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75화
결전 (3)
“?이건 또 뭐야.”
영식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변신 로봇.
SF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 존재 가 에르노어 대륙에서 모습을 나타 냈다.
‘이런 미친.’
영식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무시무시한 크기의 로봇을 올려다보 았다.
전함이 형태를 바꿔 변신한 그 로 봇은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두 팔 과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거신.
신화에서나 다뤄지는 파괴의 정점.
“장르 파괴에도 정도가 있잖아….”
검과 마법, 드래곤과 요정이 있는 세계에서 거대 변신 로봇이라니.
비정상적인 것에도 정도가 있었다.
“아니,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급박한 와중에도 할 말은 해야겠는 지 유나는 허탈한 웃음을 홀리며 영 식을 바라보았다.
저런 거대 로봇을 만든 것은 아니 었지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여러 기적들을 봤을 때 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없었다.
영식은 그런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은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결국 슈트를 사용할 수밖에 없겠네.”
저 거대 로봇을 쓰러뜨릴 화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창조주와 맞닥뜨리 기 전까지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슈트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 법은 없을 것 같았다.
“거봐, 자기도 똑같으면서.”
거대 로봇이나 슈트나 에르노어 대 륙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똑같다.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 슈트 준비.”
천 명에 달하는 모든 드래곤 슬레 이어 부대원 전부가 슈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남는 선에서 계속해 서 슈트 제조를 이어갔기 때문에 적 어도 백 명 이상의 소환자들에게 슈 트를 배포할 수 있었다.
“아라랑 채린이, 황현 할아버지는 뒤에서 우릴 엄호해 주세요. 티리아, 루시아, 이브. 너희는 나랑 같이 로 봇에게 근접하자. 유진, 너는 공간 이동으로 우릴 한 번에 로봇의 머리 위로 이동시켜줘.”
“예, 영식 씨.”
“맡겨주세요, 주인님!”
“슈트의 제한 시간은 한 시간입니다. 30분 안에 무조건 저 로봇을 파괴해 야 창조주와도 싸울 수 있습니다.”
원래라면 창조주와의 싸움에서 써 야 할 시간을 로봇에게 투자한 것이 나 마찬가지였다.
오래 시간을 끌면 이길 가망성이 없었다.
“여, 영식 사령관님!”
그때, 다급한 목소리로 병사 하나 가 달려왔다.
“아, 안드로이드 부대가 나타났습 니다!”
“?어디에 나왔지?”
“저 거대 로봇에서 나오고 있습니 다!”
병사의 말을 따라 영식은 고개를 돌렸다.
로봇의 양어깨, 허벅지에서 작은 날벌레 무리 같은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젠장.’
로봇 하나에 화력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드로이드 군단의 등장은 골머리를 썩게 만드는 것이었다.
‘피해가 좀 있더라도 이건 어쩔 수 없어.’
지금 당장은 안드로이드 군단에게 서 연합군의 병력을 지키며 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소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로봇 을 쓰러트리는데 모든 힘을 쏟아야 했다.
‘저걸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생길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차라리 움직임이 크지 않은 전함이 었다면 침착하게 안드로이드 군단부 터 정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봇의 경우는 얘기가 달랐다.
단순히 이쪽으로 돌진해서 팔만 한 번 휘둘러도 수천의 병사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몸체는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난 병기였다.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 슈트 착용!”
“착용!”
우렁찬 복명복창과 함께 백여 명의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가 왼손을 들 어올렸다.
그들의 왼 손등이 빛을 뿜어내며 복잡한 바코드들이 전신에 퍼져나가 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새하얀 증기 들이 슈트에서 뿜어져 나왔다.
영식 또한 이브에게 준 슈트 대신 자 신이 따로 만든 임시 슈트를 입었다.
원래 그가 사용하고 있던 락테온 2식에 비해서 모든 성능이 뒤처지고 있었지만 이거라도 사용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지금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사용 할 수는 없으니까.’
그를 5분간의 절대자로 만들어주는 그 슈트는 지금 사용할 때가 아니었다.
“출격!”
영식의 지휘에 따라 슈트를 입은 백여 명의 소환자들이 공중으로 날 아올랐다.
바로 그 아래에는 슈트가 아닌 드 래곤 웨폰만 지급 받은 부대원들이 뒤를 이어 달려들었다.
슈트 부대가 날아오르자 거대 로봇 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로봇의 오른팔이 앞으로 내밀어졌 다. 어마어마한 열폭풍과 함께 백여 미터에 달하는 에너지 블라스트가 손바닥에 모여들었다.
‘미친.’
영식은 그 에너지 블라스트에 담긴 어처구니없는 에너지를 느끼며 창백 하게 표정을 굳혔다.
저 정도 에너지라면 역장을 사용한 다고 해도 단시간에 분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피해!”
역장으로도 받아내기 힘든 공격을 슈트가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영식은 다급히 소리쳤다.
-기이이잉! 파앙!
강렬한 열기를 품고 있는 에너지 블라스트가 쏘아졌다.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는 슈트의 출 력을 최대로 사용하며 그 공격을 피 했다.
“아아아아아악!”
“히 이익!”
에너지 블라스트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휩쓸린 소환자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슈트 째 가루조 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드래곤의 브레스라고 하더라도 어 느 정도는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슈트가 허망하게 뚫려 버린 순 간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로봇의 표면에서 거대한 포신 수십 개가 솟아올랐다. 붉은색 입자들이 포신에 맺히더니 강렬한 열기를 머 금은 레이저빔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아아악!”
에너지 블라스트만큼은 아니었지만 레이저빔도 연합군에게는 절망적인 무기였다.
연합군의 전열이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소환자들은 레이저빔을 피해 비명 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 했다.
‘대체 저건 뭐야.’
영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 거대 병기를 내려다보았다.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병기.
기계장치의 신이라는 말은 자신이 아닌 저 병기에 어울렸다.
말 그대로 하나의 별을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병기 였다.
‘저 병기에 접근해야 해.’
원거리 화력전으로는 도저히 저 병 기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유진!”
“준비 끝났어!”
슈트를 입은 유진은 두 팔을 앞으 로 내밀었다.
허공이 갈라지며 공간의 균열이 나
타났다.
“슈트 부대는 저 균열로 이동해 라!”
영식은 그 균열에 몸을 던지며 다 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뒤를 따라 슈트를 입은 소환 자들이 균열에 몸을 던졌다.
유진의 마법으로 공간 이동한 장소 는 거대 로봇의 머리 위.
영식은 로봇에 도착하자마자 플라 즈마 블레이드를 만들어내며 레이저 빔을 뿜어내고 있는 포신을 향해 휘 둘렀다.
?콰아아앙!
30미터에 달하는 플라즈마 블레이 드에 잘린 포신이 강렬한 폭음과 함 께 떨어져 내렸다.
‘시간이 없어.’
레이저빔이 더 이상 연합군을 휘저 어 놓는다면 원거리 화력지원은 가 망이 없었다.
마치 개미를 화염방사기로 쓸어버 리는 듯한 이 정신 나간 무기를 어 떻게든 막아내야 했다.
“우선 포신부터 모두 작살 내!”
“네!”
티리아는 슈트의 도움으로 펼쳐낸
열장의 날개를 펄력었다.
새하얀 빛으로 빛나는 열장의 날개에 서 수백 장의 깃털이 뿜어져 나왔다.
겉모습은 바람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얇은 깃털이었지만 실상은 달 랐다.
강력한 마력을 머금은 세라핌의 깃 털이 새하얀 창으로 변해 포신을 향 해 쏘아졌다.
레이저빔을 쏟아내고 있던 포신이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균열을 너머 도착한 루시아와 이 브, 천태황도 빠른 속도로 로봇의 몸체를 달리며 포신을 잘라내기 시 작했다.
‘좋아. 오히려 크기가 너무 큰 탓 에 대처를 못 하고 있어.’
인간의 기준으로 치면 엄청난 속도 로 움직이는 파리떼들이 몸을 둘러 싼 것과 마찬가지.
팔을 아무리 휘저어 봐도 백여 마 리에 달하는 파리들을 모두 잡을 수 없었다.
“영식 군! 이 로봇의 안으로 진입 할 건가?”
드래곤의 비늘을 녹여내어 만든 와 이어로 닥치는 대로 포신을 자르고 있던 서강준이 소리쳤다.
“아뇨! 우선 포신부터 모두 제거하 겠습니다! 안 그러면 너무 연합군의 피해가 커져요!”
“알겠네!”
영식은 미친 듯이 로봇의 위를 질 주하며 포신을 잘라냈다.
그때 였다.
“영식이!”
-콰아앙!
“저건….”
“아무래도 연합군을 공격하던 안드 로이드 같네. 내가 여기서 저들의 발을 묶을 테니 영식이 자네는 계속 포신을 박살 내주게.”
“알겠습니다, 길수 형님.”
안드로이드까지 로봇을 지키는데 투입된 것을 보니 저쪽도 상황이 마 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영식의 눈이 반짝였다.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균열을 타고 빠르게 접근한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는 빠른 속도로 포신 을 제거해 나가고 있었고, 안드로이 드 군단은 연합군을 공격하던 것을 멈추고 회군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적이 대처할 수 있을 때까지 가만 히 기다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한 발자국 더 내디뎌 치명상을 입 혀야 했다.
‘이 거대 병기를 제어하는 장소가 있을 거야.’
인간으로 친다면 뇌에 해당하는 부 분이 존재할 것이 분명했다.
영식은 단단한 기계의 표면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구조파악은 위험해.’
마음 같아서는 구조파악을 사용해 서 이 로봇의 제어권을 자신에게 가 져오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번 카르가스 때를 떠 올리면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행동 이었다.
‘방어 장치를 해두지 않는 것이 오 히려 이상한 상황이니까.’
단테리온은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자신보다 오히려 더 많 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구조파악을 대비하지 않 았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직접적인 공격으로 제어장치를 파 괴해야만 했다.
“스캔.”
눈을 감은 영식의 머릿속으로 거대 한 로봇의 내부 구조가 데이터로 흘 러들어왔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복잡한 내부 구조. 영식은 그 내부에 흐르는 에 너지의 흐름을 읽었다.
‘엔진은 찾았어.’
거대한 로봇을 움직이고 있는 엔 진. 강력한 에너지가 응집되어 있는 코어는 찾았다.
‘일단 저기는 위험해.’
엔진에 들어가서 있는 대로 박살 낸
다면 로봇 자체는 멈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만약 코어가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 로봇을 움직이고 있는 코어였다.
그 코어가 폭발했을 때 말 그대로 에르노어 대륙의 반이 날아가도 이 상하지 않았다.
‘내 스스로 세계 멸망을 초래할 수 는 없지.’
영식이 찾아야 하는 것은 로봇의 움직임 자체를 제어하고 있는 장소 였다.
즉, 코어가 심장이라고 한다면 뇌
에 해당하는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영식의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렀다.
격렬한 혼들림과 열기, 폭음 속에 서 그는 로봇의 내부 구조를 모조리 살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 감겨져 있던 영식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