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79화
하우스 파티 프로토콜(2)
“넌 그냥 미친놈이야.”
숨겨진 흑막도, 모든 것을 깨달을 초월자도 아니다.
단테리온은 그저 정신이 일그러진 한낱 광인에 불과하다.
“하, 하하하. 아, 이거 참. 제가 훙
분해 버리고 말았네요.”
단테리온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침착함을 가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가면이 벗겨진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태.
더 이상 그의 말에 동요할 필요도, 분노한 이유도 없었다.
“발검.”
-철컥.
왼 손등에서 튀어나온 은색 블레이 드가 날카로운 예기를 뿌렸다.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단 테리온을 주시했다.
‘전투 데이터부터 필요해.’
그의 기본적인 전술은 상대방의 전 투 데이터를 모아 그를 토대로 가장 최적의 대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단테리온에 대해서 그 가 알고 있는 것은 역장을 사용한다 는 사실 이외에는 전무했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전 투 데이터를 뽑아낼 필요가 있었다.
‘우선 견제부터.’
-철컥.
영식의 등이 열리며 검은색 개틀링 건이 튀어나왔다. 굉음과 함께 총구 가 불을 뿜어내며 총알이 쏟아졌다.
-티디디디디디딩!
‘뭐, 아예 흠집도 안 나네.’
방 전체를 울리는 굉음을 내뿜고 있다는 사실이 무안해질 정도로 총 탄들은 단테리온의 몸에 아무런 대 미지도 주지 못하고 튕겨나가고 있 었다.
“어쩔 수 없죠.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라도 대장님이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단테리온이 손을 들어올렸다.
강렬한 열기를 머금은 에너지 블라
스트가 그의 손바닥에 떠오르기 시 작했다.
‘에너지 블라스트라.’
영식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에너 지 블라스트를 바라보다가 옆으로 몸을 이동했다.
사실 에너지 블라스트는 일대 일 대인전에서 사용하기는 조금 효용성 이 떨어지는 기술이었다.
파괴력 자체는 엄청나게 강력한 편 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적중률이 다 른 무기에 비해 많이 덜어졌기 때문 이었다.
‘몬스터처럼 덩치가 커서 맞는 면
적이 큰 것도 아니고.’
영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여유롭게 에너지 블라스트를 피했다.
그때 였다.
-지이이잉!
‘휘었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에너지 블라 스트의 궤도가 허공에서 틀어졌다.
영식은 다급한 표정으로 발을 박찼 다.
그 순간 사람 얼굴 크기를 가진 에너지 블라스트가 산탄처럼 수십 개로 갈라져 영식을 덮쳤다.
-콰아아아앙!
“크윽!”
“자.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대장님.”
단테리온은 양팔을 펼쳤다.
그의 양손에서 두 개의 에너지 블 라스트가 떠올랐다.
허공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에너지 블라스트가 영식을 향해 빠른 속도 로 날아왔다.
“하압!”
-슈우우우우!
상대방의 공격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영식은 부스트를 최대 출력으로 사 용하며 단테리온에게 접근했다.
-카아아아앙!
“홉!”
블레이드의 검날이 단테리온이 만 든 플라즈마 배리어에 막혔다.
시끄러운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플라즈마 배리어를 사용해서 영식 의 공격을 막은 단테리온은 뒤로 이 동하며 영식에게 거리를 벌렸다.
허공을 자유롭게 날고 있던 두 개 의 에너지 블라스트가 영식의 뒤를 노렸다.
-촤악!
에너지 분해의 기술이 담겨져 있는 블레이드로 에너지 블라스트를 가른 영식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원거리 중심의 전투 스타일이야.’
락테온의 코어를 통해 전투기술을 다운로드 받은 이브가 근접 특화의 전투 스타일을 가졌던 것과는 반대 로 단테리온은 완전히 원거리에 특 화된 전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원거리를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했 다.
압도적인 스피드를 통한 접근으로 강제적인 근접전으로 이끌고 가는 것.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콰아아앙!
사방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단 테리온과 영식이 충돌하는 열기에 주변 조종실의 벽이 녹아내렸다.
“하! 이렇게 대장님과 직접 싸우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단테리온은 훙분에 찬 목소리로 소 리 쳤다.
“아주, 아주 참기 힘들 정도로 기 쁩니다, 대장님!”
‘루시아 같은 소리 그만해, 인마.’
“그래요, 사랑!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사랑이란 말 입니까!”
‘너 말고도 벅차다, 이 새끼야.’
영식은 정신없는 전투 와중에도 쉴 새 없이 떠드는 단테리온을 바라보 며 거칠게 표정을 굳혔다.
‘좋지 않아.’
단테리온이 내뱉고 있는 말의 내용 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가 내뱉는 말도 상당히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건 그래도 무시할 수라도 있었다.
‘여유를 부리고 있어.’
전투 중에 저렇게 계속 말을 쏟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단테 리온이 굉장히 여유롭다는 증거였다.
부스트를 사용해 초근접전으로 이 끌어가려고 해도 대부분의 공격이 배리어를 뚫기도 전에 사방에서 날 아오는 수십 개의 에너지 블라스트 를 막아내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에너지 블라스트를 막아내는 사이 단테리온은 여유롭게 개소리를 쏟아내며 뒤로 몸을 빼냈다.
‘이걸 무시할 수도 없고.’
영식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에너지
블라스트를 블레이드로 갈라내며 표 정을 구겼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에너지 블라스트의 위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살을 내어주고 뼈 를 취하는 것이 아닌 살과 뼈를 통 째로 내어주게 될 것만 같았다.
단테리온이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전투 불능이 된 채 기절해 버리면 사실상 죽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자신이 여기서 쓰러진다면, 모든 것이 단테리온의 뜻대로 흘러가게 될 테니까.
‘이때 길드원이 있었다면.’
루시아와 이브, 티리아, 길수, 유나.
그의 길드에서 쟁쟁한 강자들이 여 기에 합세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 로 단테리온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너무 위험해.’
영식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 혹을 지워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 전투에 합 세한다면, 단테리온은 자신이 아닌 다른 길드원들을 집중적으로 노릴 것이 분명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단테리온 이 역장을 사용한다면 영식도 길드 원들을 전투 속에서 지켜낼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하하. 이제 끝인가요, 대장님?”
단테리온은 여유에 찬 미소로 영식 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 을 향해 접근하려는 영식을 바라보 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가볍게 휘둘러진 손의 궤적을 따라 무형의 기운이 사방을 휩쓸었다.
-쿠웅
“커 헉!”
역장.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그 절대 의 힘이 영식을 후려쳤다.
반사적으로 플라즈마 배리어를 펼 쳤지만 역장의 앞에서 배리어 따위 가 의미를 가질 리가 없었다.
뒤로 튕겨져 나간 영식의 몸이 거 칠게 바닥을 굴렀다.
‘이게 완전한 역장.’
영식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신의 역장에 비해서 훨씬 더 정갈 하고, 경이로웠다.
“하아, 하아. 그래, 이제 역장을 쓴
다 이거지.”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영식의 입 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도 역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역장이라는 힘은 사용하 는 것 자체만으로도 연산 장치에 어 마어마한 과부하를 주는 기술이었다.
물론 자신이 아직 불완전한 역장 밖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쉽게 사용 할 수 없는 기술이라는 것만큼은 분 명했다.
‘네가 카드 한 장을 썼다면.’
단테리온이 역장이라는 카드를 썼
다면, 자신도 준비한 카드를 한 장 사용할 타이밍이었다.
-철컥.
“프로토콜 가동 준비.”
-치익.
-프로토콜 가동 신호를 확인했습 니다.
-가동 준비에 들어갑니다.
아직은 슈트를 사용할 타이밍이 아 니었다.
그렇다고 단테리온에게 불완전한 역장으로 승부를 거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다.
영식은 지금을 위해 계속 숨겨두고 있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응?”
단테리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 식을 바라보았다.
“뭘 하실 생각이시죠, 대장님?”
“글쎄. 너도 보면 알 게 될 거야.”
영식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통신기 의 버튼을 눌렀다.
-콰아아아앙!
“아악!”
“전열을 유지해라! 여기가 뚫리면 뒤에 있는 병사들은 모두 죽는다!”
거대 로봇의 밖.
연합군과 안드로이드 군단의 치열 한 전투가 이뤄지는 그 곳에 배영훈 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
그것도 알파조에 속해도 전혀 모자 람이 없는 실력을 가진 그는 로봇 안으로 진입한 영식과 알렉을 대신 해서 연합군의 지휘를 맡고 있었다.
‘로봇이 접근하기 전에 전투를 끝 내야 해.’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는 거대 로봇을 올려다보았다.
한 번 멈췄다가 다시 가동하기 시 작한 거대 로봇은 연합군을 향해 몸 을 움직이고 있었다.
‘도착하면 전멸이야.’
안드로이드 군단을 막는 데도 급급 한 연합군 병사들에게 거대 로봇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리가 없 었다.
“전열을 유지하고 뒤로 물러나며
싸워라!”
배영훈은 목이 쉴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때 였다.
“장군님! 저, 저기….”
“뭐야?!”
배영훈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병사를 바라보며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렇게 급할 때!’
그는 조급한 표정으로 병사가 가리 킨 곳을 바라보았다.
“응? 저, 저건…?”
-철컥, 철컥, 철컥.
진군 당시 연합군의 시선을 끌어 모았던 거대한 정육각형 큐브.
그 큐브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당황에 찬 그의 물음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저 거대한 큐브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치이이이이익!
“어 ?”
“여, 열린다!”
새하얀 증기와 함께 거대한 큐브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벌어진 큐브에서 무언가가 공중으 로 솟구쳐 올랐다.
“슈트?”
“저거 슈트 아냐?”
병사들은 당황한 시선으로 허공에 떠오른 수십 개의 슈트를 올려다보 았다.
-슈우우우우웅!
허공에 떠올랐던 수십 개의 슈트가 강렬한 부스트를 뿜어내며 거대 로 봇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아니….”
“저게 대체 뭔….”
병사들은 치열한 전투 중이라는 것 도 잊어버린 채 허탈한 표정으로 슈 트가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콰아아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조종실의 벽이 박살 났다.
무너진 조종실의 벽을 통해 들어온 것은 수십 개의 슈트.
“이건...”
“원격 조종에 필요한 연결 상태 체 크.”
영식은 두 눈을 살짝 감으며 조종 실 안으로 들어온 슈트에 정신을 집 중했다.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무인 슈트.
수십 개의 무인 슈트가 그와 연결 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지잉.
수십 개에 달하는 슈트의 눈에서
붉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치이이익.
-원격 조종을 위한 고속 연산 장 치 가동.
-하우스 파티 프로토콜 가동 완료.
“원격으로 슈트를 조종하는 게 너 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영식은 단테리온을 바라보며 비릿 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