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버스비의 이단아
1958년 2월 19일.
흐린 날씨만큼이나 올드 트래퍼드에 모인 관중들의 표정도 우울했다.
“오늘 경기 이길 수 있을까?”
“힘들걸. 죄다 후보나 애송이들뿐이니.”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던컨 에드워즈와 토미 테일러, 데니스 바이올렛 등등.
영국 축구계를 들썩이게 만든 버스비의 아이들은 2년 연속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리그 우승을 안겨 줬다.
하지만 그들의 승승장구는 2주 전에 끝났다.
뮌헨에서 벌어진 끔찍한 비행기 사고.
그 여파로 오늘 경기에 나서는 기존의 주전 멤버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나머지는 2군과 신참들.
그런 어수선한 라인업으로 셰필드 웬즈데이를 상대해야 했다.
“제대로 발이나 맞췄을까?”
“저, 저길 봐.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녀석이…….”
관중들의 시선이 필드로 입장하는 맨유 선수들, 그중에 완장을 찬 5번 선수에게 쏠렸다.
존 영 리(John Young Lee).
190센티미터대의 눈에 띄는 장신.
닭벼슬처럼 가운데 머리를 살짝 세운 괴상한 헤어스타일.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용모였다.
그는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니 퍼스트 디비전에서 유일한 동양인 선수였다.
“저 녀석이 주장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팀 정말 망했구나!
홈팬들은 좌절하고, 셰필드의 원정 응원단은 원숭이 울음소리와 같은 야유를 쏟아 냈다.
“우우우-! 우우우-!”
인종 차별적인 야유에 존 영 리, 아니 이준영은 웃고 있었다.
두 눈을 벌겋게 불태우면서.
“그래, 마음껏 짖어라. 끝날 땐 울게 해 줄 테니까.”
삐익-
경기가 시작되었다.
셰필드 선수들은 일말의 동정도 없이 거세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몰아붙였다.
이런 그들의 공세에 맨유 팬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그러다 결국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멍청아! 그렇게 쉽게 측면 돌파를 허용하면 어떡해!”
“으악, 크로스가 들어왔어!”
우려의 탄성을 내지르는 홈팬들의 시선이 빠르고 날카로운 크로스로 향했다.
쇄도하는 셰필드 공격수를 향해 날아가는 정확한 패스.
하지만 그 패스는 잽싸게 몸을 날린 수비수의 머리를 맞고 골라인 밖으로 나갔다.
막아 낸 선수는 바로 등 번호 5번 이준영이었다.
“정신 차리고 확실히 마크해!”
그는 쩌렁쩌렁한 큰 소리로 동료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코너킥도 높은 신장과 점프력을 활용해 끊어 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순 없다.
외곽에서 리바운드 볼을 잡아 낸 셰필드가 맹공을 이어 간 것.
빈 공간을 노린 날카로운 패스들이 들어오는가 하면, 공격수들의 과감한 돌파가 펼쳐졌다.
그 와중에 문전에서 우당탕 혼전도 벌어졌다.
그러다 골키퍼 해리 그렉이 놓친 공이 그만 셰필드 공격수의 발에 걸렸다.
‘큰일 났다!’
공은 해리의 머리 위를 지나 골대 안으로 향했다.
“어림없다!”
실점의 순간, 골문으로 몸을 날린 준영이 공을 길게 걷어 냈다.
“와아아아아!”
기가 막히는 멋진 수비!
관중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맨유 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셰필드 선수들은 심판에게 몰려갔다.
“노골이 아니라고요!”
“분명 골라인을 넘었단 말입니다!”
애매하고 난감한 상황.
하지만 심판은 골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펄펄 뛰는 셰필드 선수들을 바라보는 준영은 가늘게 웃음 지었다.
‘사실 넘어간 것 같지만… 알게 뭐야. VAR도 없는데.’
VAR은커녕 경기장 전광판 스크린도 없다.
21세기와 다른 축구 규정이나 환경에 당혹한 일도 많았지만, 이런 때는 그야말로 개꿀.
오심에 낭패를 본 셰필드 선수들은 잔뜩 골이 난 상태로 공격을 재개했다.
하지만 그 지나친 흥분은 실수를 유발하기 마련.
상대가 컨트롤 미스로 공을 흘리자, 준영이 잽싸게 가로챘다.
“잘했어, 존!”
“이쪽으로 패스해!”
맨유의 공격수 알렉스와 숀이 상대 빈 공간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깜짝 놀란 셰필드 수비수들은 황급히 마크에 나서 패스 루트를 차단했다.
하지만 준영은 패스하는 대신 직접 치고 달려 나갔다.
마치 고삐 풀린 말과 같은 시원하고 과감한 돌파.
그는 순식간에 상대 진영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딜 감히 기어 올라와!”
“발목이 작살나고 싶냐, 원숭이 새꺄!”
셰필드 선수들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준영이 그들을 가볍게 제쳐 내기 무섭게 곧바로 벼락 슛이 터졌다.
뻐엉-!
골대와의 거리는 대략 30미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간 무회전 슛은 골대 우측 상단에 꽂혔다.
“우와, 고오오오올!”
“들어갔어어어!”
홈팬들이 환호성과 반대로 셰필드 응원단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준영은 자신에게 야유를 퍼부었던 그들에게 보란 듯이 세리머니를 펼쳤다.
“잘 봐라. 이게 21세기 축구다!”
21세기 대한민국 축구 유망주.
68년 전의 과거로 와 버스비의 이단아로 이 자리에 있다.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꿀 진군은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 그리고 새로운 전설을 향하여.
Round 01. 타임 슬립
2026년 7월 올드 트래퍼드.
이준영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단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구단주와 감독과 나란히 기념사진을 찍었다.
팟- 찰칵! 찰칵!
연방 플래시가 터지는 카메라의 렌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새로운 스타를 비췄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오랫동안 고대했던 이 순간을 만끽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던 오늘의 주인공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언제 축구를 처음 시작했죠?”
“7살 때요. 그때 보육원에서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이 축구공이었어요.”
매끄럽고 유창한 답변.
준영의 영어 회화 실력은 영국에 처음 온 선수 같지 않았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마땅한 배경도 없던 나에게 축구는 큰 즐거움을, 그리고 출세와 명예를 안겨 주었죠.”
올해 만 스물셋.
아직 젊은 나이지만 준영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제법 굴곡이 있었다.
‘처음엔 아무도 나를 몰랐지.’
만년 꼴찌 팀의 센터백.
매번 경기마다 실점과 패배를 겪었다.
여기서 축구화를 벗을까.
아니야. 그래도 계속해 보자.
중고교 시절은 이렇게 풀이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 뛰기를 반복하며 잡초같이 보냈다.
‘그래도 열심히 뛴 보람은 있었어.’
고군분투했던 게 인상적이었던 걸까.
19살 때 U-21 대표팀에 깜짝 발탁되어 프랑스 툴롱컵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때 전 경기를 주전으로 뛰면서 코칭스태프는 물론, 언론에서도 앞으로 주목해야 할 선수라는 호평을 들었다.
덕분에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
대회가 끝난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현지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입단 테스트를 치렀던 것도 다 그 때문.
‘되든 안 되든 온 김에 한번 부딪쳐 보고 싶었지.’
무모하고 당돌한 도전.
몇몇 팀에서 흥미를 보였고, 그중 가장 큰 관심을 보인 AS 모나코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단 첫해에는 연령별 팀과 2군에서 뛰었지만, 다음 해 1군으로 올라갔다.
기회를 놓치지 않을 마음에 염통이 터져라 열심히 뛰었다.
덕분에 호평을 받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고액 연봉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입단 3년째 되는 해, 팀에 리그 무패 우승을 안겨 주었다.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선발된 것도 그때였지.’
그 뒤로도 승승장구.
2025-2026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철벽 수비로 레알 마드리드의 챔스 3연패를 좌절시켰다.
이후 2026년 북미 월드컵 16강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렸다.
그 눈부신 활약으로 아시아의 새로운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원래 월드컵이 끝나면 AC 밀란으로 이적하기로 합의가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그랬는데 파투 났어요. 자기네 나라 탈락시켰다고 삐졌나 봐요.”
장내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탈리아 팬들의 여론에 떠밀린 모양이지만, 그래도 발롱도르 후보에 오른 유망주를 손절하다니!
“그래도 덕분에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레드 데빌스의 일원이 됐으니 욕은 안 하렵니다.”
“맨유 플레이어들 중 좋아하는 선수가 있습니까?”
영국인 기자의 물음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죠. 바비 찰튼 경에 조지 베스트, 브라이언 롭슨, 로이 킨, 라이언 긱스…….”
“현직 플레이어 중에는요?”
준영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대답했다.
“없어요. 전부 개X끼들이에요.”
화끈한 발언으로 마무리한 그는 인터뷰 룸을 떠났다.
***
템스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21세기의 세련됨과 빅토리아 시대의 우아함이 잘 살아 있는 이곳 레스토랑에서 이준영은 한 사람과 대면하고 있었다.
바로 그가 존경하는 선배, 국가대표 최고참인 손웅민이었다.
“너 바보냐?”
한심한 눈길로 준영을 바라보는 웅민은 태평하게 와인을 홀짝이는 그에게 언성을 높였다.
“왜 하필 맹구로 가! 더 좋은 팀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다면서?”
지난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성적은 맹구라는 멸칭에 어울리는 9위.
몸값 못하는 가성비 최악의 선수들만 남은 덕분에 애꿎은 감독들만 연달아 모가지가 잘렸다.
그렇게 거덜 난 팀으로 아끼는 후배가 간다니!
손웅민은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그 팀이 명가인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지금은 아냐. 가면 너만 고생한다고! 대체 거기 간 이유가 뭐냐? 진짜 어릴 때 꿈 때문이야?”
“그것도 있지만, 열 받아서 그래요. 우리 할아버지, 원장 신부님이 좋아하는 팀이 그 지경이 되다니……!”
준영은 분통이 터지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그가 있던 한마음 보육원의 원장 윌리엄 터너.
그분은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자신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생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많은 조언도 해 주신 고마우신 분이다.
이렇게 온화하고 자애가 넘치는 신부님도 축구와 관련해서는 매우 열성적이었다.
아니, 과격한 수준이랄까.
축구 보다 발끈해서 불경한 욕설을 내뱉을 정도였으니까.
“어릴 때 올드 트래퍼드 부근에 사셨대요. 전설 아닌 레전드급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봤던 것도 곧잘 이야기해 주곤 하셨죠.”
“그러니까 네가 맨유 빠돌이가 된 건 그 신부님에게 물들어서 그런 거구나.”
“당연하죠.”
준영에게 있어 터너 신부님은 어버이이자 빛과 소금, 등대와 같은 분.
그의 취향을 따르게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신부님이 그러셨어요. 나중에 반드시 맨유로 가라고. 거길 가야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하아… 그 신부님, 요새 맨유 보고 뭐라고 안 하시던?”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뛰는 놈들을 죄다 지옥 FC로 이적시키고 싶다고 하셨죠.”
이런 맨유빠 신부님의 연세가 아흔이 넘었다.
아직도 일부 직무를 수행할 정도로 정정하시긴 했지만, 언제 신의 부름을 받을지 알 수 없다.
“저번에 월드컵 끝나고 찾아뵈었는데, 귀가 많이 어두워지셨더라고요. 즐겨 듣던 음반도 이젠 못 들으시고…….”
안타깝고 서글픈 기분에 준영의 콧등이 시큰해졌다.
축구 선수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지만, 아직 할아버지께 아무런 보은도 못했다.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올드 트래퍼드에서 뛰고, 무너진 명가를 재건하는 모습을.”
“허, 우리 준영이가 알고 보니 효자였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웅민이 준영의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잘해 봐. 얼마나 하는지 지켜봐 줄 테니까.”
“예, 선배님 팀 작살낼 테니 기대하십쇼.”
“자식이 말을 해도 꼭!”
머리를 쥐어박을 듯이 손을 치켜들었던 손웅민이 이야기의 화제를 바꿨다.
“아 참, 너 집 샀다며?”
“예. 프레드로 저택이라고, 옛날에 귀족이 살던 집이래요.”
준영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드넓은 정원이 딸린 단아한 3층 저택은 전형적인 19세기 컨트리 하우스였다.
“짜식, 돈 많이 벌었구나. 이런 비싼 집도 사고.”
“성공하면 꼭 이런 저택에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정원에 축구장이 있는 큰 집, 멋지지 않아요?”
한마음 보육원에 있는 동생들도 데려와서 같이 살고, 축구도 가르쳐 주고.
그렇게 많은 가족들과 즐겁고 시끌벅적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
“야, 여기 노란 꽃, 개나리 아냐?”
가만히 사진을 살펴보던 손웅민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정원에 있는 꽃나무를 가리켰다.
“맞아요. 둘러봤는데 무궁화나 진달래도 있었어요.”
“혹시 한국 사람이 살았었나?”
“아뇨. 저도 그런 줄 알고 중개인에게 물어봤는데…….”
와인 잔을 들던 준영은 순간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
손에 든 투명한 와인 잔에 군복을 입은 남자가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다.
‘구해 줘, 모두를…….’
‘누구지?’
준영은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군인은커녕 아무도 없었다.
다시 와인 잔을 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 본 건가?’
“왜 그래, 갑자기?”
웅민의 물음이 준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살짝 취했나 봐요.”
“너 의외로 술이 약하구나.”
“평소엔 마시지도 않으니까요.”
사실은 취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방금 전에 보였던 광경은 무엇일까.
머릿속에 울렸던 그 환청은?
‘피곤해서 그런 건가.’
팀을 옮기고 집을 구하느라 좀 정신없긴 했지.
피로 때문이라 결론을 내린 준영은 좀 전의 이상한 일은 넘겨 버렸다.
***
페나인 산맥 기슭에 자리한 모즐리.
맨체스터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 외곽에 준영이 매입한 대저택이 있다.
사흘 전, 런던에서 손웅민을 만났던 이준영은 모즐리로 가고 있었다.
입단 선물로 받은 빨간 애S턴 마틴 신형 컨버터블에 몸을 싣고서.
우르릉!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자, 준영은 서둘러 루프를 올렸다.
“일기예보에는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잠시 후, 비는 앞도 잘 안 보일 정도로 쏟아졌다.
차창 밖의 흐릿한 광경에 그는 저도 모르게 안색을 굳혔다.
어린 시절, 이렇게 비가 오던 날 일어난 사고가 떠올랐으므로.
콰르릉!
‘……!’
눈앞으로 떨어진 새하얀 번개.
깜짝 놀란 준영은 핸들을 틀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익-!
타이어가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눈앞으로 온갖 광경이 빙글빙글 돌았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숨죽여 울었던 보육원의 첫 번째 밤.
처음 축구를 배웠던 날.
AS 모나코에서 뛰고, 월드컵에 출전하고, 올드 트래퍼드 입단식을 치르던 영광의 순간.
이 모든 게 삽시간에 스쳐 지나갔다.
‘죽는 건가? 이렇게 어이없이?’
이제 진짜 시작인데.
아직 신부님께 맨유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도 못했는데!
억울한 한편으로 무서웠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어느 때보다 간절히 빌었던 그 순간, 어지럽게 돌던 세상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허어억… 허억… 헉!”
연장전까지 전력으로 뛴 것처럼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쏟아져 내렸다.
“사, 살았나? 살아 있는 거 맞지?”
얼굴과 몸을 더듬고 꼬집고.
그렇게 생존을 확인했던 준영은 허겁지겁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부딪치진 않은 건가?”
도로에는 선명한 타이어 자국이 남아 있었다.
180도 돌아간 차체에는 어떤 충돌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침 도로에 지나는 차들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휴우……! 십년감수했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손을 모아 감사의 기도를 끝냈을 때, 준영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 어떻게 된 거지?”
환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센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창했다.
“귀신에게 홀린 건가?”
차체에는 빗물이 흥건히 묻어 있건만.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준영은 햇살 아래 드러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보았다.
‘처음에 왔을 때랑 풍경이 약간 다른 것 같은데…….’
그날은 흐리고 안개가 깔려 있어 그랬던 걸까.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준영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휴, 빨리 집에나 가자.”
빨리 가서 샤워라도 하고, 심신도 진정시키자.
그리 마음먹고 다시 차를 몰고 가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어 조작을 하던 중, 라디오에서 이상한 뉴스가 흘러나온 것이다.
「1957년 7월 20일 BBC 라디오 정오 뉴스입니다. 교통 노동조합이 전국적인 파업을…….」
***
이번 작품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성적이 썩 안 좋았는데, 어느새 상위권에 올라 있네요. 부진해도 항상 딛고 일어나는 팀이라더니, 이래서 명문 팀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