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80화
하우스 파티 프로토콜(3)
“원격으로 슈트를 조종하는 게 너 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영식은 단테리온을 바라보며 비릿 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단테리온은 자신을 둘러 싼 수십 개의 슈트를 바라보며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놀랍군요.”
그는 솔직한 심정으로 말했다.
기본적으로 슈트를 원거리에서 조 종하는 것만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 니었다. 하물며 다수의 슈트를 동시 에 원격으로 조종하는 것이 쉬울 리 가 없었다.
“널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이지.”
영식은 머리가 살짝 뜨거워지는 듯 한 감각을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말 했다.
최대한 길드원들을 끌어들이지 않 는 선에서, 단테리온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는 방법.
오랜 고민 끝에 생각해낸 최적의 방법이 바로 이 ‘하우스 파티 프로 토콜’이었다.
사람이 들어가 있지 않은 무인 슈 트 수십 대를 동시에 운영하며 단테 리온을 압박하는 것.
이 방법이라면 단신으로 그를 상대 하면서도 다수의 이점을 취하는 게 가능했다.
‘루크델라에게 고맙다고 절이라도 올려야 하나.’
만약 그가 없었다면 수십 개의 무 인 슈트를 만들어내는 일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지이이잉. 철컥.
단테리온을 둘러 싼 수십 개의 슈 트의 오른팔이 동시에 올라갔다. 슈 트의 오른팔에 모인 에너지 블라스 트가 그를 향했다.
놀랍다는 시선으로 슈트를 바라보 고 있던 단테리온의 입가에 짙은 미 소가 지어졌다.
“그래, 이 정도는 해주셔야 대장님 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이 상황이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그를 향해 쏘아진 수십 발의 에너 지 블라스트가 뜨거운 열기를 뿜어 내며 다가왔다.
단테리온은 가볍게 손을 들어 허공 에 휘저었다.
무형의 기운이 장막처럼 퍼져나감 과 동시에 그를 향해 날아오던 수십 발의 에너지 블라스트가 모조리 증 발하듯 사라졌다.
‘왜 엘리아가 역장을 보고 그렇게 기겁을 했는지 알겠네.’
순식간에 사라지는 에너지 블라스 트의 구체를 바라보며 영식은 어처 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어느 정도 역장을 사용할 수 있기는 했지만 모든 보안 레벨이 해방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단테 리온처럼 자연스럽게 역장을 구사할 수는 없었다.
역장의 힘은 말 그대로 사기.
저 절대의 방벽을 뚫기 위해서는 시간당 역장이 분해할 수 있는 에너 지 양 이상의 에너지로 공격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 양이라는 게 보통이 아 니라는 거지.’
사실상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고 생
각하는 편이 맞았다.
“뭐, 예상했던 일이니까.”
단테리온의 역장을 뚫지 못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역장을 사용했다 는 사실 자체.
무한하지 않은 자원을 슈트를 상대 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 했다.
‘최대한 뽑아먹어 볼까.’
그가 슈트를 사용하기 전까지 최대 한 역장의 사용을 유도하는 것.
그것이 영식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철컥. 쿠웅!
수십 대의 슈트가 동시에 발을 박 찼다. 등 뒤에서 뿜어진 부스트가 강렬하게 타올랐다.
“하아….”
머리가 뜨거워졌다.
수십 개의 슈트를 동시에 조종한다 는 것은 아무리 영식이라도 쉽지 않 은 일이었다.
각 슈트에서 전해지는 서로 다른 정보에 의식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랑 비슷해.’
루크델라와 바둑을 뒀던 기억이 떠
올랐다.
자신의 연산 능력을 극한까지 몰아 붙이며, 무한을 손에 움켜쥐었을 때 의 감각. 지금 슈트들이 만들어내는 변수는 그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머리가 뜨거워지는 만큼 묘한 호승 심과, 고양감이 그의 전신에서 끓어 올랐다.
-콰앙! 쿵! 쿠궁!
넓게 펼쳐진 수십 개의 슈트가 단 테리온을 압박했다.
단순히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
니었다. 하나하나의 슈트는 마치 노 련한 전사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 처럼 날카로운 공격을 단테리온을 향해 퍼부었다.
“호오. 이것 참….”
단테리온의 표정이 놀라움이 서렸다.
그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막 아내며 짧은 탄성을 흘렸다.
‘ 대단해.’
원격으로 슈트를 조종하는 것 자체 는 그다지 어려운 기술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십 개의 슈트를 동시에, 그것도 하나하나가 마치 노련한 전 사가 들어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조 종하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경이로운 기술이 었다.
‘역시 대장님이야.’
단테리온은 그 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영식은 점차 자신의 본래의 모습 을,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이대로 저에게 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는 광기에 찬 눈빛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후웅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한 슈트의 블레이드가 단테리온의 목을 날카롭 게 노리고 휘둘러졌다.
“훗!”
단테리온은 다급히 그의 공격을 피 하며 팔을 휘둘렀다.
자연스럽게 펼쳐진 역장의 기운이 슈트의 몸을 거칠게 후려쳤다.
-후웅! 지이이잉!
하나의 슈트를 처리했다고 해서 안 심할 수는 없었다. 슈트들은 완벽한 합공을 펼치며 그를 쉬지 않고 움직 이도록 만들었다.
철저하게 계산 된 공격.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맞물리는 움직임.
과거 단테리온이 익숙하게 보아왔 던 동작들이었다.
“좋아.”
그는 열락에 찬 목소리로 어지럽게 움직이는 슈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 었지만 지금 슈트들이 보여주는 움 직임은 과거 영식이 보여주던 움직 임과 비슷했다.
그것만으로도 단테리온은 참기 힘 든 감동을 느꼈다.
-콰앙! 쿵!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슈트의 조종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영식은 직접 무기를 빼어들고 전투 에 참여했다.
일초를 수십 개로 나눈 짧은 시간 동안 정신없는 공방이 오갔다.
‘나쁘지 않아.’
영식은 침착한 표정으로 단테리온 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며 피로가 쌓이고 있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
‘이길 수 있어.’
단테리온이 지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었다.
‘차분하게.’
영식은 단테리온이 뿜어내는 에너 지의 흐름을 느꼈다. 에너지의 흐름 을 보면 대상의 의도를 예측할 수 있었다.
어딜 신경 쓰고 있고, 무엇을 하려 고 하는지 영식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하! 좋아요! 바로 이겁니다 대 장님!”
전투가 길어질수록 단테리온은 오 히려 참을 수 없이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움직임을 분석한 영식은 점점 더 그가 대처하기 힘든 패턴으로 슈 트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철저하게 분석한 후, 그 데이터를 토대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그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 영식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아아, 그래. 이게 바로 대장님이 죠! 이래야 대장님이라고 할 수 있 죠!”
단테리온은 광기에 찬 목소리로 소 리쳤다. 그는 수십 개의 슈트에게 합공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열기에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아, 하아. 마치 여러 명의 대장 님에게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네요. 이런, 이런 행복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제발 입 좀 다물어.”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불쾌감에 영식은 거친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여기 루시아가 없는 게 다행이네.’
만약 그녀가 있었다면 단테리온의 저 위험한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콰직!
역장에 맞은 슈트 하나가 완전히 박살 나 바닥에 흩어졌다.
단테리온을 둘러싸고 있던 슈트의 개체 수는 처음에 비해 확연히 줄어 들고 있었다.
‘슬슬 한계인가.’
조금 더 단테리온의 힘을 빼내고 싶었지만 더 이상 버티는 것은 어려 울 것 같았다.
이 이상 슈트가 줄어든다면, 슈트 가 문제가 아니라 영식 자신이 위험 에 처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래도 마지막 한 방 정도는 먹여 줘야지.’
“하우스 파티 프로토콜. 최종 단계 가동.”
-철컥.
-치익.
-하우스 파티 프로토콜 최종 단계 가동 요청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최 종 단계의 가동을 시행하시겠습니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단테리온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응…?”
단테리온은 갑작스럽게 몸을 빼내 는 영식을 바라보며 살짝 눈살을 찌 푸렸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전해졌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그런 그의 예감에 호응하듯 그를 둘러 싼 슈트들이 서로의 손을 마주 잡으며 포위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만 본다면 한국 전통 놀이 중 하나인 강강술래를 떠올리게 만 드는 모습.
“ 대장….”
-기이이이잉!
그가 영식을 부르기도 전에 시끄러 운 엔진 소리가 그를 둘러싼 슈트에 서 뿜어져 나왔다.
역장을 사용한다고 가정해도 무시하 기 힘든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역장이 시간당 분해할 수 있는 에 너지를 넘어선 힘.
이런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코어 폭발.’
슈트의 원동력이 되는 코어를 강제 적으로 폭발시키는 것.
단테리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
다. 아무리 그라고 하더라도 맨몸으 로 이 폭발을 받아내기는 힘들었다.
“하하. 여기까지 절 몰아붙이다니, 솔직히 의외입니다, 대장님.”
단테리온은 고작 1년 정도 전에 루시아를 통해 보았던 영식의 모습 을 떠올렸다.
그때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고작 1년이라는 시간 만에 자신을 이 정 도로 몰아붙일 수 있는 힘을 갖출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 대장님.’
단테리온은 예상치 못한 그의 힘에 오히려 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이 상태라면….’
과거 그가 가졌던 모든 힘을 되찾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단테리온은 초조한 표정으로 그의 입술을 핥았다.
‘당신이 저만의 신이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왼 손등을 들어 올렸다.
“이건 저도 어쩔 수 없겠네요.”
단테리온은 자신의 주위를 완전히 포위한 채 점점 범위를 좁혀오는 슈 트들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맨몬으로 영식을 상대하려 고 했으나 지금 이 상황으로 봤을 때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들어 올린 왼 손등에서 뿜어진 빛 이 단테리온의 몸을 감쌌다.
-치이이이익!
녹색으로 빛나는 그의 슈트가 모습 을 드러냈다.
“진짜 의외인 건 지금부터일 텐데 말이지.”
영식은 슈트를 입은 단테리온을 바 라보며 자신도 왼팔을 들어올렸다.
그가 입고 있던 양산용 슈트가 갈 라져 바닥에 떨어졌다.
“응?”
단테리온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지금 상태의 대장님이 슈트를 사 용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런 그의 생각을 조롱하듯, 영식 의 손등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그의 전신을 뒤덮였다.
-치이이이이익!
데우스 엑스 마키나 0식.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그 은
회색 슈트에서 강렬한 증기가 뿜어
져 나왔다.
“어떻... 게?”
단테리온은 덜덜 떨리는 눈으로 뒷
걸음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