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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67화 (267/284)

레벨업 머신 267화

출정식 (2)

“저한테… 출정식 연설을 부탁한다 고요?”

영식은 알렉의 말에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렉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내 가 연설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

“연설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습니 까. 대부분의 연합군은 알렉 장군님 을 총사령관이라고 믿고 따르고 있 지 않습니까. 제가 연설을 하는 것 보다 장군님이 하시는 게 훨씬 더 효과가 클겁니다.”

출정식은 연합군 전체의 사기에 영 향을 미치는 중요한 이벤트였다.

사기가 군대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 인지 생각해 본다면 여기서는 알렉 이 나서서 연설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자 네에게 맡기려고 하는 걸세.”

“그게 무슨….”

“지금 연합군 내에 자네에 대해 모 르는 사람이 태반일세. 이대로 전쟁 이 시작되면 비상시 자네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있어.”

“어차피 제가 직접 명령을 하달하는 부대는 드래곤 슬레이어와 제 직속 특수부대 이외에는 없습니다. 연합군 에 대한 명령권은 알렉 장군님에게 있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다.”

“알고 있지. 하지만 내가 상정하는 것은 비상사태일세.”

“비상사태라고 하시면….”

“내가 전투 중에 죽었을 때 말일세.”

그의 말에 영식은 굳게 입을 다물 었다.

확실히 알렉이 전투 중에 죽는다면 그의 뒤를 이어 군을 통솔할 수 있 는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박시아 양이나 서강준 씨가 있지 않습니까?”

대군을 지휘해 본 적 없는 티리아 라면 몰라도 박시아나 서강준은 지 휘 능력에 있어서 부족함은 없었다.

영식의 말에 알렉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두 사람이 훌륭한 지휘관이 자, 소환자라는 것은 알고 있네. 하 지만... 역시 만 단위의 병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 아.”

“음….”

박시아와 서강준은 고작 수천의 병 력을 다뤄본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이 넘는 병력을 이끈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중에서 알렉 이외에는 없 올 것이다.

‘애초에 소환자가 이렇게 대규모로

연합한 적이 이번밖에 없으니.’

영식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알렉을 바라보았다.

“창조주와의 마지막 싸움일세. 언 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그렇다면 자네와 같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 람에게 그 빈자리를 맡기고 싶네.”

‘반론할 말이 없잖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원치 않 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알렉의 눈을 보니 마땅히 거절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곤란한데.’

연합군 내에서 영식의 평판은 이미 최악.

출정식에 나가서 연설을 한다면 도 리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가 능성이 컸다.

‘최악의 경우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어.’

연합군의 병사들이 알렉에게 보내는 신뢰와 자신의 평판을 생각한다면 아 예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믿고 있는 총사령관이 사실 은 대리였고 진짜 총사령관은 평판 이 바닥을 치는 낙하산이라는 소리 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자네의 평판이 연합군 내에서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그 런 평판을 바꿀 수 있지 않겠나.”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거라면 아 무도 고생 안 하겠죠.’

편견은 쉽게 깨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괜히 관계에 있어서 외모 를 관리하고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 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 새겨진 부정적인 이미지가 바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 이 필요했다. 아니, 일반적으로는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대부 분이었다.

“부탁이네. 솔직히 말하면… 자네 를 처음에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 었네.”

알렉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네가 수개월 동안 잠들 고 나서야 깨달았지. 자네의 존재 하나가 이 연합군에서 얼마나 중요 한 존재였는지를.”

“난 자네가 없는 동안 각기 다른 지역의 소환자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만으로 도 벅찼네. 연합군의 전력을 강화하 지도, 요새의 불안정한 치안을 안정 시키지도 못했지.”

“그건….”

“변명할 생각은 없네. 자네가 깨어 나고 난 이후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 로 해결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지. 나는 연합군을 유지할 수는 있 어도 발전시킬 수는 없는 사람일세.”

“그렇게 유지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빈말은 되었네. 나도 내 한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역시 이번 출정식에는 자넨가 연설 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렇게 말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잖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하는데 단 지 하기 싫다는 이유로 그의 의견을 묵살할 수는 없었다.

“끄응….”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가 평판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알렉이 있 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이런 식으로 나

오니 지난 행동들이 후회되기 시작 했다.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나.’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은 법.

이미 바닥을 친 평판을 한 번에 뒤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자네의 평판이 좋지 못한 것은 문 란한 여자관계 때문이 아닌가. 그렇 게 아름다운 여인들과 동시에 관계 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남자인 이상 질투할 수밖에 없지. 이번 기회에 티리아 양만을 사랑한다고 발표해 두는 건 어떤가?”

‘그렇다면 루시아가 장군님 목을

자르러 가겠죠.’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하하. 영웅호색이라고 했나. 자네 도 참 대단하군.”

‘당신 목숨을 지키려고 하는 거야.’

영식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 을 참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출정식 연설은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믿고 있겠네.”

알렉은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 이며 방 밖으로 나섰다.

“하아….”

영식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이걸 어떻게 한다.’

그가 공식 석상에 섰을 때 터져 나올 비난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앞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한다고 해 도 그들이 쉽게 들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충하고 내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출정식이 가진 의미는 꽤나 중요했 다. 목숨을 건 전쟁을 앞둔 상황에 서 연설을 통한 사기 진작을 허투루 할 순 없었다.

영식의 고민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바닥까 지 떨어진 평판을 반전하여 병사들 의 사기를 진작시킬 좋은 방법이 떠 오르지 않았다.

‘잠깐만.’

그때, 영식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굳이 평판을 바꿀 필요가 있나?’

사기를 진작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는 대륙을 구한다는 정 의감에 기대어 사기를 증진시키는 것이 정성이겠지만….

‘애초에 날 쓰레기로 생각한다면.’

굳이 그 정석적인 길을 고집할 필 요는 없었다.

“좋아.”

영식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굳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 다.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것을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될 뿐이 었다.

“그럼 준비를 좀 해볼까.”

영식은 어딘가 즐겁다는 표정으로 연설문 준비에 들어갔다.

-웅성웅성.

“와... 이게 다 연합군이야?”

유나는 황성 앞에 모인 엄청난 인 파를 바라보며 질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황성 앞에는 무려 십만 명에 달하 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중 반은 연합군복을 입은 병사들

이었고, 나머지 반은 요새에 거주하 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 모두가 인류의 마지막 전투가 될 수도 있는 전쟁의 출정식을 보기 위해 성 앞에 모여들었다.

“연합군 말고도 요새에 살고 있는 사람도 많이 몰린 거야.”

“ 엄청나네.”

“뭐... 이번 전쟁이 가진 의미를 생 각한다면 이렇게 모이지 않는 게 이 상하지.”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황성의 벽을 바라보았다.

성벽에는 이번 연설을 위해 직접

영식이 만들어 설치해 둔 초대형 스 피커와 스크린이 있었다.

십만 명이 모인 출정식이다 보니 이 정도 사이즈가 아니고서야 모든 사람이 연설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영식이 너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떨리지는 않아?”

“응? 전혀.”

“끄응…. 하긴 네가 사람 앞에서 말하는데 긴장할 리가 없지.”

유나는 이제까지 영식의 행보를 떠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영식 씨, 옷이 좀 구겨져 있어요.”

영식에게 다가온 티리아가 상냥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그의 옷매 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으읏….”

마치 일하러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 는 듯한 티리아의 모습에 루시아는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영식에 게 다가왔다.

“여, 여기도 옷이 구겨져 있어요, 주인님.”

‘그건 방금 네가 구긴 거잖아.’

영식은 그녀의 귀여운 질투에 피식 웃음을 홀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연설 준비는 잘 끝났어?”

“어느 정도는.”

“뭐, 네 일이니까 믿고 있지만….”

“내가 부탁한 대로 좀 도와주기만 하면 돼.”

“연설 중에 네 옆에 서 있어 달라 는 거?”

“그래. 조금 애교를 피우거나 스킨 십을 해도 괜찮고.”

“?연설에 그게 왜 필요한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아

라에게 영식은 씨익 미소를 지어보 였다.

“보면 알거야.”

“영식 씨, 이제 곧 나가실 차례에요.”

“알았어.”

군악대의 연주가 끝난 후, 영식의 차례가 돌아왔다. 영식은 네 여인을 양옆에 끼운 채 무대 위로 발을 옮 겼다.

‘이제 영식 군 차례로군.’

알렉은 단상 뒤, 준비된 의자에 앉 은 채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영식이 나올 문을 바라보았다.

영식이 과연 무슨 연설을 할지 그 도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분명 영식 군이라면….’

가슴이 벅찰 정도로 뜨거운 연설을 할 것이 틀림없다.

알렉은 그렇게 생각했다.

제이슨을 제외하고 누구보다 사람 을 잘 이끈다고 자부하던 그의 자신 감을 단번에 박살 낸 존재가 바로 영식 이었으니까.

‘자네는 인류의 미래일세.’

연합군이 결성된 것도, 연합군이 중앙 지역 탈환에 성공한 것도, 창 조주를 향해 검을 겨눌 수 있는 힘 을 갖추게 된 것도 모두 영식 덕분 이었다.

알렉은 무한한 신뢰가 담긴 눈빛으 로 영식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럼, 총사령관님의 연설이 있겠 습니다.”

“와아아아아!!!”

“알렉 장군님 만세!”

총사령관의 연설이라는 말에 병사

들이 환호했다.

알렉은 쓴웃음을 지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미안하지만 진짜 사령관은 따로 있네.’

연합군에는 자신과 비교하기도 무 안한, 진정한 사령관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영식이 네 여인과 함께 단상에 올라왔다. 사람들은 어 리둥절한 표정으로 단상에 선 영식 을 바라보았다.

‘영식 군, 그대의 본 모습을 사람 들에게 알려줄 차례네.’

알렉은 단상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

소를 지었다.

거대한 스피커를 타고 영식의 목소 리가 광장 전체에 퍼져 나갔다.

“반갑다, 이 쓰레기들아.”

“응…?”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말을 들은 알렉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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