늄 캔과 원터치식 캔 뚜껑이 아직 없다니!

어이없긴 했지만, 현 시점에서 쓸모 있는 발명품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널리 쓰일 것인 만큼 상당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터.

알버트 역시 그리 판단했다.

“괴상한 음료수보다 이걸 특허 내는 게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야.”

“그렇군요. 근데 좀 찔리네요. 따지고 보면 남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거잖아요.”

준영의 말에 알버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축구는? 자네가 경기할 때 보여 줬던 몇몇 신기한 테크닉들도 다른 사람이 개발한 기술 아닌가?”

“그건…….”

축구 기술에 로열티가 붙지는 않는다.

하지만 혁명적인 테크닉을 개발해 축구계에 이름을 남긴 스타플레이어들의 명예를 가로채는 것도 따져 보면 비양심적인 행위였다.

“정 마음이 편치 않다면 나중에 발명가에게 사례를 하게.”

“누가 발명했는지는 몰라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나오겠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대신 발명가의 후학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줘. 특허료의 일부를 기술전문학교 장학금으로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

터너 신부님도 말씀하셨다.

신에게 받은 은혜는 이웃에게 베풀라고.

알버트가 말한 방법도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건 자네 명의로 특허를 올려놓도록 하지. 서류를 작성해 올 테니 나중에 확인하고 서명을 하게.”

“감사합니다. 이거 매번 신세를 지네요.”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신세를 지는 건 이쪽인걸.”

준영은 손녀를 살려 준 은인인 데다, 유익한 미래의 정보를 알려 주는 귀한 손님이었다.

오늘만 해도 아주 좋은 걸 알려 주었다.

당장 음료와 주류업계 사업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들 특허, 그리고 검은 황금이 묻혀 있는 북해의 유전!

‘나는 몰라도 아이들이 컸을 땐 굉장한 자산이 되겠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치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으리라!

그리 다짐한 알버트는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특허든, 자원 정보든 서둘러 알아보고 처리하는 게 중요하니까.

***

8월의 마지막 수요일.

리버풀의 안필드 스타디움으로 4만여 명의 관중들이 모였다.

1라운드 리즈 로드에 입장한 관중보다 2배는 많은 숫자에 준영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2부라도 전범풀은 확실히 인기는 많구만.”

“형님, 전범풀이 뭐야?”

“그런 게 있어.”

일본 선수 영입했다고 전범기를 올려서 붙은 별명인데, 이 시대 사람들이 알 리 없지.

준영은 대기실에 마주 서 있는 리버풀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체격이 1라운드에 붙었던 찰턴 녀석들보다 좋군.’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 선수들이 몇몇 있었다.

아무래도 1라운드 때처럼 공중을 장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뭘 봐, 원숭아.”

리버풀 선수 하나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야, 왜 처웃어?”

“쥐방울만 한 게 까부는 게 신기해서.”

“이, 이게……!”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 그래야 원숭이보다 클 거 아냐?”

무안을 당한 선수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든 말든 준영의 빈정거림은 계속되었다.

***

저 시절 음료수 깡통이란 게 저랬습니다.

현재 우리가 아는 탭 오프너를 발명한 사람은 에멀 프레이즈라는 미국 발명가인데, 1963년에 발명한 캔 뚜껑 하나로 1980년까지 매년 5억 달러의 매출을 거두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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