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14화 (14/400)

Round 14. 미래를 위한 준비

1라운드 경기가 끝난 후, 준영은 다음 날 신문에 실렸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는 2부 리그.

하지만 낯선 동양인 선수의 등장은 충분히 대중의 눈길을 끌 만한 것이었다.

거기다 지난 시즌 1부 리그에 있던 찰턴 애슬레틱을 상대로 무실점 방어에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으니!

준영도 자신의 기사가 올라온 신문들을 모두 찾아봤다.

“좋게 평하는 신문사도 있지만, 바바리안(Barbarian)이나 새비지(Savage)라고 까는 기사들도 있던데요.”

“그러게 누가 웃통 벗고 날뛰래?”

경기 후 팬 서비스 때문에 하마터면 FA로부터 징계를 당할 뻔했다.

신사의 스포츠에 걸맞지 않은 품위 없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 때문.

다만 경기 후에 벌어진 일이고, 외국 출신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일단 엄중 경고 수준에서 끝났다.

“뭐, 흠집 낼 만한 것도 고작 그뿐이었단 거지. 감탄하거나 놀랍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고.”

섕클리가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갔던 건 ‘허더스필드의 골리앗’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에는 준영이 공과 함께 골키퍼와 수비수를 골인시키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곁들어져 있었다.

“골리앗보다 ‘오리엔트 특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더 맘에 들더라고요.”

“그렇겠지. 경기 후에 단독 인터뷰까지 한 기사일 테니까.”

그 제목으로 기사를 올린 곳은 요크셔 이브닝 포스트라는 지역 신문사였다.

해당 신문사의 기자는 준영이 한국 출신임을 적어 놓고, 사진 밑에 태극기까지 그려 주는 세심함을 보였다.

‘태극 모양이나 사괘는 틀렸지만……. 아니, 그게 혹시 옛날 태극기였던가?’

아무튼 중요한 건 준영의 활약이 기사화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

당장 가까운 지역 팀들이 관심과 흥미를 가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에버튼, 번리, 블랙번, 리즈, 맨체스터의 시티와 유나이티드까지……. 이 근방에 있는 1부 리그 팀들만 이 정도나 돼.”

‘다들 21세기에도 이름값 있는 팀들이군.’

그런 내로라하는 팀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준영의 입장에선 정말이지 반갑고도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섕클리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3월 말 이전에는 선수 이적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

그렇기에 상위 팀에게 좋은 선수를 빼앗길 위험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작년만 해도 유나이티드의 맷 버스비가 데니를 영입해 가려고 했지. 아는지 모르지만, 그 양반은 젊은 애들을 진짜 좋아해.”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괜히 현재의 맨유가 버스비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그만큼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데니가 실력이 뛰어나긴 해도, 작년에 맨유에 갔으면 후보로 구르고 있을지 몰라.’

영국 축구의 영웅인 바비 찰튼조차도 초기 2년간 맨유의 리저브 팀을 전전했을 정도.

이런 점을 생각하면 준영은 섕클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존, 난 너처럼 성실한 선수는 잘됐으면 해. 더 좋은 팀으로 가면 좋지. 하지만 거기서 제대로 출전도 못하고 있으면 답답할 거야.”

거기다 그 때문에 대들보가 뽑혀 나간 자신의 팀이 죽을 쑤면 분통이 터지게 되리라.

이런 섕클리의 말에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너무 이른 걱정 아닙니까? 이제 겨우 1경기 끝났을 뿐인데요.”

“그래, 그렇긴 하지만…….”

섕클리는 지난 찰턴전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준영은 디비전2보다 더 높은 무대에 어울리는 선수라고.

‘아마 다음 경기부터는 소문을 듣고 스카우터들이 몰려오겠지.’

두 번째, 세 번째 검증이 되면 그들도 확신하고 결정을 내리게 될 터.

그때는 과연 이쪽에서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까?

‘언젠가 겪게 될 일이라면… 미리 대비해 두는 것도 좋겠지.’

그리 마음먹었지만, 섕클리는 씁쓸하고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좀 더 좋은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명문 팀의 감독이라면 이런 걱정 따위 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

올드 트래퍼드 부근의 훈련장.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인상 좋은 장년의 신사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반쯤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훈련은 잘되어 가나, 맷?”

“어서 오세요, 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맷 버스비와 수석 스카우터 조 암스트롱.

이 둘은 유나이티드를 현재 영국 축구의 주역으로 거듭나게 만든 주인공들이다.

언제나처럼 그들은 오늘도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갑자기 절 찾아오신 걸 보니 뛰어난 유망주를 발견하신 모양이군요.”

“뛰어나다마다!”

버스비의 말에 맞장구를 친 조는 흥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유망주도 아니야. 이건 완전 즉시 전력감이더군. 실제로 프로에서 뛰고 있기도 했고.”

“그래요? 어느 팀 선수입니까?”

“허더스필드 타운이야. 자네도 벌써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버스비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죠. 데니스 로라고, 꽤 발재간 좋은 선수가 있죠. 섕클리가 절대 못 내놓는다고 할 정도였어요.”

“아니, 그 스코틀랜드 꼬맹이 말고!”

고개를 갸웃하는 버스비에게 조는 웨스트요크셔 지역 지방 신문들을 보여 주었다.

“존 Y. 리?”

“홍콩인지 한국인지, 아무튼 아시아에서 왔다는군.”

버스비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해당 선수의 기사를 살펴보았다.

“오리엔트 특급이라…….”

조 암스트롱이 감탄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선수.

기사를 읽어 가는 버스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키가 6피트 4인치(194센티미터) 이상의 장신 선수라고요?”

“그래, 내가 지난 토요일 날 그 경기를 직접 봤는데, 어딕스(* The Addicks 찰턴 애슬래틱의 별명) 녀석들이 전혀 맥을 못 추더군.”

마치 어른이 어린애들을 다루던 느낌이랄까.

체격 차이도 있지만, 실력 면에서도 완전한 우위였다고 했다.

괜히 2골 1어시스트로 승리의 주역이 된 게 아니라고.

“센터백이던데, 장신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발재간도 뛰어났어. 심지어 헝가리 놈들 못지않게 공을 잘 다루더군.”

“정말입니까? 그것도 아시아 출신의 선수가……?”

“그게 제일 문제란 말이야.”

조는 아쉬운 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

“실력만 있으면 상관없잖아요. 우리 옆 동네에는 나치 군인이었던 친구도 선수로 잘 뛰고 있는걸요.”

“글쎄, 다른 사람들도 그리 생각할까?”

외국인, 그것도 비백인에게 강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백인만이 문명화되어 있고, 인간성을 갖추었다는 구시대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하드먼 회장은 옆 동네에서 일어났던 소란이 여기서 벌어지는 걸 원치 않을걸.”

“하지만 옆 동네는 그 소란을 감수한 덕분에 작년에 FA컵에서 우승을 했죠.”

일단은 내 눈으로 한번 확인해 보자.

그리 결심한 맷 버스비는 존 Y. 리라는 선수의 기사를 다시 보았다.

오리엔트 특급 존 Y. 리.

어쩌면 미래에 유나이티드를 유러피언 컵 정상으로 데려다줄 특급 열차가 되어 주지 않을까?

호기심이 드는 만큼, 기대감도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

어제의 회식을 뒤로하고, 준영은 내일 경기 준비에 열을 올렸다.

수요일 2라운드 상대는 리버풀 FC.

미래에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이 되는 이 팀은 현재는 2부 리그에 머물고 있었다.

듣자 하니 이전에 1부 리그에서 다섯 번의 우승 전적이 있지만, 50년대 들어 완전히 망해 버렸다고.

경험 많고 리더십이 뛰어난 조지 케이 감독이 건강이 나빠 물러난 뒤, 새 감독이 완전히 죽을 쑨 탓이었다.

‘그래도 돌다리는 두들겨 보며 건너는 게 안전하지.’

그래서 신문과 스포츠 잡지를 보거나, 팀의 전력 분석관에게서 현재 리버풀 주전 선수들의 명단이나 정보 등을 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우와,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네!’

토미 로렌스, 이안 캘러헨, 이안 세인트 존, 론 예이츠, 로저 헌트 등등.

터너 신부님에게 들어 본 붉은 제국의 주역들은 한 명도 없었다.

‘아직 데뷔하거나 리버풀로 오지 않은 건가? 하긴 섕클리 감독도 여기 있으니.’

“왜 그래, 존?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

섕클리의 물음에 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근데 켄이 보이지 않네요. 무슨 일 있어요?”

켄 테일러는 준영과 비슷한 또래에 포지션도 같은 수비수라 꽤 친한 사이였다.

한식에도 관심이 있는지, 어제 준영에게 따로 마늘 초절임 레시피를 묻기도 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빠지니 궁금할 수밖에.

“오늘 시험 평가가 있어 조금 늦을 거라더군.”

“아, 그러고 보니 미술 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했죠.”

켄은 축구 외에 크리켓도 잘할 정도로 뛰어난 스포츠맨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원했다.

그래서 켄은 나중에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고 미술을 배우고 있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 선수 생활은 길지 않으니까.”

“그렇죠. 보통 30대 초중반에서 끝나니까요. 그 전에 은퇴하기도 하고…….”

21세기와 달리 지금은 교체 출전이 불가능하다.

즉, 조커로 뛸 수도 없으니 주전 경쟁은 훨씬 치열한 것이다.

거기다 의료나 재활 기술 등도 떨어져 있기에 큰 부상을 당하면 재기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다들 은퇴 후 생활을 걱정하기 마련.

일반 직장인보다 2∼3배 많은 주급을 받는다지만, 안심하고 노후 생활을 할 정도는 아니다.

또 코치나 트레이너 같은 축구 관련 업종의 경쟁도 몹시 치열하다.

이러니 이르게 은퇴해서 기술을 배우거나 새 직장을 찾는 프로 선수들이 많았다.

물론 몸으로 벌 수 있을 때 충분히 벌어 두자고 생각하는 부류들도 있었고.

“지난 1라운드에서 붙은 어딕스 녀석들 말인데, 거기 주전 세 놈도 크리켓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

“일종의 투잡이군요.”

준영은 이걸 남의 일이라 넘어갈 수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프레드로 남작가에 신세 질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거기다 얼마 안 되는 주급과 출전 보너스 정도로 미래에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지금 잘나간다 해도 자칫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 등으로 부진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니 투잡을 뛰든, 다른 일을 배우든 준비를 해 두는 게 나을 것이다.

‘다행인 건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거야.’

역사 덕후 수준까진 아니지만, 대충 굵직한 몇몇 역사의 이슈와 사건들은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다.

그것을 이용하면 돈이나 노후 생활 정도는 충분히 해결될 것이다.

“흐흐흐, 석유만 해도…….”

“응? 석유가 뭘?”

섕클리의 물음에 번쩍 정신을 차린 준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나중에 돈 좀 모이면 주유소나 할까 싶어서요.”

“괜찮군. 예전보다 자동차를 가진 가정이 많이 늘었으니까.”

주유소라고 둘러댔지만, 준영이 진짜 노리고 있는 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

저 시절 영국 축구 선수들 중에 투잡 뛰고 있는 선수들이 꽤 많았습니다. 은퇴하고 크리켓 같은 다른 종목으로 완전히 전향한 이들도 있고요.

영국 프로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골(619경기 434골)을 넣었다고 알려진 아서 롤리도 축구 선수를 은퇴하고 크리켓 선수로 활동했다고 하네요.

현대에도 투잡 뛰는 축구 선수들이 좀 있는데, 루카스 포돌스키의 경우 음반을 내서 독일 차트 1위를 먹기도 했습니다. 날강두(…)의 경우 자기 이름을 딴 향수 브랜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니에스타는 와인 사업이 꽤 잘나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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