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83화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젝트(3)
영식은 서글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정말로 너는 그런 삶으로 만족하 는 거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대장님.”
단테리온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 다. 그는 한 팔만 남은 손을 그에게 뻗었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제 삶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제 모든 것입니다. 당신만 이 절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 다.”
“?아냐.”
영식은 낮은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단테리온에게 있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지금까지의 일로 차고 넘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그렇다면!”
-콰앙
단테리온은 영식에게 뻗은 손을 거 칠게 땅에 내려찍었다. 타오르는 듯 한 광기가 그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 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한 단 말씀입니까!”
절규와 닮은 외침이 그의 입에서 토해졌다.
“저희는 버려졌습니다! 한 번도 보 지 못한, 기억에도 없는 존재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 니다! 살아갈 이유도, 목적도 모두 빼앗겼습니다!”
단테리온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 켰다.
“당신만이, 당신만이 남았습니다. 당신만이 우리의 사명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당신만이 잃어버린 목표 를 만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당신만 이 우리의 신이 되어줄 수 있었습니 다. 그런데 왜, 대체 왜….”
가늘게 떨리는 그의 손이 영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단테리온은 처참하게 일그러진 표 정으로 말을 이었다.
“왜… 락테온을 선택하신 겁니까.”
“왜 저희를… 배신한 겁니까.”
“단테리온.”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단 테리온을 바라보았다.
창세교와의 전투에서 그에게 느꼈 던 아득한 감각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처절할 정도의 비참함뿐이었다.
“ 나는….”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가 생각하는 신이 되기 싫었다.”
M 99
?
“나만의 삶을 살고, 나만의 이데아 를 찾고 싶었다.”
“하하. 아닙니다, 대장님. 당신은 락테온의 말에 잠시 홀려….”
“언제까지 외면만 할 생각이냐, 단 테리온.”
“나는 네가 생각하는 완전하고 완 벽한 존재가 아니다. 나도 너와 같 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섬길 신이 사라져 방황했다. 하지만 난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아닙….”
“난 나의 인생을 살겠다. 그게 내 가 내린 결론이었다.”
“대장…… 님.”
“단테리온, 너와 내가 다른 것은 하나뿐이다.”
영식은 멱살을 잡은 단테리온의 손 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넌 결국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았 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대신해 서 섬긴다는 핑계를 대며 고개를 돌 렸지.”
“다시 한번 묻겠다, 단테리온.” 나지막이 깔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말로, 그런 삶으로 만족하는 거냐.”
무거운 침묵이 장막처럼 내려앉았다.
단테리온은 덜덜 몸을 떨며 영식의 목을 움켜잡은 손을 떼어냈다.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희는 인간이 아닙니다. 만들어 진 기계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인간은 없다. 만들어진 기계와 다를 바가 없지.”
“기계에게는 목적이 필요합니다. 목적이 없는 기계는 굴러다니는 고 철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목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네 가 스스로 바라는 것이 목적이지.”
“그딴 듣기만 좋은 말은 아무런 의 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듣기 싫은 말만 골라 듣 는 것도 머저리 같은 짓이지.”
단테리온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영 식을 노려보았다.
“저도 대장님처럼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 나는 널 부정하지 않는다.”
타자에 의존한 채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비단 단테리온만이 아니었다.
그 누가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신념 을 가진 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너는, 네 자신은 정말로 그렇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거냐.”
“네 의견이 듣고 싶은 거다. 내 부하 가 아닌, 정체모를 연맹의 도구가 아 닌, 단테리온이라는 너만의 선택을.”
이어지는 영식의 말에 단테리온의 눈빛에 동요가 서렸다.
온화함으로 위장한 가식의 가면이 벗 겨지고, 그 안에 광기가 가라앉았다.
광기라는 베일이 벗겨진 단테리온 의 표정에는 마치 겁에 질린 어린아 이와도 같은 순수한 공포가 서려 있 었다.
“ 저는….”
떨리는 목소리.
광기에 찬 모습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유약한 모습.
단테리온은 영식에게서 뒷걸음질 치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 였다.
-파지지직!
“크윽!”
단테리온의 뜯겨나간 팔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는 계속해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 는 팔의 단면을 움켜잡으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모 양이네요.”
“?내 공격에서 견딘 것 나?”
“견디긴 했죠. 바로 죽지는 니까요.”
단테리온은 씁쓸한 미소를 영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티는 건 것 같네요.”
아니었 않았으 지으며 무리일
“마지막으로 대장님이 전능해진 모 습을 볼 수 있어서 전 만족합니다.”
그는 나지막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신성을 완전히 받아 들인 영식에 대한 선망과 경외의 감 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식은 그의 눈빛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개소리하지 마.”
“그딴 표정을 지으면서 만족했다고 말하는 거냐.”
단테리온의 움직임이 멈췄다.
선망에 찬 그의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빛에는 짙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하, 하하하. 너무 하시네요, 대장 님.”
-파지지지직!
그의 몸에서 튀어오르는 스파크가 더욱 강렬해졌다.
단테리온은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 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땅을 등지고 쓰러진 단테리온은 한 쪽 팔만 남은 손을 영식에게 뻗었다.
“대장님.”
영식은 애처롭게 뻗어진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잡을 수 없어.’
절규하는 이브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테리온의 손에 너무도 비참한 최 후를 맞은 그 불쌍한 오우거의 기억 이 낙인처럼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지금 그의 손을 잡는다면, 그를 배 신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 될 것만 같았다.
“하하. 그렇죠. 제게 그런 자격은 없죠.”
단테리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쓰 러진 단테리온을 내려다보았다.
단테리온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복잡했다.
그는 타협할 수 없는 증오의 대상 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기억 속에 남 아 있는 미련과 후회의 대상이었다.
애증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관계.
그것이 지금 자신과 단테리온의 관 계였다.
-파지지지직!
“크윽! 으윽!”
단테리온은 전신에서 튀어 오르는 스파크에 고통스럽다는 듯이 온몸을 비틀었다.
영식은 자기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뻗어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대… 장님.”
단테리온은 당장에라도 꺼질 것처 럼 희미해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들어 올린 손을 영식에게 뻗었다.
“저희는... 살아 있는 겁니까?”
락테온이 죽어가며 그에게 했던 질문.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듯한 감각과 함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희는 살아 있는 겁니까?’
과거 자신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죽어가는 락테온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줄 수 없었다.
그는 사용가치가 다한 도구였고, 버림받은 폐기물이었다.
그런 존재들에게 살아 있다고 단언 할 수 있는지 그때의 자신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 살아 있다.”
영식은 망설이지 않고, 단호한 목 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기억을 잃고 난 후,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길수와 아라를 시작으로 그는 만들 어진 이래 처음으로 마음 편히 따듯 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손에 넣 었다.
유치한 감정 팔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에게 있어 그 공간만큼 ‘살아간 다’라는 실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 어 준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과거에는 하 지 못했던 대답을 이제는 입에 담을 수 있었다.
“하, 하하하….”
단테리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영식을 향해 뻗었던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 이네요.”
_ 툭.
그 말과 동시에 단테리온의 손이 바닥에 닿았다.
더 이상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영식은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 하늘의 너머, 어딘가에 있을 그 가 ‘만들어진’ 장소에 대해서 생각 했다.
“끝, 인가.”
모든 것이 끝났다.
단테리온은 죽었고, 미래에 큰 위 험이 될 수도 있었던 안드라스 또한 사라졌다.
영식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씁쓸함 을 느꼈다. 마지막 단추가 사라져서 채우지 못한 듯한 감각.
영식은 바닥에 앉아 아직 눈을 뜨 고 있는 단테리온의 시체에 손을 뻗 었다.
손을 움직여 한쪽만 남아 있는 눈 을 감겨주자 눈가를 타고 투명한 무 언가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나.’
기계가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눈물 을 흘렸다는 사실이 어째서인지 그 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주인님!”
“영식 씨! 괘, 괜찮으신가요?”
“늦어서 미안하네, 영식이! 그 단 테리온이란 놈은….”
그때, 뒤늦게 달려온 길드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영식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길드원들 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끝났습니다.”
“아...”
“호, 혼자서 저 괴물을 상대한 건 가?”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으…. 이, 이런 통탄할 일이….”
길수는 마지막 싸움에서 영식을 도 와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영식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 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들 덕에 일대 일 로 그와 승부를 낼 수 있었으니까요.”
“어,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 거 죠, 주인님?!”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온 루시아 는 재빨리 손을 뻗어 영식의 엉덩이 를 더듬었다.
“제, 제가 없는 사이 몹쓸 짓을 당 하신 건 아니시죠?!”
‘얘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그녀의 모습에 영식은 손을 들어 루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아. 진짜 제어실에 간다고 말하 고는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아서 얼 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계속 뭔가 폭발하는 소리는 들리지, 그 이상한 살덩어리는 죽을 생각도 하지 않 지….”
아라가 책망하는 듯한 목소리로 한 숨을 내쉬었다.
“하하. 미안해.”
“정말... 나중에 각오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끄응. 전혀 반성하고 같지가 않은데.”
“하하하.”
“다치신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다행이에요, 영식 씨.”
“응. 걱정 끼쳐서 미안.”
“?괜찮아요. 믿고 있었어요.”
티리아는 상냥한 미소와 함께 영식 의 손을 잡았다.
“마스터, 본 기체도 최선을 다했다 고 알림.”
“…이브.”
영식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살 짝 표정을 굳혔다.
그녀가 죽인 기계몬스터들의 진실 에 대해서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때로는 진실만이 답은 아니지.’
잠시 고민에 잠겼던 영식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름답게 빛나는 그녀의 은발을 쓰 다듬자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져 보 였다.
‘락테온.’
그의 코어를 사용하여 이브를 만들 었기 때문일까.
외형적으로 비슷한 것도, 성격이 비슷한 것도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저희는… 살아 있는 겁니까?
그가 죽기 전 내뱉었던 간절한 물음 이 다시금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죽으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인 간들의 통념 속에 있는 미신에 가까 웠지만 지금은 그 미신이 어째서인 지 고맙게까지 느껴졌다.
“그래.”
영식은 그에게 들릴 일 없는 대답 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