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5화 (5/400)

Round 05. 새로운 터전

준영은 조수석 문을 열었다.

냉큼 탑승하려던 알버트는 무엇 때문인지 도중에 멈칫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알버트가 조수석에 오르자 준영은 운전석에 앉아 바로 시동을 걸었다.

“응?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네만?”

“안전벨트를 안 맸다고 경고를 하는 겁니다.”

“안전벨트? 아, 이거 말인가?”

낯설어하던 알버트는 준영이 한 것을 따라서 안전벨트를 맸다.

“이런 올가미는 겁쟁이들이나 하는 거라고 비웃던데.”

“하지만 사고 나면 그런 겁쟁이들이 살죠.”

“과연!”

알버트는 금방 수긍했다.

손녀도 안전벨트를 했으면 그 정도로 다치지 않았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안전벨트도 안 한단 말이지? 와일드한 시대구만.’

내심 혀를 내두른 준영은 프레드로 저택을 향해 차를 몰았다.

***

모즐리 동쪽에 자리한 프레드로 저택.

저편에서 이상한 자동차가 다가오자, 저택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처음 보는 차인데, 누구지?”

“앗, 옆자리에 할아버지가 타고 계셔!”

차가 멈추자, 단발머리에 무뚝뚝한 인상의 소녀와 귀여운 여자아이가 달려왔다.

“다녀오셨어요?”

“할아버지, 언니는? 리즈 언니는?”

알버트는 달려 나온 막내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음을 지었다.

“크게 다치지 않았단다. 의사 말로는 사흘 정도 상태를 본 후에 퇴원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구나.”

“정말이요?”

활짝 웃음을 짓던 막내는 준영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우와, 머리가 닭처럼 생겼다!”

“이 녀석아, 실례잖니.”

가볍게 꾸짖긴 했어도, 알버트 역시 준영의 헤어스타일을 내심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택의 고용인들도 마찬가지라, 삼삼오오 수군댔다.

‘이거 당신네 나라 선수가 유행시킨 머리라고.’

앞머리를 짧게 세워 올린 소프트 모히칸 컷.

과거 맨유의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했던 헤어스타일이다.

준영은 프리미어리그 입성 기념으로 이 헤어스타일을 했다.

그러나 1957년 기준에선 꽤 파격적인 모양이다.

“할아버님, 이분은……?”

“네 언니를 살려 준 은인이란다. 서둘러 손을 써 주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알버트는 준영에게 손녀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둘째 앤지, 요 개구쟁이는 막내 카린이지.”

“안젤리카입니다. 언니를 구해 줘서 고마워요.”

“환영해요. 카린은 카리나예요.”

안젤리카와 카리나가 본명이고 앤지와 카린은 애칭인 모양.

아무튼 두 아가씨들의 인사에 준영도 답례를 보냈다.

“반갑습니다. 난 준영 리라고 해요.”

“John Young Lee?”

뭔가 이상한 이름이라는 듯, 카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존영이 아니라 준영.”

“응, John Young.”

제대로 발음을 가르쳐 주려 했던 준영은 포기했다.

“어디서 왔어요? 중국? 일본?”

“그 중간에 있는 한국에서.”

“Korea!”

자매는 깜짝 놀랐다.

설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라에서 온 손님일 줄이야.

‘그런데 동양인이 무슨 키가 저렇게 크지?’

맨체스터에 차이나타운이 있어서 드물게 동양인을 본다.

하지만 다들 체격이 왜소한 편이다.

하지만 저 존 Y. 리라는 청년은 프랑스의 드골 장군만큼이나 커 보였다.

‘거기다 타고 다니는 차는 애S턴 마틴.’

앤지는 트렁크 쪽에서 낯익은 로고를 보았다.

그녀가 알기로 애S턴 마틴은 주로 레이싱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였다.

물론 돈 있는 자본가나 철부지 귀족 자제들이 좋아하는 고급 모델을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온 부잣집 도련님인가?’

그녀의 시선은 준영에게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특이한 행색이나 차림은 여전히 여러 가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므로.

***

남작가의 저녁 식사는 준영이 각오(?)한 것과 달리, 영국 요리가 아니었다.

난과 커리, 그리고 닭고기 요리로 이루어진 인도 요리였다.

배가 고팠던 준영은 아주 맛있게 식사를 즐겼다.

“손님, 난을 더 드릴까요?”

“예, 고마워요.”

준영이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본 알버트는 매우 흡족한 기색을 보였다.

“요리가 그리 낯설지 않나 보구먼. 혹시 인도에 살았었나?”

“아뇨. 그냥 잠시 다녀간 적이 있을 뿐입니다.”

AS 모나코 시절, 비시즌에 인도와 동남아 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인도 음식들을 먹어 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탄두리 치킨은 이후에도 곧잘 영접할 정도로 사랑했다.

“남작님께선 인도에 계셨던 적이 있습니까? 저택 고용인들 중에 인도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던데요.”

“옛날에 인도 총독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네. 구자라트에서 사업도 좀 했었고.”

그때 인연으로 알게 된 사람도 있고, 노동자로 온 이민자를 고용하기도 했다고.

“지난 전쟁 때 이 나라는 일손이 부족해서 많은 인도인들을 끌고 왔지.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이 국민들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어.”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동양의 격언이 있죠.”

“그래, 딱 그런 상황이지.”

준영은 인도인들이 겪은 상황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들도 일본에 강제 징용으로 많이 끌려가서 혹사당하고 차별 대우를 받았으니까.

더구나 현재 1957년 기준으로 겨우 십수 년 전에 벌어졌던 만행이다.

‘괜히 일본에게 지면 바다에 빠져 죽으라고 했겠어.’

그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예선도 겨우 3년 전.

일본을 물리치고 본선에 올라간 대한민국 대표팀은 축구 종가를 7 대 1로 박살 낸 당대 세계 최강 헝가리와 맞붙었다.

‘그리고 9 대 0으로 졌지.’

매직 마자르의 에이스 페렌츠 푸스카스.

그리고 그의 맹공을 혼신을 다해 막아 냈던 대한민국 투혼의 시조 홍덕영 골키퍼.

그런 전설의 플레이어들이 활약하고 있는 시대라 생각하니 왠지 감개무량했다.

한편으로 기대감도 생겼다.

‘혹시 푸스카스나 쥐스트 퐁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같은 선수들과 맞붙을 기회가 오려나?’

머릿속에는 이미 푸스카스를 마크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근데 1957년이면 푸스카스가 어디에 있지? 헝가리인가, 아님 레알 마드리드인가?’

잠시 머릿속의 정보를 뒤져 보던 준영의 귀에 카린의 말이 들려왔다.

“저기요, 존은 무슨 일로 영국에 왔어요?”

“축구를 하려고.”

“축구?”

“난 축구 선수거든.”

옆에서 듣고 있던 앤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애S턴 마틴을 끌고 다닐 정도의 부잣집 도련님이라면 분명히 유학을 온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거기다 저만한 장신에 체격이면 축구보다 럭비를 했을 것 같았다.

“이 할애비도 봤는데, 존은 굉장히 잘하더구나.”

“정말요?”

“그래. 체트리도 같이 봤단다. 풋볼 리그의 프로 선수들보다 더 잘하더구나.”

알버트는 축구를 잘 아는 편은 아니었다.

고급 차, 그것도 애S턴 마틴을 몰고 다니는 축구 선수가 있단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동양인 선수가.

‘아시아의 국가 대표급 스타플레이어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결론 내리기엔 이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동차, 상당히 튀는 용모와 차림, 손녀를 살린 의학 지식과 유창한 영어 실력.

거기다 어떤 경로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딱히 안내를 하지 않았음에도 저택으로 차를 몰고 왔다.

마치 한 번 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한 가지 짐작 가는 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너무 터무니없단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호기심이 부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버트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짓고 있을 때, 고용인들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

“라씨라고 하네. 속을 편하게 하고 뼈를 튼튼하게 해 준다고 하지.”

“인도식 요거트로군요.”

준영은 직업상 군것질을 삼가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요거트는 비타민과 영양소도 풍부하고, 피로 회복에도 좋았기에 흔쾌히 들었다.

“아까 축구를 하려고 영국에 왔다고 했지?”

“예, 올 때만 해도 들어갈 팀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팀을 찾아야 하는 형편입니다.”

“꽤 난처하겠구만.”

뭔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알버트는 그 점은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자리를 잡기 전까진 우리 집에서 편히 머물도록 하게. 그리고 나랑 친분이 있는 축구팀 감독이 있는데, 그에게 자네를 추천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남작님.”

준영의 표정이 환해졌다.

낯선 시대에 떨어져 어찌 살아가나 걱정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도움을 받다니!

마치 망망대해에서 호화 여객선에 구조된 기분이었다!

“피곤할 텐데 그만 들어가 쉬도록 하게.”

집사를 부른 알버트는 준영을 손님방으로 안내해 주라고 일렀다.

여행 캐리어를 들고 집사를 따라가던 준영은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에 발걸음을 멈췄다.

“손님?”

벽에 걸린 사진과 초상화.

그중에 정복 차림을 한 군인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 사람은 분명……!’

낯익은 얼굴.

런던에서 손웅민과 만날 때 와인 잔에 비쳤던 군인이었다.

***

삐리릭- 삐리리릭-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준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웬만한 고급 호텔 부럽지 않은 방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빅토리아풍의 가구들 사이로 구닥다리 브라운관 TV와 진공관식 라디오와 축음기 같은 레트로한 가전제품들이 보였다.

“젠장, 꿈이 아닌 건가.”

타임 슬립으로 정신없었던 기나긴 하루.

한바탕 꿈이 아닐까 싶었지만, 분명히 현실.

앞으로 계속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었다.

“어떻게 인터넷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당장 1950년대 영국은 어땠는지, 이 시기 영국 프로 축구는 어떤 상황인지.

상세히 검색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웹브라우저 어플에는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연결 없음’이라는 문구만 떠올라 있었다.

“앞으로 수십 년은 오프라인 상태인가? 정말 돌아 버리겠군.”

보육원의 가족들, 에이전트 형님, 대표팀 선후배들 등등.

그들과 곧잘 주고받던 메시지나 메신저가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다.

만나지 못해도 연락이라도 되면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을 텐데.

“누가 보면 축구만 하기엔 정말 좋은 환경이라고 하겠구나.”

SNS는 인생의 낭비.

이렇게 말한 명감독도 지금은 스코틀랜드 어디선가 공을 차고 있겠지.

미래에 자신이 씹다 버린 껌조차 극성팬들에게 수억에 낙찰되는 성물이 되리라는 상상조차 못한 채.

‘이럴 줄 알았으면 하드나 메모리에 동영상이나 자료들을 빵빵하게 모아 둘걸…….’

이런 부질없는 후회를 해 봤자 소용이 없다.

방에 딸린 세면실에서 세수를 한 준영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방을 나섰다.

20세기든 조선 시대든, 축구 선수가 훈련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손질하지 않은 쇠에 녹이 스는 것처럼, 사람의 몸 역시 쓰지 않으면 무뎌지니까.

‘더구나 남작 할아버지가 친분 있는 감독을 소개해 주신댔으니까.’

언제든지 테스트에 임할 수 있도록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기회는 놓치지 않고 잡아야 치고 나갈 수 있으니까.

***

소설에서 준영이 왔을 즈음에 페렌츠 푸스카스는 스페인에 있었습니다. 1956년 헝가리 민주화 운동 때 망명했는데, 1958년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기 전까지 경기에 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공백이 길었는데도, 이후에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줬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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