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77화
결전 (5)
‘어디냐.’
영식의 눈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 다. 스캔으로 살핀 주변 공간이 데 이터화 되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 왔다.
“위!”
-콰아아앙!
짧은 외침과 동시에 굉음이 통로 안에 울려 퍼졌다.
통로의 천장에서 끔찍한 악취가 풍 겨져 나와 주변을 휩쓸었다.
“키에에에에에엑!”
“으... ”
“우웁!”
천장에서 내려온 끔찍한 살덩어리 를 본 소환자들은 창백해진 표정으 로 입에 손을 올렸다.
괴물.
살아 있는 것 ‘같은’ 무언가.
그 어떤 말로도 저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저 괴물에 비해서는 오우거와 같은 흉포한 몬스터가 애완동물처럼 보일 정도였다.
“저, 저게 뭐야?”
이런 상태의 엘리아를 처음 본 강 하린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천태황이 가볍게 잡아주었다.
“저번에 보고로 들으셨지 않습니 까? 레드 로즈 길드를 습격했던 괴 물이 저 괴물인 것 같습니다.”
“끔찍해….”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끼에에에엑, 크르르르르.”
-치이이이익!
괴성을 지르며 몸을 꿈틀거리는 엘 리아의 몸에서 새하얀 증기가 뿜어 져 나왔다. 그 증기에 닿은 통로의 벽이 연기를 피워 올리며 녹아내리 기 시작했다.
“괴물은 강한 산성 체액이 분사합 니다. 모두 접근에 주의해 주세요.”
“이거 완전 에일리언 아니야?”
“?듣고 보니 비슷하네.”
지금 엘리아는 SF영화에 흔히 등 장하는 외계생명체 그 자체였다.
유나는 허탈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홀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기계도 모자라서….”
“영식 씨가 테란이라면 저 괴생명 체는 저그쯤 되겠네요.”
SF에는 기계만 있는 것이 아니었 다. 에일리언과 같은 외계생명체도 단골로 등장했다.
유나와 한성은 이제는 질려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영식은 억울하다는 눈빛을 그들에 게 보냈다.
“끼에에에에에엑!”
“우선 저놈부터 처리해야겠네.”
“알파조, 전투 준비!”
“준비!”
슈트를 입은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 가 각자 전투자세를 취했다.
‘슈트가 녹아내리기 전에 죽여야 해.’
지금 슈트 부대의 전력은 연합군에 게 있어서 핵심과도 같은 존재.
엘리아가 뿜어내는 산성 체액에 슈 트가 모두 녹아내리는 일만은 막아 야 했다.
“블레이즈 버스트!”
- 화르르르륵!
붉은색 슈트를 입은 유나의 몸에서 강렬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염을 두른 그녀가 발을 박차며 엘리아의 몸에 쌍검을 박아 넣었다.
?콰아아앙!
“키에에에에엑!”
강렬한 폭발과 함께 엘리아의 몸에 서 화염이 쏟아졌다.
‘저 모습을 보니 예전 엘리아와 비 슷해 보이네.’
붉은색 슈트를 입고 화염을 두른 유나의 모습은 엘리아가 저런 괴생 명체로 전락하기 전의 모습과 비슷 해 보였다.
살덩어리가 된 엘리아와, 과거 그 녀를 연상케 하는 유나의 전투는 씁 쓸한 희극처럼 느껴졌다.
‘단테리 온.’
엘리아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저 정도로 처참하 게 망가진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이 싸해지는 기분이었다.
-콰앙! 쾅!
“키에에에엑!”
“윽! 이거 재생도 하잖아?!”
“살이 터지고 나오는 체액은 무조 건 피해야 합니다!”
영식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계 속해서 전투가 이어졌다.
선두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건 유나와 천태황.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완벽한 합공을 보여주며 엘 리아를 몰아붙였다.
“아도니스 디 리베리에!”
“공간이 충분하지 않으니 서로 교 대로 싸워야 효율이 좋다고 알림.”
유나와 천태황이 큰 공격을 마치고 뒤로 빠진 사이 이브와 루시아가 바 통을 교대하듯이 앞으로 나섰다.
엘리아는 살덩어리를 기다란 촉수 로 만들며 필사적으로 반항했지만 차륜전으로 펼쳐지는 드래곤 슬레이 어 부대의 공격을 견디는 것은 불가 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아를 빠 른 속도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상식을 벗어난 재생력으로 계속해서 몸을 복구하며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익!
“제길! 뭐 이렇게 끈질긴 거야?!”
“경고. 주변 통로가 녹아내리고 있 다고 알림.”
엘리아와의 싸움이 길어지면서 그 녀의 산성 체액이 주변 통로를 모조 리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다들 비켜!”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끝을 내 야겠다고 생각한 영식은 풀 차징 된 에너지 블라스트를 손에 모아 쏘아 냈다.
-콰과과과과광!
“키에에에에에에엑!”
끔찍한 폭음과 함께 엘리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살덩어리가 에너지 블 라스트의 열기에 불타올랐다.
“크르르르르르르.”
“주인님! 아직 살아 있어요!”
“진짜 더럽게 끈질기네. 잠깐만 기 다려 봐. 바로 다시 한 방을….”
“영식 씨! 저쪽에서 기계몬스터들이!”
“기계몬스터?”
영식은 티리아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성 체액으로 녹아 내린 통로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달 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기계몬스터’라고 말한 존 재를 본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 었다.
오우거의 외형에 기계로 이루어진 팔. 흉포한 몬스터지만 어딘가 순수 하고, 선해 보이는 인상.
‘이브.’
실제 이브는 아닐 것이다.
그저 그와 같은 외형을 가진 기계 몬스터에 불과했다.
지성이 없는, 실체가 없는, 주체가 없는 단순한 병기에 불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꼭두 각시 병기로 살 것 그랬네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브가, 처절 한 목소리로 내뱉었던 말이 영식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개자식이.”
거칠게 쥐어진 주먹이 떨렸다. 잊 고 있던, 아니, 잊기 위해 노력했던 분노가 가슴 속에서 끓어올랐다.
단테리온이 저런 외형으로 안드로 이드를 만든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 추할 수 있었다.
그는 영식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 이다.
이브가 그의 바람대로 병기가 된 모습을.
“영식 씨….”
“알고 있어.”
영식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 며 씹어 뱉는 듯이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보다 더 큰 충격을 느끼고 있을 한 사람을 바라 보았다.
“이브.”
“저건 가짜야.”
“알고 있다고 알림.”
“해당 기계몬스터들은 본 기체가 직접 처리하겠음.”
이브는 기계몬스터를 향해 블레이드 를 겨누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기랄.’
영식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 설을 삼켰다.
지금 이브가 보여주는 차분한 표정 과 태도가 모두 억지로 보여주는 모 습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그는 멍 청하지 않았다.
원래 이브와 가장 친했던 것은 그 녀 였다.
같은 감정을 가진 로봇 사이에서, 묘한 유대감을 느끼며 가장 많은 시 간을 함께 보냈던 그녀였다.
단순히 같은 외모만 가졌다고는 하 나 기계몬스터를 죽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단테리온.’
입술을 깨문 표정으로 기계몬스터 들을 향해 걸어가는 이브의 모습을 보며 영식은 거칠게 이를 갈았다.
-쿠궁!
“ 엇‘?!”
“이, 이건 또 뭐야?”
이브가 기계몬스터와 싸우기 위해 몸을 움직인 순간, 그들이 밟고 있 던 통로가 크게 요동쳤다.
-쿠웅! 쿠웅!
“이건...”
“다, 다시 로봇이 움직이고 있는 건가?!”
“하지만 아까 영식이가 제어장치를 파괴했잖아!”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굉음.
소리에 맞춰 진동하는 통로. 지금
그들이 있는 거대 로봇이 다시 움직 이기 시작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식 씨!”
“잠깐 기다려. 지금 확인해 볼 테 니까.”
영식은 스캔을 통해 방금 전에 파 괴하고 나왔던 제어실을 바라보았 다.
‘누군가 있어.’
파괴한 제어실에 누군가 있는 것이 보였다.
데이터화 되어 누군지 알 수는 없 었지만, 그 존재가 제어장치를 복구 한 것만큼은 확실했다.
“티리아! 여기서 엘리아와 저 기계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어줘! 난 제 어실로 다시 가볼게!”
“하, 하지만 영식 씨!”
“많은 인원이 우르르 몰려가면 오 히려 더 복잡해!”
게다가 제어실 주변은 엘리아의 체 액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상태.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한 지형이었다.
“읏…. 아, 알겠어요! 여긴 저희들 이 맡고 있을게요!”
티리아는 이브를 도와 달려드는 기
계몬스터를 상대하며 영식에게 소리 쳤다.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어실 을 향해 발을 박찼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어딜!”
“네 상대는 나라고!”
제어실로 향하는 영식을 엘리아가 막아섰다. 양옆에서 튀어나온 천태 황과 유나가 엘리아를 향해 검을 휘 둘렀다.
“주인님! 저도 같이…!”
“여기 있어!”
영식은 자신의 뒤를 따라 오려는 루 시아에게 소리치며 제어실로 향했다.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지금 제 어실에서 제어장치를 복구한 존재에 대해서 떠올렸다.
‘레노스와 같은 연구 계통의 놈인 가? 아니면 수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체?’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레노스의 시체는 페이크에 불과하고 진짜 본체가 따로 있던 것 일 가능성도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수리한 거지?’
영식은 플라즈마 블레이드까지 사 용해서 완전히 제어장치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중간에 날뛰는 플라즈마의 열기에 내 부장치도 모조리 녹아내렸을 것이다.
차라리 새로 만드는 것이 나아 보 일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 낸 장치를 이 정도로 빠르게 수리하다니.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건지 예상 이 가지 않았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상식 밖의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콰앙!
엘리아의 체액에 녹아내려 눌어붙 은 철문을 블레이드로 가른 영식은 거칠게 발로 철문을 박살 내며 제어 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 오셨군요 대장님.”
제어실 안에 설치된 의자.
레노스의 시체가 있었던 그 의자에 온화한 인상을 가진 청년이 앉아 있 었다.
“단테리온.”
“하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이렇게 직접 만나니 통화로 얘기한 것보다 더욱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수리 기능까지 있는 줄은 몰랐 는데.”
“제가 좀 다재다능합니다.”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 를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달려들 고 싶었지만 섣부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재밌는 짓을 벌였더군.”
“아, 이브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하하! 대장님께서 마음에 드셨 다니 다행입니다.”
“그걸로 네가 말하는 ‘설득’이란 걸 할 생각이었다면 좀 유감스럽지 만 말이야.”
차분하게 말하는 영식의 목소리에 이글거리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랬나요. 분명히 먹힐 거라고 생 각했는데 말이죠.”
“겉모습만 똑같은 인형 따위로 그 런 기대를 했다는 게 더 놀랍네.”
“웅?”
단테리온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
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모습만 똑같은 인형이라뇨? 저 건 ‘진짜’ 이브입니다.”
“?뭐라고?”
단테리온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 어 졌다.
순수한, 마치 어린아이가 짓는 미 소와도 같은 투명한 미소.
영식은 그 미소에 소름이 끼치는 감각을 느꼈다.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사라진 그 불쌍한 오우거. 그를 분해해서 만든 개체가 바로 저 기계몬스터들 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