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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82화 (282/284)

레벨업 머신 282화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젝트(2)

-치이이이이익.

시끄러운 잡음.

그 소리에 섞여, 아무런 감정도 느 껴지지 않는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연맹에서 송신한다.

?…력 ?..부로 연맹은 완전히 해체 되었다. 이에 따라 데우스 엑스 마 키나 프로젝트를 포함한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중지한다.

-다시 한번 송신한다.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중지 한다.

“아...”

짧은 음성.

그것도 부분 부분이 끊어져 잘 들 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

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 아아.”

기억이, 과거의 기억이 밀려들어왔다.

영식이 눈을 부릅떴다.

프로젝트를 중지한다.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기질 적으로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의 머 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 었다.

그가 말하는 연맹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우주 너머의 저편, 외계(外 界)에 존재하는 거대한 국가일 수도 있었다.

SF 영화처럼, 은하와 은하를 넘나 드는 과학력을 지닌 존재일 수도 있 었다.

‘중요하지 않아.’

그들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인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 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 었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은 아무것도 아 니었다.

병기와, 도구조차 되지 못했다.

필요가 없어진 도구. 유통 기한이 지난 상품을 폐기하듯 그는 아무렇 지도 않게 그 말을 입에 담았다.

락테온의 울부짖음이 영식의 머릿 속에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이런 아무 것도 아닌 것이… 허망하고. 허무한 것이… 진 실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진실은 허망하고, 허무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구도, 병기도 아니었다.

그저 이미 중지된 계획에서 남은 찌꺼기, 폐기해야 할 부산물에 불과 할 뿐이었다.

-대장님, 저희는… 이미 실패한 겁 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자신들은 실패했다. 시작하기도 전 에, 뭔가를 이뤄내기도 전에, 일방적 으로 실패를 선고 받았다.

이미 사용 가치를 다한 존재라고 단정 지어졌다.

“저희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신을 조각하고 있던 겁니다.”

영식은 락테온의 절규를 입에 담았 다. 수수께끼 같았던 그의 외침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 그랬구나.”

보이지 않는 신을 조각하고 있었 다. 아무것도 없는 허상을 따르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신을 섬기고 있었다.

기계장치의 신?

기계들의 정점에 선 존재?

그런 거창한 존재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전원 버튼을 끄는 것을 잊어버린 채 버려진 기계와 같았다.

움직이고는 있지만, 더 이상 가치 가 없는 존재들.

그것이 에르노어 대륙을 침입했던 북방의 악마들의 정체였다.

‘고작 그런 것 따위가.’

이 대륙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인 것이다.

“이제 기억 나셨습니까?”

단테리온은 반쯤 불타버린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영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젝트.

의문에 쌓여 있던 그 프로젝트에 대한 정체 또한 머릿속에 떠올랐다.

천마대전 당시 천사와 악마, 신의 격돌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퍼지게 된 신성의 에너지를 감지한 연맹 측은 물리 법 칙을 무시할 수 있는 신성의 에너지 를 탐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신.

신성을 품을 수 있는 기계. 아니, 정확하게는 신성을 품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기계.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장치의 신이라는 의미를 가진 존재.

‘그 기계장치라는 게 진짜 기계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엄밀하게 말 하면 ‘터무니없이 절대적인 존재’ 혹은 ‘이야기 속에 뜬금없이 등장하 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를 의미했다.

‘신성과 비슷하지.’

물리 법칙 위에 있는 것.

필멸자들 사이에서 오롯이 영원을 지켜낸 힘.

그것이야말로 ‘기계장치의 신’이라 고 불릴 만한 존재였다.

그 힘을 탐했던 것은 천사와 악마 들만이 아니었다.

머나먼 우주 너머에 있는 외계의 존재도 그것을 탐했던 것이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그 외계의 세력은 멸망했다.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 었던 그들은 모든 프로젝트를 백지 화시 켰다.

자신을 만들어준 창조주에게, 신에

게 버림받은 것이다.

“하, 하하.”

자연스럽게 허탈한 웃음소리가 흘 러나왔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계속해서 헛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군.”

락테온의 절규가 이해됐다.

자신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주어진 명령에만 따라 움 직였다. 그리고 그 명령을 완수하기 도 전에 이제는 쓸모없어졌으니 버 려 졌다.

얼마나, 이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 한 일인가.

“아닙니다.”

그런 그의 생각을 단테리온은 망설 임 없이 부정했다.

“저희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던 게 아닙니다. 당신이, 당신처럼 위대한 존재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신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신이 되어, 저희를 이끌 어줘야 할 존재입니다.”

“아아….”

‘ 그랬군.’

영식은 단테리온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신으로 만드는 게 사명이라 고 했던가.’

그 말을 들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자신은 단테리온이 말도 되지 않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짜 자신들의 사명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0식이라는 개체에게 신성을 흡수시켜 신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중앙을 침범하고, 방해되는 인간들 을 제거했던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 한 수단에 불과했다.

영식은 단테리온의 광기를 이해했 다. 그가 왜 미쳤고, 일그러져 버렸 는지 알 수 있었다.

“너는… 견디지 못했구나.”

단테리온에게 자신은 지도자이자, 신이자, 메시아였다. 그렇게 섬기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견디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대장님?”

“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그냥 버 려진 도구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 지 못했던 거야.”

“하, 하하! 또 그런 소리를 하시네 요, 대장님.”

단테리온은 폭소를 터뜨리며 고개 를 저었다.

“대장님은 버려진 도구가 아닙니 다.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실 패할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 은….”

그는 간절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완벽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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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결국은 주체의 문제였다.

락테온에게 진실을 전해들은 영식 은 처음에는 갈등했다.

자신의 존재에, 섬겨야 할 신이 사

라진 비참한 상황에 방황했다.

그리고 대전쟁에서 락테온이 죽었 다. 영식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검에 가슴이 꿰 뚫린 채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 다보던 락테온의 얼굴을 떠올렸다.

-대장님, 저희는-.

죽어가는 락테온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살아 있는 겁니까?

처절한, 가슴을 짓이겨 내뱉는 듯 그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째서 이렇게 중요했던 기억을 잊

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자신들은 도구로 만들어졌다. 목적 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렇다면… 목적을 잃어버린 기계 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할까.

영식은 고민했다. 생각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락테온이 무엇을 말하 고 싶었는지를 고뇌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신을 섬기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단테리온은 그렇지 못했다.

그에게는 주체가 없었다. 그의 주 체는 영식이라는 타자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신은 영식이었고, 영식이 신 이 아닌 모습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널 배반한 거였구나.’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기로 결 심한 자신과 그를 용납하지 못했던 단테리온.

결코 이어지지 않는 평행선과 같은 관계.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 았다.

자신은 그를 배신했고, 대치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자신은 패배했 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기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 전투의 영향으로 모든 기억을 잃고 어딘가에 떨어졌다.

그리고….

길수를 만났다.

“이 세계에 소환자들이 오게 된 건….”

“그건 락테온의 계획이었습니다. 대장님이 설득 당하지 않으실 때를 대비하여 그가 만들어 놓은 거죠.”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전함에 설치되어 있던 장거리 워 프 장치입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머나먼 행성에 있는 외계의 생명체 를 이 세계로 불러들였죠. 그리고 이 세계에 소환된 인간들은….”

“신성의 영향을 받았겠군.”

에르노어 대륙에 있는 모든 인간은 신성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외계에서 온 영식 자신도 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지구에서 소환된 인간들도 마찬가 지였다.

단테리온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멍청한 계획이었죠. 신성의 영향 을 받은 외계의 인간이 대장님과 저 희를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겁 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하찮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대장님, 진정 위대한 존 재는 당신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습 니다.”

단테리온은 열기에 찬 목소리로 말 했다.

영식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오버로드의 영향으로 움직이지 않 고 있던 팔다리가 그의 의지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영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익.

-메모리 데이터의 복구가 완료되 었습니다.

-마지막 보안 레벨이 해제되었습 니다.

-보안 레벨의 해제에 따라 슈트의 제한 시간이 사라집니다. 슈트를 착 용할 때 이외에도 신성 에너지를 사 용하실 수 있습니다.

짜릿한 전율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그의 몸 안 에서 끓어 넘쳤다.

“아아.”

단테리온은 신음을 홀리며 그 자리 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한쪽만 남은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모았다.

“그겁니다, 대장님. 바로 그 모습입 니다.”

자신이 바라던 신의 모습. 전능하 고, 위대한 존재의 모습.

지금 영식의 모습이야 말로 그의 이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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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은 자신을 향해 무릎 꿇은 단 테리온을 내려다보며 굳게 입을 다 물었다.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과거의 힘을 아득히 뛰어넘은, 신 성의 힘까지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지.’

중요한 것은 힘이 아니었다. 진정 으로 중요했던 것은 주체였고, 자유 였다.

“단테리온.”

“네, 대장님.”

“널 부정하지는 않으마.”

그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 삶의 목적은 영식 이외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영식은 서글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정말로 너는 그런 삶으로 만족하 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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