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68화
출정식 (3)
≪..
병사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무슨…?”
“내가 잘못 들은 거 맞지?”
“아아, 마이크 잘 안 들리냐?”
영식은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톡톡 건드리며 껄렁껄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희 모두 쓰레기라 말했다.”
“읏…!”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 미친놈?”
“그보다 저 새끼 그 여자 끼고 다 니는 낙하산 자식 아니야?”
“왜 저놈이 단상에 있는 거야?”
영식은 병사들 사이에 술렁거림이 커지는 것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 었다.
“내 소개가 아직이었네. 소개하지. 난 연합군 총사령관 영식이라고 한 다.”
“무슨 개소리를….”
“연합군 총사령관은 알렉 장군님이 시다!”
우우우.
뜨거운 야유와 함께 각종 욕설이 울려 퍼졌다.
영식은 어깨를 으쓱이며 알렉을 향 해 시선을 던졌다.
“장군님, 직접 말씀해 주시죠. 진짜 총사령관이 누구인지.”
“어…. 아, 알겠네.”
알렉은 어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까지 나는 영식 총사령관님이 없는 사이 총사령관의 대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제 총사령관님이 복 귀한 이상 원래 직책으로 돌아오려 고 한다.”
평소 영식에게 말을 놓는 알렉도 공식 석상에서는 영식의 체면을 지 켜주기 위해 말을 높였다.
“그, 그런….”
“어째서 장군님이…?”
“장군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다시 한번 말하겠다. 이제까지 연 합군을 결성하고, 이끌어왔던 것은 내가 아니라 저기 계신 총사령관님 이다. 사정이 있어서 내가 대리로 활동했지만 다들 무례를 저지르지 말고 총사령관님의 말씀에 귀를 기 울이도록 해라.”
알렉의 말을 들은 연합군의 병사들 이 멍한 표정으로 영식을 올려다보 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당혹감과 경악,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혹시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상황.
영식은 충격에 휩싸인 병사들을 바 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제 내가 진짜 총사령 관이었다는 건 잘들 알았겠지.”
“다들 아쉽게 됐네. 별 볼일 없는 낙하산이라고 신나게 까댔을 텐데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라서 말이야.”
“읏….”
“저 자식이….”
건방지기 짝이 없는 언동.
평소 최악에 가까운 그의 평판.
알렉이 총사령관이 아니었다는 것 에서 온 배신감 등.
연합군 병사들은 당장에라도 폭동 을 일으킬 것처럼 흉포한 기세를 뿜 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그거지.’
영식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부 풀어 오른 분위기를 느긋하게 내려 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 영식아? 미쳤어? 무슨 짓이야?”
“영식 씨, 이건….”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있던 티리아 와 아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 식을 바라보았다.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연설을 하라고 시켰더니 갑자기 연합군 전 체를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으니 그 녀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 연했다.
“하하, 괜찮아. 잘 되고 있으니까.”
“잘 되고 있다고? 이게?”
아라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슬슬 반응이 올 거야.”
영식은 어디까지나 느긋한 표정으 로 단상에서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웃기지 마라!”
“그래! 우리의 총사령관님은 너 같 은 낙하산이 아니라 알렉 장군님이 시다!”
“무슨 방법으로 알렉 장군님을 구 워삶았는지는 몰라도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라!”
“능력도 없는 낙하산이 총사령관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우우우우!
야유하는 소리가 광장 가득 울려 퍼졌다.
영식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 으며 조롱을 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자리에 올라온 건 순전히 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거짓말!”
계속해서 야유가 이어졌다.
그를 야유하지 않는 사람은 영식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들뿐이었다.
심지어 지난 카르가스와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새롭게 드래곤 슬레 이어 부대에 입단한 사람들조차도 영식을 비난하고 있었다.
사실 영식이 잠들어 있는 수개월 동안 새롭게 뽑힌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원들은 영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가 총사령관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영식이 보여준 것이라고는 드래곤과 바둑을 둔 것과 고작 뒷골 목을 쓸어버리기 위해 비상소집령을 내린 것뿐.
이미지가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우우우!”
“물러나라 낙하산!”
거세지는 비난. 점점 더 커져가는 야유 소리에 루시아의 표정이 거칠 게 일그러졌다.
“이것들이 감히….”
“가만히 있어, 루시아.”
“하,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제 거의 다 됐으 니까.”
영식은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울려 퍼지는 야유를 들으며 느긋하게 때 를 기다렸다.
“저놈을 끌어내라!”
“맞아! 알렉 장군님을 총사령관으 로 모시자!”
사람은 자신의 생각보다 감정에 훨 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생물이었 다. 집단적인 감정의 공유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쏟아버리는 것과 같았다.
비난이 거세지자 병사들의 행동은 점점 더 격해지기 시작했다.
폭동.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이 끓어오르 던 비난은 결국 영식을 향한 폭동이 되어 나타났다.
우려하고 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 진 것이다.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영식이 단상을 향해 달려 들기 시작했다.
알렉이 일어나서 그들을 제지했지 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 번 지펴진 분노의 불길은 그 무엇으로도 꺼지지 않을 것처럼 타 오르고 있었다.
‘ 지금.’
그런 불길을 한 번에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쿠웅!
영식은 거칠게 발을 구르며 역장을 넓게 펼쳐 사용했다.
지금 그를 향해 달려드는 병사들의 레벨은 고작해야 40?50레벨 사이.
아무리 불완전한 역장이라고 해도 그 레벨의 소환자들이 역장이 가진 절대적인 힘에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허 억!”
“모, 몸이….”
“크윽! 무, 무슨 짓을….”
역장의 힘을 느낀 소환자들은 덜덜 몸을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중에는 노란 오줌을 바지에 지린 병사도 적지 않았다.
랭커들조차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압도당하는 것이 역장인데 저렙 소 환자들이 어떤 압박을 느끼고 있을 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영 식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내가 왜 총사령관의 자 리에 있는지 충분히 알 테지.”
단 한번 힘을 방출해 좌중을 압도 한 영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으, 으으….”
“저, 정말 저 인간이 낸 힘이야?”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 가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었다.
역장의 전능한 힘을 몸으로 체험한 병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말하지. 너희는 지금 쓰레 기다. 아무것도 아닌, 그냥 어디에서 나 보이는 흔한 인간들이다.”
“모두 이 세계에 떨어지고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있지 않나? 내게 특별 한 힘이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소설 이나 만화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야.”
영식의 말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 았다.
소환자라면, 아니, 소환자 이전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생각.
내가 특별한 인간이 아닐까.
남들과는 다른, 선택받은 인간이 아닐까 하는 환상.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해봤을 흔한 상상이었다.
특히 다른 세계에 갑작스럽게 오게 된 소환자들은 더더욱 그런 망상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지. 언제 나 나보다 더 강하고, 대단한 인간 은 주변에 널리고 널려 있지. 자신 이 주인공이 아닌 단역 엑스트라조 차 못 된다는 사실쯤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을 거야.”
“윽….”
팩트를 들고 두들겨 패는 듯한 영식 의 언동에 병사들은 표정을 굳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난 너희 보다 잘났다. 더 강하고, 더 높은 직위에 있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사실 너희가 낙하산이라고 욕 한 것도 속으로는 다 부러워서 그런 것 아닌가?”
“창조주 손에서 에르노어 대륙을 지켜낸다고 해도 너희의 현실은 바 뀌지 않을 거야. 너희가 아무리 발 버둥 친다고 해도 이 대륙에는 너희 보다 잘난 사람이 널려 있으니까 말 이지.”
“그, 그건….”
“그래, 이 대륙에서는 말이지.”
영식은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모두 튜토리얼을 끝낼 때 들은 말 이 있었지? 창조주를 죽이면 다른 세계로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다고.”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식 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에르노어 대륙에서야 아무것도 아 니라지만… 여기서 힘을 가지고 지 구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떨지 상상 해 본 적 있어?”
“보통 30레벨만 된다고 해도 지구 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 40, 50레벨이 넘는 소 환자들이라면 일반인 입장에서 초인 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닐 거야.”
묘한 카리스마가 서린 영식의 목소 리는 병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묵 혀두고 있던 욕망을 자극했다.
“그런 신체만 가지고 가도 엄청난 데, 거기에 각종 스킬과 마법도 사 용할 수 있지. 지금 너희가 날 보는 것처럼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너희 를 바라볼 거야.”
“그, 그게 어쨌다는 말입니까.”
한 병사가 나서서 따지듯이 물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그조차도
영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뭘 모른 척해. 이 전쟁이 끝나고 창조주가 죽으면… 너희들은 지구로 돌아가서 마치 왕처럼 대접을 받으 면서 살 수 있다는 말이야.”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이었다.
애초에 지구 사회에서 단순히 힘이 강하고, 스킬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왕처럼 살 수 있을 가 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꿀꺽….”
“그, 그래 지구로 돌아간다면….”
그런 냉철한 생각을 하기엔 영식의 말이 너무나 달콤했다.
욕망.
세상을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억눌 려 있던 욕망이 그들의 안에서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너희가 원하는 건 뭐든지 가질 수 있겠지. 생각해 봐. 당장 격투기만 한다고 해도 수백, 수천억은 쓸어 모을 것 같지 않아?”
거짓말이었다.
대륙에 있는 소환자의 숫자는 수십 만이었다.
그들이 동시에 지구에 돌아간다면 격투기나 스포츠 분야에서 결국 그 들끼리의 경쟁이 펼쳐진다.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왕처럼 군림할 수 있을 거야.”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지금과 같이, 더 잘나고 강 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갈 것 이다.
“유치하다고 포기했던 망상이 현실 이 되는 거야. 주인공이 되어, 모든 걸 가질 수 있겠지.”
거짓말이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인간은 지금과 같이 엑스트라에 불과한 삶을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녀들도 어렵지 않 게 얻을 수 있겠지.”
영식은 과시하듯 네 여인을 끌어안 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네 여인이 한 남자의 품에 안겨 있 었다.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병사들의 눈에서 불이라도 뿜어지 듯 강렬한 욕망이 피어올랐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끈적하면서도 광기가 느껴지는 사기가 병사들에게 서 피어올랐다.
영식은 그들의 반응을 바라보며 만 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게 진짜 사기진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